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포식]
등급: SS
설명: 그 어떠한 질 나쁜 마기라도 파랑이의 식욕 앞에선 장사 없습니다.
효과: 마기 흡수
“이름만 다르지 흡혈마공이랑 성능이 똑같군요.”
SS급 스킬 치곤 뭔가 빈약해 보였다.
C급 패시브 스킬인 마기와 성능이 비슷하달까.
기대했던 것과는 달라서 스킬 창을 껐다.
“게이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다른 스킬도 얻겠지.”
아쉬움을 뒤로 하고 게이트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미개척 지역입니다. 조심하십시오.]
[미개척 지역입니다. 조심하십시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경고음이 울렸다. 이준은 시끄러워서 경고음을 꺼 버렸다.
불의 돌이 있는 곳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한참이나 들어가야 했다.
강민재를 포함한 투신단도 자신을 찾는데 오래 걸릴 터.
그때까지 심심하게 걷기만 해야 했다.
말할 사람이라곤 무극자 사부뿐이었다.
‘이참에 무공 하나만 달라고 할까?’
학교에서 터득한 무공, 무극자 사부에게 배운 가문의 무공.
허나 사부의 진정한 무공은 배워 보지도 못했다.
군림보가 있으나 능력치가 부족해 사용하지 못했다.
투신단을 상대하기 전 사부의 무공으로 싸워 보면 좋으련만.
다른 무공과 얼마나 격을 달리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왕 생각난 김에 확 질렀다.
“사부님. 무공 하나 주시면 안 될까요?”
[뜬금없이 무공은 왜?]
“사부님의 진정한 무공을 배워 보고 싶습니다.”
[……]
무극자 사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무공을 맡겨 놓은 듯 말했으니, 호통을 칠 법도 하지만 그러지도 않았다.
“사부님?”
한 번 더 무극자 사부를 불렀다.
[네놈한테 무공은 다 줬지 않느냐.]
“패권이랑 천왕보는 제 가문 무공인데요? 전 사부님의 무공을 배우고 싶어요.”
[사부가 너에게 줄 수 있는 무공은 두 개가 한계이니라.]
“예?”
무공보고라며 큰소리친 무극자 사부였다.
그런데 전수해 줄 수 있는 무공이 고작 두 개가 다라니.
주기 싫어서 이러는 걸까?
곧이어 들려오는 사부의 목소리에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네게 모든 무공을 전수해 주고 싶다만, 이 괴상한 시스템이 너에게 무공을 전수하지 못하게끔 막는구나.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 없느니라. 내 정수가 담긴 무공은 은거자 루트에 다 있느니라.]
고금제일인이란 사람에게 전수받은 무공은 고작 천왕보와 패권이었다.
진작 알았다면 패권이나 천왕보보다 더 대단한 걸 전수받을 것을.
“쩝. 공짜로 얻을 수 있을까했더니 아쉽네요.”
이준이 입맛을 다셨다.
[테크트리 포인트를 열심히 모아서 무공을 배우거라.]
“예….”
뒤늦게야 무극자 사부가 선택하라고 보여 준 무공이 눈에 아른거렸다.
천마의 무공이라도 배워 둘 걸.
그도 아니면 눈 딱 감고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상위 무공을 익힐 걸 그랬나?
괜히 무극자 사부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 패권이랑 천왕보를 배운 게 조금 후회됐다.
[큼큼. 나도 이럴 줄 몰랐느니라.]
“사부님도 모르셨습니까?”
[큼큼. 이 시스템이 참 오묘하고 신비롭더구나.]
무극자 사부도 민망한지 각성자 시스템에 대해 칭찬을 했다.
“괜찮습니다.”
아쉽지만 어쩌랴.
이미 배는 지나갔다. 테크트리 포인트를 얻어서 무극자 사부님의 무공을 얻는 게 최선이다.
그렇게 다짐하는데 희소식이 들렸다.
[고금제일인인 사부가 또 다른 해결책을 찾았느니라.]
“뭔데요?”
[어느 게이트에서 무공서가 떨어지는지 알 수가 있더구나.]
“……진짭니까?”
[이 사부는 참된 진실만 말하는 어른이니라.]
무공서가 떨어지는 게이트를 알다니.
이런 기사가 있나.
마치 보물을 찾을 수 있는 지도가 있는 것과 진배없었다.
아니지, 이 시대로 치차면 사부는 무공서 내비게이션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준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전 사부님이 참된 어른이시라는 걸 의심치 않고 있었습니다.”
[홀홀. 존경해도 된다.]
“이미 제 조상보다 사부님을 더 존경해하고 있습니다.”
이준의 태세 전환은 상당히 빨랐다.
과거 인기 절정이었던 게임의 우땡땡급이랄까.
이준도 무극자 사부의 괴짜 성격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
“사부님.”
[또 뭐냐?]
“이곳에는 어떤 무공이 떨어집니까?”
[홀홀. 알고 싶으냐?]
“네!”
[알면 까무러칠 텐데?]
“놀라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다.
이곳은 미래에도 불의 돌 말고는 발견된 게 없었다.
하지만
[수미천왕신공. 여기 등급으로 따지면 S급이 떨어지는구나.]
“억!”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천왕신공은 현재 신력권가의 권왕이 익힌 심법.
앞에 ‘수미’자가 붙은 건 한 단계 더 보완된 상위 신공이었다.
게이트에서 무공서가 떨어지는 건 극악의 확률을 자랑한다.
그런데 무려 가문의 신공이 드랍되다니.
가문에서 이 사실을 알았다면 게이트를 폐쇄시키지 않았을 터.
전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가전 무공 유출은 가문의 존립이 달린 문제였으니까.
“무조건 얻어야겠습니다.”
[이래서 사부가 너에게 무공을 가르쳐 줄 필요가 없다고 했느니라.]
이준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빨리 불의 돌을 얻고 숨어 있는 보스 몬스터를 없앨 생각뿐이었다.
* * *
“거의 다 왔다.”
개미굴처럼 이어져 있는 동굴들.
처음 수십 개의 동굴을 마주쳤을 때와 같이 눈앞에도 작은 동굴들이 가득했다.
“맨 오른쪽 동굴로 가면 된다고 했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곳만 넘으면 불의 돌이 있는 장소에 도착한다.
그로부터 20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저 너머에 불빛이 보였다.
통로를 나오자 펼쳐진 하나의 공동. 그 가운데에는 돌로 된 계단이 있었다.
그 위에 활활 타오르는 하나의 불꽃이 보였다.
“저게 불의 돌입니다.”
[만년화리의 내단과 같은 양강의 기운을 지녔구나.]
길을 알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몰랐다면 많은 시간이 걸렸을 거다.
이준이 계단을 올라가 불꽃을 만졌다.
[불의 돌을 획득하셨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Y/N)]
“아니.”
이준이 활활 타오르는 불의 돌을 품에 넣었다.
옷이 불에 탈 법도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명색에 무림 사관 고등학교의 교복.
평범한 재질로 만들어진 옷이 아니었다.
[앞에 기척이 느껴지는구나.]
“아셨어요?”
[결계가 있는 게 느껴진다.]
“숨어 있는 몬스터는 AA급 각성자가 와도 찾을 수 없는데 대단하십니다.”
[끌끌. 노부가 바로 고금제일인이었느니라.]
이준이 계단 밑으로 내려갔다.
가로막힌 쪽 벽면으로 가서 손을 짚었다.
딱딱한 돌. 결계라곤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준이 넣어놨던 불의 돌을 꺼내 앞을 비추자.
[염화의 은신처를 찾았습니다.]
[시크릿 던전을 찾은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250,000p가 지급됩니다.]
가로막았던 벽이 사라지고, 앞에 어두운 공간이 나타났다.
“게이트 소환.”
그의 외침에 옆 공간에 하얀색 동그란 원이 생겼다.
불의 돌을 포탈 안에 던졌다.
아공간 주머니 역할을 하는 청호의 보금자리였다.
게이트를 보관함으로 쓰는 인간은 이준이 처음일 것이다.
이준이 어두운 결계 안으로 들어가자.
[염화의 은신처에 입장하셨습니다.]
마침 뒤편에도 기척이 느껴졌다.
“투신단이… 꽤 많이 몰려왔네요.”
[어림잡아 50은 되어 보이는구나.]
이 정도 병력이라면 불의 돌이 목적일 터. 생각 외로 가문의 정보망이 대단한 모양이다.
자신이 불의 돌을 획득하고 난 뒤에 찾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보스 몬스터부터 사냥하고 처리해야지.”
오늘은 많은 걸 얻어갈 듯싶었다.
가문에 대한 복수, 보스 몬스터를 처치한 후 얻을 보상, 메인 퀘스트 등.
이게 다 신력권가에서 잔대가리를 굴린 덕분이었다.
이준이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파랑이를 보았다.
“넌 배 안 부르니?”
이준이 파랑이를 보며 말했다.
지금껏 밥을 안 준 걸 항의라도 하는 것 같았다.
대기 중에 떠다니는 마기를 쉬지 않고 먹고 있다.
“뀨뀨!”
파랑이가 좋다는 듯 울음소리를 냈다.
여태껏 보지 못한 속도로 빨려가는 마기에 뜻밖의 메시지가 떴다.
[파랑이가 포식스킬을 사용했습니다.]
[파랑이가 마기의 결계를 흡수합니다.]
이준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결계도 먹을 수 있어?”
[파랑이의 성장도가 증가했습니다.]
[현재 성장도: 5%]
녀석이 빛에 휩싸였다.
이준이 있던 자리는 환한 빛으로 가득 차 앞이 보이지 않았다.
시야가 가려 눈을 질끈 감았다.
차츰 가라앉은 빛.
그가 서서히 눈을 떴다.
“어? 너.”
주먹만 하던 파랑이가 드디어 커졌다.
사람 머리통만 해졌다, 랄까.
아직도 작았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훨씬 성장했다.
이준이 파랑이를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결계 먹고 큰 거야?”
“뀨뀨!”
고개를 힘차게 흔드는 파랑이.
어찌나 귀여운지 내려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마기의 결계를 흡수함으로써 누군가의 분노를 샀다.
[몸을 숨기고 있던 보스 몬스터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것에 분노합니다.]
[게이트가 요동칩니다.]
[염화의 은신처의 문이 잠깁니다.]
* * *
염화의 동굴 입구.
내부의 떨림으로 인해 학생들은 인솔자에 의해 안전지대로 와 있었다.
“식겁했어.”
“갑자기 이게 뭐야.”
“인솔자님 괜찮은 거죠?”
“우리가 있으니 걱정 마.”
인솔자가 학생들을 안심시켰다.
그들은 이 진동이 어디서 나온지 알고 있었다.
이곳에 설치된 기관 장치가 작동하면서 일으킨 파동.
이준을 일행과 떨어트렸다는 신호였다.
이제 가서 그를 처리하는 일만 남았다.
마침 강민재 일행이 돌아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김태형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강민재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게이트에 있는 기관이 움직인 것 같습니다.”
“위험한 거예요?”
학생들이 덩달아 긴장했다.
“아직 몰라. 정말 다행인건 게이트의 문이 안 닫혔다는 거야. 이틈에 빠져나가는 게 좋겠다.”
“잠깐만요. 이준은 어딨죠?”
먼저 도착해 있던 한지유가 이준을 찾았다.
“기관이 움직이는 바람에… 우리와 떨어졌다.”
“그러면 이준을 찾으러 가는 게 먼저 아닌가요?”
“당연히 그래야지. 너희들을 게이트 밖까지 안내한 후 바로 이준을 구하러 갈 거다.”
“그래 지유야. 이준은 그래도 신력권가의 핏줄 아니니. 저분들도 구하고 싶을 거야.”
김태형이 한지유를 진정시켰다.
그녀가 보기에는 이준과 저들의 사이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적대적이라고 하는 게 옳았다.
‘이상해. 느낌이 안 좋아.’
미개척지로 가는 일도 그랬다.
원래 예정에 없는 일정을 수행해선 안 된다.
게이트에선 더더욱.
심지어 조를 나누기까지 했다.
마치 누군가를 떼어 놓으려는 것처럼.
‘설마 나와 이준을? 아니면 이준과 우리들?’
짐작이긴 하나 느낌상 그랬다.
물증도 없고 심증도 정확하지 않아 그냥 넘어갔는데 이 사단이 일어났다.
“저도 따라가겠어요.”
“그건 안 돼.”
“왜죠? 제가 인솔자님과도 실력이 비슷한데?”
강민재가 단호히 말했다.
“넌 신기지가의 금지옥엽이다. 네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신력권가와 신기지가의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다. 어쩌면 전쟁이 날 수도 있고. 넌 그러길 바라는 거냐?”
“지유, 네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이사장님께서 선생님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준의 일은 투신단에 맡기자. 응?”
“하지만.”
강민재는 절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여기에 이준만 있는 게 아니야. 다른 아이들도 생각해야지.”
“……알겠어요.”
한지유가 입술을 깨물었다.
가문이 껴 있어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여긴 신기지가의 영역도 아니기에 자중했다.
김태형이 기쁜 얼굴을 하며 아이들을 챙겼다.
게이트를 나가려고 움직이려는 때에 모두에게 똑같은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그린 존 게이트가 블루 존 게이트로 격상합니다.]
[주인의 거처에 침입자가 들었다고 생각한 스케먼이 분노합니다.]
[스케먼의 공격력이 +20% 스피드가 +30% 상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