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페어리들이 당신에게 완전한 귀속을 청합니다. 승인하시겠습니까? (Y/N)]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페어리의 일부를 완전히 종속시켰습니다.]
[페어리와의 우호도가 상승합니다.]
[명성 1800을 획득하셨습니다.]
“하던 일 계속해.”
“넵!”
로티틸이 날개를 펼치며 테구르처럼 경례를 하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준이 게이트를 닫았다.
“요정의 꽃밭을 버려도 괜찮답니다.”
[그렇담 빨리 여길 네 영역으로 만들 거라.]
무극자 사부의 말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왔다.
[천중호수의 만년금구가 당신에게 귀속을 청합니다. 승인하시겠습니까?(Y/N)]
“응.”
[파랑이의 등급이 낮아 영역을 늘릴 수 없습니다.]
[가지고 있는 영역 중 하나를 버리시면 천중호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청호 보금자리
- 요정의 꽃밭
이준의 앞에 홀로그램이 떴다.
손을 움직여 요정의 꽃밭을 꾹 눌렀다.
[요정의 꽃밭을 버렸습니다.]
[천중호수의 새로운 주인이 되셨습니다.]
[게이트에 귀속된 물품이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확인.”
[A급 마정석 +5]
[연환패왕도]
“드디어 연환패왕도를 손에 넣었다!”
패왕도가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연환패왕도가 여기에 있었다.
그들이 찾기 전 이준이 먼저 가져가야 할 물건.
허수에게 구해 줘야 할 게 천중호수에 잠들어 있었다.
[황금이도 찾고, 네놈이 원하던 무공도 찾고 1석2조이지 않느냐.]
무극자 사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여기에다가 덤으로 극빙하수까지 얻으면 완벽했다.
연환패왕도에 극빙하수.
이 두 개만으로 레드존 보상은 차고 넘쳤다.
만년금구의 내단이 아쉽긴 하나,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 난다.
이걸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 녀석….”
[사형이라 하지 않았더냐.]
황금 거북이한테 사형이라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극자 사부가 눈을 부릅뜨고 있자 하는 수 없이 말했다.
“사… 형은 어떻게 합니까.”
[다른 놈들은 이곳에 침입도 못 할 테니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게 해야지.]
다행이다.
이대로 헤어지는 게 좋았다.
사람들 앞에서 동물한테 사형이라 부르고 다닐 순 없었다.
이후로 천중호수는 쳐다도 안 볼 작정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마지막으로 얻어야 될 게 남았다.
파랑이에게 먹일 극빙하수. 듣기론 만년금구의 뒤편에 있다고 했다.
이준이 녀석의 뒤로 갔다.
“정말 여기에 있네?”
에메랄드빛 물이 작은 웅덩이에 고여 있었다.
그 안에서 아지랑이가 올라왔다.
손가락을 물로 가져갔다.
쩌어억-
가까워질수록 극한의 음기가 손을 타고 올라왔다.
이준이 급히 내공으로 손을 보호했다.
피부에 침입한 냉기를 막아냈다.
“하마터면 동상 걸릴 뻔했어.”
불의 돌보다 더 강한 힘이었다.
이준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특수용기를 꺼냈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싹 담았다.
용기도 극빙하수의 힘을 다 버티지 못한 듯 얼어붙었다.
[극빙하수를 획득하셨습니다.]
“빨리 파랑이에게 먹여야겠다.”
얻을 건 다 얻었으니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됐다.
[또 오마.]
무극자 사부가 만년금구한테 인사했다. 이준이 그냥 가려고 하자,
[어허. 사형께 인사를 해야 하지 않느냐.]
“다… 음에 봐요.”
[끌끌.]
무극자 사부가 웃었다.
꼭 악마의 웃음 같았다.
자신을 괴롭히는 게 그렇게 재밌을까.
‘이 치욕을 꼭 갚고 말겠어.’
이준이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의 머리 위에 있는 무극자 사부였다.
[네놈은 사부한테 한참이나 멀었느니라. 끌끌.]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천중수에 뛰어들었다.
헤엄을 치며 물 위로 올라갔다.
아래로 내려가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제자리 수영을 하는 느낌이랄까.
전력을 다해 손과 발을 휘저어서야 천중수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푸하.”
이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정연과 한지유의 얼굴이 밝아졌다.
박혁진은 이준의 모습이 보이자, 이름부터 불렀다.
“준아!”
박혁진이 이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끌어당겼다.
“하, 힘들다.”
“너 혼자서 클리어 한 거야?”
“메시지 봤으면서 뭘 물어봐.”
이준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가 천중호수의 주인이 되고 나서 모두에게 메시지가 전달됐다.
[천중호수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오오.”
“정말 천중호수를 클리어했다니.”
“믿기지 않아.”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살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대, 대단한 녀석.”
박혁진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 누구도 깨지 못한 레드존 게이트를 홀로 클리어한 것과 다름없었다.
친구지만 존경스러웠다.
“나도 아는 걸 자꾸 말하네. 지겹다, 이제.”
이준이 킥킥 웃어대며 한지유에게 갔다.
“옷 고마워.”
“으, 응.”
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이준에게 마이를 건넸다.
겉옷을 입은 이준이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잘 있었지?’
‘뀻!’
30분 떨어져 있었다고 되게 반가워하는 파랑이였다.
옷을 다 입은 이준이 모두를 보며 말했다.
“이제 정말 마지막 할 일을 해야지?”
“뭐?”
“우릴 놔두고 먼저 도망친 신력과 패왕에게 죄를 물어야 하잖아.”
“당연하지. 우리 철혈검가에서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야.”
“신기지가도 마찬가지예요.”
박정연과 한지유가 이를 갈았다.
* * *
천중호수 입구.
입구에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생방송이 끊기자, 사람들은 궁금한 나머지 직접 거리로 나왔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공략대가 괴멸했다는 소식은 1시간도 되지 않아 전국에 알려졌다.
아니, 전 세계에 전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빙화와 검화, 검룡이 죽었다는 소식.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현장을 방문한 사람은 국화를 게이트 앞에 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묵념하며 공략대의 죽음을 애도했다.
도망쳐 나온 최대웅과 이민욱은 이미 상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그들이 상주까지 했다.
“다시 봤어. 자기들도 죽다 살아났는데 도망쳐 나왔다고 죽은 이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다니.”
“이민욱도 손이 잔인하다고 하더니, 그냥 루머였나 보네.”
이민욱의 귀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어야 할 놈이 죽어서 마음이 후련하군.’
자신을 보는 시선도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변하는 중이다.
공통점을 공유하게 된 최대웅도 있었다.
이민욱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다시 재기할 수 있어.’
속으로 웃음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저, 저기 좀 봐!”
누군가가 게이트를 가리켰다.
쇠사슬로 굳게 닫혀 있던 게이트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붉은빛을 감돌고 있던 게이트도 점점 색이 옅어졌다. 그리고 종래엔 하얀색으로 변했다.
이민욱도 게이트를 보더니 입을 떡 벌렸다.
“게, 게이트가… 클리어됐어?”
그랬다.
천중호수의 게이트에 나타난 현상.
게이트가 공략됐을 때나 보이는 광경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을 통해 나와선 안 될 사람들이 나왔다.
“이 앞에 계셨습니까? 작. 은. 아. 버. 지?”
이준이 이민욱을 보며 해맑게 웃었다.
“너, 너희가 어떻게 살아 돌아왔…지?”
이준을 가리키는 이민욱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생존자들.
거의 모든 인원이 살아온 것만 같았다.
이민욱의 눈에 사형준과 천왕대까지 보였다.
“어떻게 돌아오긴요. 보스 몬스터를 잡고 살아왔지요.”
이준이 능글맞은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의 말은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다.
“천중호수가 클리어됐대!”
“무, 뭐 하고 있어. 어서 인터뷰 따!”
기자들이 바리케이드를 무시하고 이준과 공략대를 둘러쌌다.
“천중호수를 클리어하신 겁니까?”
“어떤 몬스터였습니까?”
“앞서 나온 공략대장님은 본대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공략대의 희생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 주세요.”
기자들이 폰과 마이크를 들이댔다.
“자자, 다들 진정해 주십시오. 안에 있었던 일을 전부 말해 드릴 테니 질서를 지켜 주세요.”
이준이 기자들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가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질문했던 내용에 답변했다.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안쪽에서 엄청난 사건이 발생해서 말이죠.”
이준이 득의양양한 미소로 이민욱과 최대웅을 보았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낭패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우선 먼저 나온 공략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들은….”
“잠깐!”
“왜 그러십니까? 작. 은. 아. 버. 지?”
“우린 너희가 죽은 줄 알고 귀환석을 사용했는데, 장하다.”
이민욱이 이준의 어깨를 잡으며 대견스럽다는 듯 말했다.
이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겠지. 하나,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게 둘 수 없었다.
“왜 이러십니까. 신기지가와 철혈검가 쪽에 공략대를 음해하는 자가 있다며 분열시켰으면서.”
기자들과 수많은 인파가 수군거렸다.
“저게 무슨 소리야?”
“생방송이 종료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웅성거림이 커졌다.
한 기자가 나서서 질문하자, 그때서야 조용해졌다.
“안에서 어떤 일이 있으셨습니까?”
“3구간 탐사 지역에서 두 편으로 갈라졌습니다. 신력과 패왕, 신기와 철혈로 말이죠.”
“왜 그런 겁니까?”
“그 이유는 저분들이 잘 알고 있어서 말이죠. 저도 왜 공략대를 분열시켰는지 이유를 알고 싶네요.”
이준이 최대웅을 가리켰다.
그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우린….”
최대웅이 어물쩍거렸다.
이목도 그렇고 공략대가 살아 돌아올 줄 상상도 못 했다.
아니라면 여기서 상주 노릇을 하고 있겠는가.
귀환석을 썼으면 집에 틀어박혔어야 했다.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다가 악수로 작용한 것이다.
“말 못 하겠죠. 당신들이 수하들을 버리고 귀환석을 사용하려 한 탓에 흑사자단과 투신단이 괴멸했다는 걸 제 입으로 말할 수 없을 테니까요.”
이준의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공략대의 사령관이 같은 편을 버리고 도망쳤다.
명예는 물론이고, 신뢰까지 내팽개친 처사였다.
“연기하고 있는 당신들을 보니 역겨워요.”
최대웅이 부들거렸다.
이준의 모욕적인 처사에 표독스럽게만 쳐다봤다.
이준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마치 한껏 비웃는 모양새였다.
참다못한 최대웅이 결국 이성을 잃고 말했다.
“음해다! 모두 다 우리 패왕도가를 전복시키려는 간교한 책략이야!”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겁니까? 여기 사람 엄청 많은데?”
이준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최대웅이 발악할수록 패왕도가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게 변했다.
“닥쳐라! 네놈이 우리를 음해한 게 분명해!”
최대웅이 상복을 집어 던졌다.
도를 집어 들어 이준를 겨눴다.
“어른이면 어른답게 체통을 지키시죠? 떼라도 쓰면 해결되는 줄 알겠네.”
번뜩이는 도가 코앞에 있음에도 이준은 태연했다.
“누구의 사주를 받고 왔느냐?”
“피해망상 그만하시고 집에 가서 발이나 닦고 주무세요.”
“감히! 혈족 계승도 못한 버러지 따위가 날 능멸한단 말이냐!”
최대웅이 도에 내공을 주입하자 폭풍이 들이닥쳤다.
그의 명호는 풍사도.
죽음의 바람을 일으킨다 해서 붙여졌다.
거센 바람에 사람들이 쓰러졌다.
날아가지 않기 위해 어디든 붙잡았다.
“당신네 패왕도가가 그렇지 뭐.”
콱-
이준이 창을 바닥에 꽂곤 최대웅을 향해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