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이준이 무공서를 집어 들었다.
[혈고독술(A)을 획득하셨습니다.]
[혈고독술]
등급: A
설명: 고독이란 벌레를 상대에게 심어 조종하는 심법이다. 고독에 중독된 상대가 반항을 하면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 심하면 혈관이 터져 즉사할 수도 있다.
남이 말을 안 들을 때 딱 쓰기 좋은 무공.
신기지가에 꼭 필요한 무공서였다.
“이건 나 가진다?”
“흐흐. 그래. 나머진 나랑 허수가 나눠 가질게.”
박혁진이 이준을 쳐다도 보지 않고 말했다.
블루존 게이트를 단 세 명이서 클리어하고 있다.
아직 1스테이지밖에 안 지났지만, 벌써 얻은 아티팩트만 네다섯 개는 됐다.
만약 2스테이지나 3스테이지까지 깬다면?
“준이는 이런 등급 낮은 건 필요 없을 테니까, 허수랑 반반 나눠가지면… 헉! 적어도 한 사람당 10개 정도는 가질 수 있잖아? 대박!”
박혁진이 혼자 웃으며 실실 쪼갰다.
“뭐라는 거야. 나는 왜 빼며?”
이준의 말에 박혁진이 실눈을 뜨며 봤다.
“넌 무공서 얻었잖아. 그거 아주 비싼 거 아니야?”
박혁진이 이준의 눈치를 봤다.
그의 말대로 보통 무공서가 일반적인 아티팩트보다 더 비싼 건 맞았다. 하지만 이건 보통 무공서가 아니라 신기지가조차 탐내는 혈고독술이었다.
이준이 선심을 쓰는 척 하며 말했다.
“그래. 그냥 너희 둘이 아티팩트 다 가져라.”
“그러는 게 좋겠지?”
박혁진은 좋다고 획득한 물건을 분배했다.
오늘을 대비해 철저히 준비해온 박혁진.
그 비싸다는 아공간 주머니까지 챙겨왔다.
“저 또라이.”
이준이 고래를 저었다.
“준아. 어서 다음 단계로 가자.”
이젠 박혁진이 이준을 재촉했다.
1스테이지에 얻은 아티팩트가 상당히 마음에 든 모양이다.
사실 1스테이지에서 나온 다른 아티팩트를 모두 모아도 혈고독술이 가진 가치의 반의반도 안 됐다.
무려 신기지가의 방대한 정보력을 손에 쥘 수 있는 무공이니까.
그것까지 알 리가 없는 박혁진한테는 게이트 보상의 부스러기 정도만 떨어지는 건데, 본인은 모르는 듯 했다.
하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 했다.
좋은 녀석이긴 한데 다 퍼준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두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늘 이준은 게이트의 알짜배기 보상만 쏙쏙 챙겨먹을 생각이었다.
“그래. 가자 가.”
세 사람은 곧장 2 스테이지로 왔다.
보스 몬스터와 떨어진 지점에 섰다.
족히 5m는 되어 보인 골렘이 보였다.
“참, 단단하게 생겼다. 그치?”
“단단하게 생긴 게 아니라 졸라 단단해.”
박혁진의 말에 이준이 받아쳤다.
“넌 꼭 와 본 것처럼 이야기 한다? 아니면 혼자 와 봤으려나? 여기 공략 방법도 알고 있잖아.”
또또 예리한 척 질문을 던진 박혁진이다.
“전에 말했지? 사부님이 다 가르쳐준 거야.”
전생에 한 번 죽어서 회귀했다고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도 무극자 사부님을 핑계로 댔다.
“대체 네 사부님은 어떤 분이시냐? 우리 할아버지도 모르는 걸 다 아셔?”
박혁진이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이준에게 물었다.
옆에 있던 허수가 이준 대신 말했다.
“아마도 저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높은 분이시지 않을까 합니다.”
“천마나, 활불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야?”
박혁진이 농담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현 시대의 천마 류웨이.
천마신공의 무공을 이은 각성자였다.
부동의 전 세계 랭킹 1위이자, 중국 신장 일대를 지배하는 절대자였다.
뿐만 아니라 활불 왕역봉은 중국 소림사의 승려다.
천마의 뒤를 이어 전 세계 랭킹 2위.
이 두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은 세계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이들을 예로 든 박혁진이었지만.
“크큭.”
“야. 왜 웃냐?”
이준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무극자 사부는 옛날 꽃날에 천마에게 사이비 교주라 했으며 달마에겐 땡중이라고 부른 분이셨다.
그런데 현대에 천마와 활불이라 불리는 각성자와 비교를 하고 있으니, 웃음이 났다.
[가아아아알! 제자는 뭐하고 있는 것이냐! 이 사부를 옛 시대의 미친 사이비와 땡중의 반에 반도 못 따라가는 놈들에게 비비고 있지 않느냐! 어서 바로 잡지 못하겠느냐!]
역시나.
무극자 사부의 일갈이 터져 나왔다.
예상은 하고 있었고, 대비를 했는데도 골이 빠개질 듯 했다.
‘제가 말한 게 아니잖습니까.’
[사부에 관한 틀린 말을 고치는 것도 제자로서 해야 할 도리니라! 어서 고금제일 사부의 위명을 확실히 심어주거라. 아니다. 저 박혁진이란 놈은 절대 S급무기를 찾아주지 말거라.]
무극자 사부가 단단히 화나신 것 같았다.
박혁진의 저 주둥이가 문제다.
이준은 사부의 일갈이 터져 나오기 전에 입을 열었다.
“너 S급무기 물 건너갔다. 사부가 너는 절대 무기 주지 말래.”
“에엑? 네 사부님이 어디 계시는데? 설마 심어 같은 거라도 쓰시는 거야?”
박혁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심어는 최소 검왕 정도는 되어야 쓸 수 있는 고도의 무학이었다.
이준이 웃었다.
겨우 심어?
무극자 사부님은 그것보다 더 고차원에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오한 경지에 있으시다고 해야 할까.
누가 천년 넘게 자기 무공의 맥이 끊어질까봐 영혼을 담아 놓을까.
심지어 옆에서 계속 말까지 했다.
무극자 사부에게는 심어는 일상이었다.
“설마 네 사부님이 천마나 활불?”
[그따위 오랑캐와 자꾸 비교해서 날 능멸하고 있구나. 저 박혁진이란 놈과 절교를 선언하거라.]
무극자 사부가 대노했다.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올 지경.
이쯤 되니 이준은 박혁진이 안쓰러웠다.
“내가 사부님의 말씀을 바로 전해 줄게. 잘 들어.”
“어? 어. 그래. 어떤 심오한 말을 하시는데?”
“그따위 오랑캐와 비교해서 자신을 능멸하고 있대. 그래서 너랑 절교를 하라지 뭐야.”
“지, 진짜야? 막 나 놀리려고 하지 마. 나 심장 약하단 말이야.”
“정말이야.”
“악!”
박혁진이 비명을 지르며 냅다 무릎을 꿇었다.
녀석은 무극자 사부가 어디에 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건 단 하나였다.
이준에게서 S급무기를 받지 못하는 것.
그게 두려웠다.
“제, 제가 실수했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허공에 대고 잘못을 구하는 박혁진이었다.
그런 그의 심정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대놓고 저격을 하는 건지.
허수가 옆에서 무극자가 들으면 아주 좋아할만한 말을 해버렸다.
“제가 생각했을 때 이준 형님의 사부님은 위대한 고려의 혼을 가진 분의 후예시지 않을까 합니다.”
“네 특성인 도문의 후예처럼 말이지.”
“예.”
허수의 말에 무극자 사부가 호탕한 웃음을 보였다.
[크하하하. 내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느니라. 허수란 아이, 아주 사람 보는 눈이 있어. 우리 제자가 수하하난 기똥차게 뒀구나. S급무기? 사부가 SS급무기를 찾아서 주겠다고 하여라.]
‘와, 기분파.’
이걸 어부지리라고 해야 할까.
박혁진은 S급무기를 잃게 생겼는데, 허수는 SS급 무기가 하나 더 생길 판이었다.
이 말을 들었다면 박혁진이 울고불고 매달릴 터.
정말 안타까웠다.
저놈의 주둥이만 가만히 있었어도 기본은 갔을 텐데 말이다.
이준이 박혁진을 불쌍하게 쳐다봤다.
* * *
“박혁진. 2스테이지 안 깰 거냐?”
“갑자기 의욕이 사라졌어. 준이랑 허수 두 사람이 알아서 해.”
박혁진이 자리에 주저앉아 손가락으로 땅을 헤집고 있었다.
저 돌아이.
패왕도가랑 신력권가만 아니면 데려오지 않은 건데.
차라리 정연 누나를 데려올 걸 그랬다.
“2스테이지 보상 네가 다 가져. 허수도 동의하지?”
“예.”
박혁진이 고개를 슬쩍 들었다.
고민하는 눈빛.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다시 푹 숙이며 말했다.
“아니야. 그런 잡다한 거 쓸모없어.”
“진짜 이럴 거냐? 진짜 절교다.”
“하는 수 없지. 준이 네가 나보다 더 강하니까 이제 나는 너한테 필요 없을 거야. 그렇지?”
박혁진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였다.
또렷한 눈망울에서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저 짓거리에 한두 번 속은 이준이 아니었지만.
‘사부님. 저 연기에 눈 딱 감고 속아 넘어가 줄까요?’
[사부는 아직 용서가 안 되느니라.]
‘제가 아주 잘 설명해볼게요. 그러면 사부님의 광신도가 한 명 늘 수도 있어요.’
[홀홀. 사부를 칭송하던 이는 지척에 널렸지만, 이젠 다 죽었으니 이 시대에 새로 새기는 것도 나쁘지 않단 생각이 드는구나.]
이준이 무극자 사부의 마음을 돌렸다.
사부는 의외로 칭찬에 약했다. 아니지, 그냥 약하다는 말이 옳았다.
허수의 말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마음에 드는 소리를 했더니, SS급무기를 찾아주겠단다.
누가 들으면 미친 소리 지껄인다고 할 터.
무극자 사부님이니깐 모든 게 이해됐다. 사부는 최첨단 네비게이션보다 뛰어난 레이더를 가지고 계셨으니까.
“혁진아.”
“…왜?”
“더 찡찡대면 다신 무기 구해주지 말래. 무슨 말인지 알지?”
박혁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먼저 2스테이지 보스 몬스터에게 가는 게 아닌가.
칭찬 한 마디에 홀라당 넘어가는 사부도 사부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부의 말 한 마디에 저렇게 곧바로 움직일 줄이야.
“준아. 어서 깨자. 그리고 계획했던 일 해야지.”
“야. 행동이 너무 빠르게 변한 거 아니냐? 조금 전에 울려고까지 한 놈이.”
“내가 그랬어? 비염이라 그런가봐.”
박혁진이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안 깨?”
“간다. 가.”
이준이 포기했다는 듯, 허수와 함께 2스테이지에 들었다.
* * *
2스테이지의 골렘은 1스테이지 대지 골렘과 똑같이 생겼다.
다만, 두 손에 방패모양의 사각형 돌을 있었다.
저 방패가 2스테이지의 변수.
공략법을 모르고 온 이들은 여기서 전부 전멸을 맛보아야만 했다.
전생에 수많은 각성자들이 이 2스테이지를 깨려고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물론 미공략 게이트로 남진 않았으나 그래도 꽤 어려운 난이도에 속했다.
“얘는 어떤 방법으로 깨?”
“방패를 세울 때까지 공격하면 돼.”
“내공을 사용해도 됩니까?”
“어.”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허수가 드디어, 란 표정을 지었다.
1스테이지에선 오로지 초식만으로 골렘을 상대했다.
이제 연환패왕도의 본래 힘을 선보일 때.
허수가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가자.”
이준의 말에 그 누구보다 빠르게 허수가 골렘에게 돌진했다.
“타핫.”
우렁찬 소리와 함께 땅을 힘껏 박차며 하늘로 솟은 허수.
참마도에 건곤미허신공을 담았다.
하얀빛이 도신을 감싼 순간!
번쩍이며 하나의 섬광이 허공을 갈랐다.
쿠웅.
빛이 골렘에게 적중했다.
굉장히 강한 도격에 잠시 휘청한 골렘. 1스테이지 골렘이었다면 연결된 바위들이 부서졌을 거다.
방어력으로는 끝판왕인 2스테이지 골렘이라 그런지 중심을 되찾은 골렘이었다.
녀석이 거대한 팔을 움직여 허공에서 내려오는 허수를 쳐버렸다.
퍼억-!
“윽.”
제대로 쳐맞은 허수가 바닥에 내팽겨 쳐졌다.
그 모습을 그냥 지켜보고 있는 이준.
“안 도와줘?”
“뭐 하러. 이것도 다 수련이야.”
“인정머리 없는 놈. 내가 저래도 안 도와줄 거냐.”
“당연. 그냥 너 놔두고 도망치려고.”
“치사한 놈.”
박혁진도 천뢰제왕신공을 뇌격검에 담아 골렘을 공격했다.
뇌기가 담긴 검기를 쏘아내는 박혁진.
이준도 공격에 참여했다.
바닥을 뒹군 허수가 곧장 일어났다.
재차 연환패왕도의 도격을 펼쳤다.
세 사람의 폭격에도 2스테이지 보스 몬스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틈이 보이면 반격하기까지.
위협은 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박혁진은 내공을 담아 공격하면서도 입을 쉬지 않았다.
“준아.”
“집중해.”
“언제까지 이래야 해?”
“네가 집중하면 곧… 지금이다. 녀석이 방패를 세우기 전에 뒤로 돌아가.”
이준의 말에 박혁진과 허수가 공격을 멈췄다.
그리고 신법을 사용해 골렘의 뒤로 갔다.
“후우. 이젠 어떻게 해.”
“곧 광역기가 나올 거야. 그걸 쓰면 다시 공격하면 돼.”
골렘이 자신의 몸통만한 돌 방패 두 개를 합쳤다.
쿵.
그 상태로 땅을 내려치자.
퍼벅퍽퍽!
돌방패의 앞, 일직선 거리에 돌 가시들이 솟아났다.
사람들이 있었다면 몸이 꿰뚫려 즉사할 광역기다.
“지금이야. 다시 공격해.”
신호와 함께 세 사람이 골렘을 공격했다.
무지막지한 방어력을 자랑했던 골렘.
미동도 없던 체력 바가 속절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