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파멸겁이 무극기(파천멸기)에 반응했습니다.]
[파멸겁이 당신을 주인으로 인식합니다.]
이준의 손에 잡힌 창에서 뿜어지는 기운.
파멸겁이 파천기의 기운을 거침없이 토해 내는 중이다.
“피… 해야…!”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을 느낀 혈불이 현무에게 말했다.
하나 때는 늦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이준의 손에 잡힌 파멸겁이 아무도 없는 허공에 그어졌다.
푸확!
“으아아악!”
그의 뒤에 있던 현무가 잘린 왼쪽 팔을 잡고 쓰러졌다.
“사, 사형! 제 파, 팔이!”
혈불이 곧장 움직였다.
현무에게로 가서 피가 나오지 않게 점혈을 했다.
“아무리도 여길 빠져나가야… 헉!”
쉬이익-
목덜미에서 싸늘한 예기가 느껴졌다.
순식간에 접근하는 기운에 사제를 놓치며 옆으로 뒹구는 혈불이었다.
푸확!
“억.”
그 싸늘한 예기는 현무의 몸통을 가르고 지나갔다.
광극.
무극창법 후반부 초식 중 1식.
이준이 사용하려다가 당한 초식이다.
극쾌가 바탕이 된 무공
내기가 공간마저 격하고 상대를 죽일 정도로 빨랐다.
“현무 사제…!”
혈불은 몸이 두 조각 난 채, 장기가 밖으로 튀어나온 현무를 눈으로 봐야만 했다.
“이노오오옴!”
혈불의 눈이 핏빛으로 번들거렸다.
현무는 친동생과도 같은 존재.
사문에서 쫓겨났을 때도, 함께한 현무였다.
그런 녀석을 각성자라는 놈이 죽여 버렸다.
“네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
혈불의 손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머릿속에서 이준에게서 파천기의 기운이 나타났다는 사실 따위는 싹 사라졌다.
마겁이 이준에게 반응한 것도 마찬가지.
이는 혈불의 주인에게 아주 중요했다.
하지만 사제가 죽었다는 분노에 그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그에게 남은 건 오직 복수뿐이었다.
혈불이 극한의 내공을 끌어 혈나한장을 펼치려는 순간!
푹-
아무리 지근거리에 있었다지만, 이준은 눈 깜짝할 새 나타나 파멸겁을 혈불의 심장에 박아 넣었다.
“커헉.”
혈불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럼에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이준도 같이 지옥으로 데려가기 위해 동귀어진의 수법을 사용했다.
손에 가득 담긴 혈나한장을 이준의 얼굴에 박아 넣었다.
쾅!
폭음이 났다.
혈불과 이준 사이에 먼지가 피었다.
잠시 후, 먼지가 가라앉고 보이는 광경.
이준이 번들거리는 회안을 한 채,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다.
부르르.
그와 눈이 마주친 혈불의 몸이 떨렸다.
극한의 공포.
마치 무림의 정점에 서 있는 주인을 보는 것 같았다.
‘주…군….’
잠시 주인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이준이 다른 한쪽 손을 움직여 혈불의 얼굴을 잡았다.
콰직!
손에 힘을 주어 혈불의 얼굴을 단번에 터트려 버렸다.
뇌수와 피가 섞여 손을 타고 흘렀다.
이준이 더럽다는 듯, 손을 털었다.
할 일이 남았는지, 무의식적으로 두 시체를 향해 흡혈마공을 펼쳤다.
후우웅-
시체에서 나온 기운이 이준의 손을 타고 몸으로 흘러갔다.
혈불과 현무의 시체에서 살점이 뜯어졌다.
그들은 점점 해골로 변해갔다.
[파천기의 파편을 흡수했습니다.]
[내공이 +5 올랐습니다.]
[파천기의 파편을 흡수했습니다.]
[내공이 +10 올랐습니다.]
파천기의 파편을 모두 흡수하자, 해골로 변한 두 사람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서브 퀘스트 - 파천기 파편 회수2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3,500,00p가 지급됩니다.]
[보상으로 파천기 테크트리 획득에 필요한 포인트 감소 -40,000,000p가 지급됩니다.]
이준은 퀘스트 완료 메시지를 볼 수 없었다.
할 일을 다 끝내자.
쩌어엉.
이준의 손에서 파멸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파멸겁이 손에서 떨어지니, 이준 또한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런 이준에게 무극자가 말했다.
[용케 파멸겁의 기운을 버텼구나. 눈 좀 붙이거라. 제자야.]
* * *
“꺄하아앙!”
“나 좀 봐. 날고 있어.”
“오빠만 하디 말고 나도 날고 시퍼.”
여자아이가 허공에서 팔을 허우적거렸다.
허수의 어린 동생들이다.
남자아이는 로티틸에 의해 저공비행을 했다.
“너희들! 로티틸 님 괴롭히지 말라고 했지.”
허수가 동생들을 말렸다.
하지만 말을 들을 동생들이 아니다.
떼쓰기 스킬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나도 날고 시퍼. 왜 오빠만 나라. 나도 날게 해 주라.”
“안 돼!”
“으아아앙! 허수 오빠 미워. 나만 시러해.”
심지어 울기까지 했다.
날개를 펄럭이는 로티틸이 남동생을 내려줬다.
- 다음 차례는 귀여운 공주님.
허수의 여동생을 붙잡고 날기 시작했다.
울던 아이가 뚝 그쳤다.
해맑게 웃으며 꺄르르 웃었다.
“하, 이 일을 어째.”
허수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현재 자신의 집이었던 폐차장은 대대적인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테구르의 진두지휘 아래 얼음벽 아래에 새로운 집이 만들어졌다.
“빨리빨리 움직이란 말이야. 그렇게 굼떠서야 주인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겠어?”
“찍찍!”
“그래. 힘내. 우리의 능력을 주인님께 보여 주자고.”
“찍찍!”
스케먼들이 테구르에게 경례를 하며 집 짓는 속도를 더 끌어 올렸다.
스케먼 한 마리, 한 마리가 다 기술자들.
수십 마리가 망치를 두드리자, 집이 뚝딱 만들어지고 있었다.
진두지휘를 하고 있는 테구르 옆에 샥쿠가 설계도 도면을 보며 말했다.
“테구르.”
“옙! 부르셨습니까. 샥쿠 님.”
“방이 3개밖에 없는 것 같은데, 한 사람에 한 개씩은 방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연합습죠. 헤헤.”
테구르가 손을 비비며 웃었다.
“그런데 왜 3개밖에 없어?”
“그게 말입니다. 샥쿠 님. 아직 아이들이 어리지 않습니까. 너무 어리면 무서워서 혼자 자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방이 3개밖에 없다는 소리야? 쟤들이 크면 혼자 방을 쓰고 싶을 텐데?”
이미 해결책을 만들어 놓은 테구르가 설계도면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여길 보십시오. 3개 방 전부 x자 표시를 해 두지 않았습니까?”
“어.”
“이게 바로 마법의 열쇠입니다요. 헤헤.”
“마법의 열쇠?”
“현대에는 최첨단 시설이 아주 많습니다. 신기지가에서 파는 물건들은 신기한 걸로 가득합니다. 이곳에서 특허를 낸 물건이 있는데, 제가 표시한 곳에 버튼을 만들 겁니다.”
테구르의 긴 설명이 이어졌다.
샥쿠는 이해가 안 갔지만 최대한 알아들으려고 노력했다.
“이 버튼을 누르면 3개의 방이 5개로도 되고 8개로도 됩니다. 최대 10개로도 변형될 수 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요. 헤헤. 이해하셨는지요?”
테구르의 말을 전부 이해한 건 아니지만, 샥쿠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식으로든 3개의 방이 8개가 된다는 소리 아닌가.
그의 능력에 감탄한 샥쿠였다.
“이런 생각은 어떻게 했지?”
“헤헤. 공부하고 배웠습죠.”
“어디서?”
“주인님께서 필요한 걸 말하라고 하실 때마다 현대의 건축 지식을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요.”
현대 지식을 배우는 거에 거리낌이 없는 테구르를 높이 본 샥쿠였다.
테구르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 샥쿠가 그를 칭찬했다.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해.”
“아이고, 아닙니다요. 저야 이런 잡일밖에 못 하는데, 오히려 상위 몬스터이신 샥쿠 님이 더 대단합습죠.”
테구르가 손을 비비며 굽실거렸다.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상위 몬스터에게 인정을 받은 것.
스케먼이라는 하위 몬스터에겐 아주 대단한 일이다
“주인님이 널 게이트에 놔둔 이유를 알겠어. 아주 유능한 몬스터야.”
“과찬이십니다요.”
“앞으로 날 형님으로 불러라.”
“헉. 제가 어떻게.”
“너라면 괜찮다.”
테구르가 연신 거절했지만, 샥쿠의 뜻은 완고했다.
졸지에 샥쿠를 형님으로 부르게 된 테구르.
하위 몬스터인 그에겐 아주 좋은 일이다.
부하들에게도 자랑할 수 있었으니, 종족을 이끄는 데 힘이 됐다.
샥쿠와 테구르가 이야기하는 사이.
허수의 집은 점점 모형을 갖춰 갔다.
담장은 샥쿠의 마력이 담긴 얼음벽이 있었다.
먄약 주변에 몬스터가 출몰한다면 샥쿠의 마력을 보고 기겁할 터.
이곳은 얼씬도 하지 않을 거다.
안은 어떤가.
스케먼이라는 장인 수십 마리가 손수 집을 짓고 있다.
완성이 된다면 걸작 하나가 탄생 될 거다.
이걸 만들고 있는 몬스터들은 알까.
나중에 이곳이 대한민국에 세워진 그 어떤 집보다 더 값비싸진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 * *
신기지가에서 파견 요청을 받은 무사고의 학생들은 운동장에 모여 있었다.
B급 이상으로만 구성된 학생들.
검룡 박혁진을 비롯한 검화, 빙화, 독화, 철룡.
여기다가 천무대전에서 예상을 깨고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던 박은비와 서혜지, 남선호까지.
파견대가 편성됐다.
“자, 여러분 주목해 주세요.”
인솔자로 차출된 차경진이 학생들을 집중시켰다.
“저희의 임무는 레드급 몬스터를 처리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어떤 임무죠?”
박정연이 물었다.
“다른 지역으로 몬스터가 나가지 못하게끔 시간을 끄는 거예요. 나머지는 토벌 준비를 마친 현역 각성자들에게 맡길 겁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겁을 도난당한 지금.
모두가 마겁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15가문 연맹은 물론, 무맹과 사마련까지.
전 각성자들이 물건을 찾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전력에 공백이 생겼다.
레드급 몬스터가 나타났지만, 가문들의 최우선은 마겁에 있었다.
“준비가 다 됐으면 출발하겠습니다.”
차경진이 앞장서서 신법을 펼쳤다.
뒤이어 신법을 펼치며 따라가는 학생들.
그들의 목적지는 도봉구의 한 폐차장이었다.
신법을 펼쳐 달려와 도착한 곳은 한 건물 옥상.
차경진과 학생들이 그곳에 몸을 숨겼다.
“빙속성을 가진 몬스터인가 보네요.”
박혁진이 얼음벽을 보며 말했다.
띠띠띠띠-
학생들이 들고 있는 몬스터 감지기에 수많은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많기도 해라.”
“동생아. 입 좀 그만 나불거려.”
“아, 긴장돼서 그래.”
“천중호수 때는 긴장 안 됐어?”
“그때는 준이가 있었잖아.”
“하긴, 준이가 있었구나.”
박정연이 곧바로 수긍했다.
현재는 이준이 없었다.
이곳에서 A급을 넘어선 사람은 자신과 동생, 한지유뿐.
나머진 B급 각성자에 불과했다.
레드급 몬스터를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전력.
몬스터 탐지기에 잡힌 숫자는 100 마리는 넘어 보였다.
죽지 않으면 다행이다.
차경진은 학생들을 안심시켰다.
“오기 전에도 말했다시피 저희는 감시가 우선입니다. 저기 입구 보이십니까?”
“네. 보여요.”
“저기가 입구로 보인다는 신기지가의 정보입니다.”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저기로 몬스터가 나오는지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신기지가에서 저 안에서 몬스터들이 꼼짝도 안 한다는 정보를 받았습니다.”
“만약 나오면?”
“토벌대가 올 때까지 저희가 시간을 끄는 거죠.”
“알겠습니다.”
모두가 대답했다.
그들은 얼음벽을 유심히 관찰하며 지켜봤다.
몬스터가 나오는지 잠시도 한눈팔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만 갔다.
노을이 지고 밤이 찾아올 무렵.
드디어 얼음벽 안쪽에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파견대가 각자 무기를 들고 움직이려는 그때.
얼음벽 입구에서 박혁진도 아주 잘 아는 사람이 나오는 게 아닌가.
박혁진이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말했다.
“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