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천중호수 입구는 전국적으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이준의 참가로 TV를 보고 있던 권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미천왕신공!?”
권왕 이건무는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는 싸움을 보고 있었다.
AA급 각성자인 풍사도와 대등하게 싸우는 이준.
시간이 지날수록 최대웅이 조금씩 밀렸다.
고리로 연결된 듯한 공격.
연격이 이어질수록 이준의 힘은 강해졌다.
“패권의 약점을 완전히 보완했어!”
이건무의 표정은 경악으로 가득했다.
천왕신공으로는 저처럼 되지 않았다.
중간에 내기가 뚝 끊겨서 힘을 잃기 때문.
그는 해법을 수미천왕신공에 있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몇 년을 무공에 매달렸는데, 실패작이라 여기었던 아이가 그토록 원하던 무공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당장 저 아이한테 가 봐야겠어.”
이건무가 수련복 차림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권왕을 본 가솔들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권왕이 움직이자 직속부대인 권신단이 그를 따랐다.
권왕의 신형이 도심을 가로질렀다.
빌딩이 형태만 보이며 사라졌다.
경공을 펼친 지 10분.
천중호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은…?”
“권왕이다.”
“폐관수련에 들어간 권왕이 나타났어!”
오왕 중 한 명인 권왕의 갑작스러운 등장이었다.
그가 현장에 나타나자 또다시 웅성거렸다.
권왕의 시선은 오직 두 사람에게 박혔다.
‘아버지가 나타났어?’
이준은 최대웅과 손을 섞으면서도 시선은 권왕에게로 향했다.
‘폐관수련을 하고 있어야 할 당신이 왜 여기에 온 지는 모르지만, 제가 재밌는 걸 보여드리죠.’
이준은 최대웅을 상대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격전을 치러야지만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기 때문.
사람의 관심을 사기 위해 연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권왕이 있는 지금, 패왕과 신력을 향해 자신의 의지를 전할 것이다.
이준은 수미천왕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혈맥을 타고 빠르게 내달리는 내공.
이준의 주위에 양강의 기운이 몰아쳤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한지유가 뒤를 향해 소리쳤다.
“현원단 전원은 현무진을 펼치세요.”
신기지가가 자랑하는 방어진이었다.
10명이 짝을 이뤄 생성하는 최강의 방패였다.
한지유의 명령에 200명의 현원단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이 기자들과 시민들을 가로막았다.
각자 자리를 잡은 현원단 중 선두에 있는 인원들이 검을 바닥에 꽂자.
투명한 막이 주위를 덮었다.
방어진 안에는 이준과 최대웅 그리고 권왕이 있었다.
이준의 주먹이 붉은 기운으로 감싸였다.
그걸 본 권왕이 눈을 부릅떴다.
“권강?”
AA급에 들어선 자만이 사용하는 고유 기술이었다.
“이익!”
최대웅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도 내공을 가득 끌어 올려 최후 무공을 썼다.
도에서 뿜어져 나온 태풍이 이준을 향해 날아갔다.
이준이 마주 오는 바람을 향해 쇄도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주먹이 태풍을 찢으며 전진했다.
콰앙!
풍사도와 닿은 이준의 주먹.
충돌의 여파가 현무진을 뒤흔들었다.
“으윽…!”
“버텨!”
현원단 전원이 최선을 다해 현무진이 무너지지 않게끔 지원했다.
‘괴, 괴물이야.’
최대웅의 실력은 이미 알고 있다.
AA급들은 죄다 인간이 아니다.
수련을 한다고 산을 없애버리는 인간들이 AA급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준을 보고는 다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젠 놀라기도 지겨울 정도.
내성이 생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대체 실력이 어느 정도인 거야.’
한지유가 놀라는 사이, 이준이 수미천왕신공을 거뒀다.
사람들은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았다.
모두가 같은 표정.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준이 앞으로 걸어갔다.
저벅저벅.
그가 걷는 동안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최대웅의 도가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
그뿐인가.
옷은 넝마가 되었고, 머리는 산발을 하고 있었다.
입에선 선혈이 흘러나왔다.
멍하니 이준을 보고 있는 최대웅의 두 눈.
자신이 졌다는 생각에 정신이 나간 듯 보였다.
이준이 허리를 숙여 최대웅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제가 만든 무대에서 놀아 줘서 고맙습니다.”
숙였던 허리를 폈다.
이준이 앞을 응시해 권왕을 보았다.
그리고는 하얀 이를 드러내 웃었다.
* * *
“풍사도가 졌어.”
“귀, 귀창이 풍사도를 이긴 거야….”
기자들은 기사를 쓸 생각조차 못 했다.
머릿속에 상황이 정리가 안 됐다.
그들이 받아들이기엔 오류가 너무 많았다.
풍사도는 현역 중에서도 일제와 동시대의 인물.
AA급 중에서는 제일 떨어지긴 하나, 18살 학생이 이길 수준이 아니었다.
주변이 웅성대든 말든, 권왕은 자신이 물어보고 싶은 걸 말했다.
“수미천왕신공을 얻었더냐?”
권왕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렸다.
“보시지 않았습니까.”
“어떤 경로로 얻었는지는 안 물어보마. 가문으로 돌아와라.”
“당신은 언제나 한결같군요.”
아들의 성장을 기뻐하는 얼굴이 아니다.
오로지 수미천왕신공을 가문에서 얻었다는 것에 안도와 흥분을 한 것이다.
“다음 이야기는 가문으로 돌아가서 하자.”
“제가 왜 가문으로 갑니까. 안 갑니다.”
권왕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실력이면 현역에서 곧바로 뛸 수 있을 터. 학교는 그만둬도 된다.”
“제 말을 잘못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전 가문으로 돌아갈 생각 없어요.”
“지금 네가 어떤 말을 지껄이는지 아는 것이냐?”
권왕의 싸늘한 음성이 들렸다.
그에게서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음성 하나하나에 주위가 압도되었다.
이게 바로 오왕 중 한 명인 권왕의 위엄.
각성자라도 고개를 들지 못할 강한 기세를 지녔다.
그의 강압적인 태도에 이준은 더욱 배알이 꼬였다.
“네. 알고 있습니다.”
이준의 생각 없는 대답에 권왕이 일갈을 터트렸다.
“넌 풍사도를 저리 만들어 패왕도가를 적으로 돌렸다.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큭큭.”
결국 이준이 웃음을 터트렸다.
권왕은 자신을 걱정하는 게 아니다.
수미천왕신공을 가진 자신이 죽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패왕도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거겠지.
“뒷감당. 제가 할 수 있습니다.”
“객기부리지 말거라.”
이준이 권왕을 뚫어지게 보면서 입을 열었다.
“객기라… 그럴 수도 있죠. 그러면 이건 어떱니까? 제가 가문이 아닌 신기지가에 투신한다면? 그들이 저를 패왕도가에서 지켜 줄까요? 아니면 지켜 주지 않을까요?”
연속으로 충격적인 소리를 해 대는 이준 덕분에 기자들과 구경꾼들은 정신을 차릴 새가 없었다.
대체 세상을 뒤흔들 소리를 몇 개나 하는 건지.
어느 것을 우선순위에 둬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넌 권왕인 내 아들이다. 가문으로 돌아와.”
“그럴 일 없습니다. 전 신기지가에 식객으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이준의 확고한 대답에 권왕의 표정은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 * *
불패의 게이트인 천중호수가 클리어됐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
천중호수는 뒷전이고, 패왕도가와 신력권가에 대한 비판이 줄을 이었다.
- 공략대 버리고 빤스런ㅋㅋㅋㅋ
- 짐승, 만도 못 한,,,, 것들,,
- 대충 저런 집안들 견적 나오죠. 이준 군 힘내십시오. 언젠가 빛은 들어올 겁니다.
-지들 후계자들 목숨만 중요했겠지.
-ㅋㅋㅋㅋ 예전부터 신력 존나 쎄해서 저럴 줄 알았음.
원래부터 이미지가 안 좋았던 신력권가였다.
안 좋은 이야기로 까여도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하나 패왕도가는 달랐다.
이미지 좋기로 소문난 곳.
비각성자인 일반인을 무척이나 생각하는 곳으로 신망이 높았다.
그러나 이미지는 한순간에 가 버렸다.
좋았던 평판이 하루아침에 안 좋아지니, 악플도 더욱 심하게 받았다.
네티즌은 이때다 싶어 두 가문을 쥐 잡듯 잡았다.
그들의 관심을 끄는 기사가 아니었다면 족히 한 달은 악플에 시달렸을 것이다.
[귀창, 권왕도 못 얻은 신력권가의 최후 무공인 수미천왕신공을 배우다.]
[귀창의 선택, 본가인 신력이 아닌 신기지가를 선택하다.]
[풍사도를 이긴 귀창. 그의 실력은?]
이준에 관한 기사였다.
인터넷의 모든 포탈은 비슷한 내용으로 도배가 됐다.
-수미천왕신공을 배운 거 실화?
-어쩐지 존나 강하더라.
-풍사도 개기다가 개털됨ㅋㅋㅋㅋ
이준에게 호감을 느낀 이들은 대부분 혈족 계승을 받지 못한 어중이떠중이들.
이른바, 낙오자들이었다.
이준과 동질감을 느끼고 있던 그들은 이준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 귀창 코인 떡상했네ㅋㅋㅋㅋ
- 존버가 답이다…
- 가슴이 웅장해진다… 야 우리도 할 수 있다.
-그보다 권왕 개불쌍하네.
-ㅋㅋㅋㅋㅋㄹㅇ 걍 혼자 븅신된 거지ㅋㅋㅋ 몇 년을 처박혀 있었는데 우리 집에 있었네?
네티즌은 권왕을 비웃었다.
오로지 강함만을 추구하던 신력권가였다.
버린 자식이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수미천왕신공을 가지고 나타나자 제 발로 나타났다.
그리고 가문으로 돌아오라고 한 모습이 방송에 전파됐다.
-솔직히 그냥 웃는 거지 개못된 거임. 막대할 땐 언제고 이제 돌아오라고? 나라면 죽어도 안 감
-222
-333333
-귀창이 신기지가로 가려는 거 이해한다.
-이참에 가서 행복 레이드 해라.
네티즌 모두가 이준을 응원했다.
그들은 은연중에 이준이 천중호수를 클리어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 * *
한편 권왕은 자신의 서재에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아이를 돌아오라고 하셨다면서요?”
“그렇소.”
“저와 한 약속이 있지 않았던가요?”
“준이가 수미천왕신공을 익혔소.”
“그래서요?”
“가문으로 데려와야 할 듯싶소.”
권왕의 말에 아내인 최미진이 책상을 손으로 쳤다.
“당신이 그 아이를 버리면 목숨만은 살려주기로 했어요. 그런데 약속도 깨고 집에 들이겠다? 작은아버지의 몸에 위해를 가한 그 서자를?”
최미진이 표독스러운 얼굴을 했다.
“내 입장도 생각해 주시오.”
“닥쳐요!”
그녀가 권왕을 쏘아붙였다.
권왕에게 유일하게 큰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뒤에 패왕도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집으로 이준을 들인다면 저도 가만있지는 않을 거예요.”
그녀는 권왕에게 으름장을 내보이고 서재를 나갔다.
“내 아들을 들러리로 만들려고 해? 제 분수를 알아야지!”
최미진이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가셨던 일이 잘 안되셨어요?”
방을 청소하던 유모가 커피를 타서 그녀에게 대령했다.
“그이가 나와 한 약속을 안 지키려고 해.”
“어쩜. 무책임하시지.”
“유모라면 어떻게 할 거야?”
“저라면… 약속을 안 지킨 대가를 치르게 할 것 같아요.”
“그게 맞는 거지?”
“네.”
예쁜 얼굴을 한 유모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웃고 있지만, 웃는 게 아닌 것 같은….
“유모가 이준을 처리해 줘. 할 수 있겠지?”
“저만 믿으세요. 아가씨.”
신력권가에 시집올 때부터 데려온 유모였다.
얼굴은 30대 중반으로 보이나, 실상은 60대의 노인이었다.
아니, 더 나이가 많을 수도 있었다.
유모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저 얼굴 그대로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