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특성 개화시켜 줄게.”
“진짜? 정말 네가 애들 특성 개화시켜 줬다는 게 사실이었어?”
한지유에게 들은 이야기.
이준 덕분에 특성을 개화했다는 소리를 듣고 긴가민가했다.
그래도 이준이니까.
설마 한지유가 거짓말을 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이준 입에서 특성을 개화시켜 주겠단 소릴 듣자 너무도 놀랐다.
특성을 개화시켜 주겠다니.
검제인 자신의 할아버지도 상대방의 특성을 개화시키진 못한다.
잘 가르친다고 해서 특성이 개화하는 거라면 철혈검가는 이미 대한민국을 삼킬 전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싫으면 말든가.”
“미친. 네 특성이 각성자들 가르치면 특성을 개화시켜 주는 거라도 되냐?”
“어떻게 알았냐?”
이준이 되묻자 박혁진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농담이지?”
“정말인데?”
“너 뭐냐.”
“뭘?”
“개사기 특성을 가졌잖아!”
맞는 말이다.
악마 교관이라는 특성은 개사기 특성이 맞았다.
상대 특성 개화.
수련 경험치 100%.
심지어 높은 등급일수록 엄청난 효과를 보는 게 바로 악마 교관이란 특성이었다.
고로 박혁진을 굴린다면 필시 등급이 높은 특성을 개화시킬 수 있을 터.
안 가르쳐 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싫냐? 특성 개화하는 거?”
“에이. 재미없는 농담하지 마. 헤헤.”
화들짝 놀랐던 박혁진이 해맑게 웃어 보였다.
이준은 그런 박혁진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자. 너무 지체됐어.”
“가즈아아!”
이준은 이지안을 데리고 무사중 본관 건물로 함께 들어갔다.
이렇게 소란을 피우고 관심을 집중시켜놓은 건 김열찬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이지안 때문이기도 했다.
원체 숫기가 없는 아이.
자신과 박혁진이 이지안을 손수 교무실까지 데려다주면 학생들과 선생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출신 또한 신력권가였다.
학생들은 이지안과 친해지려고 노력할 거고, 선생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다.
그래서 일을 조금 크게 벌린 것도 있었다.
어느새 무사중 교무실 앞에 도착했다.
“어깨 펴고, 무극대와 같이 지냈을 때처럼 편하게 생각해.”
“네…”
“잘 할 수 있지?”
“…그럼요.”
“그래. 잘 할 거라 믿을 게. 옆 학교니깐 언제든 연락하고.”
이준이 여동생을 돌보는 듯, 이지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도 이준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준이 손을 내리자, 이번엔 박혁진의 손이 이지안의 머리 위에 올라왔다.
그녀가 흠칫 놀랐다.
“넌 왜 지안이 머리에 손을 얹어?”
“너도 했으니까 나도 따라하는 건데? 네 동생 같은 애라며? 그러면 나한테도 동생 아니야?”
박혁진이 뻔뻔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철판을 깔고 말하니 목구멍에서 말이 안 나왔다.
이준이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사이.
“지안이라고 했지? 준이보단 이 혁진 오빠가 너한테 도움이 많이 될 거야. 그러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나한테도 전화해도 돼. 알았지?”
박혁진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지안의 마이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의 번호를 저장해 줬다.
[존잘 검룡 오빠]
참 자기애가 심하게 강한 박혁진이었다.
대체 저런 놈이 뭐가 멋있다고 좋아 죽으려고 하는지.
여자들을 이해할 수 없는 이준이었다.
그 마음을 알아차린 걸까.
박혁진이 음흉하게 웃어 보였다.
“네가 그러니까 나보다 인기가 없는 거야, 임마.”
“갑자기?”
“그렇다고.”
이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왠지…
묘하게 나쁜 이 기분은 뭘까.
박혁진에게 패배한 것 같았다.
“저… 들어가 볼게요.”
“그래.”
이지안이 고개를 숙인 후 교무실로 들어가자, 이준과 혁진은 몸을 돌려 건물을 나왔다.
“준아. 지안이 쟤 쫌 귀엽다.”
“김칫국 마시지 마. 어린 애야.”
“야! 내가 그런 파렴치한으로 보이냐?”
“뭔데 오바야.”
“아니, 네가 나를 아주 도둑놈 취급하잖아.”
“그 있잖냐. 혁진아.”
“어! 말해!”
“네 얼굴에 다 써 있어. 지안이한테 관심 있다고.”
“내, 내가? 그럴 리 없을 텐데.”
박혁진이 당황해했다.
제 딴에는 포커페이스를 숨기려고 표정 관리를 했을 테지만, 이준에겐 다 보였다.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절친인데 어찌 박혁진의 생각을 모를 수 있을까.
“정연 누나한테 말해야겠다.”
“뭐, 뭘?”
“너 중딩한테 첫눈에 반했다고.”
“아니라니깐! 저어어엉말 진심으로 아니야!”
“응. 격한 부정은 긍정이야.”
이준이 피식 웃으며 앞서갔다.
우두커니 멈춰 있는 박혁진이 갑자기 머리를 쥐어뜯더니 이내 끔찍해하는 표정까지 짓는 게 아닌가.
“아아악! 누나는 절대 안 돼! 준아아아!”
그는 이준의 뒤를 따라가면서 절규했다.
* * *
“2학기 첫날부터 아주 화끈하더군요.”
“어떤 게 말인가?”
“주 선생님은 검룡과 무사중의 매화일수가 비무하는 거 못 보셨어요?”
“그런 일도 있었나? 차가 막히는 바람에 못 봤네.”
체육관 강당에 착석해 있는 선생들이 오늘 아침에 있었던 사건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들도 검룡과 매화일수가 싸우는 걸 봤다.
아니, 싸우기보단 거의 가지고 논 수준.
무사고의 선생들은 자기들이 더 뿌듯해 했다.
“그 좋은 구경을 놓치셨다니 아까워요.”
“그러게 말입니다. 안 그래도 무사중 선생들이 회식에 참석할 때마다 자기네 아이들이 우리 무사고 학생들과 싸워도 이길 수 있다고 해서 짜증나는 중이었는데 잘 됐습니다.”
“콧대를 꽉 눌러 줘서 어찌나 후련한지.”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구경한 선생들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박혁진이 무사중 랭킹 1위인 매화일수를 가볍게 눌러 준 덕분에 무사고 선생들의 어깨가 높아졌다.
이게 바로 자신들이 가르친 아이들의 수준이었다.
“그리고 방학 사이에 혁진이의 실력이 더 늘어난 것 같지 않아요?”
“아무래도 도귀와 음귀의 습격 때, 실력이 일취월장한 게 아니겠습니까?”
“아주 처절하게 싸웠다고 하던데 실력이 늘 만한 이유가 있었군요.”
“주 선생님은 뿌듯하겠습니다.”
“하하. 검제 님의 손자 아니겠나.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게 당연하네.”
철혈검가 소속, 칠절참흔 주재민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어깨도 함께 올라갔다.
가문에 소속되어 좋은 점은 바로 이런 거다.
자신이 속한 가문의 후계자가 강하면 곁에 사람들이 다가온다는 것.
어떻게든 더 친해지고자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강한 세력에 붙는 것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데 제일 도움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차 선생은 요즘 어떤가? 나보다 차 선생이 더 좋을 텐데.”
“평소와 똑같습니다.”
“자네는 여전하군. 모시는 사람이 오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데 좀 더 좋아해도 되네.”
“노력해 보겠습니다.”
“마침 저기 오늘의 주인공께서 들어오는군.”
이준이 한민성 이사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체육관 강당으로 들어왔다.
선생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와 계셨군요. 바로 행사를 진행해 주세요.”
이준은 학생들이 앉는 자리가 아닌, 새로 부임하는 선생들이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선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준이 왜 저기에 앉을까.
오왕과 서열이 같다고 한민성이 학생들과는 다른 대우를 해 주는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선생들이었다.
“아아.”
한민성 이사장이 마이크 테스트를 했다.
“잘 나오는군요. 반갑습니다. 여러분 한민성 이사장입니다.”
짝짝짝짝.
학생들이 함성 대신 박수로 대답했다.
“방학 잘 보내셨나요?”
“아니요!”
“집에 안 가는 유부남 선생님들 때문에 훈련만 빡세게 했어요.”
“하하. 제가 집에 들어가라고 결혼하신 선생님들을 아주 혼내 놔야겠군요.”
체육관에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차츰 웃음이 멎자.
한민성은 학생들에게 2학기에 진행될 큰 행사들을 차례대로 말했다.
행사는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제 새로 부임하게 된 선생들을 소개할 차례.
“여러분의 실력이 예상을 훨씬 웃도는 나머지. 이대로 가다간 학교에서 배울 게 없다고 자퇴하겠다는 학생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이사장이 각 가문에 부탁해서 새롭게 부임하시게 된 선생님들입니다. 앞으로 나오세요.”
이준 옆에 앉아 있던 선생들이 차례대로 나왔다.
마지막엔 이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준의 모습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이준이 저기에 왜 있는 거야?”
“낸들 알겠냐.”
“설마 선생으로 부임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겠냐? 우리랑 같은 또래인데?”
“같은 또래라도 실력은 전혀 다르잖아.”
“쉿. 모두 조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한마디에 시장통이던 체육관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선생들의 소개가 시작되었다.
승복을 입은 한 스님이 먼저 앞으로 나왔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
입을 여는데 동굴이 울리는 듯한 저음의 목소리가 나왔다.
“반갑소이다. 소승은 신룡사에서 파견 나온 청운이라 하외다.”
“헉!”
“백보신권!”
“저 분이 선생님으로 들어온다고?”
속세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신룡사에서 유명한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거기엔 방금 소개한 청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백보신권은 십보신권으로 변형해 학교에 기부한 사람이기도 했다.
“와, 무게가 완전 다른데?”
기존의 선생들도 등급은 높았다.
하지만 청운처럼 아예 신룡사의 수뇌부가 파견 온 건 처음이었다.
첫 소개부터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다.
학생들은 쉽사리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청운 다음으로 소개한 사람도 그에 못지않게 유명했기 때문이다.
“반가워요. 여러분. 대정그룹 출신 나혜원이라 합니다.”
대정그룹이 이은 무공의 정체는 바로 아미파.
그래서인지 대정그룹은 회장부터 직원까지 전부 여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 영향을 받은 탓인지 대정그룹은 여자 스스로 몬스터에게 몸을 지키고 보호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헉! 옥심난검까지. 이사장님은 어떻게 저분들을 초빙한 거지?”
“그게 중요하냐. 난 레드걸스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아. 기분 째진다.”
레드걸스는 대정그룹 산하 계열사에 속한 그룹이자, 단발좌 유니가 속한 아이돌 그룹.
몇 달 전까진 무명에 가까웠지만, 현재는 10대부터 40대까지 남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최정상 아이돌이 됐다.
옥심난검 나혜정은 바로 대정그룹 회장의 막내 딸로 대정엔터의 실소유주기도 했다.
“성적 잘 나오는 사람에게 레드걸스와 통화하는 기회를 드릴게요. 앞으로 잘해 봐요.”
“와아아.”
“통화 기회는 무조건 내꺼야!”
“꺼져, 나 보다 약한 놈이 어디서 레드걸스를 넘봐!”
남학생들이 서로 난리를 쳤다.
그 모습이 보기 좋은지 나혜정은 웃고만 있었다.
계속해서 새로 부임하게 된 선생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신창조가, 검산그룹, 진씨가문에서 파견 나온 선생들까지 모두 소개를 마쳤다.
이제 남은 사람은 한 명.
학생들도 다 아는 이준뿐이었다.
설마 이준이 앞으로 나올까 생각하던 학생들의 눈이 커졌다.
“실화야?”
“정말 이준 선배가 선생으로 부임해?”
“전례 없는 일 아닌가?”
학생들은 저마다 홀로 중얼거렸다.
뚜벅뚜벅.
이준이 강당의 마이크 앞에 섰다.
그리고 바로 앞.
박혁진과 박정연, 그리고 한지유를 차례대로 쳐다보곤 입을 열었다.
“신력권가의 대표로 부임하게 된 이준. 다들 알지? 앞으로 재밌게 지내보자. 내 수업은 정말 재밌을 거야.”
이준이 집중적으로 맡게 된 건 특별반이었다.
하지만 특별반만 맡는 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이준에게 배정된 과목이 있을 터.
예를 들어 ‘창술’ 같은 기본 과목 하나는 맡아야 했다.
그렇다고 창술을 가르칠 생각은 없었다.
이준은 그런 것 대신 기초 체력 훈련을 가르치고자 했다. 자신이 무극자 사부에게 배웠던 것처럼 뼛속 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