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그렇게 한지유의 일이 일단락됐다.
‘요즘 들어 스카웃 제의가 많이 오네.’
영상이 퍼져 난리가 난 후.
학교에서 자신이 올린 걸 알아차려서 또 청문회를 열지 않을까 생각했던 이준이지만.
오히려 정반대의 반응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공 수업을 하는 선생들은 볼 때마다 이준을 더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모든 지원을 다해 줄 테니 자신들 가문으로 오라고.
전생에 삼류 무공이나 익힌 자신을 무공 하나 달라졌다고 여기저기서 데려가려고 난리다.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제 앞으로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서 15가문 연맹은 더욱 치열하게 싸울 터.
그 안에서 이득을 최대한 뽑아 먹을 생각이다.
‘세력에 들어가면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데 뭐 하러.’
상생 관계면 모를까.
굳이 세력에 들어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은 미래 지식을 가지고 있다.
S급 아티팩트가 어디에 있는지.
영약이나, 미래에 발견된 무공서가 어디에 있는지.
혼자 독점이 가능했다.
이런 이점을 포기하고 남의 밑으로 들어가는 건 바보나 할 짓이다.
‘그래도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놓는 게 좋겠지?’
차후에 있을 대격변.
이세계의 악마들이 나타나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대사건.
그때를 대비해야 했다.
자신이 죽기 전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죽었던 미래.
수많은 사람이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아직도 생생했다.
친구인 박혁진은 팔 한 짝을 잃으면서까지 끝까지 싸웠다.
자신이 먼저 죽어 녀석이 어떻게 된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이세계에서 넘어온 악마들은 무식할 정도로 강했으니까.
무엇보다 뒤늦게 안 사실이 있다.
그놈들에 의해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것.
이 하나만으로 그들과 싸울 명분은 충분했다.
‘나 혼자서는 모두를 지킬 수 없어.’
[홀로 독존할 만큼 강해지면 된다.]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그래도 보험은 들어 놓을까 생각 중이에요.’
사부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할 만큼 강해지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확신이 안 섰다.
혼원신공이라는 SSS급 무공과 테크트리라는 희대의 사기 특성을 가졌더라도, 과거에 F급에 불과한 자신이다.
S급 각성자가 돼 봐야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이 등급으로 이세계 악마들을 상대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지금으로선 감조차 오지 않았다.
‘그 전에 허수부터 쓸모 있게 만들어야겠다.’
허수의 무공서를 구하기 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계승의 꽃이 먼저겠지?’
A급 이상 무공들은 각자 맞는 심법이 있다.
특히 허수가 익힐 무공은 특정 심법이 없으면 안 됐다.
기존의 심법으로 연환패왕도를 펼치면 제 위력이 안 나올 거다.
아니, 연환패왕도를 사용한다 쳐도 도중에 기혈이 꼬일 터.
그걸 막으려면 계승의 꽃이란 아티팩트가 필요했다.
터득한 심법을 초기화해 주는 엄청난 물건이다.
다르게는 신의 꽃이라 불리기도 했다.
‘주말부터 작업을 시작해야지.’
계승의 꽃은 원래 블랙 존에서만 자랐다.
하지만 딱 한 곳.
개화되기 전인 상태의 계승의 꽃이 있는 곳을 안다.
미래엔 이 꽃이 개화하지 못하고 시들지만, 이준에겐 꽃을 얻을 방법이 있었다.
* * *
종소리가 울렸다.
수업이 끝나는 알림.
이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그냥 가?”
“응.”
“넌 훈련 언제 해?”
“항상 하고 있어.”
이준의 몸에 채워진 묵철만 해도 200kg.
체력 훈련은 계속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는 기초 훈련을 이미 끝냈다.
능력치는 테크트리 포인트를 사용해서 올리면 그만. 오로지 무공의 진체와 숙련도만 높이면 된다.
이 또한 무극자 사부로 인해 이해도가 굉장히 높았다.
“훈련하는 것도 비밀이라 이 말이지?”
“대충 비슷해.”
이준이 웃었다.
한지유가 검을 들고 교실을 나가면서 한마디 했다.
“음흉해.”
“참나. 내가 살면서 음흉하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내가 말이야… 야 어디가 말 안 끝났어!”
이준도 사부인 무극자를 닮아가는 걸까.
외톨이일 때보다 점점 말이 많아지고 가벼워졌다.
그녀가 사라졌다.
부들부들.
주먹이 떨렸다.
어째 한지유랑만 엮이면 바보가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이준도 교실을 나왔다.
“쭈우우운.”
한지유가 가니 그 자리를 박혁진이 대체했다.
“넌 또 왜!”
“같이 돌아가려고 왔지.”
박혁진 뒤에는 허수가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이제 가십니까, 선배님.”
허수의 손에 들린 하나의 검.
아주 값비싼 장비였다.
이준이 허수의 손에 들린 검을 낚아채며 박혁진에게 건넸다.
“내가 얘 탐내지 말라고 했지?”
“헤헤. 눈치챘냐?”
박혁진이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허수야. 얘랑은 말도 섞지 마. 가자.”
“네? 네.”
“야야. 치사하게 또 나 버리고 둘만 가냐. 같이 가~!!”
이준이 허수만 데리고 가자 박혁진이 뒤따라왔다.
* * *
허수를 바래다주고, 박혁진을 억지로 떼어 놓고 기숙사 방으로 돌아온 이준.
그가 처음 한 일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거다.
“안 심심했어?”
“뀨우.”
파랑이가 이준의 얼굴을 비볐다.
그는 파랑이를 안으면서 계승의 꽃을 빨리 구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혁진이한테 뺏기는 거 아닌지 몰라.”
박혁진은 사람 하나 구워삶는데 도가 튼 놈이다.
놈은 상도덕이 없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무슨 짓을 하던 허수를 가지려 할 터.
그 전에 계승의 꽃을 구해 허수에게 먹이고 새로운 무공서를 전해 줘야한다.
그것만이 박혁진에게 허수를 뺏기지 않는 방법이다.
“파랑아 오늘은 형이 혼자 갔다 올게. 다른 게이트에서 마기 먹자.”
“꾸우.”
녀석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포탈로 들어간 이준이 나온 곳은 염화의 은신처였다.
텅 비어 있는 나무 성채.
그가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나와.”
잠시 후.
스케먼들이 땅속에서 차례대로 나왔다.
게이트를 나가기 전 우두머리로 임명했던 스케먼이 앞으로 나왔다.
“오셨습니까, 주인님.”
녀석은 군기가 바짝 잡힌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에게 시킬 일이 있어.”
“말씀만 하십시오.”
찍찍!
뒤에 정렬해 있는 스케먼이 쥐 소리를 내며 동조했다.
“너희의 능력으로 타 게이트 간의 통로를 만들어야겠어.”
“그 말씀은 다른 게이트 간의 길을 만들라는 말씀입니까?”
“똑똑하네? 널 대장으로 뽑길 잘했어.”
“과찬이십니다.”
스케먼이 두 손을 비비며 좋아했다.
“이름이 뭐야?”
“테구르입니다.”
“이곳의 대장이 될 만한 이름이야. 그래 내가 말한 대로 할 수 있어?”
“물론입니다. 저에게 맡겨만 주십시오!”
한 손을 눈썹 위로 올려 이준에게 경례하는 테구르였다.
“통로를 만들 게이트는 위락대평원이야. 실시!”
“넵! 주인님의 명이다. 워프 게이트를 만들자.”
“찍찍!”
스케먼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려는 그때.
이준이 녀석들을 멈춰 세웠다.
“여기 말고 다른 곳.”
“예? 그러면 어디를 말씀하시는지….”
테구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차 물었다.
“염화의 은신처는 인간들에게 들켜서 안 돼.”
“혹시 저희를 걱정하시는 겁니까?”
테구르가 감격에 빠졌다.
인간들은 자신들을 죽이려고만 했지, 살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주인은 같은 인간들에게 몬스터인 자신들을 보호해 주려 한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주인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려고 한다!!”
“찍찍!”
감동한 스케먼이 소리 높여 울어댔다.
“아니, 난 그냥 여기가 별로….”
“저희가 어디로 가면 됩니까?”
이준은 하던 말을 입에 삼켰다.
저 감동한 얼굴에 굳이 침을 뱉어야 할까.
그냥 오해하게 놔두었다.
“이곳으로 넘어가서 만들어. 청호 보금자리야.”
“오옷! 최상위 몬스터만이 할 수 있는 게이트 소환을 주인님께서 하시다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녀석들은 게이트를 보자 또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새로 모신 주인이 대단하다며 치켜세우기에 바빴다.
“됐고 어서 들어가서 일해.”
“옙!”
스케먼들이 포탈을 통해 청호 보금자리로 이동했다.
이준이 생각해 낸 건 워프 게이트.
한 공간과 다른 공간을 잇게 하는 통로였다.
스케먼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훗날 이세계 악마들이 전 세계를 공격할 때 쓴 방법이었다.
“그걸 내가 쓰고 있군.”
[무슨 생각이냐.]
“계승의 꽃은 게이트 밖으로 나오면 바로 시듭니다. 계승의 꽃을 제 게이트에 옮기려면 게이트 간 이동밖에 없는데 마침 스케먼이 워프 게이트를 만드는 기술이 있거든요.”
무극자가 혀를 찼다.
[쯧쯧. 허수란 아이를 데려와서 먹이면 될 걸 굳이 귀찮게 일을 벌이는구나.]
“블랙존 게이트에서만 나는 계승의 꽃을 한 번만 쓸 수 없지요. 꽃을 키워서 여러 개 피게 만들 생각입니다.”
이제야 무극자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도 계승의 꽃이 어떤 물건인지 아는 듯했다.
[번식시킬 방법을 아느냐?]
“그러니까 이렇게 번거로운 방법을 택한 겁니다.”
[호오. 제자가 마침내 머리를 굴리는구나. 암 내 제자니 당연히 이래야지.]
이제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었다.
워프 게이트를 만들려면 타 게이트의 승인이 필요하다.
인간인 이준이 승인을 해 달라면 과연 위락대평원 보스가 수락할까?
광분해서 쳐들어오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위락대평원을 클리어하는 것.
보스 몬스터를 제거하면 게이트의 주인은 사라지니 딱히 승인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부님. 위락대평원은 보상이 뭡니까?”
[흐음 보자. 무공서는 나오지 않구나.]
“별거 없군요.”
이준이 게이트를 소환해 밖으로 나갔다.
* * *
강남 빌딩의 옥상.
이준은 건물 옥상을 타고 이동했다.
목적지는 여의도 국회 앞.
위락대평원이었다.
이준의 신형은 상당히 빨랐다.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지만, 그의 얼굴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육체의 능력이 올라가서 그런가. 아니면 동체 시력이 높아져서 그런가. 그도 아니면 학교에서 배운 비룡신법이 빠르지 않아서 느리게 달리는 걸까.
곰곰이 생각했다.
테크트리로 인한 육체 능력의 상승. 이 때문에 비룡신법이 느리게 보이는 거다.
또한 등급에 비해 많이 뒤처지는 신법.
육체는 A급을 넘었는데, 신법이 C급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때 귀로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자야.]
“왜요?”
[군림보는 어디다두고 그런 하찮은 경공을 쓰느냐.]
“그건 보법 아니에요?”
[허. 이 멍청한 놈을 보았나. 군림보는 보법이자, 경신법이니라. 무협지도 안 봤느냐!]
이준이 발을 움직이다 말고 우뚝 멈췄다.
“정말요?”
[이 사부는 거짓말이랑은 담을 쌓고 살았느니라.]
“진작 말 좀 해 주시지. 괜히 쓸데없는 힘만 썼습니다.”
[가아알! 네놈이 아둔한 걸 이 사부 탓을 하는구나.]
이준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혼원신공을 끌어올려 발에 집중시켰다.
무릎을 굽히며 군림보를 사용하자 앞으로 쭉 날아올랐다.
빌딩들이 순식간에 옆을 지나쳤다.
“와아.”
피부를 스치고 가는 바람이 좋았다.
황홀할 지경.
한 번의 도약으로 수백 미터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안 돼서 여의도 국회 앞에 도착했다.
“이것도 사부님이 직접 만드신 무공이에요? 정말 대단합니다.”
[홀홀. 얼굴이 낯 뜨겁지만, 이 사부는 괜찮으니 마음껏 더 놀라거라.]
이준의 감탄에 무극자 사부가 좋아 죽었다.
사부의 무공은 언제나 사람을 놀라게 했다. 이게 정말 인간이 만든 무공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엄청났다.
“또 달리고 싶어.”
경공으로 사용한 군림보.
만약 보법으로 사용한다면 어떤 효과를 보일까.
위락대평원에서 빨리 사용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