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이건 무슨 상황이지?’
이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권왕인 아버지도 가만히 있는 상황에 도왕 최강규가 나섰다.
그가 이신의 외삼촌이긴 하나, 이렇게 나설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패왕도가에게 이신은 훗날의 경쟁 상대였다. 특히 이신의 뒤에 있는 신력권가는 더욱.
만약 여기서 자신이 이신의 단전을 파괴한다면, 도왕의 아들인 최태민의 호적수가 사라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자신까지 옭아매려 할 터.
굳이 비무대까지 왕림해서 흥분할 리 없었다.
‘이신한테 뭔가 있어.’
이신의 몸에서 나타난 파천기의 파편도 이상했지만 패왕도가는 현재 악마들과 손을 잡은 상태로 추측됐다.
이신에게 파천기의 파편에 대해 들으려는 순간,
도왕이 나타난 것도 타이밍이 아주 기가 막혔다.
‘설마 파천기의 파편이 이세계의 악마들과 연관이 있는 건가?’
이신이 발산한 기운은 심진화의 기와는 달랐다.
약하지만, 무언가 더 진하고 역겨운 피 냄새가 진득하게 났다.
그래서 이세계의 악마들과 이신을 엮지 않은 건데.
그건 또 아닌가 보다.
[어서 알아보거라.]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언뜻 비치는 감정들.
씁쓸, 미안, 슬픔, 종래엔 분노가 보이기까지 했다.
‘네.’
이준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도왕의 눈을 뚫어지게 보면서 말했다.
“아직 비무 중입니다만?”
“시합은 끝났다.”
“전 안 끝났습니다.”
이준의 건방진 태도에 도왕 최강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수많은 관객과 기자, 카메라들이 두 사람을 찍고 있는 바람에 최강규가 화를 꾹 눌러 참았다.
“네 행동은 과한 처사다. 대결을 시작하면서 심판에게 했던 선언은 잊은 것이냐.”
“전 규칙을 전혀 어긴 게 없습니다.”
“대결 상대의 단전을 깨는 게 왜 규칙을 어긴 게 아니야?”
이준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천무대전의 규칙은 상대를 죽이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이신을 죽이기라도 했습니까? 단전이 깨진다고 죽지는 않습니다. 그 어디에서 단전을 깨지 말라는 법은 없는 걸로 압니다만?”
이준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짙어졌다.
“네 말이 맞다 해도 과한 처사다.”
“아무리 도왕이라도 제 비무에 끼어들 권한은 없습니다.”
“이 건방진!”
좋게 좋게 말하던 도왕이 화를 참지 못하고 드디어 터져 버렸다.
그의 몸에서 패력이 줄기차게 뻗어 나왔다. 대번에 주변 공기를 장악할 기세였다.
귀빈석에 있는 이들은 각자 내공을 끌어 올려 도왕의 기운을 흘려보냈다.
“읏!”
“세, 세상에…”
“저, 저게 말로만 듣던 오왕 중 하, 한 명의 기운!”
귀빈석과는 달리, 관람석에 있는 이들은 도왕의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비무대 주변에는 첨단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각성자의 내공을 흘려주는 장비.
신기지가에서 그들의 진법을 시설에 녹여 만들었다.
덕분에 관람석에 있는 일반인도 무사할 수 있었던 거다.
아니었다면 도왕의 패력 하나만으로도 치명적일 수도 있었다.
‘만만치 않네. 아직 오왕은 무린가?’
이준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바로 코앞. 그것도 자신에게 집중된 기운을 고스란히 받았다.
아무리 AA급을 달았다 해도, 그 안에서도 차이가 있기 마련.
도왕에게는 아직 무리인 듯싶었다.
‘그러면 그동안 모아뒀던 걸 써야겠어.’
이준은 수미천왕신공을 최대한 끌어올려 도왕의 패력을 버렸다.
그러면서 상태창을 불러왔다.
[기본 정보]
칭호: 은거자의 막내 제자 (외2)
이름: 이준
나이:18
잠재력: 등급 외(현재:AA)
고유 스킬: 혼원신공(SSS), 군림보(B), 무극창법(SS)
일반 스킬: 흡혈마공(A), 천왕보(B), 수미천왕신공(S), 십보신권(C), 비룡신법(C), 만독수(C), 칠절참흔(C), 연환창법(C)
특성: +세상에 회의를 느낀 무극의 길 루트(??), 4대 성지 금역의 주인(S), 투신체(SS)(외7)
테크트리 포인트 27,680,000
[능력치]
체력: 286/500
신체: 318/500
힘: 345/500
민첩: 350/500
-특수항목-
내공: 560/1000
정신력: 358/500
명성: 8800(유명)
우호도: 사대 성지(적대), 스케먼(복종), 페어리(신뢰), 샤크로아(두려움)
-상태-
전투력 +150%, 모든 속성 친화력 +70%, 마기 저항력 +35%, 모든 속성 저항력 +100%, 내공 회복력 +15%
현재 자신의 능력은 정확히 AA급 초입에 있었다.
풍사도를 쉽게 이기고, 이세계의 악마인 심진화를 처리한 건 모두 다 상위 무공 덕분.
혼원신공은 여타 신공들과의 비교를 거부했다.
군림보는 어떤가.
아직도 B급에 있지만, 기존 B급 무공은 가뿐히 뛰어넘는 등급을 지녔다.
하나하나가 대단한 무공.
자신과 똑같은 경지에 있는 이들을 제압한 건 모두 이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혼원신공을 사용하지 못한다.
혼원신공은 패도 그 자체.
게이트의 마기를 정화한 기운을 근간으로 했기 때문에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 있었다.
천무대전에 귀빈으로 참가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한민국에서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인물들.
각 가문의 가주들이라 자신의 무공을 본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을 싫어하는 패왕도가에서 생트집을 잡지 않을까.
애초에 그들에게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능력치를 찍으려 하는 거다.
‘도왕을 상대하려면 AA급 완숙에는 접어들어야 해.’
도왕은 이때 AA급 완숙에 속했다.
그를 상대하려면 같은 등급에 서 있어야 할 터.
재빨리 상태창을 열었다.
-세상에 회의를 느낀 무극의 길 루트(??)
은거자(5) - 천무지체(0/10,000,000)
무공(2) - 무극장법(0/15,000,000)
능력치(45) - 신체+15(1,000,000)
테크트리 포인트 27,680,000
가진 테크트리 포인트는 무려 27,680,000p.
능력치를 하나 찍는데 필요한 건 1,000,000p다.
만약 필요 포인트가 고정이라면 27개를 찍을 수 있었다.
저걸 다 능력치에 투자한다면 도왕에게 안 밀리지 않을까.
‘은거자 특성이랑 새로운 무공을 못 배워서 아깝긴 한데. 어쩔 수 없지.’
이준이 테크트리 포인트를 찍었다.
체력과 신체 힘을 7개씩.
남은 포인트로 민첩을 6개 샀다.
겉으로는 달라진 게 없으나, 이준은 자신의 몸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깃털처럼 가벼워진 몸.
단단해진 혈관과 신체.
이 밖에도 달라진 것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일일이 설명할 순 없었다.
달라진 이준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도왕에게 수미천왕신공의 기세를 드러냈다.
* * *
쿠우우웅!
이준의 기세가 갑자기 눈 덩어리처럼 불어나며 도왕의 기운과 맞부딪쳤다.
그러자 도왕이 눈을 부릅떴다.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도왕의 기운을 정면으로 받아치는 상대가 고작 18살짜리 학생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도왕은 벽력신공의 기운을 잔뜩 끌어올렸다.
고등학생에게 쓰기에는 굉장히 과할 정도로.
이준을 아예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기운을 내보냈지만.
‘마, 말도 안 돼!’
이준은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비웃는 게 아닌가.
“사돈어른. 당황하셨어요? 언제든 밟아 버릴 수 있는 놈한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서요.”
“이놈…!”
“사돈어른께서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제 무공은 말이죠.”
화아악!
이준이 몸에서 뿜어진 기운이 주변을 압도했다.
야금야금 도왕의 기운까지 갉아먹으며 세를 넓혔다.
당황하고 있는 도왕을 향해 이준이 말을 이었다.
“사돈어른이 익힌 벽력신공보다 상위에 있는 무공이거든요. 당연히 제게 밀리지 않겠습니까?”
이준은 한 번도 부르지 않았던 사돈어른이란 단어까지 사용했다.
도왕을 일부러 도발했다.
그도 이세계 악마들에게 얻은 힘이 있었다.
지금도 지니고 있을 터.
이신의 기운과 같은 건지 보려고 도왕을 자극한 거다.
그의 자존심은 권왕과 맞먹을 정도로 높았다.
천한 핏줄이라 여겼던 이준에게 사돈어른이라 불렸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할까.
굉장히 언짢아할 테다.
아니나 다를까.
“천것 따위가 감히 나와 맞먹으려 하느냐!”
도왕이 이준에게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이준이 익힌 수미천왕신공이 경계 됐기 때문이다.
그걸 인지한 이준이 이신을 향해 움직였다.
“말 안 했으니까. 약속은 못 지키겠다.”
이준의 말에 이신은 말을 더듬었다.
“마, 말해준다고! 외삼촌 때문에 못 한 거잖아!”
“이제 너한테 안 들어도 될 것 같아.”
이준이 발을 움직여 이신의 배아래 부분을 강하게 짓눌렀다.
“으아아아악!”
이신의 비명이 비무대를 떠나가라 울렸다.
“그만하지 못하겠느냐!”
“외부인은 빠져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절 막아보시던가요.”
도왕의 외침에 이준이 도발을 했다.
“정녕 여기서 죽고 싶은가 보구나.”
그에 발끈한 도왕이 도갑에서 도를 꺼냈다.
도신에 패(패)자가 새겨져 있었다.
패왕도.
이름과 같이 AA급이라는 대단한 등급을 가진 무기였다.
도왕이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준의 발은 더욱 힘이 실려 있었다.
“크어어억!”
이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입가엔 선혈이 흘러내렸다.
이대로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난다면 정말 단전이 깨질 수 있었다.
그때였다.
“이제 되었다. 그만해라. 도왕도 그만하십시오.”
귀빈석에서 잠자코 보고 있었던 권왕 이건무였다.
이준의 아버지가 말리고 나섰다.
아주 자상한 목소리로 말이다.
어떻게 보면 타 가문의 인원이 말리는 것보다 핏줄이 권왕이 막는 게 보기 좋았다.
그래서 권왕이 뒤늦게라도 나선 것.
자신이 아들을 말린다면 대외적으로 보기도 좋았다.
도왕이 말리지 못한 걸 아비인 자신이 막았다.
현재까지 추락한 신력권가의 이미지를 단번에 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하나 그건 이건무만의 착각.
아직도 이준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모르는 처사였다.
아버지인 권왕의 개입에 이준의 입매가 더욱 틀어졌다.
“싫습니다.”
“어허!! 이 아비의 말을 안 들을 작정이냐!”
이건무가 이준에게 호통을 쳤다.
“언제부터 절 아들 취급했습니까?”
“뭐…?”
“둘 다 제발 그 빌어먹을 가면 좀 벗으면 안 되겠습니까? 역겨워서 몸에 두드러기가 날 지경이에요.”
이준은 웃고 있던 얼굴을 집어넣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얼음장같이 차갑게 변한 얼굴만이 남아 있었다.
한지유의 예쁜 차가움이 아닌 삭막함.
감정이라곤 일체 없는 얼굴이었다.
대신 정말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에 하나의 감정이 담겼다.
바로 분노였다.
“이 아비한테 버릇없이…!”
“아버지, 아버지. 그딴 시답잖은 말 좀 하십시오. 언제 당신이 제게 아버지셨습니까. 제가 당신 눈에 들려고 노력할 때도 실패작이라고 버린 사람이 당신이었습니다. 제가 위협을 받을 때는요? 가만히 지켜보지 않으셨습니까.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죽을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습니까.”
“그건….”
“됐습니다. 전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이준이 권왕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이신의 단전을 한 번에 깨트려 버렸다.
“아아아악!”
이신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이내 축 늘어졌다.
고통을 못 이겨서 기절했다.
이준의 과감한 행동에 권왕과 도왕 심지어 귀빈석과 관중까지도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