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퍼벙펑펑!
이준의 손에서 빠져나온 장력들이 패왕도가의 각성자에게 쏟아졌다.
“크억!”
“악!”
“장력하나 막지 못하고 뭐 하는, 컥!”
현장을 지휘하던 각성자가 이준의 장력에 맞아 반대편 나무를 부수며 기절했다.
“이렇게 소란이 이는데도 안 나와? 어디 끝까지 모습을 안 드러내는지 보자.”
이준의 두 손이 빛으로 감싸였다.
기류가 회오리치듯이 몰려들었다.
이에 따라 그의 옷이 미친 듯 펄럭였다.
패왕도가의 정원에 있는 나무가 거센 바람에 뿌리가 뽑힐 것 같이 휘어졌다.
콰르릉-!
맑은 하늘에 뇌성이 울렸다.
그럴수록 이준의 손에 모여든 내기의 힘은 강해졌다.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패왕도가의 각성자들.
“건곤진을 펼쳐라!”
그들이 4인 1조씩, 한 조로 뭉쳤다.
공격진법이나 방어진법의 장점 중 하나는 서로의 내력을 공유하는 것과 증폭.
한 명의 내력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을 수 없는 것도, 네 명이 합치니 상대할 수 있었다.
건곤진은 방어진에 속한 진법.
패왕도가의 각성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였다.
이준의 손에서 떠난 두 개의 구체가 벽력성과 함께 엄청난 빠르기로 날아갔다.
“온다!”
그들이 각자의 방위에서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들은 도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고, 침을 꼴깍 삼켰다.
보고만 있어도 무시무시할 장력.
자그마한 장력에도 동료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는데, 저 커다란 구체를 막을 수 있을까.
건곤진을 펼쳤다지만 자신들이 막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정신만 똑바로 차려! 곧 원로원에서 지원 나오실 거야.”
원로원은 AA급 초입에 들어선 풍사도를 비롯하여 모두 최소 A급 끝자락에 든 가문의 큰 어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준이 AA급에 달하는 최미진과 최순호를 단신으로 제압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패왕도가의 말단 각성자들은 과장된 이야기일 것이라고 믿었다.
패왕도가가 어디인가.
철혈검가의 검제 같은 S급 각성자는 아직 없지만 AA급 초입에 든 각성자를 여럿 보유한 강력한 가문이다.
평범한 각성자라면 눈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할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가문.
그러니 패왕도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다.
패왕도가의 각성자는 그렇게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행복회로가 미친 듯이 돌다 못해 다 타버려서 매캐하게 타는 냄새가 났지만.
애써 무시했다.
거대한 두 개의 구체가 건곤진을 이루고 있는 이들에게 떨어졌다.
파지직-
“으윽…”
“큭… 생각보다… 막을 만 해!”
“버텨!”
패왕도가의 각성자가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들은 구체를 막는 동안 무리하게 내공을 썼는지, 입가로 피가 흘렀다.
그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잘 막고 있었다.
한 개의 구체가 소멸.
나머지는 진을 이루고 있던 이들이 막는 사이.
구체를 소멸시킨 각성자들이 도를 들어 나머지 장력을 한꺼번에 공격했다.
쾅! 소리와 함께 마지막 구체도 사라졌다.
이준의 공격을 막은 각성자들.
“막았어!”
“크기만 컸지 별거 없구만!”
하지만 좋아하긴 일렀다.
그들이 장력을 막았다고 좋아하고 있기 한참 전부터 이준은 움직이고 있었다.
정확히는 거대한 장력에 그들의 시야가 가려졌을 때부터였다.
이준은 수십 개의 건곤진 중 가운데에 자리한 곳.
각성자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이준을 보자 눈을 부릅떴다.
언제 나타났냐는 얼굴이다.
이준은 그를 보고 웃고 있었다.
“큰 장력은 페이크였어. 이게 진짜야.”
그의 손에 작지만 강력한 내공이 응집되어 있었다.
언제든 손에서 떠나길 기다리고 있는 장력.
이준이 바닥을 향해 장력을 뿜어냈다.
콰아아아앙!
땅이 갈라지면서 돌과 비석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이준의 장력은 손을 떠났으나, 아직까지 기운이 소멸되지 않았다.
구체가 맹렬히 돌면서 주위를 부수고 있었다.
이준이 팔을 아래로 더 내리는 순간!
쾅!
벽력신장이 터지면서 내기의 폭풍이 일어났다.
장력이 충돌한 바닥은 거대한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큭!”
“억!”
“악!”
주변에 있던 각성자들이 각양각색의 신음을 토하며 쓰러졌다.
짐승의 발톱에 할퀸 듯 몸 전체가 짓이겨져 있었다.
뿐만 아니다.
이준의 주위는 어떤가.
그야말로 초토화.
한 번의 공격으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만약 이준이 혼원신공을 사용해서 벽력신장을 썼다면 그들은 이미 죽은 목숨.
그나마 수미천왕신공을 사용해서 모두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목숨만 붙어 있는 격. 그들의 상태는 위중했다.
* * *
이준의 무력에 천왕대는 할 말을 잃었다.
설마 패왕도가의 본진에서 대놓고 무공을 사용할 줄 전혀 몰랐다.
사용해도 협상의 용도일 줄 알았는데, 이건 뭐.
전쟁을 하자고 먼저 선공을 취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아니, 선공을 넘어서 테러나 다름없었다.
그저 입을 떡 벌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때부터 웅성거림은 커졌다.
“세상에….”
“이래서 오왕들께서 S급 무공에 열을 올리셨나.”
“S급 무공도 그런데… 도련님의 저 판단이 미쳤습니다. 과감히 적진 한복판에, 약점이 될 곳을 골라 진영을 완전히 붕괴시키는 건… 와.”
“이런 이준 도련님의 재능을 어떻게 몰라 본 거지?”
천왕대원들은 자신의 눈을 후벼 파고 싶었다.
특히 천왕대의 부대주는 얼굴이 창백했다.
“하, X발. 천왕대 그만둘까?”
“왜요? 앞으로 인생 활짝 펴게 생겼는데.”
“새꺄. 나 이준 도련님한테 완전 찍혔잖아.”
“아아. 도련님께서 화상 좀 치우라고 했었죠?”
“젠장.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꼬이냐. 하아.”
부대주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목소리를 들었을까.
구덩이에 있던 이준이 그를 불렀다.
“야. 화상. 뭐하고 있어?”
“예? 저 부르셨습니까?”
“그래 너. 화상이 여기에 너 말고 누가 있지?”
부대주의 얼굴은 죽상이 되었다.
뭐라고 대꾸도 하지 못한 부대주였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절 부르셨습니까?”
“계속 보고만 있을 거냐?”
“네?”
“말귀 참 못 알아 듣네. 이래가지고 어떻게 천왕대 부대주 자리에 있었지?”
이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대주는 눈알만 굴렸다.
대체 이준이 뭐를 하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준의 이마가 찌푸려지자, 사형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들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죽지 않게만 지혈하고, 모두 단전을 파괴시켜.”
“명을 받듭니다. 모두, 패왕도가 각성자의 단전을 파괴시킨다.”
“예!”
우렁찬 대답과 함께 천왕대가 움직였다.
이준이 부대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저 봐. 얼마나 말귀를 잘 알아들어. 괜히 화상이 아니라니깐. 쯧.”
이준이 혀까지 찼다.
부대주의 얼굴은 절망에 빠졌다.
또 찍혔다.
이대로라면 부대주의 직위도 위태로울 지경.
그는 정말 울고 싶었다.
‘정말 그만두고 시골로 가서 농사나 지을까.’
고개를 푹 숙인 부대주는 귀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준이 지시한 일을 착실히 수행했다.
이준이 웅덩이에서 나왔다.
살아남은 패왕도가의 각성자가 이준을 보고 움찔했다.
자신들의 앞마당에서 벌어진 참극.
그들을 더 공포스럽게 만든 건 이준의 나이가 고작 18살이라는 것이다.
만약 나이를 더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
패왕도가로선 아주 끔찍한 나날이 벌어질 거다.
그들은 이준을 게이트에서 암살하려고 했으니까.
아무리 대인배라도 자신을 죽이려는 이들을 살려주고 싶지 않을 터.
패왕도가는 이준에게 레드 존 보스급 몬스터와 같은 적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도왕은 코빼기도 안보이네? 혹시 이곳에 도왕이 없나?”
이준이 그들을 슬쩍 떠봤다.
아무 말도 없었다.
모르는 눈치들.
허나 그중 몇몇은 눈이 잘게 떨리는 게 이준의 눈에 보였다.
“정말 없어? 아주 좋은 기회인데?”
이준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미소는 패왕도가에게 사신의 웃음과 똑같았다.
도왕이 없는 지금, 패왕도가의 본거지를 싹 쓸어버릴 절호의 기회였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 쉽게 쓸어버릴까.
도왕이 있다하더라도 이준에겐 패왕도가를 재기불능으로 만들어야 될 의무가 있다.
거저 주는 퀘스트를 꼭 깨야만 했고, 자신을 죽이려는 이들에 대한 응징도 철저히 해야 했다.
마침 도왕도 없겠다, 아주 좋았다.
아마 도왕이 돌아왔을 때는 패왕도가가 쑥대밭이 되어 있을 터.
가문을 본 도왕은 뒷목을 잡고 쓰러지지 않을까?
그가 가면을 벗고 분노한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준의 전신에서 아지랑이가 나왔다.
패왕도가의 각성자들을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갔다.
점점 발걸음이 빨라지고 땅을 박차며 그들에게 쇄도했는데.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쾅쾅쾅쾅!
반월 모양의 강맹한 도기가 이준에게 쏟아졌다.
이준은 무극군림보를 사용해 도기를 피했다.
마지막 도기가 이준의 바로 앞을 갈랐다.
그가 움직임을 멈췄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본 이준.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엉덩이가 무거운 양반들이 드디어 나타나셨네?”
* * *
풍사도의 눈이 이글거렸다.
자신의 앞에 아들을 죽인 범인이 있었다.
아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가문까지 쳐들어온 놈.
절대 살려서 보내줄 수 없었다.
최대웅이 이준에게 도기 다발을 날렸다. 그의 이명답게 거센 바람을 동반한 도기였다.
“원로원님들이다!”
“사, 살았다.”
두려움과 정말에 빠졌던 각성자의 얼굴에 희망이 엿보였다.
원로원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패왕도가의 최후보루였으니까.
최대웅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피해상황을 말하라.”
“갈사자단과 철사자단이… 전멸했습니다.”
최대웅은 입을 꾹 다물고 이준을 노려봤다.
이미 예상했던 결과다.
패왕도가의 최정예인 패왕대를 모두 죽이고 최미진도 굴복시킨 이준이었다.
갈사자단과 철사자단은 패왕대만으로 제압할 수 있는 단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최대웅은 이준과 손을 섞어보지 않았던가.
그날 이후 최대웅은 미친 듯이 수련에 매진했다.
수련에 성과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이준은 자신의 성장의 몇 배의 성장을 이룩한 것 같았다.
그 때도 범상치 않은 존재였는데. 지금의 그는 얼마나 강할까.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적어도 두 단체만으로는 무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원로원들은 그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대웅의 동생.
두 살 아래 동생인 셋째 최대호가 보고를 하는 남자에게 버럭 소리쳤다.
“갈사자단과 철사자단이 전멸하는 동안 너희는 뭘 했던 것이냐!”
원로원 회의 내내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막내 동생 최대신 또한 화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가주가 없는 동안 정문이 뚫린 것도 모자라 앞마당까지 쑥대밭이 된 걸 세상 사람들이 안다면 뭐라 하겠나. 오늘은 우리 패왕도가의 수치인 날이야.”
“모두 비켜라! 저 놈은 우리가 상대할 것이다.”
최대호가 패왕도가의 인원들을 물렸다.
그리고 앞으로 나섰다.
“형님. 제가 저놈의 목을 따서 순호의 넋을 달래겠소.”
입을 다물고 있던 최대웅이 도를 들어 최대호의 앞을 가로막았다.
“대호 너 혼자로는 힘들어. 원로원 모두가 합공해야 해.”
최대호의 눈이 커졌다.
나이가 들어 성격이 조금 유순해졌다고 하지만, 70이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성격이 불같은 형님이었다.
그런 그가 합공을 제안했다.
“저 애송이가 그 정도로 강하단 말이오?”
“가주만 한 실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주는….”
“내가 저놈에게 망신을 당해서 겁을 집어먹었다고 생각하느냐?”
“그건 아니지만.”
“여기서 죽기 싫다면 내 말 듣거라.”
풍사도의 얼굴은 굉장히 차가웠다.
농담 한 점 없는 얼굴에 원로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만큼 강적이라는 뜻.
아무래도 오늘 패왕도가의 수치로 끝날 것만 같지 않았다.
“모두 진심을 다해 공격해.”
쾅!
그 말을 남긴 최대웅이 땅을 박차고 먼저 이준에게 쏘아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