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화
“오! 데미지 입는다!”
“조용히 하고 치기나 해.”
퍼벅퍽퍽!
단단한 암석이 도검에 의해 파이고 흔적을 남겼다.
돌의 파편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광역기를 날렸던 골렘이 방패를 들어 올리자.
“멈추고 떨어져.”
이준이 보법을 밟으며 뒤로 물러났다.
박혁진과 허수는 미리 합을 맞췄던 것처럼 움직였다.
세 사람이 골렘과 멀찍이 떨어졌다.
결계가 쳐진 투명한 막이 등 뒤에 닿을 거리만큼.
“또 광역기가 날아올 거야.”
이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오오오오.”
덩치 큰 골렘이 소리를 질렀다.
녀석에게서 나온 기파가 원형의 모양을 한 채 주위로 퍼졌다.
퍽! 퍼벅퍽퍽!
조금 전 녀석이 든 방패의 광역기와는 달리 필드 전체 광역기였다.
뾰족한 가시 모양의 돌덩이가 위로 솟아났다.
세 사람의 코앞에까지 나타났다.
“난이도 실화냐? 블루존 게이튼데 난이도가 뭐 이리 높아?”
박혁진이 혀를 내둘렀다.
이준도 박혁진의 말에 동감했다.
여긴 일반적인 블루존 게이트가 아니다.
무려 마정석 광산이 숨어져 있는 곳.
대한민국 전력의 1/3을 충당하고도 남을 법한 매장량을 지녔다.
여기만 차지하면 평생 자손까지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한테 안 뺏긴다는 조건에서만 말이다.
이런 숨겨진 보물이 있으니 난이도가 안 어렵겠는가.
마정석 광산을 얻는데 이 정도면 쉬운 편에 속했다.
“놀라지만 말고 다시 가자.”
이준이 뾰족한 암석 가시를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박혁진과 허수도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은 골렘이 움직이기 전까지 내공을 사용해서 때렸다.
현재 골렘은 방어 상태.
공격을 가해도 체력이 깎이지 않았다.
대신 딱 한 번.
방패를 들어 올려 땅으로 내려칠 때.
일직선 광역기를 사용한 직후에는 절대방어가 해지 됐다.
세 사람은 이때만을 노렸다.
그렇게 패턴을 반복하며 2스테이지 보스 몬스터를 공격한 결과.
쿵.
[스테이지2 보스 몬스터인 무속성 골렘을 파괴했습니다.]
[낮은 난이도의 보스를 처치했습니다.]
[보상으로 250,000p를 획득했습니다.]
[마지막 스테이지를 진행 할 수 있습니다.]
보스 몬스터를 처치했다.
녀석이 사라진 자리에는 1스테이지와 똑같이 아티팩트가 놓여 있었다.
더 높은 등급의 아티팩트들.
이준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준아. 정말 우리만 가져도 돼?”
말은 걱정을 하고 있지만, 행동은 전혀 그렇지 못한 박혁진이었다.
이미 절반가량을 아공간 주머니에 쓸어 담고 있는 게 아닌가.
저걸 친구라고.
“다 챙겼으면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자.”
“그래!”
박혁진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녀석이 얻은 마정석 포함 아티팩트만 열다섯 개는 훌쩍 넘었다.
마지막 게이트의 주인까지 클리어 한다면, 얼마의 보상을 얻어갈까.
족히 스무 개 이상은 될 거다.
마지막 보스 몬스터를 죽이면 갯수는 적겠지만 여태까지 얻은 것 중에 제일 등급이 높을 터.
박혁진은 잔뜩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아 참! 허수한테 물어볼게 있어.”
“저 말입니까? 말씀하십시오.”
박혁진은 허수를 뻔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어떻게 패왕도가의 무공을 쓰고 있어?”
“그게…”
허수가 어물쩍거렸다.
그러다 눈동자를 돌려 이준을 슬쩍 보았다.
그 눈빛을 못 알아챌 박혁진이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는 분명 패왕도가의 무공이었어. 그런데 도왕 그 양반의 무공보다는 한 차원 높은 도법이었달까? 마치 우리 할아버지가 익힌 상위 무공인 제왕검형처럼 말이야.”
박혁진은 허수가 익힌 무공의 이름은 맞추지 못했으나 정확히 보았다.
허수의 연환패왕도는 제왕검형과 같은 서열에 있는 무공.
S등급을 가진 도법이다.
“준이 네가 대답해봐.”
그의 목소리는 장난기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걱정이 담겨 있는 음성이랄까.
이준은 박혁진의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해주었다.
“맞아. 허수가 익힌 건 패왕도가의 무공인 연환패왕도가야.”
“연환패왕도…? 설마 도왕이 그토록 찾고 싶어 하는 도법 말하는 거냐?”
“어.”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수가 연환패왕도를 어떻게? 건곤미허신공이라는 상위 심법을 가져야지만 하잖아?”
“허수가 건곤미허신공을 익혔다면?”
“뭐? 정말이야?”
박혁진이 허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준이 그에게 모든 걸 말해주자, 허수도 숨길게 없었다.
“맞습니다. 이준 형님께서 제게 수백억이 있어야지만 구한다는 계승의 꽃을 주어 무공을 초기화 시켜주었습니다.”
“계, 계승의 꽃까지?”
박혁진은 계속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건곤미허신공과 연환패왕도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계승의 꽃까지 구해줬다니.
절친인 이준이라지만 대체 이런 것들은 어디서 얻는 건지.
그가 이준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것도 전부 네 사부님 덕이야?”
“비슷해.”
전생의 정보를 바탕으로 미리 무공서를 선점했다고 말할 수 없는 노릇.
설사 미래를 안다고 해도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는 실력이 안 되면 쓸모가 없었다.
이준을 강하게 해준 게 무극자였으니.
사부의 덕택이라 해도 옳았다.
“네 사부란 분 정체가 뭐야!?”
박혁진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동요했다.
* * *
늦은 저녁.
서울 숲 앞에 수십 명의 인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자들.
그 중 한 명이 복면을 내렸다.
아직도 30대처럼 보이는 최미진이었다.
“언제까지 날 기다리게 할 거야?”
“죄송합니다. 누님. 타 가문에서 보낸 세작의 눈을 피해서 오느라 늦습니다.”
최미진의 옆에 있는 복면인.
얼굴이 복면으로 가려져 눈밖에 보이지 않지만 상당히 강렬한 눈빛을 지닌 자였다.
최미진의 사촌동생이자 패왕대의 대주인 최순호다.
“이준이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가서 죽여야 해.”
“시간은 충분할 겁니다.”
“천무대전에서 오라버니와 동수를 이룬 거 못 봤어?”
최미진의 말에 최순호가 피식 웃었다.
“누님. 가주님께서 애송이를 상대로 전력을 다해 공격을 한 것도 우습지 않습니까? 그때는 가주님께서 내공의 3할도 사용하지 않은 채 공격을 했을 겁니다.”
“그건 그렇지만 느낌이 좋지 않아.”
“걱정 마십시오. 제가 오늘부로 누님의 근심을 싹 제거해드리겠습니다.”
최순호는 오만한 정도로 자신해했다.
오대가문에 속한 무력대의 대장.
심지어 패왕도가 내에선 다섯 손가락 안에 든 실력자였다.
그에게 이준이란 애송이는 안중에도 없었다.
“순호 너만 믿을게.”
“맡겨주십시오. 누님.”
두 사람이 말하는 사이.
오기로 한 패왕대가 전부 도착했다.
패왕대 인원만 무려 200명.
도왕 최강규가 패왕대주에게 인원 전부를 끌고 가서 이준을 죽이라 명했다.
고작 한 사람을 죽이기에 과한 전력.
하지만 상대는 이준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각성자.
이 하나만으로 도왕은 패왕대를 전부 파견시켰다.
최순호는 자존심이 팍 상했다.
하지만 어쩌랴.
가주의 명인 것을.
패왕도가에서 항명은 있을 수 없는 일.
최순호는 결국 패왕대 전원을 끌고 와야만 했다.
물론 최순호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이준 따위의 애송이는 자신과 패왕대 몇 명만으로 제압 할 수 있다 여겼다.
수미천왕신공을 익혔다고 하나 그 나이에 성취를 얼마나 이뤘을까.
잘해봐야 3, 4성이 다라고 생각한 최순호였다.
“우건이 네가 앞장서.”
“예. 사모님.”
신력권가에서부터 같이 온 성우건과 귀살대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맨 마지막으로 패왕대까지 들어가자 게이트 앞은 고요했다.
잠시 후.
귀살대와 패왕대가 사라진 자리에 한민성 이사장의 비서인 남지우가 나타났다.
그녀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사장님. 신력의 안주인과 패왕의 정예인 패왕대가 움직였습니다.”
[완전 대어가 걸렸군요.]
“어찌할까요?”
[작업을 시작하세요.]
“알겠습니다.”
남 비서가 한민성과의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곧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무사고의 한민성 이사장님의 비서인 남지우라 합니다. 김서아 기자님 되십니까?”
[한민성 이사장님의 비서께서 제게 무슨 일이시죠?]
“이준 학생에 관한 특종 하나를 제보할까 합니다.”
[뭘까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밝아졌다.
게이트 정보 매거진의 김서아 기자.
이준과 관련된 특종에 아주 목말라하는 여자였다.
그녀가 쓴 기사는 전부 이준에 관한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준의 뒤를 캐고 다닌 걸 이미 신기지가에선 파악했다.
“지금 서울 숲 게이트로 오시면 가르쳐드리죠.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저, 저기요…]
뚝.
남 비서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녀는 아직 할 일이 있는지 안스타에 접속했다.
그리고 요즘 이준과 더불어 핫한 연예인에게 DM를 날렸다.
▷ 무사고 한민성 이사장의 비서 남지우라 합니다. 이준의 팬인 유니 님께 이준의 영상을 딸 기회를 드리려고 합니다. 사칭으로 생각하실까봐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정보를 남깁니다. 궁금한 게 있으시면 010-xxxx-xxx로 연락바랍니다.
* * *
대기실 안.
유니는 자신을 무사고 이사장의 비서라 칭하는 누군가에게 한 통의 DM을 받았다.
평소라면 적당히 무시했을 터.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DM을 본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 유니야?”
그녀와 같은 그룹 멤버 중 하나가 물었다. 하지만 유니는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이 고정된 곳은 ‘이준’이라는 이름 두 글자.
처음 영상을 본 순간, 사랑에 빠지고 만 남자였다.
그런데 그가 게이트를 공략하는 모습을 직관할 기회를 준다니.
이건 운명이었다.
그녀 또한 C급 각성자. 만약 사기를 치려 드는 거라 해도 무서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핸드폰으로 남지우에게 답장을 보냈다.
갈게요. 어디로 가면 되죠? ◀
▷ 서울 숲 게이트로 오시면 됩니다. 게이트 정보 매거진의 김서아 기자도 오시기로 했습니다.
“뭐? 김서아 기자도 온다고?”
요즘 이준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여기자. 은근히 거슬렸다.
김서아 기자님도요? ◀
▷ 네. 왜 그러시죠?
아, 아니에요. 전 지금 바로 갈 수 있는데 출발하면 되나요? ◀
▷ 네. 멤버들과 같이 오셔도 됩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바로 출발할게요. ◀
유니는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한시라도 빨리 도착해야 했다.
* * *
“정말 나한테 안 가르쳐 줄 거야?”
“말해도 몰라.”
“그래도 이름만이라도 가르쳐줘봐.”
저렇게 말하는 거 보면 여길 나가면 바로 무극자 사부에 대해 알아보려 할 터.
백날 찾아봐도 먼지 하나 알아낼 수 없을 거다.
그래서인지 이준이 순순히 대답해줬다.
“나도 이명 밖에 몰라.”
“알았어. 그거라도 말해봐.”
“무극자. 사부가 자신을 무극자라고 말했어.”
무극자 사부에겐 이명이 두 개 더 있었다.
무신과 파천혈신.
두 개다 굉장히 광오했다.
누가 신이란 이명을 붙일까.
각성자들조차 존, 군, 왕, 제 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두 이명은 제외시켰다.
그나마 나은 게 무극자란 이명이다.
뜻을 풀이하면 무의 극에 달한 자.
이 또한 광오하긴 마찬가지다.
“무극자… 무극자… 미친 개쩔어. 검제인 할아버지의 이명보다 더 멋있잖아?”
박혁진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이준은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검제가 자신의 손자가 저러고 있다는 걸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이제는 그러려니 할 때.
▷ 신력의 안주인과 패왕의 정예인 패왕대가 움직임. 인원은 대략 250명으로 추정함.
한민성 이사장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절 그리도 죽이고 싶어 하다니. 당신이 직접 움직이시는 겁니까?’
이준이 메시지를 보고 싸늘하게 웃었다.
직접 부대를 이끌고 오는 사람.
자신을 그토록 죽이고 싶어 하던 최미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