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화
이준이 현장을 떠났다.
남겨진 15가문 연맹회의 대표들을 벙찐 얼굴을 했다.
누가 대놓고 자신들에게 경고를 할 수 있나.
가문의 가주급이 아니면 그러지 못한다.
여기엔 검산그룹의 총수.
매화일검 김환국 같은 위치에 있는 자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신력권가의 이준은 달랐다.
15가문 연맹회의 눈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행동했다.
자신감인지 자만인지.
그들도 고등급의 각성자인 만큼 이준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레드존 게이트에서 살아나왔고.
그것으로 끝이 아닌, 패왕도가를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혔다.
강함은 인정하지만, 아직 어린 나이라 그런지 그 힘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법을 모르는 듯했다.
어쩌니 저쩌니 해도 자신들은 15가문 연맹회의 수뇌부들.
이준보다 무공은 좀 떨어질지는 몰라도 세력의 대표급인 만큼, 쥐고 있는 권력은 비교할 수도 없이 크다.
아무리 강하다 해도 저렇게 모두를 적대하고 독불장군처럼 굴면 그 어떠한 세력도 이룰 수 없다.
‘쯧쯧. 저러다 한 순간에 훅 가지.’
‘각성자 세계에선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제일 강하다는 걸 모르고 있군.’
‘힘만 쌘 어린놈이야. 신력의 후계자라더니… 신력도 곧 끝나겠어. 그러면 신력이 빈 5대 가문의 자리는 우리 진씨 가문의 차지인가?’
몇몇 동태눈깔을 한 15가문 연맹회의 대표들이 있는 반면.
어렴풋이나마 이준이 품고 있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느낀 사람이 있었다.
이준에게서 경고를 받았을 때 느꼈던 살기.
진득하면서도 굉장히 날카로웠다.
뒷목을 서늘하게 할 정도로 잘 벼려진 칼날 같았다.
조금만 스쳐도 즉사하는 그런 날카로움 말이다.
철혈검가의 무적검대주인 박영수가 대표적이다.
‘저게 고등학생의 살기란 말인가?’
하지만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인 살기는 아니었다.
사마련처럼 마냥 악하고 피하고 싶은 종류의 살기가 아니라 어딘가 묘하게 시선을 끄는 데가 있었다.
공포가 아닌 경외감이 느껴졌다.
자신의 아버지.
S급 각성자이자, 세상 사람들이 검제라 불리는 사람조차 빛을 본 나이가 22살 때라 했다.
현재 조카인 박혁진과 박정연이 희대의 천재라 불린 이유.
검제인 아버지의 성장 속도보다 몇 년은 앞섰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준은 천재 중의 천재인 조카들조차 가뿐히 뛰어넘었다.
아니, 감히 비교하는 것조차 부끄러울 만큼 강했다.
‘무섭군… 굉장히 위험한 아이야.’
박영수가 이준에게 경외감을 느끼는 사이, 만독암가의 독지객 정태영은 순수한 마음으로 감탄했다.
‘무사고 최연소 선생으로 발령한다더니. 그럴만한 실력과 배짱이야. 누가 천하의 도련을 홀로 쳐들어갈 생각을 하겠어.’
무사고의 이사장, 한민성이 오대가문에만 극비로 공문을 띄웠다.
한 사람을 무사고의 선생으로 배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인물은 바로 이준.
현재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엄청 파격적인 제안이다.
학생을 무사고의 선생으로 만든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이준을 학생 신분으로 계속 다니게 하는 것도 애매한 상황.
현역으로 뛰어도 충분했던 이준이기에 학교 측은 고민이 많았다.
결국, 한민성 이사장은 결단을 내렸다.
이준을 학생 신분에서 선생 신분으로 격상시킨 것.
오대가문에서 반발을 예상한 듯, 각종 이유를 공문에 적어 보냈다.
정태영도 공문을 읽고 회의적이었던 건 사실.
지금은 그때와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조카들에게 꼭 특별반에 들어가라고 해야 해. 어쩌면 이준에 대해 더 많은 걸 알 기회일지 몰라. 혹시 알아? 정말로 우리 애들한테 도움이 될지.’
밑져야 본전이다.
특별반에 무조건 들어갈 학생은 검룡과 빙화였다.
이준과는 사이가 좋은 두 사람.
여기에 검화도 낄 수 있을 터.
그 세 사람만 특별반에 있어도 이준의 반에 들어갈 메리트는 충분했다.
어차피 학교는 배움의 장이기 전에 인맥을 넓히려는 수단이기도 했으니까.
15가문 연맹회의 대표들이 각자 이준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사이.
도련 안쪽으로 먼저 들어갔던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억!”
“맙소사.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내가 알 던 도련이 맞아?”
사마련 소속 일반 각성자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들의 눈앞에 있는 건, 폐허였다.
마치 폭탄이 수십 발 떨어진 것처럼 초토화 되어 있었다.
그들의 놀람에 뒤늦게 15가문 연맹 대표들도 정문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왔다.
대표들도 사마련의 일반 각성자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헉!”
“도련이… 왜?”
“이, 이 사태를 이준 호, 혼자서 만든 거라고?”
이준의 힘을 다시 한번 체감한 15가문 연맹회 대표들이었다.
믿고 싶지 않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상황.
하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이준은… 괴물, 그 자체였다.
“도, 도악의 목이!?”
바닥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의 머리.
도악 길성수가 몸과 머리가 분리된 채 죽어 있었다.
15가문 연맹회 대표들은 도악의 죽음을 확인한 순간 온 몸에 소름이 확 끼쳤다.
방금 전에 갔던 이준이…
이젠 공포스럽기까지 했으니까.
* * *
그날 저녁.
오랜만에 사마련의 칠악이 모두 모였다.
이젠 한 자리가 공석이 돼서 육악이 되었다.
“도련이… 무너졌다. 다들 기사 봤지?”
“믿기지 않아. 도악 그 새끼 목이 잘린 사진을 보고서야 진짜인지 알았어.”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야?”
“가만히 있지 않으면?”
“당연히 도련을 친 이준이란 놈을 죽여야지!”
음양배가의 가주인 음악이 발끈하고 나섰다.
“도악을 죽인 그놈을? 음양배가 혼자서 가능하겠어?”
“당연히 너희가 도와줘야…”
“난 여기서 빠지지.”
수염이 하얀색으로 멋들어지게 난 노인이 말했다.
그의 악명은 백염의 빙악으로 설악문의 가주였다.
북해빙궁의 무공인 빙백신장을 주무기로 사용한 인물.
그가 빠지겠다는 말을 하자.
“살막도 빠진다.”
“흑검장가도…”
“뇌전홍가 또한…”
모두가 한 발씩 뒤로 뺐다.
쾅!
음악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내 아들이 이젠 사내구실도 하지 못하게 됐다. 거기다가 도악도 죽었어! 그런데 가만히 있겠다고?”
그때였다.
마지막 남은 한 사람.
사마련에서 제일 강한 혈마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덮기로 하지. 당분간 사마련의 모든 각성자는 자중하도록 하는 게 좋겠어.”
“혈마악!”
음악이 버럭 소리쳤다.
“음악.”
혈마악이 음악을 조용한 음성으로 불렀다.
담담한 목소리였는데, 사마련의 회의실에 있는 모두의 귀에 또렷이 들려왔다.
엄청난 내공으로 인해 회의실에 모인 이들이 중압감을 느꼈다.
괜히 칠악 중 제일 강하다고 평가할까.
그럼에도 음악은 이를 악물고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뭐!”
“도련에 갔다 와 봤어?”
“거긴 왜?”
“전투의 흔적도 안 보고 이준이란 놈을 공격하자고 한 거냐?”
“우리가 언제 전투의 흔적 따위를 보고….”
혈마악이 손을 들어 음악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도련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직접 갔다 왔다.”
“네가?”
“그래. 어떤 흔적이 남겨져 있는 줄 아냐?”
“……몰라.”
“결론만 말하지. 그놈한테 덤볐다간… 개죽음만 당할 뿐이다.”
혈마악의 말에 음악을 비롯한 나머지 인원들이 경악했다.
혈마악이 누군가.
그가 익힌 무공은 자신들의 무공과는 급이 달랐다.
S급 무공인 천마신공과 비견되는 아수라파천공을 익혔다.
검제를 이은 다음 S급이 될지 모른다는 평을 듣는 남자였다.
그런 남자가 개죽음이란다.
사마련이 의리가 없다는 건 칠악 모두가 아는 사실.
하지만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일은 죽마고우처럼 마음이 척척 맞았다.
이번 일도 15가문 연맹회의 등골을 쫙쫙 빨아먹을 수 있었던 일.
다른 이들도 찬성한 일이었다.
물론 도련이 몰락하기 전까지의 일이었다.
“그 정도야?”
“최소. 잘못하다간 사마련이 싸그리 사라질지 몰라.”
“혈마악이 말할 정도면 괴물 정도가 아니군.”
“X발. 대체 어떤 무공을 가지고 있길래 혈마악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야?”
알려진 바로는 S급 무공인 수미천왕신공을 익혔다고 한다.
황보세가의 무공을 계승한, 신력권가의 무공.
하지만 혈마악이 지닌 아수라파천공에는 손색이 있었다.
혈마악은 이명과 같이 천마와 비슷한 실력을 가졌다던 혈마의 무공이었으니까.
“권왕의 천왕신공과는 다르다.”
“한 단계 위의 무공이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내 말은 전혀 다른 무공이라는 거야.”
“수미천왕신공이 아니다?”
“그래. 천왕신공과는 결이 완전히 달라. 정순한 기운도 있지만, 우리 쪽 계열의 기운이 짙게 묻어나오는 느낌이다.”
“그 말은 절대 부딪치면 안 된다는 말이잖아?”
육악들이 경악할만 했다.
마기와 사기를 지닌 무공이자 단점은 상위 무공에 하위 무공에 꼼짝하지 못한다는 거다.
쉽게 말해, 이준보다 무공 등급이 높지 않은 이상 싸우면 필패라는 소리였다.
“마주치면 도망가는 게 목숨을 부지하는 길이다.”
혈마악이 이준을 극찬했다.
그래봤자 흔적을 직접 보지 않은 눈앞의 이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경고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지겠지.
사마련은 어차피 뭘 따지는 족속들이 아니다.
그냥 순간의 감정대로 들이받고 보는 성격.
언젠가 저들은 자신이 말한 걸 까먹고 행동할 거다.
자신은 아니겠지.
‘내가 검제를 뛰어넘지 않은 이상. 그 어린 괴물과는 절대 마주치지 않을 거야.’
혈마악은 다짐했다.
한동안 자신이 이끄는 혈마련을 폐쇄할 생각이다.
차라리 외부활동을 중단하고 수하들을 단속하는 게 최선이었다.
어린 괴물은 사마련이 상대할 수 있는 각성자가 아니었으니까.
* * *
박혁진은 박정연이 전해준 태블릿 PC를 보고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이, 이거 거짓말 아니야?”
“작은 삼촌이 직접 확인하셨대. 내가 장난치지 말자고 했지?”
“이, 이럴 줄 몰랐어.”
그가 눈을 씻고 다시 태블릿 PC화면을 보았다.
바뀌지 않은 화면을 계속 내렸다.
도악이 죽고 도련이 무너졌다는 기사들.
이준이 단독으로 쳐들어가서 멸문시켰다는 내용이었다.
패왕도가와 같은 내용이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생존자였다.
패왕도가는 적어도 단전을 부숴 각성자의 목숨을 살려줬다면, 도련의 생존자는 전무.
아예 몰살을 시켜버렸다는 거다.
이걸 좋아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이준이 도련을 몰살시킨 이유는 간단했다.
도귀와 음귀의 기습으로 인해 부상을 입은 자신을 위해 그 커다란 도련을 박살 내버렸단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 아니 개구리 사는 연못이 통째로 박살난 꼴이 되어버렸다.
“근데… 개감동.”
“이 와중에 그런 말이 나오냐?”
“왜? 사실 나 졸라 부럽지? 차라리 기사를 누나 이름으로 낼걸 그랬지?”
박혁진이 싱글벙글 웃으며 박정연을 놀렸다.
“뒤지기 전에 그만 해라.”
“큭큭. 맞네. 내가 부러운 거네. 누나 이름으로 기사 냈으면 준이가 어떻게 나왔을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아구 아까…”
빡-!
“억!”
박혁진의 상체가 90도로 구부러졌다.
박정연의 손에 의해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
“꼭 맞아야 그만하지.”
“우씨. 부러우면서 괜히 심통이야.”
“안 되겠다. 더 맞아야겠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박혁진을 박정연이 쥐 잡듯 잡았다.
“억, 악, 윽!”
남매가 투닥거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곁으로 다가왔다.
“허허. 오늘은 또 혁진이가 무슨 사고를 쳤길래 우리 정연이가 이리 심통이 났을꼬.”
두 사람에게 다가온 사람은 할아버지인 검제 박춘식이었다.
“할아버지! 누나 좀 말려주세요.”
“허허. 이 할애비는 힘이 없구나.”
“할아버지.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얘 조금만 더 때리고요.”
“천천히 하려무나. 이 할애비는 시간이 많단다.”
“아악! 할아버지 배신자! 할머니한테 이를 거예요!”
“쯧쯧. 정연아. 더 때리거라.”
“네!”
검제 박춘식은 느긋하게 자리에 앉아 정원에 핀 꽃을 감상했다.
박정연의 교육은 10분이 지나고서야 끝났다.
교육을 끝낸 박정연이 땀을 닦으며 박춘식 앞에 앉았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할아버지?”
“이준 그 아이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줄 수 있느냐?”
“예전에 한 번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그 이야기보다 더 깊은 걸 알고 싶구나. 가령 그 아이의 뒤에 누가 있는지. 무공이 정확히 뭔지에 대해서 말이다.”
전에 말했을 때는 이렇게까지 물어보지 않은 박춘식이었다.
그저 호기심.
혈족 계승도 못한 이준이 어떤 식으로 성장을 했는지 정도만 박혁진에게 어렴풋이 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준에 대해 더 깊은 걸 알고 싶어 하는 박춘식이였다.
세계 랭킹 시스템에 등록된 한 사람.
창제 이준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