제163화
한민성이 이사장실로 돌아와서 차를 마셨다.
호로록.
그가 좋아하는 녹차.
진한 녹차향이 심신을 안정시켜 주었다.
“남 비서. 오늘 이준 학생. 아니, 이준 선생님 보셨죠?”
“네.”
“어땠나요?”
“처음 그를 봤을 때와는 정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저도 그래요. 볼 때마다 성장을 하고 있으니, 놀라는 것도 지칠 지경이에요.”
남지우 비서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이준을 처음 봤을 때의 등급은 D급.
5개월에서 6개월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AA급에 달해 있었다.
그래서 의문이 들었다.
현재 보이는 AA급 실력이 진짜일까.
힘을 더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문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군요? 이준 선생이 본모습을 더 숨기고 있는 게 아닌지?”
“아, 네.”
“전 더 숨기고 있다고 봐요.”
“근거라도 있으십니까?”
“남 비서는 오대가문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민성 이사장이 남 비서에게 되물었다.
남 비서는 잠시 생각하다가 질문에 바로 대답했다.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기둥이라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가문을 무너트릴 정도면 실력이 어느 정도에 있어야 할까요?”
“적어도 오왕급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민성 이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틀렸어요. 적어도 검제님 급은 되어야 해요.”
“너무 과대평가하신 것 아닙니까? 패왕도가에는 도왕이 없었고, 도련의 도악은 도왕보다 약한 자입니다.”
“남 비서의 말을 토대로 말하자면 오대가문이 사마련보다 강하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오대가문은 사마련을 그냥 놔두는 거죠?”
“그들은 필요악과 같은 존재 아닙니까?”
현 시대는 각성자를 필요로 했다.
사마련이 범죄자 집단이라곤 하나 각성자들.
게이트 폭풍이나 몬스터 웨이브 등이 일어나면 막아 줄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에서도 높은 등급의 각성자가 적지 않은 만큼 그들을 잡아다가 죽인다면 대한민국의 전력이 삼분지 일은 날아갈 터.
안 그래도 아시아 국가 중에 전력이 제일 약한 곳이 대한민국이었다.
그래서 오대가문에서 사마련을 놔두고 보는 거라고 생각한 남지우였다.
“필요악 맞아요. 하지만 사마련을 쓸어버릴 힘이 있다면 제거하려는 게 오대가문이라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가만히 놔두는 건 압도적으로 이길 만한 힘이 없다는 거죠.”
“검제께서 계시는데도 말입니까?”
“사마련에서도 혈마악이 있어요. 검제님께 제일 근접한 남자. 물론 검제님과 동급이라고 할 순 없지만, 검제님의 발을 잠시 잡아 둘 정도는 될 겁니다. 그가 검제님을 붙들고 있는 사이 남은 육악이 오왕들을 상대하면 피해가 극심할 테죠. 높은 등급의 각성자일수록 그 짧은 틈이 치명적인 피해를 낳는다는 걸 모르시는 건 아닐 텐데요. 오왕과 칠악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겁니다.”
정치라는 건 생각보다 복잡했다.
가문을 이끄는 입장에서 오로지 힘만으로 행동할 수 없는 존재.
만약 모든 걸 힘으로 해결했다면 검제가 있는 철혈검가가 대한민국을 먹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서로 땅을 양분해서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가 확신을 한 부분이 있었죠.”
한민성 이사장이 차를 한입 마셨다.
남 비서는 그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호로록 소리와 함께 찻잔을 내림과 동시에 그가 말했다.
“이준 선생이 도련을 박살냈는데도 사마련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 원래 나머지 육악의 성격이라면 응징을 하고도 남았을 거예요.”
“현장의 흔적을 보고 자숙하는 거라고 보고 계시는 겁니까?”
“맞아요. 사마련은 이준 선생과 도악의 싸움을 분석했을 테니까요.”
“으음…”
“제가 이준 선생을 검제님과 동일 선상에 두는 이유입니다.”
한민성 이사장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 포악하고 잔인한 사마련이.
도련의 복수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건 좀 의외였다.
가문의 정보 단체.
비선의 정보로는 사마련이 집안 단속을 철저히 하고 있다고 한다.
대외 활동을 전부 접은 채 말이다.
갖은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
한민성 이사장의 의견을 듣고 나니 어떻게 된 것인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그래서 기대돼요. 이준 선생이 특별반 아이들을 얼마나 잘 가르칠지 말이죠. 후후. 잡담이 너무 길었네요. 학교 일정을 말해 줄래요?”
남 비서가 2학기 일정을 읊었다.
특별반은 자율 훈련.
선생의 재량에 맞기고, 남은 학생들은 학교의 일정을 그대로 따랐다.
남 비서가 옆구리에 끼고 있는 서류를 테이블에 살포시 내렸다.
“한 달 후에 있을 블루존 게이트 공략 후보지들입니다.”
“천변의 호수, 독나의 숲, 공포의 요새, 검은 바다라… 하나 같이 미공략 게이트들이군요.”
“학생들의 수준 치고는 너무 위험하긴 합니다.”
“어쩔 수 없어요. 중국 북경 아카데미에서는 학생들을 1학년 때부터 블루존 게이트에 집어넣는다고 하더군요. 저희는 여태까지 학생들을 온실 속 화초로 키웠어요. 이러면 중국과의 격차가 더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한민성 이사장의 결단이었다.
학생들을 책임지는 입장으로서 어찌 그들을 사지로 내보는 게 좋겠나.
하지만 대한민국의 전력을 조금 더 끌어올리려면 독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진행해 주세요.”
“…네.”
* * *
이준네 특별반 학생들이 그들만의 운동장으로 나왔다.
그들의 앞에는 철환이 놓여 있었다.
이준이 철환을 들어 올려 무게를 쟀다.
“오, 한 짝에 100kg 정도 되네?”
“도련님이 준비해 놓으라는 무게로 준비해 놓았어요.”
“잘하셨어요.”
이준은 이의태와 차경진에게만 존대를 했다.
그녀는 전생에서도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던 사람.
담임이던 김태형과는 달리 차경진은 제대로 된 선생이었다.
무엇보다 이전부터 존대를 하던 걸 갑자기 바꿀 만큼 이준은 뻔뻔하지 않았다.
“자, 다들 철환을 양팔과 양 발목에 차세요.”
연신 싱글벙글.
이준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을 굴릴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그럴 리가요. 전 친구들을 강하게 만들 생각으로만 가득합니다.’
[퍽이나. 네놈이 나보다 더 악질이다.]
‘제자한테 무슨 그런 악담을.’
이준과 무극자 사부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학생들은 철환을 손목과 발목에 찼다.
“아, 내 스타일 아닌데. 좀 예쁘게 만들어 주면 안 되나.”
“투정은. 무거울 줄 알았는데 별 거 없잖아?”
박정연의 투정에 박혁진이 핀잔을 주며 손목에 철환을 찬 채 몸을 움직여 보았다.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각성자라 그런지.
움직임에 제약이 없었다.
나머지 학생들도 박혁진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이걸로 훈련이 되려나?”
“차 쌤 수업하고 다를 게 없는데?”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한지유 팸과 허수의 움직임에는 둔함이 있었다.
몸에 걸친 것만 400kg.
일반인이라면 움직이는 것조차 버거워할 만한 무게였다.
하나 학생들은 일반인도 아니고, 각성자 중에 초 엘리트.
한지유 팸과 허수가 버거워할 만한 무게는 아니었다.
허수의 굼뜬 움직임에 같은 학년인 암화 정예은이 허수를 보며 말했다.
“창룡 선배도 이겼으면서 엄살 피우는 거야?”
“엄살 아니다.”
“아니면 덩칫값을 못 하는 건가?”
정예은이 악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의문을 가진 이유는 당연했다.
이준에게 이미 수련을 받았던 허수를 포함한 한지유 팸은 내공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
움직임이 전과 다름없는 정예은 등은 내공을 사용해 몸을 움직이고 있어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너도 곧 나처럼 될 거다.”
“응?”
정예은이 눈을 끔뻑이고 있을 때 이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철환 착용했지?”
“응.”
“네.”
학생들이 자신 있게 대답하자, 이준이 흐뭇하게 웃었다.
이제 지옥을 맛볼 시간.
아주 재밌는 수업이 될 거다.
“그러면 이제부터 모두 내공을 봉쇄합니다.”
“네?”
“내공을 봉쇄한다는 게 뭔 말이야?”
이준의 말을 못 들었는지.
박혁진이 정예은과 같은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말 그대로야. 앞으로 내공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생활할 거야. 차 선생님 시작하세요.”
“네.”
차경진이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그녀의 손가락은 학생들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허수와 한지유 팸은 저항하지 않았다.
반면 갑자기 차경진의 접근에 박정연과 박혁진이 움찔 반응했다.
팟팟!
땅을 박차고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차경진은 두 사람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남은 인원의 내공을 봉쇄했다.
차경진의 손길을 피한 두 사람은.
“억!”
“떠, 떨어진다아아아!”
어느새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난 이준의 손놀림에 내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쿵.
쿵.
그래도 A급 각성자.
간신히 균형을 잡고 떨어져 바닥에 착지했다.
“윽.”
“다, 다리가 부서진 것 같아… 준아아아….”
박정연은 작은 신음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박혁진은 고통에 겨워하며 이준을 불렀다.
“그러니까 왜 피해.”
“내, 내가 피하고 싶어서 피한 거냐? 몸이 저절로 반응한 거지… 나, 아파 준아. 야, 양호실 좀.”
“가지가지 한다. 엄살 부리지 마라.”
“진짜야! 다리뼈가 아직 난 것 같아.”
이준은 고개를 저으며 박혁진을 철저히 무시했다.
녀석이 목 놓아 부르짖었지만, 녀석을 부축해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자기들 몸 챙기기에도 힘겨웠으니까.
* * *
[한지유의 체력이 +1 올랐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박혁진의 체력이 +1 올랐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
……
[정예은의 체력이 +1 올랐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빨리 빨리 뜁니다.”
이준이 어디서 준비했는지 빨간 모자를 푹 눌러 쓰곤 학생들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허억… 허억….”
“뒤, 뒤질 것 같아. 하악….”
“이 무식한 달리기… 허어억… 언제까… 허억… 지 하는 거야… 허억….”
박혁진은 물론이고 박정연, 진경수, 정예나가 숨이 넘어갈 듯한 호흡을 내뱉었다.
땀에 절은 교복은 물론 얼굴에서 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거기. 박혁진 교육생. 지금 잡담하는 겁니까?”
“히이익!”
이준의 호명에 박혁진이 화들짝 놀랐다.
꿈 뜨던 발이 갑자기 빨라졌다.
녀석이 다른 학생들을 제치고 달렸다.
특별반 학생들의 달리기는 계속 되었다.
한 시간이 지날 무렵.
“헉헉… 좀 쉬면 안 될까요?”
이준의 앞에서 멈춰 선 정예은이 말을 힘겹게 내뱉었다.
“본 교관은 달리기를 멈추라고 말 한 적이 없습니다.”
이준이 빨간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중저음으로 경고를 했다.
그 분위기에 정예은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총 400kg의 철환.
움직이는 데 불편함은 있었으나, 괜찮았다.
자신은 각성자.
이 따위 철환을 지니고 움직이지 못하면 각성자라 할 수 없다고 여겼다.
하나 그녀의 생각은 보기 좋게 틀렸다.
철환을 차고 운동장을 달린지 20분.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달리니 호흡은 급격하게 빨라졌다.
그렇게 10분이 더 지나니까 다리가 둔해졌다.
또 다시 10분이 지나자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달려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굼뜨게 움직이면 이준이 가만히 있지 않았으니까.
다시 10분이 지나갔을 때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대로 더 뛰다간 심정지가 오지 않을까.
갖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준에게 조심스럽게 말한 건데 단칼에 거절당해 버렸다.
정예은의 뒤에 달리고 있던 허수가 안타까운 마음에.
“제가 더 달릴 테니, 얘는 10분만이라도 쉬게 해 주면 안 되겠습니까?”
“호, 이것 봐라. 내 수업에서 연애질을 할 참이렸다?”
이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앞으로 특별반의 슬로건으로 커플지옥 솔로만세.
지금 정했다.
자신의 앞에서 꽁냥꽁냥은 금물이다.
1시간을 달렸으니, 그래도 조금 배려를 해줄까?
“그게 아니라….”
“좋습니다. 특별히 5분 휴식을 취하도록 합니다.”
“감사합니다!”
허수가 우렁차게 외쳤다.
털썩털썩.
학생들이 그 자리에서 뻗었다.
떠들 기력도 없는지.
“허억… 허억….”
“…하악… 죽을… 것… 하악….”
그저 가쁜 호흡만 내뱉고 있었다.
학생들을 보며 이준이 사악하게 웃었다.
‘햐, 무극대를 굴릴 때보다 더 재밌잖아?’
[이놈, 아주 무서운 놈이로고.]
‘다 사부님에게 배운 겁니다.’
[사부는 네놈처럼 악마 같은 짓은 안 했느니라.]
‘에이. 말은 똑바로 하셔야죠. 이 훈련 사부에게 배운 건데요?’
[난 적어도 10분간의 휴식 시간을 줬다 이놈아!]
‘큼큼. 그런가요?’
이준이 짐짓 모른척했다.
어차피 ‘내가’하는 훈련이 아니다.
지금은 교육생이 아닌, 선생님.
휴식 시간이 10분이던 5분이던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짝!
이준이 손뼉을 쳤다.
금세 가버린 휴식 시간.
학생들을 일으켜 세웠다.
“다들 일어납니다.”
휴식이 끝났음에도 1초라도 더 늦게 일어나려는 박혁진이 눈에 들어왔다.
“박혁진 교육생.”
“응?”
“지금 본 교관한테 반말을 했습니까?”
“아, 아니요?”
“교육 때는 다, 나, 까로 합니다.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본 교관은 여러분이 꾀를 부리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조금이라도 쉬겠다는 이기적인 생각. 본 교관이 없애 주겠습니다.”
오늘 교육.
이준의 목표는 박혁진이었다.
녀석의 특성을 최대한 빨리 개화시켜 주기 위한.
이준의 스파르타 교육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