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전화를 한 사람은 박혁진이었다.
“여보세요.”
-준아! 어디야?
“학교 앞이야. 왜?”
-그러면 정문 앞에 깔린 기자들 봤겠구나?
“어. 지금 보고 있어. 기자들이 왜 이렇게 많냐?”
-왜 많겠냐. 다 무사고의 최연소 선생님을 보러 온 거지.
이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저 많은 인파가 자신을 보러 왔다는 거다.
관심 받는 거 좋았다.
인기인들만 누리는 특혜였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이지안의 첫 등교 날. 옆에는 낯을 엄청 가리는 그녀가 있었다.
역시나.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의 소매를 꽉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이지안은 아직 저만한 인파를 감당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봉팔아. 차 뒤로 빼.”
“학교 안으로 안 들어가시고요?”
“차는 안으로 못 들어가는 거 몰라?”
“헐. 몰랐는데.”
“그러니까 정문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세워.”
“옙!”
김봉팔이 후진을 하며 학교 정문과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멈춰 세웠다.
“여기서 내려야겠다.”
이준이 이지안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가문으로 돌아가.”
“주군은 어쩌시려고요?”
“지안이 학교 데려다주고 가면 돼.”
“알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지안이도 씩씩하게 학교 잘 다녀라.”
“네…”
이지안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학교가 코앞이라 많이 긴장한 듯 보였다.
“가자.”
이준과 이지안이 땅을 박차고 근처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천천히 따라와.”
“네.”
이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지안.
처음 올라갔던 건물의 옥상이 2층 높이였다면 다음 건물은 6층 높이였다.
그 앞에서 이지안이 망설였다.
“할 수 있어. 무극대랑 같이 수련도 했잖아.”
무공에 대한 이지안의 재능은 뛰어났다.
게다가 무공을 수련한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다는 것.
구음절맥을 앓고 있었던지라, 이의태가 무공은 절대 쓰지 말라고 했었으니….
괜찮은 무공이 있으면 뭐하나.
무공을 사용해본 적이 없는데.
자기가 디딤 발을 딛고 어디까지 올라설 수 있는지 가늠도 못할 거다.
무극대와는 오로지 평평한 연무장에서만 수련했기 때문에 이지안으로선 높은 곳을 향해 처음 경공을 시도하는 셈이었다.
이준이 응원을 하자 이지안이 눈을 딱 감고 땅을 박찼다.
팟!
이지안의 몸이 하늘 높이 솟았다.
내공의 양, 신법의 종류, 올라갈 높이.
이런 것들을 전부 생각하고 경공을 써야 했지만.
아직 무공을 쓰는 게 미숙한 바람에 발에 너무 많은 내공을 담아 버렸다.
그래서 6층보다 더 높이 점프를 해 버리고 말았다.
“아.”
이지안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착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결국 공중에서 허둥지둥하다가 균형을 잃었다.
이준은 하는 수 없이 몸을 움직여서 허공에서 이지안을 낚아챘다.
“너도 나랑 똑같네.”
“네?”
“나도 처음에는 너 같았거든.”
처음 무극군림보를 사용할 때가 생각났다.
무극자 사부의 말대로 군림보를 경공으로 사용했는데, 군림보가 어떤 종류의 무공인지.
어느 정도 내공을 담아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사용했다가 골로 가는 줄 알았다.
이지안과 다른 게 있다면 자신은 군림보에 곧바로 적응했다는 것.
기존에 다른 신법을 사용한 적이 있어서 금세 자세를 바로 잡았다.
하나 이지안은 이런 높은 건물을 향해 경공을 쓰는 게 처음인지라 미숙했다.
학교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면 차차 나아질 터.
걱정은 없었다.
수업에 못 따라갈까 보다는 학교 분위기에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가 문제였다.
“저…”
“응?”
“이제… 내려 주세요.”
이지안이 빨개진 얼굴로 작게 말했다.
이준의 품에 안긴 게 민망한 모양이다.
“이러다 학교 늦겠다. 이대로 가자.”
“아.”
이준은 이지안을 안은 채, 건물 옥상을 밟으며 무사중이 있는 곳으로 갔다.
무사중은 무사고의 부속.
굉장히 넓은 무사고의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학교가 얼마나 넓은지 무사중의 학생들은 거의 무사고 선배를 볼 기회가 없을 정도.
아주 특별한 행사가 있지 않은 한, 서로 마주칠 일이 없었다.
이준이 무사중 운동장에 내려앉았다.
“도착한 것 같네.”
그제야 이지안을 내려 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이지안이 급히 이준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빠라고 부르라곤 했지만, 그래도 신력권가의 가주.
그에게 안겨서 학교에 왔다는 사실을 할아버지가 아는 날엔 아주 경을 칠 테다.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이준이 당황해하는 이지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는 행동이 정말 어린 동생 같았다.
여태 자신이 알고 있는 여자들과는 성격 자체가 달랐다.
엄청 순하달까.
성질나면 검부터 뽑고 달려드는 누구랑은 비교가 안 됐다.
“들어가 봐. 학교생활 재밌게 하고.”
“네….”
이지안은 대답을 하면서도 우물쭈물했다.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얼굴이다.
“할 말 있어?”
“…오… 빠도 학교 재밌게 다니세요.”
“알았어.”
이준이 빙그레 웃었다.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우물쭈물거렸다는게 귀여웠다.
이지안이 몸을 돌려 학교 건물로 뛰어가려는 순간.
한 학생이 소리쳤다.
“이준 선배 아니야!?”
“어? 진짜!”
“꺄아아아. 이준 선배에에.”
어느새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이준 본인은 모를 테지만, 방학 동안 그의 인기는 천장을 뚫고 하늘 위로 올라간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
그중 도련을 단신으로 박살낸 건 단연 압권.
친구를 위해 사마련에 속한 세력 하나를 없애 버린 건 신화와 같았다.
안 그래도 어린 학생들.
친구에 대한 의리와 이준의 실력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어떻게! 나 이준 선배 처음 봐.”
“와 SNS는 뽀샵인 줄 알았는데 실물 미쳤다. 실물 갑이다!”
“미쳤다. 미쳤어. 피부에 잡티 한 점 없는 것 봐. 우리보다 피부가 좋으면 어쩌라는 거임?”
여학생들은 황홀한 눈빛으로 이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한 번이라도 눈길 좀 받아 보려고 예쁜 각도로 서 있었지만, 이준의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뒷걸음질치고 있는 은발의 여학생에게 꽂혀 있는 게 아닌가.
“쟤는 누구야?”
“우리 학교 학생이야?”
“교복을 보면 우리 학교 학생 같은데.”
“누구지?”
여학생들이 이지안에게 경계심을 드러냈다.
확 눈에 띄는 탐스러운 은발에 오밀조밀한 예쁜 이목구비까지.
남자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생겼다.
“와.”
“존예다.”
“저렇게 예쁜 애가 우리 학교에 있었나?”
“있어도 저 정도는 아니었지.”
여학생들이 이준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면 남학생들은 이지안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한 남학생이 이지안에 다가왔다.
“우리 학교 학생이야? 혹시 전학?”
“네? 네….”
이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학생이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난 검산그룹의 김열찬이야. 반가워.”
“아, 반갑습니다.”
이지안은 말만 하고 악수는 하지 않았다.
낯가림이 심한데 어찌 악수를 하겠나.
김열찬은 민망함에 손을 집어넣었다.
“몇 학년으로 전학 왔어?”
“3학년….”
“나랑 친구구나. 앞으로 친하게 지내면 되겠다. 말 편하게 해.”
“네? 아, 으… 응.”
이지안은 연신 대답만 했다.
뒤에 있던 이준은 김열찬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녀석의 상태창을.
[김열찬]
나이: 16살
등급: C급(절정 끝자락)
직업: 무사중 3학년
이명: 매화일수
호감도: -100(적대)
특징: 육합검법(B)(5성), 복호권(A)(7성)
다른 건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호감도.
-100이라는 게 눈에 띄었다.
‘저 놈이 무사중에 다녔지?’
무사고에 검룡 박혁진이 있다면 무사중엔 매화일수 김열찬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박혁진의 재능에는 미치진 못하지만, 그래도 무사중에선 제일 뛰어난 각성자.
무사중 랭킹 1위가 바로 저 녀석이다.
‘하필 저놈이냐.’
최태민과 같은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미소 뒤에 섬뜩한 칼날을 숨기고 있는 음흉한 놈.
검산그룹의 회장, 김환국의 조카지만 그룹 내 서열에선 동떨어져 있었다.
전생에선 김환국의 아들딸들에게 밀려 눈에 띄지 않았던 녀석.
전생과는 달리 김슬기는 낙오가 됐기 때문에 남은 사람은 김환국의 장남밖에 없었다.
만약 장남조차 잘못된다면 급격히 부상할 사람이 바로 저 김열찬이라는 놈이다.
지이잉-
주머니 속에 진동이 울렸지만 무시했다.
‘욕심이 더럽게 많아서 자기보다 재능이 뛰어난 지안이를 보면 엄청 질투할 텐데.’
이준은 이지안의 상태창을 보았다.
[이지안]
나이: 16살
등급: D급(초입)
직업: 무사중 3학년(입학예정)
이명: 무
호감도: 100(신뢰)
특징: 구음절맥(치료), 수미천왕신공(S)(2성), 벽력신장(S)(2성)
무공을 새로 배운 지 한 달도 안 된 이지안의 등급과 성과였다.
몇 달 지나면 김열찬 따위는 금방 추월할 거다.
무사중에서 랭킹 1위라고 어깨에 힘주고 다니던 녀석은 곧 본 모습을 드러낼 터.
그 뒤로는 뻔하다.
이지안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지 않을까.
이지안의 성격이라면 무시도 못하고 당하고 있을 거다.
‘안 되겠다. 한민성 이사장님한테 부탁해 봐야겠어.’
그렇게 생각을 마친 이준이 이지안에게 다가갔다.
“안 되겠다. 오늘은 오빠가 교무실까지 데려다줄게.”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여기서 혼자 나갈 수 있어?”
“…아니요.”
이지안이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언제 이런 많은 인파를 만나 봤을까.
낯가림이 심한 그녀가 적응을 못 할만하다.
이준이 이지안의 어깨를 붙잡고 인파를 빠져나가려는데.
“이준 선배와 친분이 있는 줄 몰랐군요.”
“이준 선배?”
그가 몸을 돌려 김열찬을 보았다.
“제가 무슨 실수라도?”
“내가 네 선배냐?”
“아닙니까?”
“선배님이지.”
“선배가 그렇게 권위적인지 몰랐습니다.”
김열찬이 이준의 성질을 긁었다.
“간이 크네. 아니지. 대가리가 비기라도 했나? 건방을 떠는 것도 사람 봐 가면서 떨어야 할 텐데 말이야.”
지잉-
스마트폰이 계속 울렸다.
거슬렸지만 무시했다.
눈앞에 있는 병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먼저였다.
“아니다. 내가 어린 너와 입씨름해서 얻을 게 뭐가 있겠냐. 내 이름만 더럽혀지지. 봐줄 테니 조용히 있어라.”
이준이 손을 휘휘 저었다.
학생들이 다 보는 곳에서 무시당한 김열찬이었다.
그는 무사중에서 압도적 랭킹 1위.
곧 B급에 올라설 각성자였다.
‘쳇. 이러면 내 계획대로 안 흘러가는데.’
이준을 상대로 싸울 자신은 없었다.
아니, 필패.
도련을 홀로 박살낸 각성자를 자신이 무슨 수로 이길까.
그저 이준이 자신을 상대로 한 수라도 손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 한 수를 막는다면 자신의 이름은 무사중을 넘어 더욱 유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무사고에 수석으로 입학하는 특례까지.
얻을 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무리수를 뒀다.
‘공격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한 수 정도는 막을 수 있겠지. 설마… 내가 공격한다고 날 죽이기라도 하겠어?’
그런 마음을 먹고 김열찬이 제일 자신 있는 복호권을 펼쳤다.
호랑이도 찢어발긴다는 강맹한 권법.
공격이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이준을 도발하는 데는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파직-!
이준과 김열찬 사이에 한 줄기 뇌전이 떨어졌기 때문.
“아씨. 이준! 내 전화 안 받고 여기서 뭐하냐?”
방해꾼은 바로 검룡 박혁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