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한편, 김슬기가 한지유에게 밀리자.
“야.”
“네?”
새내기 1학년들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 대답했다.
“모두 무기 들어.”
챙-
명령을 받은 1학년들이 무기를 꺼냈다.
“조져!”
그리고 일제히 한지유를 향해 달려갔다.
각자 자신 있어 하는 무공을 펼쳤다.
일 대 십의 싸움.
한지유가 불리함에도 구경하고 있는 학생들은 끼어들지 못했다.
잘못 끼어들었다가 자신들도 표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
저들의 행동이 비겁하더라도 지켜보는 게 다였다.
하지만.
[제자야. 이런 상황에 넌 뭐하느냐.]
‘저요? 학폭 증거 남기는데요?’
[학폭? 그게 무슨 말이냐. 상당히 안 좋은 것 같구나.]
‘학교 폭력의 줄임말로 일진들이 힘없는 학생들을 괴롭히는 걸 말합니다.’
이준이 무극자 사부에게 친절히 설명해 줬다.
무극자는 현대의 용어를 다 알아 들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모를 때도 번번이 있었다.
[아주 올바른 행동을 하구나. 스승이 누군지 참 훌륭해.]
이준이 폰을 들어 그들이 한지유를 다구리 치는 걸 찍었다.
맨 뒤에 있는 3학년 학생이 고개를 휙 돌렸다.
“당장 안 치워?”
검을 들고 이준을 향해 걸어왔다.
동영상을 찍고 있는 폰을 당장이라도 뺏을 기세였다.
“저, 저한테 왜 이러세요.”
이준은 떨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모습에 자리를 깔고 앉은 박혁진이 풉, 하고 먹고 있는 걸 뿜었다.
“저건, 나보다 더 또라이라니깐.”
이준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박혁진은 바로 알아차렸다.
3학년이라도 이준의 교복 한 자락도 건드리지 못할 실력.
이준이 그에게 겁먹을 것도 없는데, 저 짓거리를 하는 걸 보면 연기가 분명했다.
“좋은 말 할 때 그 폰 내놔라.”
“시, 싫어요! 학교 폭력, 멈춰~!”
구경하던 학생들이 이준을 이상하게 보았다.
쟤 왜 저래?
미쳤나 봐.
꼭 이런 표정으로 말이다.
“저게 어디가 폭력이야? 선배가 후배를 참교육하는 모습이지. 폰이나 내놔.”
그는 이준의 폰을 낚아채려고 손을 뻗었다.
그 느려터진 손길에 잡힐 이준이 아니었지만.
“악. 왜 그러세요. 이러지 마세요. 그, 그만! 아악!”
그냥 손목이 잡힌 것뿐인데, 괜히 오버했다.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했는지.
동영상을 종료했다.
“큼큼.”
이준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저 선배. 이제 손 놓죠?”
“뭐?”
3학년생은 이준을 정신 이상자로 보았다.
“너 뭐 하는 새….”
“놓으시라고요.”
이준의 행동이 전과 달라졌다.
마치 연극은 끝났다는 듯.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너, 너….”
그가 눈을 크게 떴다.
이준의 손목을 놓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이준에서 느껴지는 위험한 기운.
마치 블루 급 보스 몬스터를 마주한 듯했다.
“저 말고. 쟤 있죠?”
그가 손가락으로 한지유를 가리키며 말했다.
“쟤나 신경 써요.”
3학년생은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이준에게 벗어나기 위한 몸짓이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한창 싸우고 있는 한지유에게 달려들었다.
‘이제 구경이나 해 볼까.’
이준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한지유가 싸우는 걸 구경했다.
* * *
한지유의 검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녀가 현재 사용하는 검법은 적엽비검.
칠현검법과 마찬가지로 쾌검술이다.
검이 사라지고 나타날 때마다, 그들의 교복이 찢어졌다.
학교의 교복은 특수한 소재로 제작된 옷.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옷이 찢어지지도 않았다.
“악.”
“정신 안 차려!”
찢어진 교복 사이에서 피가 튀었다.
1학년들의 비명에 3학년 중 하나가 버럭 소리쳤다.
“한지유는 한 명이야. 동시에 공격해!”
그들이 한지유의 사방을 점했다.
퇴로를 차단한 채 그녀를 동시에 공격했지만.
쉬이익- 쉭쉭-
한지유의 검이 번쩍였다.
그와 동시에 검기가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풀어헤쳐진 교복이 바람에 의해 펄럭였다.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하려 했지만.
우뚝.
밑이 허전하다는 느낌을 받아 멈췄다.
그들이 고개를 아래로 내렸는데.
“꺄아아아.”
속옷만 남긴 채, 교복이 잘려 바닥에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가득했다.
자리에 주저앉으며 손으로 알몸을 가렸다.
“후우우… 더 한다면 이번엔 교복으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한지유가 그들을 향해 경고했다.
김슬기 또한 달려들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저년이랑 내가… 이렇게나 차이가 컸어?’
개학 전까지만 해도 고만고만했다.
폐관수련을 한다고 실력이 벌어졌으면 개나 소나 폐관을 했겠지.
‘믿을 수 없어. 아니! 여기서 물러선다면….’
김슬기가 주변을 둘러봤다.
“못 본 사이에 한지유는 실력이 더 늘었네.”
“저게 어디가 학생 실력이야. 현역으로 뛰는 각성자보다 뛰어나지.”
“인정. 확실한 건 하급반 선생들보다 강해 보여.”
선생들의 등급도 다양했다.
이준과 같은, 하급반 선생들은 C급 이상.
엘리트인 상급반을 가르치는 선생들은 B급 이상이었다.
현재 한지유가 보인 실력은 하급반 선생을 넘어, 상급반 선생들의 실력에 근접해 있었다.
선생과 실력이 비슷한 학생.
무사고에선 그들을 용과 꽃들.
다른 이름으론 용과 봉황이라고도 불렀다.
모두가 한지유의 엄청난 실력에 감탄하는 게 김슬기의 눈에 보였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한지유와는 다른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매화는 전보다 더 퇴보한 것 같지?”
“수련은 뒤로 하고 약한 애들만 괴롭히는데 발전하겠냐.”
“그렇긴 해. 다친다고 방학 때 게이트 근처도 안 갔다며?”
“무공이 아깝다. 내가 화산파 무공을 계승받았으면 검귀는 됐겠다.”
무협지에서도 화산파는 검법으로 유명했다.
박혁진이 계승한 남궁세가보다 더.
그런 대단한 무공을 가지고도 일진놀이나 하고 있으니.
좋게 보이겠는가.
주변의 소리를 들은 김슬기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회생하는 건 힘들어. 이거라도 사용해야 해.’
주머니에 넣은 손에 구슬이 잡혔다.
가문에서 준 물건.
정말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함부로 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한지유를 쓰러트리기 위해 집에서 받은 물건을 사용하려고 고민했다.
그녀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한지유가 자신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지나치자, 이성을 잃었다.
“네가 언제까지 목을 뻣뻣하게 할지 보자!”
김슬기가 손에 들린 구슬을 한지유에게 던졌다.
과자를 까먹으면서 보고만 있던 박혁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미친 선배가 진짜.”
한지유를 향해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동그란 암기는 벌써 한지유의 얼굴 가까이에 있었다.
그녀가 검을 일자로 세워 암기를 막았다.
검에 의해 두 동강 난 구슬.
그걸로 끝인 줄 알았던 그녀는 검을 내리려 했는데, 박혁진의 외침이 들렸다.
“이화정이야. 피해!”
이화정.
당가의 무공을 계승한 만독암가의 비전암기였다.
구슬이 열리면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침이 쏟아지게 만드는 물건이다.
한지유는 이화정을 두 조각냈을 뿐.
완전히 파괴한 게 아니었다.
그 때문일까.
한지유가 당황한 얼굴로 황급히 몸을 뒤로 빼려 했다.
허나 이화정은 이미 작동하고 말았다.
푸슈숙-!
수십 개의 침들이 한지유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그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을 뒤로 빼도, 검으로 얼굴을 가려도.
지척에 다다른 이화침을 막을 수 없었다.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는 게 다였다.
그런데.
‘아… 프지 않아?’
질끈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자 앞에 솥뚜껑만 한 손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이… 준?”
* * *
이준의 손엔 이화침이 가득 박혀 있었다.
‘아프네요.’
[이화침은 당가의 암기 중에 위력이 중간 정도밖에 되지 않느니라. 괜히 엄살을 피울 생각일랑 말거라.]
‘독까지 있는데요?’
침에 독이라도 발렸는지, 손이 까맣게 물들었다.
[혼원신공이 알아서 해독해 줄 것이다.]
무극자 사부의 말대로 내부에 독이 침입하니, 혼원신공이 가만두지 않았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적을 일거에 쓸어버리려는 듯 몰아쳤다.
‘한지유한테 먼저 암기를 써서 망정이지. 저게 저한테 왔으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어요.’
이준이 엄살을 피웠다.
[심성이 악독하긴 하구나.]
‘옛날부터 지독하기로 유명했어요.’
[후환을 남길 생각이냐?]
‘설마요.’
이준이 씩 웃었다.
그는 현재 눈앞에 뜬 퀘스트를 보는 중이다.
[서브 퀘스트 – 일진 처리.]
난이도: C
설명: 은거자는 정파의 위선자를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옛 위선자의 향기를 느끼게 한 김슬기를 혼내 줬으면 합니다.
완료 조건: 매화 김슬기 격파
보상: 한지유와의 친분 상승, 명성 항목 추가.
[명성]
설명: 명성은 현 시대를 살아가면서 제일 필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명성이 높으면 노력하지 않아도 당신의 주변으로 모여들게 됩니다.
효과: 권력, 재력, 명예 상승.
김슬기를 밟아 줄 명분이 생겼다.
아니.
까놓고 말하면, 서브 퀘스트 없이도 김슬기를 나락으로 떨어트릴 이유는 충분했다.
검산그룹은 훗날 이세계에서 넘어온 악마들 밑으로 들어간다.
그들의 명령으로 각성자뿐만 아니라, 일반인까지 모조리 학살했다.
패왕도가, 신력권가와 더불어 악마들의 선봉대가 된 집단.
미친놈들이었다.
검산그룹에 속한 김슬기도 미래에는 악명이 자자했다.
사마련의 칠악보다 더.
‘지금 혼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죽이지 못하면 네 그림자만 봐도 오줌을 지리게 만들거라.]
여기서 김슬기에게 어중간하게 망신을 준다면, 그녀는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를 갈 것이다.
그건 후환을 남기는 일.
그렇다고 사부의 시대처럼 사람을 막 죽일 순 없었다.
대신 따끔한 훈계 정도는 해 줄 수 있다.
다신 학생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학교에서 얼굴을 들지 못하게끔.
‘명성만 높아지면 검산그룹 쯤은 상대할 수 있지. 그리고 나한테 비장의 카드가 하나 있고 말이야.’
그들이 한지유를 몰아붙일 때 찍은 동영상이 있다.
그게 인터넷에 퍼진다면 난리 날 터.
거기다 한지유는 신기지가의 금지옥엽.
물론 한지유의 실력으로 학교 폭력을 가만히 당하고 있을 리가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영상이 뜬 이상 신기지가에서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단순 쪽팔림을 넘어 가문 대 가문의 문제까지 번지게 되는 것.
자신을 응징할 시간도 없이, 검산그룹은 얼굴에 똥칠한 김슬기의 행동을 수습하기 바쁠 것이다.
그사이 자신은 성장은 할 테고, 명성 또한 높아져 있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검산그룹은 자신을 어쩌지 못할 거다.
‘만에 하나라도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이준이 싸늘하게 웃었다.
‘모두 죽일 수밖에.’
각성자의 시대는 하루에도 수십 명이 죽어 나갔다.
사람의 인권은 오히려 옛날 시대보다 더 퇴보했을 정도.
그만큼 시대가 흉흉했다.
물론 각성자에 한해서였다.
그들이 일반인에게 손을 댔다간 마인으로 찍힌다.
이후에는 말할 것도 없다.
이준은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한 후.
후두두둑-
손에 박힌 이화침을 털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