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이준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극.
우드드득.
게이트에서 환골탈태를 했을 때와 똑같았다.
“크흡!”
몸 안의 뼈란 뼈는 모조리 아스라졌다.
재생이 되면서 전보다 더 단단하게 변한 뼈.
새로 만들어진 뼈의 강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지, 환골탈태를 진행하는 힘은 뼈를 다시 부숴버렸다.
그렇게 반복적인 일이 벌어지는 사이.
이준에게서 이상함을 느낀 사형준이 급히 다가왔다.
“무슨 일이라도?”
이준의 얼굴은 창백하기 짝이 없었다.
내상이라도 입었는지, 입가에 선혈이 흘러내렸다.
사형준뿐만이 아니었다.
수련을 하고 있던 천왕대도 이준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봤다.
“대주! 도련님이 내상을 입은 게 아닙니까?”
“얼른 치료약을.”
천왕대원들은 가지고 있는 약을 꺼냈다.
뚜껑을 열어 이준에게 다가가려는 그때였다.
우드득.
그들의 귀로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이건 어디서 나는 소리지?”
“조용히 해봐. 잘 안 들리잖아.”
부대주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켰다.
모두가 조용해졌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귀를 기울이자.
“도련님?”
소리의 원인은 이준이었다.
이 소리가 어떤 건지 알아챈 사형준이 천왕대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
“모두 도련님에게서 물러나라!”
대주의 명령이었다.
훈련이 잘된 천왕대였기에 단 한 번의 외침만으로도 모두가 뒤로 물러나라.
“도련님께선 환골탈태 중이시다. 모두 호법 대형을 펼친다.”
사형준의 말에 천왕대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환골탈태라니.
현 시대에 검제 말고는 오왕조차 겪어보지 못한 현상 아닌가.
환골탈태를 하고 나면 내기의 흐름.
단전의 크기.
몸 안에 쌓였던 노폐물 등.
무공을 사용하는데 거치적거리는 장애물들을 전부 없애준다고 했다.
이 말은 검제가 겪어보고 나서 한 말이었다.
“도련님이 환골탈태를 하시다니.”
“18살의 나이신데….”
“이젠 감탄하기도 힘듭니다.”
천왕대가 호법 대형을 이루면서 이준을 눈여겨보았다.
이 시대의 괴물.
필시 둔재라고 속이고 있었을 것이다.
일부러 온갖 수모를 겪으며 그동안 편을 골랐던 게 아닐까.
검룡 박혁진은 이준 도련님의 능력을 이미 눈치챘던 것이고.
그러니 낙오자란 도련님과 친하게 지냈던 거다.
검룡의 능력은 사람의 본체를 꿰뚫어보는 신안을 가졌으니까.
‘도련님을 알아본 검룡도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야.’
‘그러니 도련님이 명성을 날리기 전 최고의 천재라고 불렸던 거겠지.’
천왕대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사이.
이준의 2차 환골탈태는 끝에 다다랐다.
그의 귀로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지막이니라. 이번 고통만 참으면 편해질 것이다.]
‘말은… 큭. 참 쉽네… 요.’
아직 참을 만한지, 무극자 사부의 말에 대답을 한 이준이었다.
갑자기 몸이 뜨거워졌다.
미친 듯 더운 열기가 올라왔다.
이준의 머리 위.
김이 모락모락 피었다.
그러다가 불시에 혹한의 냉기가 찾아왔다.
조금 전까지 고온의 열기에 노출됐다면, 지금은 극한의 저온에 몸이 떨렸다.
덜덜덜덜.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경험을 여러 번 반복했다.
적응도 될 법 하나 고통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정신을 놓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그럼에도 버렸다.
이제 곧 환골탈태가 끝나간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아니나 다를까.
고통은 사라지고,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후두두둑.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아래로 껍질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몸이 완전히 통제가 가능할 때쯤.
[제2차 환골탈태를 완료했습니다.]
[역사상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환골탈태를 두 번이나 겪었습니다.]
[보상으로 파천멸기 테크트리 감소 포인트 99,999,999p를 획득하셨습니다.]
[더블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20,000,000p를 지급합니다.]
새로운 메시지들이 홀로그램에 올라왔다.
‘그래도 양심은 있네. 파천멸기 테크트리 감소 포인트를 과감히 깎아주시고.’
누가 이런 보상을 주는지 참 감사할 따름이었다.
더해서 이천만 포인트까지.
앉아서 고통을 참은 것 치곤 보상이 후했다.
이준은 새로 얻은 천무지체 특성을 열었다.
[천무지체]
등급: S
설명: 하늘에 닿을 정도로 무에 재능을 보이는 신체다. 투신체와 쌍벽을 이루는 신체로 마신지체, 태양지체를 빼곤 최고로 여겼다.
효과: 무공 이해도 +100%, 전투력 +70%, 마기 저항력 +50%, 내공회복력 +50%
특성 효과가 미쳤다고 봐도 무방했다.
무려 네 개의 효과, 총 270%의 상승률를 지닌 특성이었다.
이중 제일 마음에 든 건 내공회복력.
이 능력이 얼마나 좋은지, 무극창법 최후초식을 쓰고 나서 알았다.
무공을 쓰고 나서 텅 비어버린 단전.
복원력이 빠른 혼원신공과 내공회복력의 시너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만약 혼원신공의 숙련도와 내공회복력의 퍼센트가 높다면?
내공이 마르지 않은 샘물과 같지 않을까.
그동안도 딱히 내공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없는데, 이런 생각은 더욱 안 들 거다.
‘투신체 등급이 SS인데 천무지체가 S인 건 좀 에러긴 하네.’
의문이 든 건 투신체와 동급이라는 천무지체의 등급이다.
잘못 나온 게 아닐까 싶었지만, 천무지체는 S급이다.
이상한 등급 측정에 무극자 사부가 친절히 설명해줬다.
[투신체는 천무지체보다 더 희귀한 신체이니라. 네가 얻은 특성의 효과는 형편없을지언정 적과 싸우다보면 투신체가 왜 SS등급에 있는지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극자 사부가 그렇다면 그런 것.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이준은 흡족한 미소로 특성을 껐다.
그리고 다음 메시지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다음 루트가 개방됩니다.]
[특성 천의무봉(S)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 배울 특성 또한 S급.
과연 어떤 효과를 지니고 있을까 궁금했다.
[천의무봉:(병)]
등급: S
설명: 천의무봉을 얻은 자는 그 어떠한 무기를 다뤄도 완전무결한 숙련도를 자랑합니다. 단, 같은 천의무봉을 익힌 이에겐 쓸모가 없습니다.
효과: 무기 숙련도 MAX
이번에도 갸웃거리는 이준의 얼굴.
천무지체의 효과가 너무 뛰어나서 그런지.
뭔가 애매했다.
이준의 실망에 무극자 사부가 혀를 찼다.
[어찌 내가 하나하나 다 가르쳐야 할 꼬. 쯧쯧.]
‘투신체는 잘 이해했는데, 이건 정말 모르겠습니다.’
[네 무기의 숙련도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음…’
[각성자 등급으로 말해보거라.]
이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AA급 정도요?’
[가아아아알!]
‘악! 귀청 떨어지겠어요.’
[아주 제 놈의 얼굴에 금칠을 하는구나.]
‘그러면 제 숙련도가 어떤데요?’
솔직히 이준은 자신이 창술을 제법 잘 쓴다고 여겼다.
하나 무극자 사부의 말에 생각은 와장창 깨졌다.
[C급. 그 이상은 못 쳐준다.]
‘그렇게 짜요?!’
[당연하지 않느냐. 지금까지의 넌 좋은 등급의 창에 의지해왔느니라. 천의무봉은 그런 등급을 싸그리 무시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보물 같은 특성이다. 알겠느냐 제자야.]
‘제가 막대기를 들고 싸워도 같은 등급의 각성자를 이길 수 있다는 거죠?’
[이제야 이해했구나. 만약 천의무봉에 파멸겁을 든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아.’
이준이 저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압도.
이 단어 말고는 생각나지 않았다.
이준의 이런 심정을 느꼈는지.
[끌끌. 사부는 이미 천의무봉을 깨닫고 파멸겁을 휘둘러보았느니라.]
역시 뒤에는 자랑으로 끝나는 무극자 사부였다.
뭐라고 계속 말하는데 그냥 무시해버렸다.
이준이 모든 창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축하드립니다. 도련님.”
“축하드립니다!”
사형준이 이준에게 고개를 숙이자 천왕대 또한 축하의 인사를 했다.
“됐어. 이런 걸 가지고 뭘.”
별 일 아니라는 듯한 이준의 말에.
‘거인이셨어.’
‘저런 분을 못 알아보고 덤빈 내 자신이 부끄러워.’
‘도련님의 발끝이라도 따라가면 좋으련만.’
천왕대가 경외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부담스러운 눈에 이준이 수련을 재촉했다.
“다들 패권을 잘 익혔는지 보자, 화상부터.”
뜬금없는 호명에 부대주가 깜짝 놀랐다.
“저요?”
“그래 너, 화상아. 너부터 시작해.”
“예? 옙!”
이준 같은 뛰어난 각성자가 무공을 봐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부대주는 이준에게 배운 패권을 마음껏 펼쳤다.
* * *
이틀이 더 지났다.
이준의 일과는 똑같았다.
천왕대와 수련을 하면서 지낸 지도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각자 수련하고 있는 천왕대를 보며 이준이 중얼거렸다.
“아버지의 반응이 올 때가 됐는데.”
옆에 있던 사형준이 대답했다.
“저에게 아무 연락이 없으십니다.”
“이렇게 잠잠할 사람이 아닌데.”
도왕이 없는 틈이라지만 무려 패왕도가를 무너트리다시피 했다.
가문의 절대적인 강함을 위해서라면 가족도 도덕도 없었던 그.
분명 기뻐서 대소를 터트리고 있겠지.
이 기회를 틈타 신력권가의 위용을 드러내려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아무 소식도 없었다.
“안 되겠다. 내가 직접 가문에 가 봐야겠어.”
이준이 자리에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모시겠습니다.”
수련을 하던 천왕대도 이준의 뒤를 따랐다.
학교와 신력권가는 그 어떤 가문보다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경공을 펼쳐 이동하면 5분밖에 걸리지 않은 거리였다.
신력권가 앞에 멈춰선 이준.
정문을 지키고 있던 각성자가 그를 보자, 황급히 인사를 했다.
“이, 이준 도련님을 뵙습니다.”
옛날이었으면 인사도 하지 않았을 사람.
가문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게 했을 건데, 이젠 알아서 고개를 숙이는 이들이다.
그만큼 이준의 위상이 과거와는 달라져 있었다.
이준이 안쪽으로 들어가려하자.
“가, 가주께 우선 보고를.”
문을 지키던 각성자가 용기 내어 말했다.
이준은 그 각성자를 응시하고만 있었다. 이준이 가만히 있자 뒤에 있던 천왕대가 오히려 발끈하고 나섰다.
“저 미친놈이.”
“누굴 막고 있는 거야?”
“확 모가지를 따버릴까.”
천왕대의 거친 언사에 문 앞에 있는 각성자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때 입을 다물고 있던 이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큰어머니와 같이 신력권가로 온 각성자지?”
어찌 모를까.
전생에 이 문턱을 넘으려면 항상 자신을 내쫒았던 당사자인데.
최미진의 명으로 평생 신력권가의 대문을 지키던 각성자였다.
“마, 맞습니다.”
“이젠 큰어머니의 명을 무시할 때도 됐는데. 넌 신력권가의 각성자냐 아니면 큰어머니 개인의 각성자냐. 그것도 아니면 아직도 패왕도가의 각성자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준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그런데도 그의 음성은 문을 지키고 있는 각성자들의 귀에 또렷이 박혔다.
“전…”
“대답 잘 해야 할 거야. 아니면 넌 이 자리에서 나한테 죽어.”
이준이 회안을 번들거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