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너 여기 어떻게 왔냐?
“어떻게 오긴. 네 기가 이곳에서 느껴져 온 거지. 왜 여기에 있냐? 어? 그 뒤에 있는 미인은 누구신가?”
박혁진이 이준의 뒤에 있는 이지안을 보았다.
한눈에 봐도 예쁜 여학생.
인정하긴 싫지만, 자신의 누나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미모였다.
“우리 가문 출신이야.”
“신력권가? 저만한 나이는 네 이복동생 말고는 없지 않… 아?”
박혁진은 말을 하면서도 아차 싶었다.
이준에겐 이신 말고도 형제가 한 명 더 있었다.
신력권가의 막내.
현재는 유렵으로 유학을 가 있는 상태였다.
“전 동의각주님 손녀야.”
박혁진의 실수에도 이준은 개의치 않아했다.
“전 동의각주님이라면 이의태 님?”
“뭔데 우리 가문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냐?”
“하, 하. 절친 가문이라 눈여겨본 것뿐이야. 절대 우리 철혐검가가 너희 가문을 치려고 내부 정보를 샅샅이 알아낸 게 아니야. 진짜다. 형 믿지?”
박혁진이 횡설수설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녀석이 딱 그 꼴이다.
“누가 뭐래? 네가 그러니깐 진짜 같잖아.”
“아니라니깐!”
“그래. 믿어 줄게.”
뜬금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박혁진이 이준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학생들의 눈에 들어왔다.
웅성웅성.
무사고의 스타.
검룡 박혁진이 무사중에 나타나자 여학생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이준에 이어 엄친아 박혁진까지.
계 탄 날이다.
“어쩜. 저렇게 잘 생겼을까.”
“눈 감는 시간도 아까워.”
“앗! 잊고 있었어. 이럴 때가 아니지.”
한 여학생은 언제든지 자신만의 아이돌을 사진에 담기 위해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
지금이 바로 그때.
대포 카메라를 꺼내 이준과 박혁진의 모습을 찍었다.
그녀를 시작으로 다른 여학생들도 너도나도 스마트폰을 들어 두 사람을 영상에 담았다.
이런 일이 익숙한지.
박혁진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네 맞아요. 저 검룡 박혁진이에요.”
거기다 자기소개까지 하는 미친놈이었다.
이준이 눈을 질끈 감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더 몰려오는 게 아닌가.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이지안의 손을 잡고 이곳을 벗어나려고 움직이려는데.
“야. 어디가.”
“지안이 데려다줘야 해.”
“올- 학부모 노릇이냐? 재밌겠다. 같이 가자.”
“꺼져. 여기서 사진이나 찍고 있어.”
“싫은데, 내 마음인데? 같이 갈 건데?!”
이준과 박혁진이 계속 티격태격하고 있는 사이.
소외된 김열찬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이곳 무사중에서 모든 관심은 자기에게 쏠려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이준과 박혁진이 학생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준에게 복호권을 사용할 적.
자신과 이준을 갈라놓은 한 줄기 뇌전으로 인해 공격을 회수해야만 했다.
이 또한 자신의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
이준이 오왕과 같은 서열에 있다하더라도 상관없다.
그의 옷자락만 건드려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건 스포트라이트뿐이었으니까.
AA급 각성자.
국가전력 급의 옷자락을 건드리기라도 한다?
그것도 중학생인 C급 각성자가?
엄청난 관심이 쏟아질 게 뻔했다.
그만큼 AA급 각성자는 특별한 존재였다.
객기를 부려서 이준과 한 번이라도 손속을 교환한다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많았다.
이 배경엔 이준이 자신을 죽이지 않을 거란 확신도 깔려 있었다.
수준 차이 나는 자신과 입씨름만 해도 손해 보는 게 AA급.
오왕 급이 중학생을 상대로 진심을 다한다면 그것대로 꼴불견이지 않나.
등급이 높은 각성자는 그런 존재다.
그런데 훼방꾼이 나타났다.
검룡이라는 존재가.
분명 자신이 이준을 공격했다는 걸 알고 있을 건데.
‘날 계속 무시한다 이거지?’
시선도 주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등을 보이기까지 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이준이 안 되면 박혁진 너라도.’
김열찬은 자신의 주체도 모른 채 타깃을 변경했다.
두 주먹에 내공을 집중시켜 복호권을 시전하려는 순간!
박혁진이 고개를 돌렸다.
“이 어리석은 후배님은 누굴까?”
박혁진이 김열찬에게 관심을 보이자, 그도 무공을 거뒀다.
“검산그룹 김열찬입니다.”
“김열찬? 누구지?”
“슬기 누나의 사촌 동생입니다.”
“아!”
박혁진이 한 손에 주먹을 쥔 채 다른 한쪽 손의 손바닥을 가볍게 내리쳤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얼굴이었다.
“모르겠는데?”
표정과 말이 정반대인 상황.
그 모습에 김열찬이 인상을 찌푸렸다.
상당히 기분 나빠하는 얼굴이었다.
박혁진은 어깨를 으쓱이곤 몸을 돌렸다.
그는 이준에게 가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김열찬에게 말했다.
“내가 무사중을 졸업한 선배로서 충고 하나 하자. 네가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객기는 함부로 부리는 게 아니야. 넌 AA급 각성자가 뉘 집 개이름으로 보이냐?”
“그건!”
“네 삼촌인 검산그룹 회장님도 이준 앞에선 대가리 박아야하는 게 현 시대야. 그게 AA급 각성자라고.”
박혁진은 김열찬을 신랄하게 까댔다.
주제도 모르고 덤비지 말라는 소리. 너 말고 네 삼촌이 와도 이준에겐 덤비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박혁진이 까댔는데도 불구하고.
김열찬의 머리에 근육만 들어찼는지.
아니면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더 큰 모양인지, 악수를 둬 버렸다.
“한 번이라도 좋고, 이준 선배가 아니라 박혁진 선배라도 좋아요. 저와 대련해 주시죠?”
“얘 아직 정신 못 차리네. 내가 객기는 부리는 게.”
박혁진은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
이준이 중간에 끼어든 탓이었다.
“혁진아. 너랑 비무하고 싶다잖아. 한 번 해 줘.”
“내가?”
“너 손 근질근질하잖아?”
“야. 그래도 애랑 어떻게 하냐.”
“선배랑 전 두 살밖에 차이나지 않습니다.”
“두 살밖에 차이 안 난다잖아. 너 하는 거 보고 내가 좋은 거 줄게.”
“뭔데?”
박혁진이 눈을 빛냈다.
이준의 입에서 좋은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준이 말할 정도면 꽤 좋은 물건이 아닐까.
잔뜩 기대했다.
“끝나면 말해 줄게.”
“콜!”
박혁진이 곧바로 수락했다.
정말 티 없이 단순한 녀석이었다.
이준은 그러면서 김열찬에게 시선을 던졌다.
‘저 멍청한 놈. 여기가 지 무덤인줄도 모르고 좋아하네.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준은 전생을 겪은 통해 많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지유가 하와이안 피자와 민트초콜릿을 좋아하는 것처럼.
박혁진의 요상한 성격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이준은 박혁진의 못된 버릇을 안다.
다른 때에는 안 나오는데 유독 대련 때만 하는 행동.
분명 김열찬과 대련을 하면 그 못된 버릇이 튀어나올 거라 예상했다.
* * *
갑자기 하게 된 대련.
무사중 운동장에는 계속해서 인파가 몰려들었다.
검룡과 매화일수가 대련을 한다는 소식이 언제 퍼졌는지.
무사고 학생들까지도 이곳으로 왔다.
‘내가 원하는 방향이야.’
김열찬의 얼굴에 지어진 미소가 진해졌다.
속속 모여드는 학생들.
무사중 선생들도 곳곳에 보였다.
무려 검룡의 대련.
무사중 랭킹 1위인 김열찬이지만, 무사고의 검룡과는 이름의 무게 자체가 달랐다.
그 때문에 김열찬에겐 기회가 되는 일이도 했다.
여기서 선방을 한다면 앞으로의 길은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이다.
“이쯤에서 시작할까?”
“검 안 꺼내십니까?”
“봐서.”
“절 얕봤다간 후회할지 모릅니다.”
“아이고 후배님. 제가 망신 당할까봐 걱정해 주는 건 고마운데 이걸로 충분합니다.”
박혁진은 몸에 여유가 넘쳤다.
싸울 마음도 없는지 빈틈투성이었다.
지금 공격하면 타격에 성공할 만큼 무방비였다.
“후배를 생각하는 마음인 줄 알고 먼저 시작하죠.”
팟!
김열찬이 허리춤에 걸린 검을 뽑으며 달려 나갔다.
그는 복호권만이 아닌, 육합검법도 다룰 수 있는 검수였다.
“오, 검을 쓰잖아?”
쉭쉭.
하얀빛이 나는 검신이 박혁진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칫. 조금만 닿으면 벨 수 있었는데. 아쉬워. 생각했던 것보다 실력이 별로잖아? 검룡도 별 거 없네.’
그래서인지 김열찬은 희망을 가졌다.
박혁진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십년감수했다. 하마터면 머리가 잘릴 뻔 했어.”
쉬쉭쉭쉭-
김열찬은 육합검법의 묘리를 아주 잘 살려 박혁진을 몰아붙였다.
움직이는 모든 방위를 차단한 채 압박을 가했다.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박혁진을 베지 못하자.
“너 꽤 하는 것 같은데 왜 날 베지 못하는 거니.”
슬슬 열 받기 시작했다.
‘쥐새끼 같은 자식!’
모든 방위를 차단하며 육합 중 마지막 일격을 가할 때마다 박혁진이 빠져나가 버렸다.
“흥분하면 안 되는데.”
될 듯 말듯 통하지 않은 공격.
김열찬은 검을 박혁진에게 냅다 던져 버리고 복호권을 펼치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기세가 그의 주먹에서 표출됐다.
펑펑!
공기가 터지며 앞으로 뻗어가는 주먹.
이 공격 또한 어김없이 빗나갔다.
‘대체 왜 빗나가는 거야!’
김열찬은 이제 짜증이 날 지경이다.
아예 공격이 성공 못할 것 같으면 희망이라도 안 가지지.
닿을 듯 말듯.
누굴 놀리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김열찬은 박혁진이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좀 더 경험이 있는 각성자라면 알 것이다.
박혁진이 김열찬을 완전히 가지고 놀고 있다는 것을.
거기다가.
“복호권이 네 주 종목이야?”
“제발 입 좀 닥쳐!”
박혁진은 계속 입을 나불거렸다.
귀에 거슬릴 정도.
대련이 아닌, 꼭 놀리듯 장난을 치는 듯한 행동이었다.
“떽! 선배님한테 닥치라니. 우리 열찬이는 나쁜 아이구나?”
펑펑!
박혁진을 향해 주먹을 수없이 휘두르는데도 단 한 방을 맞추지 못했다.
모두 다 헛방이었다.
김열찬은 자존심이 무참히 박살나는 중이었다.
“입 닥치라고!”
후우웅!
화가 머리끝까지 난 김열찬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내공을 담아 박혁진을 향해 휘둘렀다.
공기를 가르며 나아가는 호랑이의 얼굴.
날카로운 아가리를 쫙 벌리며 박혁진을 잡아먹으려 하고 있었다.
“나쁜 아이는 교육이 필요하니깐 내가 귀찮음을 무릅쓰고 손수 알려 줄게.”
그 말을 끝으로 피하기만 하던 박혁진이 드디어 움직였다.
아니, 바닥에 발을 딛고선 활짝 핀 오른쪽 손을 쭉 뻗었다.
그게 끝.
박혁진이 취한 행동은 이게 다였다.
파지지직!
박혁진의 손아귀에 호랑이의 대가리가 우그러졌다.
“아아아악!”
그에 따라 김열찬이 비명을 질렀다.
복호권을 쓴 사람은 그.
박혁진의 손아귀에 잡힌 그의 주먹이 새까맣게 타 있었다.
“봐봐. 내가 객기라고 했잖아. 내가 내공만으로 널 제압했는데 준이한테 덤볐으면, 아우 말하는 것도 끔찍하다야.”
여전히 입을 나불대고 있는 박혁진. 김열찬을 걱정하면서도 손아귀에 쥔 주먹은 놔주지 않았다.
콰득!
되레 손아귀에 힘을 주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본 이준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여전히 사람을 잘 약 올려.”
박혁진의 나쁜 버릇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방금 말한 것처럼 비무 상대의 속을 살살 긁어놓는 것.
거기다 상대의 공격을 일부러 간발의 차로 피하며 잔뜩 약을 올리니 그 효과는 두 배였다.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차라리 쌍욕을 해라! 하는 심정이 되고 만다.
상대가 제풀에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박혁진만의 싸움법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것.
다른 사람들이 박혁진을 볼 때 뭐라고 생각할까.
비무를 한 상대에게 충고하며 응원하기까지 하는 모습은 천사였다.
거기다 외모까지 받쳐 주니 그야말로 청춘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선배가 후배에게 하는 조언.
훌륭한 선배라고 엄지를 치켜들 만한 모습이다.
그러나 보는 눈이 없는 각성자는 모른다.
박혁진이 얼마나 잔인한 수법을 사용했는지.
겉은 멀쩡한 듯 보여도 김열찬의 내부는 엉망일터.
외부에 상처를 입히는 게 아닌, 내부의 장기와 혈도, 혈맥에 상처를 입히는 내가중수법이다.
차라리 피부에 상처가 나든가 멍이드는 게 나았다.
내가중수법에 당하면 몇 달간 병원신세를 지어야 했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에겐.
특히 무사중이란 특성화 학교에선 수업에 빠지는 건 치명적이었다.
내신 점수를 비롯한 여러 불이익을 당할지 몰랐다.
그만큼 수업을 빠지는 건 무사중을 다니는 학생으로선 최악이나 다름없었다.
“듣고 있니? 혹시 이해가 잘 안 되었으면 다시 시범을 보여 줄게.”
‘한 대 더 때려 줄까?’ 라는 말을 박혁진이 다정하게 말했다.
“크으으윽….”
“너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았던 것 같다. 아니면 원래 좀 약골 체질이었니? 나 별 거 안 했어. 그냥 내공만 썼지.”
마지막까지 잔인한 말로 저격하는 박혁진이었다.
억울한 표정을 하는 건 덤.
이준은 고개를 연신 저었다.
저게 친구라 다행이지.
만약 자신이 김열찬이었다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김열찬은 당해도 복수는 꿈도 못 꿀 것이다.
상대는 검룡.
철혈검가의 후계자기도 했다.
무엇보다 먼저 덤비기도 했고, 김열찬의 뒤에 있는 검산그룹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한테 졌다고 막 자퇴하는 거 아니지? 그러지마. 나 죄책감 들잖아. 알았지?”
하나 말과 달리 박혁준의 얼굴에선 죄책감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몇 마디를 더 던지고는 이준에게 다가왔다.
“이제 말해 봐. 좋은 거 뭐 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