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화
이준이 사라지고 얼마 후.
30대로 보이는 한 여자가 폐허가 된 패왕도가의 건물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극락사를 나와 혈불의 죽음과 관련된 일을 알아보고 있던 당소미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거세게 떨리는 중이다.
“파멸겁이… 재림 했어….”
이준이 사라진 방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패왕도가는 혈불이 도와주던 집단.
정확히는 꼭두각시로 만들어 두었던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한 남자의 손에 전멸했다.
그것도 자신들이 그토록 찾고 있었던 파멸겁에 의해서 말이다.
“혈불을… 죽인 것도 저 놈인 게 분명해.”
파멸겁은 혈불이 회수한 물건이다.
자신이 인주를 맞이하러 중으로 갔을 때, 파멸겁을 얻었다고 연락을 받았다.
남은 일은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자신들의 주군이 강림하면 바치면 되었다.
“일이 다 틀어졌어. 문제는 파멸겁도 파멸겁이지만, 인주의 무공까지 흘러나올 줄이야…”
이곳에 와서 한 일 중 하나가 천지인의 주인들 무공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가짜 무공을 배운 각성자라곤 하나, 천지인의 주인들의 무공은 경계의 대상이었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무공과는 격을 달리한 하늘의 무공이다.
그 무공 중 인주의 무공이 나타나 버렸다.
“벌써 후2식까지 사용하는 각성자가 있을 줄 생각지도 못했어.”
그러니 혈불과 극락사의 무승들이 전부 죽었겠지.
파멸겁은 안타깝지만, 현재로선 포기를 해야만 했다.
우선은 인주에게 보고가 먼저였다.
그의 무공이 현대에 나타났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분노를 할까, 아니면 재밌다고 할까.
인주의 성격은 종잡을 수 없었기에 속단할 수 없었다.
“아쉽지만 한국은 버려야겠어.”
인주가 중국을 먹고 있으니, 이젠 이 작은 나라는 필요 없어졌다.
다만 아쉬운 건 주군의 물건을 회수하지 못한 거다.
이 나라에 파멸겁과 혈신의 지도가 있다.
두 개의 물건을 모두 회수해서 돌아간다면 좋았을 터.
그러지 못한 게 좀 걸렸다.
“우리가 다시 돌아올 때, 한국이란 나라는 사라지게 될 거야.”
그녀가 자신 있게 내뱉곤 패왕도가였던 자리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 일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만약 인주가 이 자리에서 이준을 봤다면 동귀어진을 해서라도 죽이려고 했을 터.
이준이 익힌 건 인주의 사부.
즉, 파천혈신의 심득이 담긴 초식이었으니까.
인주가 제대로 따라하지 못한 연계기 였다.
* * *
홍대 레드본 클럽 지하.
암상의 지하 경매장은 사람들로 인해 떠들썩했다.
각성자들은 물건을 사는 것도 잊은 채,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헉! 내, 내가 뭘 본 거지?”
“송도에 있는 패왕도가의 본가가….”
“폐허가 됐다니!”
“어디서 헛소리야.”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도왕이 있는 패왕도가가가.
인천에서 철옹성을 이루고 있는데, 습격을 받았다니!
그것도 본가의 각성자는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단다.
믿을 수 있겠는가.
암상에 있는 각성자는 허위 기사라고 생각했다.
허나.
“똑같은 내용의 기사가 계속 올라와.”
“저, 정말이잖아?”
“어디 봐봐.”
동료 각성자가 폰을 뺏어 화면을 보았다.
패왕도가란 검색어를 치고 새로 고침을 하자, 새로운 기사가 계속 올라왔다.
“이게 뭐야!”
“누가 패왕도가를….”
“송도에 블랙존 게이트라도 열린 거야?”
그들은 계속 폰을 들여다봤다.
웅성웅성.
시간이 지날수록 소란은 더욱 커졌다.
안내 데스크 안에서 물품 감정을 하고 있던 한상인이 나왔다.
“뭔데 이렇게 시끄러워?”
“오, 오빠. 이, 이것 좀 봐.”
한상인의 여동생 한주인이 그에게 폰을 넘겼다.
“별 일 아니면 혼… 날…!?”
폰을 보던 한상인의 눈이 점점 커졌다.
두 눈동자가 거침없이 떨려왔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사실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주, 주인아. 허위기사… 아니지?”
“저 전광판을 봐. 지금 뉴스 속보로도 나오고 있어.”
한주인이 가리킨 곳으로 한상인이 시선을 돌렸다.
경매장 중앙.
거대한 전광판에서 패왕도가와 관련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폰으로 보고 있던 각성자들은 고개를 들어 전광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진짜야….
한주인은 아직 이준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이준이 암상에 오면 여태껏 한상인이 안내했다.
그의 정체를 아는 건 암상의 회장인 한금만과 한상인 뿐이었다.
“우선… 할아버지께 가봐야겠어. 갔다 올게.”
“응. 다녀와.”
한상인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더 내려갔다.
엘리베이터가 지하에 도착했다.
한상인이 발걸음을 재촉해서 한금만이 있는 곳으로 왔다.
벌컥!
“할아버지!”
“보고 있다.”
한금만도 쇼파에 앉은 채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TV를 보고 있었다.
기자가 패왕도가의 풍경을 보여줄 때마다 한금만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였다.
“응?”
한금만의 폰으로 하나의 메시지가 왔다.
[이준: 패왕도가 전력 2/3 축소시킴. 도왕과 그의 아들 도룡만 처치하면 됨.]
말이 길지도 않았다.
전하고 싶은 말만 명확히 문자를 보낸 이준이었다.
“정말… 그가 해냈구나.”
한금만은 긴장됐던 게 다 풀렸는지.
등을 소파에 기대며 말했다.
“이준, 아니 파천자 님께서 한 일이에요?”
“이걸 보면 알 거다.”
한금만이 전해준 폰을 본 한상인이 입을 떡 벌렸다.
이준이 정말로 해냈다.
오대가문 중 하나인 패왕도가를 무력화 시켰다.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
이준의 문자를 받았음에도 현실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됐다.
그만큼 패왕도가가 무너졌다는 건 한상인과 한금만에게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분의 능력은 어디까지 일까요?”
“지금까지 파천자 님에 대해 모은 정보는 모두 폐기해야겠구나.”
“그래야할 것 같아요.”
“주인이가 직접 움직여서 정보를 모으게 해라.”
“그래도 될까요? 파천자 님에 대한 건 저와 할아버지밖에 모르는데.”
“언제까지 주인이만 모르게 할 순 없지. 그리고 암상에서 정체를 밝힌 이상, 그분도 뒷조사가 시작될 거라는 건 알고 있을 거다. 대신 우리는 그분이 원할 때마다 암상의 정보를 뭐든 제공하면 되는 거야.”
한상인도 이에 동의했다.
언제까지 동생에게 숨길 수 없는 노릇.
오늘 이후로 파천자의 정체가 심히 궁금할 터.
정체를 가르쳐주지 않으면 한주인이 알아서 움직일 거다.
파천자는 암상의 VVIP인 만큼 조심하게 움직일 테지만.
VVIP보다 더 높은 단계.
파천자가 기분 나쁘지 않게 움직여야 했다.
만에 하나 한주인이 실수라도 하는 날엔?
‘우리 암상도 패왕도가와 같이 뿌리가 뽑힐지 몰라.’
파천자의 손속으로 볼 때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열람불가 등급으로 주인이에게 특별히 조심하라고 할게요.”
“절대 그분의 심기를 건드려선 안 돼.”
“신신당부 해 놓을 게요.”
“그래. 할애비는 잠시 혼자 있고 싶구나.”
“네. 쉬세요.”
한상인이 방을 나갔다.
혼자 있게 된 한금만.
눈을 감은 그의 입가에 진한 호선이 그려졌다.
* * *
패왕도가가 습격 받은 지 일주일.
패왕도가와 관련된 뉴스는 전혀 식을 기미가 안 보였다.
오늘도 이준이 머무는 기숙사는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패왕도가의 각성자들 말로는 이준 님이 패왕도가를 그 지경으로 만들었다는데 사실일까요?”
“이준 님이 패왕도가를 습격한 것이 사실이라면, 패왕도가와 신력권가 사이에 전쟁이 선포된 것으로 여겨도 될까요?”
“신력권가와 패왕도가는 동맹 관계였을 텐데요.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원래 이준 님은 가문의 주류가 아니었는데, 이번에 힘을 드러냄으로써 기존 세력을 몰아내고 물갈이 하려는 거 아닐까요?”
“그것도 나름 일리가 있네요. 일종의 선전포고일까요?”
“당한 당사자들의 말이니 신빙성이 있어.”
이준에 대한 기사는 뒤늦게 나왔다.
목숨은 붙어 있지만 단전이 모두 박살난 패왕도가의 각성자들.
그들은 깨어났어도 정상이 아니었다.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행동했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공포에 떠는 그들.
하나같이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등급이 높은 치료사로 간신히 정상으로 돌아온 그들.
그들이 꺼낸 첫마디는 이랬다.
괴물.
그리고 이준의 이름을 들먹이더니, 절망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사람은 경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특종의 연속이야.”
“이준 님이 어떠한 말이라도 해줬으면 합니다.”
“권왕도 아무 말도 없는 건가? 본인의 아들이 저지른 건데?”
“정 안 되면 천왕대라도.”
때마침 천왕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웬 걸.
무슨 거지 꼬락서니로 나타난 게 아닌가.
항상 단정하고 깔끔한 천왕대주, 사형준 또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마치 한 달 동안 밥도 안 먹은 사람처럼 아사 직전의 모습 같았다.
하나 다른 게 있었다.
천왕대의 눈빛.
사냥감을 눈앞에 둔 듯한 맹수 같은 눈빛이었다.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세는 어떤가.
투기가 가득했다.
사형준이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목소리가 아주 정중했다.
사형준은 각성자, 그것도 A급 끝자락에 다다른 사람이었다.
뿐인가.
이 일주일 동안 많은 사건이 있었다.
첫째는 그가 천왕신공을 버리고 수미천왕신공을 익혔다는 것.
A급에서 S급 신공을 배우게 된 사형준이다.
원래부터 강했던 그였지만, 기세가 칼날같이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
두 번째로는 이준과의 비무였다.
계승의 꽃을 먹고 수미천왕신공을 배우자 제일 처음으로 한 일.
이준과의 1:1 대련이었다.
지금까지 전패.
수미천왕신공이 미숙하다곤 하나, 이준의 옷자락도 건들지 못했다.
완전한 패배였다.
S급 신공을 배우고 나서 알 게 된 사실.
사형준으로서는 이준이 닿을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준에 해당되는 사항.
사형준이 비무에서 전패를 당했다지만, 기자들이 그의 몸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기세를 버틸 수 있지 않았다.
“그게….”
“음….”
“어….”
기자들은 사형준의 정중하지만 단호한 음성에 침을 꼴깍 삼켰다.
그래도 전에는 기자 정신으로 마이크부터 들이밀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기자의 감으로 사형준의 몸에서 위험함이 풍겨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천왕대주가 원래 저렇게 강했어?’
‘AA급 각성자들에게서나 풍기는 분위긴데….’
‘신력권가가 그동안 힘을 꽁꽁 숨기고 있었던 게 분명해. 그 숨겨진 전력이 이준이었던 건가? 겉으로는 이신을 내세우고, 이준을 진짜 후계자로 만들려 준비하고 있던 건가? 천왕대가 이준을 갑자기 따르는 것도 심상치 않아. 그러니까 이준과 천왕대가 패왕도가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었던 거지.’
‘아니야, 권왕이 여태 아무 말도 없다는 것은 이준이 권왕과는 별개로 혼자 벌인 일일 가능성도 있어.’
여러 가지 추측이 오갔다.
기자들은 천왕대를 보며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 자기들 스스로 정리를 했다.
신력권가의 전력, 천왕대의 힘.
오왕에 필적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강함을 가진 이준의 실력까지.
천왕대가 말해주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결론을 냈다.
어찌되었던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패왕도가가 사라졌다.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기존의 신력권가일지, 아니면 이준을 필두로 한 완전히 새로운 세력일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격동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사형준이 재차 말했다.
“용건이 없으면 물러나주시겠습니까? 도련님께서는 시끄러운 걸 싫어하십니다.”
그 말과 함께 천왕대가 앞으로 한 발 나왔다.
기자들에게 그 어떠한 협박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자들을 바라볼 뿐.
천왕대가 한 건 그게 다였다.
그러나 저들의 행동에 기자들이 움찔했다.
천왕대에게서 흘러나온 맹수 같은 기운은 어지간히 간 큰 사람도 버티기 힘들었다.
각성자들의 전투를 취재하기 위해 게이트에도 들락거리는 종군기자들이 섞여 있었으나.
천왕대의 위험성을 알고 제일 먼저 종군기자들이 발을 뺐다.
그들이 뒤로 물러나는데, 일반 기자들이라고 다를 게 있나.
이준이나 천왕대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기자들이 기숙사 앞에서 전부 사라졌다.
“수련장으로 이동한다.”
“옛!”
사형준을 필두로 부대주와 천왕대원이 경공을 펼쳐 이동했다.
* * *
수련장.
이준은 한민성 이사장의 지원으로 이곳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랭킹 20위까지 사용하는 학생 수련실과는 다른 넓은 공간.
천왕대가 다 들어와도 될 만큼 컸다.
이곳에서 사형준과 천왕대가 수련에 열중을 올렸다.
그들과 달리 이준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세상에 회의를 느낀 무극의 길 루트(??)
은거자(5) - 천무지체(0/10,000,000)
무공(3)- 무극기(0/999,999,999) (-50,000,000)
능력치(73) - 내공+15(1,000,000)
테크트리 포인트 14,680,000
‘사부님… 무극기를 배우라는 거예요 말라는 거예요?’
파천기 테크트리 감소 포인트를 오천 포인트나 얻었다지만, 한참이나 멀었다.
그냥 테크트리를 찍지 말라는 소리로 보였다.
[크흠. 그만큼 대단한 무공이라는 뜻이니라. 더욱 분발해서 포인트를 모으면 언젠간 얻게 될 것이다.]
무극자 사부가 태연히 말했다.
이준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자기가 모을 포인트가 아니라고 쉽게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말했다간 또 호통이 들릴 뿐.
괜히 잔소리로 시간을 날릴 순 없었다.
그동안 진득하게 앉아 있을 시간이 부족해서 올리지 못한 천무지체를 올렸다.
[특성 천무지체를 획득하셨습니다.]
[천무지체를 얻어 제2차 환골탈태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