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레드걸스의 유니는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눈앞에 벌어진 상황.
이준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두 명.
한 명은 무사고를 넘어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검룡이다.
다른 한 명은 모르는 사람이었으나, 그 또한 아주 치열하게 싸웠다.
“이게… 고위 각성자들의 싸움….”
유니도 C급 각성자.
걸그룹을 하고 있으나, 멤버들과 현장에도 간혹 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의 광경을 보고 알았다.
자신이 나갔던 현장은 장난에 불과했다는 것을.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이야말로 각성자의 참혹한 현실이었다.
힘이 없으면 세력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된다는 사실.
하나, 곧이어 굉장한 일이 벌어졌다.
우드득.
가만히 있던 이준의 단 한 번의 움직임만으로 상황은 반전됐다.
기세등등하던 패왕대는 식은땀을 흘렸다.
겁에 잔뜩 질린 채 뒷걸음질 치는 이들. 그들의 얼굴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후였다.
“대… 단해.”
이것만으로도 엄청났는데, 이준이 패왕대주마저 제압했다.
그가 대단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으나 직접.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있으니 전신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놀란 건 유니뿐만이 아니다.
“그 강하다는 패왕대가 겁을 잔뜩 집어 먹고 있어.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유니 옆에 눈이 왕방울 만하게 큰 여자가 말했다.
유니보다 한 살 언니인 은조였다.
곁에 있는 멤버들도 은조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간다는 얼굴이다.
“그러게… 오싹할 정도로 소름 돋아.”
“나도…”
레드걸스 멤버들이 몸을 살짝 떨었다.
그녀들은 각성자답게 싸우고 있는 이들이 뿜어대고 있는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
자신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들.
한 명, 한 명이 국가의 재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다.
유니는 동영상을 찍다 말았다.
“김서아 기자님. 이 정도만 찍으면 될 것 같지 않아요?”
유니가 앞을 향해 눈짓을 했다.
찍힐 건 다 찍혔다는 뜻이다.
“패왕대가 이준님 일행을 압박한 사실만 찍혔으면 기사로 쓸 거리는 충분해요.”
마지막에 패도나찰이 두려움을 못 이겨 실례를 한 것까지 담고 카메라를 거둔 유니였다.
* * *
“끄으으윽….”
최미진이 눈을 뒤집으며 옆으로 쓰러졌다.
이준의 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기절을 한 것이다.
“휴. 이제 끝난 거냐.”
박혁진이 애지중지하게 여기던 뇌격검까지 내팽겨 쳐두고 벌러덩 누웠다.
그가 숨을 몰아쉬었다.
허수와 마찬가지로 긴장이 풀렸는지.
피로가 몰려온 얼굴이었다.
“준아. 저 아줌마는 어떻게 할 거야?”
“공개처형.”
그래서 요즘 떠오르는 대세를 여기까지 부른 게 아닌가.
레드걸스 유니라면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네 가문에 있는 금옥에 가뒀으면 해.”
최미진은 패왕도가의 사람이기도 했지만, 신력권가의 안주인이다.
핏줄은 안 이어졌어도 큰 어머니.
그녀와 손을 섞지 않고 오직 살기로만 겁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동영상에 그녀와 직접 싸우는 장면을 넣어봐라.
유교 사상을 가진 이들이 분명 일어날 거다.
어떻게 어머니 된 사람을 때리냐.
길러준 어머니도 부모다.
피는 안 섞였다지만, 이건 패륜이다.
갖가지 이유를 붙여가며 까댈 게 분명했다.
자신의 사정도 모른 채 말이다.
네티즌들은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게 다였으니까.
그래서 최미진의 몸에 손 하나 대지 않았던 이유였다.
그로선 철혈검가의 감옥에 가두는 게 최선.
어쩌면 최미진에겐 죽는 것보다 최고의 형벌일지 모른다.
그토록 아끼는 아들, 이신의 얼굴을 평생 못 볼 테니까.
여태껏 철혈검가의 금옥에 들어갔다 나온 악인은 단 한 명도 없었었다.
신력권가의 안주인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준의 의도를 알아 챈 박혁진이 말 한 번 살벌하게 했다.
“저 아줌마를 감당할 가문은 우리 철혈가밖에 없긴 하지. 아버지가 패왕도가를 벼르고 있는데, 이참에 전쟁 한 번 일으키자고 하지 뭐.”
오대가문끼리의 격돌.
대한민국 정부는 가문끼리 싸우는 걸 반기지 않았다.
각성자끼리. 그것도 오대가문에 속한 이들끼리의 싸움은 국가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국가 전력이다.
정부 입장에선 오대가문의 싸움은 내부의 아군끼리 싸우는 것.
반갑지 않아 했다.
그래도 정부가 말릴 권한은 없었다.
현재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건 오대가문이라 해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다만 일반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였다.
물론 이미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준비는 해 놨다.
마침 한민성 이사장의 비서인 남 비서가 자신들에게로 왔다.
“다 끝났군요.”
“왔어요?”
“정말 말대로 패왕대 전원을 다 물리칠지 몰랐어요.”
남 비서는 이준 일행을 괴물 보듯 봤다.
이들은 현역 각성자도 아니다.
이준과 검룡 박혁진은 현역 각성자보다 강하긴 했으나, 허수란 학생은 실력이 한참이나 모자랐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허수란 학생도 한몫했다.
아니지.
남은 패왕대를 혼자 상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더욱이나 허수가 쓴 무공이 남 비서의 시선을 끌었다.
패왕도가의 무공.
그것도 천뢰제왕신공이나 제왕검형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S급 무공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착각했다 싶었으나, 보면 볼수록 확신했다.
패왕대를 도륙하던 도법은 도왕이 그토록 찾고 있던 연환패왕도라는 것을.
놀라웠다.
패왕도가에서 궁극의 무공을 가진 게 아닌, 뜬금없는 사람이 연환패왕도를 지녔다.
그것도 고작 17살 학생이 말이다.
이 사실이 바깥으로 전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엄청난 파장이 일 것이다.
만약 패왕도가의 도왕이 알면 허수란 학생을 가만 두지 않을 터다.
“찍은 동영상을 이대로 보내도 될까요? 편집을 하는 게….”
“그대로 내보내주세요.”
이준은 편집을 통해 무엇 하나 감출 생각이 없었다.
자신에게 발톱을 들이댄 이들에게 대한 공격이었다.
무엇보다 패왕대를 몰살시킨 시점부터 패왕도가는 자신을 철천지원수로 생각할 거다.
일을 벌였으니, 마무리 짓는 것도 자신의 몫이다.
“알았어요.”
남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유니와 김서아 기자를 보며 말했다.
“사실. 제가 여러분을 속였습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가요?”
“이준 학생과 공략을 하는 건 거짓말이었습니다. 신기지가에선 패왕도가와 패도나찰이 이준 학생을 죽이려한 걸 알아냈고, 이를 알리기 위해 여러분을 불러낸 겁니다. 거짓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남 비서가 그녀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 일을 계획한 건 이준이라 그도 똑같이 행동했다.
“저도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준의 인사에 레드걸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서아 기자만 현재의 상황을 되짚었다.
“그러니까 저희를 이용해 패왕도가가 이준 님을 죽이려 한다는 걸 알리려고 했단 말이죠?”
“네.”
팔짱을 끼고 있던 김서아 기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 아무래도 좋아요. 이런 대특종을 단독으로 낼 수 있다는 거잖아요? 얼마든지 절 이용하세요.”
김서아 기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언론 플레이로 신기지가만한 곳은 없으나, 이준이 식객으로 있는 상황.
증거를 가지고 신기지가가 패왕도가를 몰아붙인다 해도 반응은 나뉠 것이다.
신기지가가 자신들의 식객으로 있는 이준을 돕고 있다는 같잖은 이유를 만들 터.
이준은 이런 걸 방지하기 위해 신기지가와 이야기를 나눈 끝에 종군기자를 선택했다.
고르고 고른 사람이 김서아 기자였다.
각성자 정보지의 출신이며 현시대에서 종군기자 역할을 하는 게이트기자까지 겸하고 있는 그녀.
이준과 최미진의 사이를 알리기에는 최적의 기자였다.
유니가 양 볼을 발갛게 물들인 채 질세라 재빨리 끼어들었다.
“저… 저도 이용하셔도 됩니다!! 저야말로 마구 이용해주세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준이 다시 한 번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의 모습에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레드걸스였다.
그녀들은 모두 C급 각성자.
등급이 높은 각성자일수록 안하무인하게 행동하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특히 무사고의 학생들.
그들은 차기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인재들이다.
15가문 연맹의 후계자와 출신들이 다니는 곳이라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갑질을 하는 일은 번번이 일어났다.
그런데 B급이나 A급도 아닌, 오왕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생긴 이준이 고개를 숙였다.
C급인 자신들에게 말이다.
“아, 아니에요.”
“이준 님이 머리 숙여 사과할 것까지야….”
“이준 님을 직접 뵌 것만으로도 영광….”
마지막으로 은조가 말하는 순간.
박혁진이 입을 떡 벌렸다.
“레, 레드걸스의 으, 은조?”
뒤늦게 그녀들의 정체를 알아챈 박혁진이었다.
그가 놀란 얼굴을 보이다가 이내 표정을 싹 바꿨다.
헝클어진 머리와 옷가지도 정리했다.
“안녕하세요. 검룡 박혁진입니다.”
언제 지친 기색을 내비쳤냐는 듯, 온갖 똥폼을 다 잡는 박혁진이었다.
그의 돌변한 행동에 당황한 레드걸스였다.
* * *
이준이 패왕대를 물리친 지 얼마 안 되서 조용하던 매스컴이 다시 떠들썩해졌다.
게이트 정보 매거진의 김서아 기자가 올린 기사 때문이다.
-패도나찰의 실체. 이대로 괜찮은가?(+999)
내용은 이러했다.
이준이 친구인 검룡과 후배를 데리고 블루존인 서울 숲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있는데, 이준에게 앙심을 가진 패도나찰과 패왕대가 이틈에 기습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를 접한 사람들은 분노를 했다.
15가문 연맹에 속한 이들이 게이트에서 기습을 한 건 세상에 처음 알려진 사실이었으니까.
언제나 게이트에서 각성자를 노리는 건 사마련의 짓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가문이 현역 각성자도 아닌 무사고의 학생을 기습했단다.
사마련보다 더 악질적인 행위였다.
- 미친; 급식 상대로 패왕대를 끌고 오냐;;
- ???: 나는 급식을 상대로도 진심을 다한다.
-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ㅋㅋㅋ
- 근데 그 급식이 이준이라면?
- ㄴ 그땐 진짜 진심으로 머리 박아야함
- 콩가루 집안도 아니고 이정도면 베x밀 수준
- 아니ㅋㅋㅋ 이준이 이신 단전 깰 때 싸패 아니냐고 했던 놈들 다 어디 갔음ㅋㅋㅋㅋㅋㅋ
- 나라면 이신 죽였음;;
기사의 조회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간혹 패도나찰과 패왕대를 옹호하는 댓글이 올라왔지만, 귀신같이 묻혔다.
- 여러분 김서아 기자님께서 좌표 찍어준 곳 가서 동영상 보세요. 여긴 댓글이 아주 클린 하네요.
네티즌들은 김서아 기자의 좌표를 타고 들어갔다.
영상을 올린 사람은 레드걸스의 유니였다.
- 어? 예언좌 너튜브네?
- 너튜브 알고리즘 뭐지ㅋㅋㅋㅋ
- ㄴ 나도 알고리즘 타고 옴 222
- ㄴ 그냥 링크가 잘못 연결된 것 같은데?
- ??? 어??
선 댓글 후 감상을 실천하던 사람들은 동영상이 재생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침묵.
기사에서 달리던 댓글의 속도보다 현저히 느렸다.
유니의 너튜브 치고는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동영상을 끝까지 다 본 사람들의 댓글 폭격이 시작됐다.
- ㅅㅂ 진짜 사람 죽은 거야????
- 저 정도면 떼 몰살 수준인데;; 뭐지?
- 222222
사람들은 박혁진과 허수가 패왕대를 상대로 싸우는 걸 보고 댓글을 달았다.
- 와 씨 저건 인간도 아님;
- 이번엔 선 씨게 넘었네;
- 사마련: 패왕 형님! 진도가 너무 빠릅니다.
동영상을 본 사람은 모두가 분노했다. 마치 자신이 직접 겪은 일처럼 감정을 이입시켰다.
고구마만 잔뜩 처먹은 듯한 느낌.
사람들 전부가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았다.
목이 막혀 물이라도 먹고 싶었으나, 영상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하, 그만 보고 싶다.
- 화병 나 뒈질 것 같아.
동영상을 전부 보고 댓글을 다는 이들도 있지만.
동영상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을 향해 구원자가 나타났다.
- 00:32:55 이 부분 봐라. 사이다 좌표 찍어둔다.
고구마를 참지 못한 이들은 32분55초 부분부터 보기 시작했다.
- ㄷㄷ. 이준이 이 정도로 강했어?
- 천무대전에서 도왕이 이준을 봐줬다는 새끼 나와.
- 이준 까들 버러우 탄것 보소. 두더지인줄.
- 속이 뻥 뚫린다.
이준의 잔혹한 손속에도 사람들은 그의 편이었다.
이미 네티즌의 생각엔 패왕도가가 사마련보다 더한 악독한 단체였다.
한데, 마지막 반전이 있었다.
패왕대주를 끝내고 패도나찰에게 다가간 이준.
그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패도나찰에게 손찌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이들은.
- 이준ㅜㅜ 갓준이다…
- 아 ㅅㅂ 걍 죽이지;; 저걸 또 살려주네
- ㄴ 그래도 즈그 엄마라고 살려준 듯
- 윗댓 찐이면 눈물난다ㅜㅜ
- 이준이 종교다…
- 갓준님 믿습니다…
- 준멘2222
- 준멘3333
이준의 행동에 박수를 치며 연호하는 네티즌들이었다.
이 모든 게 이준의 생각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