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끄으으윽…”
음귀 배솔찬이 중심부를 잡고 게거품을 물었다.
“어머, 쏘리! 내가 실수를 했네.”
박정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놀란 표정을 짓고 있지만, 전혀 미안해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이를 어째. 거기서 피 난다. 그러게 간수를 잘하지 그랬어. 아무 때나 발정 나니까 거기가 먼저 당하잖아.”
배솔찬은 박정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그는 눈동자를 까뒤집으면서 중심부에서 전해져 오는 고통에 정신의 끈을 놓고 싶은 지경이다.
대신 도귀 길필성이 나섰다.
“미, 미친! 네년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응 아는데?”
“뭐, 뭐?”
길필성이 당황한 얼굴로 박정연을 쳐다봤다.
사마련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음양배가 가주이자 색음마악의 아들에게 위해를 가했다.
그것도 남자에겐 굉장히 중요한 부위에.
그럼에도 박정연은 당당했다.
“야.”
“왜… 왜?”
“남 걱정할 때가 아닌데.”
팟-
박정연이 땅을 박차 길필성을 향해 짓쳐갔다.
깡!
길필성이 황급히 도를 들어 박정연의 검을 막았다.
“윽!”
무슨 여자의 힘이 이렇게 센지.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검이 천근바위와 같았다.
“그리고 난 임자가 있는 여자야! 변태새끼야!”
파지직-
까강깡깡!
뇌기가 검신은 타고 길필성의 도로 흘렀다.
길필성은 박정연의 뇌기 때문에 무공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내공이 중간 중간 끊겼다.
뇌기의 영향 같았다.
“자, 잠깐! 멈춰봐. 혀, 협상하자.”
“협상 같은 소리하고 있네. 입 닥치고 뒤질 준비나 해!”
박정연은 길필성의 입을 틀어막고 공격을 퍼부었다.
그녀의 손은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길필성도 바빠졌다.
손에 든 도로 박정연의 검을 간신히 막고 있지만, 그것도 한계.
몇 합을 더 주고받은 끝에 길필성이 도를 놓쳐버렸다.
척-!
박정연의 검이 길필성의 턱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자 어디부터 맞을래?”
그녀가 입매를 말아 올렸다.
얼핏 보면 웃는 것 같이 보이지만, 아주 싸늘한 표정이었다.
“저 누나가 일을 더 크게 만들려고 그러나.”
음귀야 워낙 악명이 높았으니, 어떻게 넘어갈 순 있을지 몰라도 도악의 아들인 도귀까지 병신으로 만들어 논다면 진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
전쟁도 최대한 막아야 했지만 15가문 연맹 대 사마련과의 전쟁의 도화선이 다른 것도 아니고 두 남자의 중요한 그곳이라면 좀 그렇지 않은가.
뒤편에서 사마련 각성자들을 상대하고 있던 박혁진이 그녀를 말리러 왔다.
“그… 누, 누나. 거기는 좀 그렇지 않나.”
“왜 다른 곳도 잘라버릴까?”
박정연이 도귀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굳이 누나가 손에 피를 안 묻혀도 된다는 거야. 집안에 맡기면 더 확실히 처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피 안 나게 해 볼게.”
“뭐?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두 남매가 서로 입씨름을 했다.
그사이 도귀는 머리를 굴렸다.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검룡은 일을 크게 만드는 걸 꺼려하는 눈치였다.
‘솔찬이의 거시기가 잘려서 고자가 됐는데, 나까지 병신으로 만들면 저 년, 놈들이 감당하긴 힘들겠지? 그래도 살아나갈 구멍은 생겼어.’
길필성이 히죽거렸다.
어차피 저들은 자신까지 건들진 못할 터.
입으로만 저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배짱을 부려보기로 했다.
“그냥 날 죽여. 너희들에게 치욕을 당할 바에는 사마고등학교의 자존심을 지키겠다.”
길필성이 비장한 음성으로 말했다.
남매가 입씨름을 하다가 멈추고 동시에 길필성을 보았다.
“야! 니가 괜히 말려서 쟤가 또 나대잖아.”
“다 누나 때문이잖아.”
“네가 날 말리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지.”
여전히 티격태격 싸우는 남매였다.
“이놈을 어쩌지?”
“죽이라니까? 난 사마, 억!”
빡!
길필성의 뒤통수가 누군가의 손에 갈겨지면서 고개가 바닥에 처박혔다.
“어떤 새끼야!?”
길필성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곳엔 얼굴에 피가 잔뜩 묻어 있는 한지유가 서 있었다.
아무 감정도 안 보이는 얼굴이지만 만년설보다 더 차가운 냉기가 풀풀 풍겨왔다.
죽일 수 없다면 죽기 전 까지 팬 다음에 상황 봐서 한 대 더 때려서 죽여 버리겠다는 기세.
“아, 또라이가 박정연만 있는 게 아니라 쟤도 있었구나.”
박혁진이 자신의 이마를 부여잡았다.
왠지 친구인 이준이 보고 싶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런 방법이 있었네.”
광녀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런 게 있는 건지.
우드득, 우드득.
박정연이 검을 집어넣었고,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서, 설마. 나한테 위해를 가하려는 거 아니지?”
위기를 느낀 길필성.
말을 더듬으면서 바닥에 버려두었던 도를 슬쩍 들려는 찰나.
도가 한지유의 발에 밟혀 들리지 않았다.
“지유 네가 할래 아니면 내가 할까?”
“제가 할게요.”
한지유는 말하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민트 초콜릿을 꺼내 먹곤, 검집째로 길필성을 패기 시작했다.
퍽퍽퍽!
“아악! 감히 내가 누구라고!”
“……”
한지유는 대답할 가치도 없어서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검집을 휘두르는 속도를 더 빠르게 낼 뿐이다.
박혁진은 말리길 포기했다.
“후우우. 지유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보네.”
한지유가 민트초콜릿을 먹는 건 딱 두 가지.
기분 좋을 때, 그리고 지금처럼 스트레스가 잔뜩 쌓일 때였다.
* * *
싸움터와 멀리 떨어진 곳에선 일반 각성자들이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그들은 무사고 학생들이 도귀와 음귀, 그리고 둘의 수하들을 상대하는 광경을 끝까지 보았다.
7:202의 싸움.
절대 성사될 싸움이 아니었다.
아무리 무사고에서 이름을 날린 검룡과 검화, 빙화, 홍련권이 있다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이명도 없는 무명.
이들을 데리고 싸운다는 건 짐을 지고 싸우는 것과 다름없었다.
자칫하다간 약점이 되어 네 사람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하지만 구경꾼들의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검룡을 비롯한 네 사람의 활약은 눈이 부셨다.
그 중 가장 돋보인 사람은 당연히 검화였다.
뇌전을 풀풀 풍기며 사마련의 각성자를 쓸어 가버린 그녀.
강력한 무공에 넋을 잃고 구경했다.
모두가 잘 싸웠지만, 정말 의외인 건 따로 있었다.
구경꾼들이 무시했던 세 사람.
박은비와 서혜지, 남선호의 활약이었다.
세 사람은 다른 아이들과 선생보다 확실히 약했다.
그렇다고 싸움을 못한 건 아니었다.
박은비는 기공사답게 장법을 날려 적을 쓰러트렸고.
서혜지 또한 음양침을 암기처럼 날렸다.
접근해오는 적이 있다면 남선호가 나서 처리했다.
화려하고 돋보이는 강함은 없지만, 조를 이루어 싸우는데 능숙했다.
“무사고 학생들이 압도적인데?”
“사마고 학생인 도귀와 음귀는 그렇다 쳐도… 사마련 각성자가 무려 200명이 있는데 졌어….”
“한 등급 차이가 크다곤 하지만, 이렇게 많이 차이날 줄이야.”
한 등급이라도 자세하게 살펴보면 세 가지로 나뉜다.
초입, 완숙, 절정 끝자락.
격차가 심할 때는 다섯 단계나 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만큼의 격차가 날 거라는 건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우리만 보기 아깝다.”
“너튜브 각이긴 했어.”
“이미 싸움은 끝났는데 어쩌겠어.”
구경꾼들은 굉장히 아쉬워했다.
누가 무사고 학생들이 이길 줄 알았겠는가.
이곳에 있는 전부가 사마련의 각성자가 이길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증거도 남기지 않았다.
다음은 게이트에 들어와 있는 자신들이었으니까.
무사고 학생들과 싸우는 걸 본 자신들.
증거가 있나 확인하고, 입단속을 시킬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살인멸구까지 감행할 사람들이 사마련의 각성자였다.
물론 살인멸구까지 가진 않을 터.
이미 절망의 숲에 무사고 학생들이 들어왔다는 건 소문이 난 상태다.
자신들까지 죽이면 사마련에 유리한 증언자가 사라질 수 있으니, 살려는 주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싸움을 하는 동영상도 남기지 않았는데.
무사고 학생들이 이길 줄 알았으면 그냥 동영상을 남길 걸 그랬다.
박혁진이 게거품을 물고 있는 도귀와 음귀의 다리를 끌며 구경꾼들에게 다가왔다.
“여기 계신 분들은 전부 게이트를 나가면 15가문 연맹회에 신변 보호 요청을 하세요.”
“예?”
“저희가 사마련과 충돌하는 장면을 보지 않았으면 모를까 싸우는 걸 봤으니, 여러분은 사마련의 화풀이 대상이 될 겁니다.”
도악과 색음마악의 아들이 다쳤다.
음귀는 남자의 중요 부위까지 잘렸다.
과연 이 사실을 색음마악이 가만히 있을까.
미쳐 날뛸 게 뻔했다.
하지만 상대가 15가문 연맹의 후계자들.
곧바로 어떻게 하진 못할 것이다.
분하고 들끓어 오르는 화를 조금이라도 식히기 위해 애먼 사람을 잡을 터.
게이트에 있던 각성자들이다.
색음마악은 구경꾼들의 신상을 알아내 잔혹하게 죽일 거다.
칠악은 그러고도 충분히 남을 심성을 가졌다.
“그 부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젠장. 괜히 게이트에 따라 들어왔어.”
“저희 15가문 연맹회에서 여러분의 신변을 최대한 보호할 테니 안심하십시오. 저희에겐 인질도 있거든요.”
박혁진이 도귀와 음귀를 가리켰다.
사마련과 거래를 해서라도 경솔하게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됐다.
“믿어도 될까요?”
“살막을 보내면 어쩝니까?”
“15가문 연맹은 사마련의 살수들이 넘볼 만큼 약하지 않습니다.”
박혁진이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저희가 먼저 선빵을 날리면 돼요.”
그는 이준이 써먹은 방법을 쓸 생각이었다.
* * *
잠잠하던 매스컴이 들썩였다.
이준의 일이 아닌, 다른 일로 난리가 났다.
[절망의 숲에서 무사고 학생들이 습격을 당하다.]
[범인은 도귀와 음귀?]
[검룡의 부상.]
[사마련을 향한 철혈검가의 분노.]
[드디어 평화가 깨지나?]
기사가 주르륵 올라왔다.
네티즌들은 모두 도귀와 음귀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 아 선 넘네. 게이트 습격은 선 씨게 넘은 거지.
- 사마련은 원래 선이 없어요.
- ㄴ 이젠 거시기도 없음.
- ㄴ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ㄴㄴ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지금까지 많이 참긴 했음. 심지어 사마련의 영역 아님? 15가문 연맹 후계자가 둘에 세 명은 천무대전 8강 출신임. 이참에 경쟁자이자, 차세대 각성자의 수를 죽이는 것도 사마련한테는 나쁘지 않음.
- 너 사마련이냐.
- 사마련 어서 오고~
무사고 학생들이 너무 안일했다는 댓글로 올라왔지만, 순식간에 묻혔다.
새로 올라온 기사 때문이었다.
[200대7의 싸움. 무사고 학생 측의 승리.]
[차세대를 이끌어갈 각성자들의 경이로운 무공 수준! 그들은 과연 어떤 등급에 서 있는 것인가.]
-와, 실화냐.
-준느님도 장난 아니더만 다른 학생까지?
-천무대전 직관한 1인임. 무사고 학생들은 사마고랑 수준이 다름.
-누가 온실 속 화초라 했냐.
-무사고 무시한 새끼들 버러우 탄 것 보소.
실시간 댓글이 계속 달리는 걸 박혁진이 보고 있었다.
“준이 이 자식! 이렇게 좋은 걸 여태껏 혼자 써먹고 있었단 거야?”
인터넷을 통해 적을 먼저 친다.
이건 전부 이준이 했던 방식이었다.
효과는 만점.
네티즌을 자신들의 편으로 만든 건 물론, 팬까지 만들었다.
이래서 매스컴을 통해 공작을 많이 하는 거다.
이번 일로 인해 위상이 높아진 박혁진이다.
“이거 중독되겠는데?”
지금과 같은 일이 있으면 또 써먹고 싶은 방법이었다.
박혁진이 병상에 누웠다.
부상을 당한 걸로 기사를 내보냈으니.
1대 다로 사마련을 혼쭐 내줬다고 이야기 하는 것보단 이쪽이 더 먹힐 것이었다.
박혁진은 이준이 뜨기 전만 해도 무사고의 간판 아이돌이나 다름없었다.
각성자가 곧 연예인인 시대.
기침만 해도 주목을 받을 텐데 병원에 입원한 이유가 악독한 사마련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려다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라면?
별 거 아닌 부상이라도 사람들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덧붙일 것이고, 가뜩이나 이미지 나쁜 사마련의 이미지는 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한동안은 아픈 척을 해야 했다.
“그런데 준이 이 자식 괘씸하네? 형이 다쳤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전화 한 통이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