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커다란 무공을 쓰고 나면 빈틈이 생기기 마련.
사형준의 빈틈을 노린 나고쉬가 거미줄을 날렸다.
그의 발이 거미줄에 묶였다.
독이 내포된 거미줄이라 그런지 아티팩트인 신발이 녹아 내렸다.
사형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사이 거미의 발이 옆구리를 스쳤다.
치익-
“큭.”
꾹 참고 있던 신음을 토했다.
상처가 난 옆구리가 검게 물들었다.
독에 당했다는 증거.
사형준의 신형이 기우뚱거렸다.
“대주!”
“괜찮… 다.”
그는 균형을 잡고 버텼다.
이제 남은 내공이 없었다.
죽인 나고쉬만 200마리.
숨어 있던 놈들까지 죄다 나왔는지 숫자가 전혀 줄지 않았다.
천만다행인 건 지금 이 숫자가 끝이라는 것.
딱 봐도 15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이 정도의 숫자면 수하들은 빠져나갈 수 있었다.
“내 내공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이제 쉬시고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됐다. 내가 활로를 뚫어줄 테니, 그 기회를 살려 여길 빠져나가라.”
“그럴 수 없습니다.”
사형준의 손이 번개처럼 앞으로 뻗었다.
그의 손에 잡힌 건 나고쉬의 얼굴이었다.
콰직-
“쿠웨엑!”
힘을 주어 머리를 터트려 버렸다.
초록색 뇌수가 흘러나왔다.
사형준이 손을 털어 내었다.
남은 몬스터는 14마리.
조금 전의 한 수로 내공이 전무한 상태가 되었다.
“내 마지막… 명이다.”
그는 말하는 것도 힘들었다.
전신에 독이 퍼졌다.
대항하던 내공도 없어, 더욱 빠르게 중독이 되고 있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할 지경.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도 기적이었다.
부대주를 비롯한 대원들이 사형준을 감쌌다.
“이번만은 사양하고 싶습니다.”
“이때 아니면 언제 대주께 하극상을 해 봅니까.”
“살아 돌아간다면… 대주의 정체를 알려주셔야 합니다.”
그들은 사형준이 천왕신공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몰랐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내공을 사용할 때 극양의 기운을 발하는 건 현재로선 천왕신공밖에 없었다.
“멍청한… 놈들.”
사형준이 자리에 앉았다.
다리가 풀려버렸다.
그는 대원들을 믿고 내공을 운기했다.
“누가 먼저 죽을 거냐.”
“제가 먼저 죽지요.”
“형님은 가만히 계쇼. 내가 멋지게 하고 올 테니.”
천왕대원들은 먼저 죽겠다고 나섰다.
“너희들도 대주가 무서워서 함부로 공격 못 하지?”
남자가 히죽 웃었다.
천왕대에 들어와 자부심을 느끼고 살았다. 흙수저가 올라갈 수 있었던 최고의 높이였다.
이만큼 대접받았으면 성공한 인생.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남자의 특기는 오행권.
오행단이나 익히는 하급 권법으로 천왕대에 든 최초의 인물이다.
그가 하급 권법으로 엘리트 집단인 천왕대에 들 수 있었던 것도 대주인 사형준 덕분.
그가 편견을 가지고 대원을 뽑았으면 계속 오행단에나 있었을 것이다.
남자에겐 사형준이 은인과 다름없었다.
“대주. 다음 생에 또 봅시다.”
남자가 동귀어진을 할 생각으로 몸에 담긴 내공을 터트렸다.
총알같이 쏘아져 나가려는 순간.
누군가 남자의 뒷덜미를 확 끌어당겼다.
“켁!”
졸지에 숨을 못 쉬어 죽게 생긴 남자.
뒤로 벌러덩 넘어져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누, 누구야!”
“나다.”
천왕대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이준이었다.
“이, 이준?”
“지금은 상황이 이러하니 한 번만 봐주마.”
남자는 이준에게 인사를 안 해서 된통 당한 대원이었다.
그때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남자.
“히이익.”
몬스터를 보고 기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 화상 좀 치워라.”
부대주로 보이는 자를 향해 말하곤 사형준에게 갔다.
“아주 가관이구만. 치료제 없어?”
운기를 하고 있던 사형준이 입을 열었다.
무협지와는 달리, 운기를 하면서도 말할 수 있는 게 각성자였다.
“살아… 계셨습니까….”
“치료제 없냐고.”
“…다 사용했습니다.”
“상태 이상 물약도?”
“네….”
“하.”
이준이 한숨을 쉬었다.
그도 가지고 있는 치료제가 없었다.
물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아공간 주머니에도 넣어 다니지 않았다.
‘파랑아 너 독까지 먹을 수 있겠어?’
‘뀻!’
파랑이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잔인한 놈.]
‘치료제가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막내 제자라는 놈의 인성이 파탄 날 줄이야.]
이준은 무극자 사부를 무시하고 파랑이를 품에서 꺼냈다.
“파랑아, 부탁한다.”
“뀨뀨!”
오랜만에 답답한 공간에서 나와서 기분이 좋은지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여, 여우?”
“저놈들이 공격하나 안 하나 지켜보기나 해.”
파랑이가 사형준의 냄새를 맡으며 끙끙거렸다.
독이 퍼진 옆구리를 찾더니, 앙증맞은 발로 이준의 다리를 눌렀다.
“왜?”
“뀨뀨.”
사형준과 자신을 번갈아 가리켰다.
“아아. 잠깐만.”
이준이 파랑이의 말을 이해했다.
그가 사형준의 몸을 몇 군데를 눌렀다.
운기가 강제로 중단됐다.
“파랑아, 시작해.”
파랑이가 독이 퍼진 옆구리로 가더니 입을 활짝 벌린다.
그리고 옆구리를 꽉 깨무는 게 아닌가.
“푸확!”
내상을 입었는지 사형준이 입에서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무, 무슨!”
옆에서 보고 있던 부대주가 기겁했다.
이준도 내심 놀랐다.
마기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입을 활짝 벌려 독만 빨아들일 줄 알았다.
그런데 살을 깨물다니.
“엄청… 아프겠어.”
이준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사형준이 파랑이를 떼어 내려고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점혈이 걸린 몸.
움직일 수 없었다.
사형준은 고통을 그대로 참아야 했다.
치료가 시작되자 이준이 몸을 돌렸다.
“이봐, 부대주.”
“예? 예.”
“작은아버지와 이신은 어디 가고 너희만 남았지?”
“그게….”
“버리고 튀었나?”
천왕대의 표정들이 전부 어두워졌다.
이준이 그들의 정곡을 찔렀다.
수하들을 버리고 튄 이들도 문제지만, 버려진 이들의 자존심도 아예 짓밟힌 것이다.
얼마나 무능했으면 버려진 걸까 하고 말이다.
“너희 여기 나가면 어쩔 거냐?”
“무슨 말씀이신지?”
“살아서 돌아가면 어쩔 거냐고.”
“딱히… 계획은 없습니다.”
“다시 이신 그 덜떨어진 새끼 섬길 거야?”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
이준이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너희, 내 쪽으로 들어올 생각 없어?”
“저희가 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아, 너희는 사형준의 말만 따르지?”
천왕대는 사형준 그 자체였다.
사형준이 이신을 따르면 대원들도 이신을 따른다.
대주가 어느 편에 서 있냐에 따라 달라지는 그들의 주인.
그러면 됐다.
수하들을 두고 도망친 이신은 이제 사형준의 머릿속에서 지워질 테니까.
“기분 좋은 날씨구나.”
“미, 미쳤나?”
이준에게 화상이란 말을 들은 남자 혼자 중얼거렸다.
귀가 밝은 이준이 남자의 중얼거림을 들었다.
“넌, 저놈들 처치하고 뒤졌다.”
자동으로 운용되고 있는 혼원신공을 거뒀다.
천왕대를 꼬시기 위해선 그만한 무위가 있어야 할 터.
그들이 잘 아는 무공이 하나 있었다.
[혼원신공 대신 수미천왕신공이 운용됩니다.]
이준의 의지에 따라 잠자고 있던 수미천왕신공이 깨어났다.
콰앙!
나고쉬에게 적중한 권기가 녀석을 세상에서 말끔히 지워 버렸다.
허공에 나풀거리는 가루들.
시체도 남기지 않고 지워 버린 권법.
패권이었다.
수미천왕신공을 이용한 패권은 사형준이 보이던 신력의 힘과는 격을 달리했다.
닿는 물체를 일거에 소멸시키는 강력함. 모든 걸 지워 버리는 거대한 힘이 담겨져 있었다.
쾅-
이준의 신형이 한 번 더 움직였다.
굉음과 함께 나고쉬의 몸이 불에 탔다.
수미천왕신공에서 나온 극양의 기운이 나고쉬를 태운 것이다.
“끼에엑!”
비명을 지른 후 재가 되어 사라진 나고쉬였다.
사형준은 이준의 무공을 보고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천… 왕신공?”
뭔가 달랐다.
자신도 천왕신공을 7성 가까이 익히지 않았던가.
이준이 사용하고 있는 건 천왕신공이면서도 아니었다.
사형준은 파랑이가 옆구리를 물고 있는 것도 잊은 채, 전방을 응시했다.
“처, 천왕보로 저런 움직임이 가능해?”
천왕대원이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천왕보는 신력권가의 기본적인 보법.
단순한 보법이라, 일직선상으로밖에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데 이준은 방향을 자유자재로 틀어 움직였다.
마치 천왕보를 원래부터 저런 식으로 사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준이 선보이는 무공은 모두 신력권가의 것.
그들도 아는 무공이지만, 이준은 쓰는 방법을 달리했다.
“대, 대주. 패권은 강함을 바탕으로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저, 저건 환이 아닙니까?”
그것도 극에 달한 변화였다.
사형준과 천왕대를 더 놀라게 한 건 이제부터였다.
허공에 수십 개로 늘어난 주먹이 나고쉬에게 적중될 때마다 힘이 배가 됐다.
전의 주먹보다 더 강력한 주먹.
제일 마지막 주먹이 몬스터가 아닌, 바닥을 향해 내려쳐졌다.
콰아앙-
포탄 소리와 함께 지면이 뒤흔들리는 게이트였다.
뭉게구름이 피었다.
먼지가 바람에 날려 걷히자 보이는 광경.
거대한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우드득-
이준이 목을 좌우로 꺾으며 무언갈 주섬주섬 주웠다.
나고쉬의 시체를 대신한 건 녀석들이 남기고 간 아이템이었다.
[나락의 투명실을 획득하셨습니다.]
[나락의 독액을 획득하셨습니다.]
[나락의 껍질을 획득하셨습니다.]
[최상급 마정석을 획득하셨습니다]
……
……
이준이 허리를 펴며 천왕대를 보며 말했다.
“뭐해? 보고만 있을 거야? 아이템 안 주워?”
멍하니 보고 있던 천왕대.
이준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예? 옛!”
천왕대가 거대한 구덩이로 내려와 바닥에 가득한 아이템을 주웠다.
사형준의 치료가 다 끝났는지, 파랑이가 이준에게 달려왔다.
“뀨!”
“치료 다 했어?”
“뀨뀨.
파랑이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이준이 사형준을 바라봤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구덩이로 내려왔다.
“조금 전… 그 무공 천왕신공이 맞습니까?”
“아니.”
“그러면 어떤 무공입니까?”
“수미천왕신공.”
이준이 순순히 가르쳐주었다.
그에게 파랑이도 보였으니, 무공을 안 가르쳐 줄 이유가 없었다.
이걸 가르쳐 줌으로써 사형준은 자신에게서 못 벗어날 테니까.
사형준이 말을 더듬었다.
“도, 도련님께서 어떻게 수미천왕신공을?”
“어쩌다 보니.”
이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사형준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권왕이 수미천왕신공을 복원하기 위해 몇 년을 매달렸던가.
수미천왕신공만 있으면 일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런데 그 무공을 이준 도련님이 가지고 있다고 하니 충격에 가까웠다.
“아까 치료하면서 들었지?”
“도련님의 밑으로 들어오라는 말씀 말입니까?”
“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많이는 못 기다려 줘.”
수미천왕신공을 보여줘도 그가 고민할 거라는 걸 예상했다.
그가 마음에 품은 충정.
오직 자신의 아버지에게만을 향했다.
이신도 끝까지 사형준의 마음을 못 얻었다.
가문에서 유일하게 지조가 있는 사람이 사형준이었으니까.
어차피 이 시간 이후로 천왕대는 이신에게서 돌아설 터.
그것만으로도 이신은 큰 타격을 받을 거다.
후계자를 호위하는 단체인 천왕대의 지지철회.
세간에 그 소식이 전해진다면 이신은 회생 불가능할 것이다.
“아버지한테 내 이야기를 전달하겠지?”
“예.”
“좋아. 내가 바라던 바니까. 대신 이 녀석은 비밀로 해야 해.”
“청호입니까?”
“어.”
이준이 파랑이를 쓰다듬었다.
녀석은 이준의 손길이 좋은지, 귀를 한껏 뒤로 접었다.
“음….”
“이건 부탁이 아니야. 명령이지. 만약 파랑이의 정체가 밖으로 전해지면 너희들인 걸로 알 거야.”
이준의 눈이 반달이 되었다.
천왕대를 보며 웃는 눈.
회색으로 반짝이자, 천왕대의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들은 이준의 말이 아니어도 청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수미천왕신공을 가진 이준에게 신경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