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파랑아. 안녕.”
그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파랑이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주인이 나타나자 좋은지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테구르 어딨어?”
파랑이가 고개를 갸웃할 때.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테구르가 잔뜩 각이 잡힌 자세로 경례를 하며 나타났다.
뭘까. 녀석은 전보다 더 바짝 군기가 잡혀 있었다.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염화를 한방에 죽인 몬스터가 지켜보고 있으니 몸이 잔뜩 굳은 것이다.
“잘하고 있지?”
“옙! 척척 진행되고 있습니다.”
“파랑아 녀석들이 딴 짓 하면 먹어버려.”
“히에에엑!”
테구르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몰래 요령을 피우던 스케먼들이 부랴부랴 곡괭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장난이야.”
“그, 그런 농담은 좋지 못합니다. 주, 주인님.”
“너희들 하는 거 봐서. 테구르 넌 날 따라와.”
이준은 녀석을 위락대평원으로 데려왔다.
“여기 밑에 워프 게이트를 뚫을 수 있지?”
“이건 뭡니까? 보통의 아티팩트가 아닌 것 같은데….”
“계승의 꽃 몰라?”
“이, 이게 신의 꽃이란 말입니까?”
“어.”
테구르가 놀란 나머지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옷이 구정물에 닿은지도 모르고 멍하니 꽃을 바라봤다.
“블랙 존에서만 나는 신의 꽃이라니….”
“그래서 이 아래에 워프 게이트를 뚫을 수 있어 없어?”
“이, 있습니다.”
테구르는 여전히 계승의 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하긴 탐이 나겠지.
계승의 꽃은 마기의 집약체. 몬스터에겐 영약이기도 했다.
자신의 세력을 키워 줄 힘이 되어 주었다.
탐 날 수밖에 없는 물건이다.
“가지고 싶냐?”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탐내다가는 대장 노릇도 못하고 죽을 수 있어.”
“예, 예… 물론입죠.”
테구르가 침을 꼴깍 삼켰다.
무서운 인간.
자신의 의중을 바로 간파하고 말을 하다니.
괜히 전 주인을 골로 보낸 인간이 아니었다.
“이 꽃을 내 게이트에 번식시킬 거야. 혹시 알아. 잘만 되면 너에게도 줄지?”
“저, 정말입니까?”
“싫으면 말든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준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테구르를 청호 보금자리로 돌려보냈다.
이준은 따로 할 일이 있다.
이곳에서 득템한 물건을 파는 일.
곧 위락대평원이 깨졌다는 걸 매스컴이 알 터. 그전에 빨리 경매장에 가서 치고 빠져야 했으니까.
위락대평원을 빠져나가려 할 때였다.
[위락대평원에 허락받지 않은 자가 방문했습니다.]
[살기를 감지했습니다.]
[침입자를 어떻게 하시겠습니다?]
경고음과 함께 메시지가 날아왔다.
끝이 아니었다.
홀로그램 상단.
위락대평원의 글자가 반짝였다.
이준이 손으로 글자를 터치하자.
“지도?”
현재 게이트의 지도가 나타났다.
게이트 주인만의 특권이었다.
[좋은 의도로 접근한 놈들이 아니구나.]
“그런 것 같아요.”
게이트 입구부터 보이는 빨간 점들.
대략 열 명 정도의 숫자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다른 때였으면 가서 싸워야했겠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저들을 여기서 추방하면 되니까.
“누군지 확인하고 탈주 시켜야겠어요.”
[좋은 생각이다.]
이준은 지도를 보며 저들의 움직임을 확인하며 움직였다.
얼굴이 보일 만한 거리가 나왔을 때 몸을 숨기고 지켜봤다.
‘유령살귀?’
[아는 자더냐.]
‘돈만 주면 뭐든지 하는 쓰레기에요. 검산그룹 소속이라 항상 심증만 있고 물증을 안 남겨서 잡지도 못하나 봐요.’
[검산그룹이라면 너한테 보복을 하려고 하는 것 같구나.]
‘그래 보입니다.’
십여 명의 인원은 주변에 있는 몬스터를 그대로 무시했다.
누군가를 찾는 듯.
주위를 살피며 빠르게 움직였다.
‘검산그룹이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살수를 고용했네요.’
이준은 저들이 자신을 노린 살수라고 단정 지었다.
자신을 노린 걸 안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다 탈주시켜.”
이준의 음성을 게이트가 인식했다.
[게이트에 들어온 전원을 침입자로 간주해 탈주시킵니다.]
메시지와 함께.
“어? 어어어?”
“혀, 형님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으아아악!”
유령살귀를 비롯한 나머지 인원이 게이트 밖으로 추방됐다.
[간편해서 좋구나.]
“다음부터 요긴하게 써먹어야겠습니다.”
이준이 피식 웃었다.
자신을 노리는 살수에게도 벗어났겠다.
유유히 위락대평원을 빠져나와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 * *
이준이 도착한 곳은 홍대.
용산에 있는 공식 경매장이 아닌 암상이 있는 곳.
그가 지금 가진 물건은 위락대평원에서 득템한 것.
너무 오픈된 곳에서 처분했다가는 위락대평원을 클리어한 사람이 자신이란 게 밝혀질 것이고, 그랬다가는 계승의 꽃을 재배하기로 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지도 몰랐다.
그런 의미로 암시장은 자신이 가진 물건을 팔기에는 딱 좋은 장소였다.
늦은 밤.
홍대 클럽은 여전히 성황리에 있었다. 이준이 레드본이란 클럽으로 들어가려는데.
“잠깐. 너 학생 아니야?”
“…….”
“신분증 보여 줘 봐.”
무섭게 생긴 남자가 이준을 가로막았다.
그는 남자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금전의 복수가 40년이 지났는데도 이룰 수 없다.’
그 말을 들은 남자들이 당혹스러워했다.
이건 그들의 회장이 항상 입에 담고 사는 말. 회장의 손님만이 아는 암호였다.
‘들어가도 돼요?’
‘결례를 범했습니다. 들어가시지요.’
‘금전노는 안 불러도 됩니다. 물건만 팔고 갈 거니까.’
그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전생에 대한 지식을 잘 써먹고 갑니다.’
지금 그가 와 있는 장소는 암흑가를 지배하는 금전노가 거느리는 거대 상권이 자리한 곳이었다.
클럽 안으로 들어온 이준은 비상구를 찾았다.
아무도 찾지 않은 공간.
그곳으로 들어가니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지하 4층을 누르자, 빠르게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클럽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각종 상점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
그곳 중앙에는 한 여자가 마이크를 들고 경매를 하고 있었다.
이준은 중앙이 아닌 안내데스크로 갔다.
“닉네임을 만들고 싶어요.”
“처음 오셨습니까?”
“예.”
“여기에 쓰실 닉네임과 비밀 번호를 입력해 주세요.”
이준은 홀로그램을 통해 아이디와 비번을 만들었다.
“여기요.”
“……파천자 맞습니까?”
안내데스크의 여자는 속으로 비웃었다.
이런 사람이 꽤 많았다.
현실에는 형편없지만, 닉네임만큼은 멋들어진 걸 지은 사람들.
이준도 그중 한 사람이라고 치부했다.
“네.”
이준은 대답과 동시에.
쿵.
마정석과 위락대평원에 얻은 아이템을 전부 쏟아 냈다.
“전부 팔아 주세요.”
“헉!”
옆에 있던 감정사가 눈을 크게 떴다.
한눈에 봐도 C급 이상의 장비들.
반짝거리는 게 옵션 또한 괜찮은 것 같았다.
“이런 걸 어디서?”
“암상은 입이 무거운 걸로 아는데. 아닙니까?”
“물건이 너무 대단해서 실언을 했습니다.”
“됐어요. 물건을 최대한 빨리 팔아 주시고 암상 계좌로 넣어 주세요.”
“암상 계좌를 새로 만들면 수수료가 50% 붙는데 괜찮습니까?”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상의 원래 수수료는 30%.
추적이 불가능한 계좌를 만들면 20%가 더 붙는다.
날강도 시스템이지만, 판매자의 보안은 확실히 보장이 되니 손해가 아니었다.
“빠르게만 팔아 주세요.”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암상 어플을 통해 판매 현황을 보실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다음에 또 보죠.”
이준이 인사를 하고 갔다.
* * *
감정사인 한상인이 물건들을 가지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너희들은 어떤 물건이냐.”
그의 눈은 반짝였다.
오랜만에 들어온 괜찮은 물건들.
그가 파리처럼 두 손을 비비며 어떤 것부터 감정할지 골랐다.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당연히 마정석이었다.
파란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돌.
상당히 값어치가 나갈 것 같았다.
한상인이 돋보기처럼 생긴 감정 아이템으로 마정석을 비췄다.
내공을 주입하자, 감정 아이템에서 하얀빛이 쏟아졌다.
띠링-
소리와 함께 감정이 완료되었다.
[마정석 - 종합 감정: B+]
“헉! B에서도 최상급의 마정석이야.”
심장이 점점 빨라졌다.
그는 다음 마정석도 감정했다.
[마정석 - 종합 감정: B+]
전과 동일한 등급.
이 두 개만 해도 족히 1억은 되었다.
마정석 감정은 끝냈고, 이제 장비 차례.
건틀렛을 집어 들어 감정했다.
[투마의 건틀렛 - 종합 감정: B+]
“투, 투마의 건틀렛? 주인이 죽어 사라졌던 걸로 아는데 이게 어떻게 그 학생의 손에 있는 거지?”
심장이 요동쳤다.
투마는 신력권가의 A급 각성자.
위락대평원에 들었다가 고혼이 된 남자였다.
범상치 않은 물건이더니, 그의 생각이 딱 들어맞았다.
“다, 다른 건…?”
[모이라의 신발 - 종합 감정: B+]
감정 결과가 나오자, 한상인이 다시 헛바람을 삼켰다.
“허어억! 이번엔 만독암가의 물건이야?”
한상진의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안내데스크의 여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이것 좀… 봐.”
여자가 감정된 장비를 보자, 한상인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투마의 물건이랑 은영의 물건이 왜 여깄어요!?”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한상인의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이건 신력권가와 만독암가의 중요한 물건. 주인이 죽고 두 가문이 찾아 헤매던 물건이었다.
“다른 것도 이래요?”
“아니. 해 봐야지.”
그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음 감정을 했다.
한상인의 여동생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옆에서 지켜봤다.
우웅-
하얀빛과 함께 감정이 완료됐다.
“미, 미친!”
“이번엔 또 왜?”
“그 친구 대체 정체가 뭐야!”
한상인이 버럭 소리쳤다.
[위락의 핏빛 양날도끼 - 종합 감정: B+]
[위락의 가죽조끼 - 종합 감정: B+]
[오크의 증표 - 종합 감정: B+]
감정 결과였다.
모두 최상급에 속한 물건.
한상인이 제일 놀란 이유는 앞에 붙은 이름 때문이다.
위락.
사람들이 잡고 싶어서 안달 난 게이트 보스의 이름이었다.
“위락… 대평원의 그 위락 말하는 거지?”
“B급 최상위 아이템이면 녀석 말곤 없을 거야.”
“파천자란 요상한 닉네임을 적을 때부터 이상했는데 골치 아파지겠어요.”
이준은 그녀가 봐도 얼굴이 어려 보였다.
대단해 보이지도 않았고.
적어도 B급 각성자에게서 나오는 아우라.
그런 느낌만 받았어도 더 자세한 걸 알아봤을 건데.
“상부에 보고해야겠지?”
“내가 직접 할아버지께 갔다 올게. 그 전에 확인부터 해야겠어.”
한상인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말씀하십시오. 도련님.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손님 어떤 암호를 대고 들어온지 기억납니까?”
-기억납니다. 금전의 복수를 대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었군요.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신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고하세요.”
그가 전화를 끊었다.
“뭐래?”
“할아버지의 암호를 불렀대.”
“진짜?”
여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할아버지의 암호는 일반 VIP가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VVIP란 말로도 모자라다.
그건 할아버지가 고객이 아닌 은인에게나 말하는 암호였다.
“생각보다 일이 커지겠어.”
한상인은 뒤편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