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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했더니 무공 천재-19화 (19/705)

제19화

‘막지 뭐.’

이준은 한지유의 호기심을 풀어 줄 생각이 없었다.

대신 이것만 보여 줄 생각이다.

그가 뒤로 물러나며 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땅을 향해 검을 쑤셔 넣었다.

이준을 상대하는 학생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준이 나직이 중얼거리지 않았으면 무슨 행동을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검막.”

콰광!

두 가닥의 검기가 투명한 막에 부딪쳤다.

아주 평온해 보이는 이준.

그를 상대하고 있는 학생은.

“허억… 괴 허억… 물.”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결국 공격만 하던 상대가 지쳐 백기를 들었다.

“와.”

“레알이냐?”

“D급은 상대도 안 되잖아?”

이준은 D급 각성자인 학생을 방어만해서 이긴 것이다.

내공을 다 소모하게 하여 먼저 백기를 들게 하는 방법.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전법이다.

누가 먼저 지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

상대보다 실력이 압도적이지 않으면 잘 쓰지 않는 방법이다.

비무에서는 더더욱 그랬고.

팔짱을 끼고 있던 한지유도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날 보고 이길 방식을 바꾼 거야.’

그것도 그 짧은 순간에 말이다.

그녀는 이준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관심이 갔다.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인물.

학교 이사장인 작은 아버지도 잘 모르겠다는 인물.

싱겁지 않았다.

오히려 파악하기 어려운 축에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제 나한테 다 까발려질 거야.’

이준이 상대를 이김으로서 4승의 고지를 밟은 사람은 그와 한지유밖에 없었다.

남은 사람은 단 두 명.

이제 딱 한 경기만 남았다.

짝짝짝.

박재민이 박수치며 방금 경기에 임한 이준과 상대 학생을 칭찬했다.

“좋은 경기였다. 성진이는 칠절참흔의 공격을 극대화시켰고, 이준은 방어를 극대화시켰다. 원래라면 칠절참흔의 특성상 공격적인 성진이가 이겼을 테지만 이준의 경지가 더 높아서 진 것뿐이다.”

박재민이 아주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성진이란 학생은 분한 얼굴을 했다.

이준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귀에는 박재민과 전혀 다른 의견이 들려왔다.

[개소리하고 자빠졌구나. 칠절참흔의 특성상 공격적으로 운용한 아이가 이겨? 저 놈 순 엉터리다.]

‘사부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네가 칠절참흔의 진체를 꿰뚫은 거지. 무공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분해하고 있는데 공격적인 특성? 니미 내가 만든 무극창법을 익힌 상대라도 이런 너와 비무를 한다면 지는 게 당연하느니라.]

이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의 눈에 보인 실선들.

상대의 공격이 들어오면 대기에 흐르는 선이 빛났다.

빛난 선을 자르니, 상대의 검로가 끊겼다. 마치 검술의 허점을 공격한 느낌이랄까.

덕분에 방어만으로 상대를 이길 수 있었다.

‘제가 잘못한 겁니까?’

[아니. 넌 그냥 무공에 대한 천재다.]

무극자가 시원하게 말해 버렸다.

사부의 말에 이준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무공… 천재….’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찬 단어였다.

언제 자신이 이런 칭찬을 들어 봤겠는가. 그것도 자칭 고금제일의 사부에게 들었다.

그를 겪어봐서 알지만 대단한 사람임은 분명했으니.

얼추 맞지 않을까.

‘…천재란 소리는 처음 들어 보네요.’

항상 둔재, 낙오자, 실패작.

재능이 쥐뿔만큼도 없다는 걸 평생 듣고 살아왔다.

[나도 네가 둔재인지 알았느니라. 그런데 까 보니 천재 중의 천재 아니겠느냐. 이제부터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무극자 사부의 말을 들으니 자신감이 조금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공을 뜯어보겠단 생각은 어떻게 한 것이냐.]

‘그냥 몸소 겪어 보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습니다.’

[허. 내가 말했지만, 아직도 헷갈리구나. 이걸 천재라고 해야 할지, 둔재라고 해야 할지. 내 최대의 난제로구나.]

이준의 말은 직감을 믿고 행동했다는 이야기.

본능적으로 적을 괴롭히는 걸 터득한 것이다. 혼자서 말이다.

이준이 무극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한지유가 검을 챙겨서 나왔다.

“이제 제 차례인가요?”

박재민이 손목에 차여진 시계를 봤다.

비무를 하는 통에 오후 수업이 다 갔다.

“수업 시간이 끝났다. 비무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해야겠다.”

“아.”

“비무만 하고 끝내면 안 될까요?”

“네? 선생님 한 번만요. 이 비무 꼭 보고 싶어요.”

학생들이 수업 시간을 늘려 달라고 사정을 했다.

하지만 박재민은 칼 같았다.

“불가하다. 난 정확히 3시간 수업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그가 검을 주섬주섬 챙겼다.

“그럼 다음 시간에 보자.”

박재민이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고 유유히 떠났다.

학생들은 아쉬운지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한지유가 이준을 노려보다가 등을 돌렸다.

“운이 좋아.”

그 말을 남기고 교실로 들어가 버렸다.

“저 꼴통.”

이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자퇴할까?

쟤 하나 때문에 핑크빛 학교생활에 먹구름이 끼는 듯 했다.

* * *

아니나 다를까.

한지유는 거머리처럼 이준을 따라다녔다.

이준이 듣는 전 과목에 따라 들어왔다.

틈만 나면 검법 수업에서 못 다한 비무를 하자는 둥.

집착이 상당했다.

“언제까지 쫓아 올 거야?”

이준이 가고 있는 곳은 남자 화장실.

뒤에서 발소리도 안 들리게끔 한지유가 따라왔다.

“나도 화장실 가는 중이야.”

“아까도 그렇게 말했다.”

“아닌데?”

“그러면 네가 먼저 가.”

“내가 왜?”

한지유가 뻔뻔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하, 말을 말자.

이준이 한숨을 내뱉곤 화장실로 들어갔다.

“혁진이가 그립다.”

[걔가 누구냐?]

“검룡이라고 제 친구 있습니다. 차라리 한지유보다 나아요.”

학교 다닐 때 유일하게 자신의 편이 돼준 친구였다.

거의 껌딱지처럼 붙어 다닌 두 사람.

박혁진이 일방적으로 따라붙었지만, 한지유보다 차라리 나았다.

[너도 친구가 있었더냐?]

“당연합니다. 사부님. 제자를 뭘로 보시고.”

[흠. 나는 항상 네가 혼자 다니길래 외톨인 줄 알았느니라.]

“제가 다른 애들을 따돌리는 거라고요.”

이준은 정신 승리와 같은 말을 했다.

박혁진 말고는 친구가 없는 외톨이였으니까.

물론 이건 옛날 말.

지금은 친구를 만들려면 언제든 사귈 수 있었다.

자신은 이제 학교에서 아싸가 아니었으니까.

“이참에 안스타나 해볼까.”

SNS는 모두가 할 수 있으나.

인기가 많아지려면 타고나야 했다.

얼굴이 멋있다든지, 몸이 좋다든지.

그도 아니면 인싸든지.

왠지 지금 시작해도 SNS 팔로우가 굉장히 늘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소변을 다 보고 나가려는 찰나.

화장실로 인상이 험하게 생긴 남학생이 들어왔다.

이준을 본 그가.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쩌렁쩌렁하게 울린 목소리로 고개를 푹 숙였다.

“또 너냐.”

여학생들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하며 하교를 하는데 방해하던 놈이었다.

“허수라고 합니다. 선배님.”

“그렇게 인사하지 말라고 했지. 내가 사마련 흑도도 아니고.”

“시정하겠습니다. 선배님.”

“하. 이놈이고 저놈이고.”

어째 죄다 상태가 이상한 놈들만 엮이는 것 같은지 모르겠다.

[제자야.]

그때 무극자 사부가 자신을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저 아이. 근골이 꽤 좋구나.]

무극자 사부는 은근히 칭찬에 인색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칭 고금제일인. 그 어떤 현대의 각성자도 사부의 눈에 차지 않았다.

학교의 최고 고수라는 이사장도 사부에게 이런 칭찬은 듣지 못했는데.

고작 1학년 후배가 사부의 눈에 들었다.

이준이 허수란 녀석을 유심히 보았다.

뜨끔.

자신의 눈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녀석.

슬쩍 내리까는 눈. 조금 지나자 얼굴엔 식은땀이 흘렀다.

녀석이 눈동자를 굴리다가.

“선배님이 화장실을 쓰시고 계신 걸 몰랐습니다. 전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90도로 인사를 박고 후다닥 도망가 버렸다.

“뭐지?”

[네가 눈알을 부라리는 바람에 도망쳤지 않느냐.]

“제가요?”

[그래 이 녀석아. 그러게 살기를 좀 정제하지 그러느냐.]

“살기가 나왔습니까?”

[허. 아직 멀었도다.]

어쩐지 땀을 그렇게 흘리더라.

살기를 조금 더 갈무리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 * *

다음날, 그 다음 날도.

이준은 한지유를 철저히 무시했다.

인내심에 한계가 왔을까.

이젠 하다하다 기습까지 했다.

지금처럼 말이다.

쌔액-

뒤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준이 몸을 살짝 비틀어 피했다.

머리카락이 몇 가닥 잘리며 허공에 나풀거렸다.

“이걸 피해?”

한지유가 커다란 눈으로 이준을 보았다.

기척을 철저히 숨기고 기습한 공격.

그럼에도 이준은 너무도 가볍게 피했다.

이미 공격루트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놀란 한지유를 보고 이준이 화를 냈다.

“죽을 뻔했잖아!”

“안 죽었어.”

그녀를 보며 이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돌+아이.

이기홍처럼 성격이 개차반이던가.

아니면 다른 가문의 자식같이 미래에 악마한테 영혼을 판 놈이던가.

그러면 마음 놓고 두드려 팰 텐데.

아니, 실수.

마이 미스테이크.

여자는 때리면 안 된다고 어머니한테 배웠으니 취소.

아무튼.

저 눈!

지극히 호기심으로 가득 찬, 살기 한 점 없는 눈 때문에 꾹 참았다.

궁금증을 풀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하는데 어떻게 때릴 수 있겠는가.

“착한 내가 참는다.”

이준이 몸을 돌려 가던 길을 갔다.

이후에도 몇 번 기습을 해왔지만.

일관되게 무시하자 제풀에 지쳤는지 기습은 해오지 않았다.

대신 남친에게 집착하듯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왜 나 무시해?”

“무시할 만하니까. 그만 좀 쫓아다녀. 내가 꼭 널 바람맞히는 것 같잖아.”

이준의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한지유가 말까지 더듬었다.

“내, 내가 바람맞아?”

이준도, 한지유도.

이상한 곳에 핀트가 맞았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무극자가 뜨악했다.

[이 아이들을 어찌해야할꼬.]

이준은 그렇다 쳐도, 한지유까지 이상한 강적이다.

제자는 딱 봐도 모태솔로.

하지만 저 아이는?

얼굴도 예뻐 남자 여럿 울렸을 것이 생겼으면서.

제자의 형편없는 말솜씨에 놀아나고 있는 게 아닌가.

무극자는 머리가 아팠다.

이 세상에 이상한 아이들만 있는 것 같았다.

부들부들.

한지유가 입술을 꽉 깨무는 게 이준에게 보였다.

‘망했다. 얘 자존심 무지하게 쌘데. 내가 건드려 버렸어.’

곧 있으면 폭발할 터.

이준이 슬금슬금 뒤로 몸을 뺐다.

그래도 안심이 안됐는지 경공까지 써서 도망쳤다.

이준이 사라진 걸 뒤늦게 안 한지유가

“죽여 버릴 거야!”

눈에 불을 켜고 이준을 쫓아갔다.

* * *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이전 수업에서 끝내지 못한 비무라 한지유가 벼르고 벼렸다.

“죽을 각오 되어있지?”

이준이 태연한 얼굴로 검을 꺼냈다.

“아니. 전혀 안 됐는데.”

“지금 나랑 말장난 하는 거야?”

“응.”

한지유가 이준을 째려봤다.

활활 타오르는 두 눈.

언뜻 살기까지 보였다.

“둘 다 전의가 불타오른 것 같군. 아주 좋은 자세다.”

박재민이 오해를 했다

수업에 대한 열의로 오해를 해 버렸다.

“바로 시작해도 될까요?”

한지유의 목소리는 북풍한설같이 차가웠다.

“좋다. 너희들의 검술을 마음껏 펼쳐 보아라.”

박재민의 허락이 떨어졌다.

한지유가 곧바로 이준을 향해 뛰어들었다.

팟!

엄청난 속도로 이준의 지척에 다다른 한지유였다.

그녀가 검을 사선으로 내리 그었다.

이준의 몸을 비틀어 검을 피했다.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검.

그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손목을 틀어 검의 경로를 바꿨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며 몸을 두 조각내려 했다.

이준이 몸을 뒤로 빼며 칠철참흔을 펼쳤다.

까강깡깡-

순식간에 네 합을 교환했다.

역시 B급 각성자.

한지유가 칠현검법을 이용해 이준을 몰아붙였다.

그는 이번에도 한지유의 검을 막기만 했다.

다만, 다른 이들을 상대할 때와는 달리, 계속 뒤로 밀렸다.

조금씩 버거워졌다.

‘생각보다 강해.’

그녀가 휘두른 검은 쾌검. 검이 안 보일 정도로 빨랐다.

잔상이 남으며, 검이 여러 개로 보였다.

‘그래도 못 막을 건 아니야.’

계속 뒤로 밀렸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한지유의 검술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

‘좋아. 보여.’

한 초식씩 한지유의 검을 파훼해 나갔다.

시간이 계속 흘렀다.

검을 교차하는 합이 길어지자, 급해진 건 한지유였다.

‘이럴 수는 없어.’

그녀가 동요하고 있었다.

이준을 불신 어린 눈으로 보며 검을 휘둘렀다.

까강깡깡깡!

‘내 칠현검법의 약점만 골라서 공격하고 있어.’

칠현검법은 쾌검이다.

하지만 단점이 있다.

아직 미완성의 검법.

완전한 칠현검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쾌검을 펼치면서 중간 중간에 비는 구간이 있다.

이준은 그 찰나의 구간만을 놀렸다.

‘이대로 시간이 더 흐르면 내가 져.’

이준이 적응한 칠현검법이 아닌, 자신이 가장 애용하는 검법을 사용하려 했다.

이준과 검을 교차하며 얼굴이 가까이 맞닿았을 때.

“적엽비검을 사용하려고?”

그의 속삭임에 한지유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내기가 흔들리는 걸 캐치한 이준이 드디어 본 실력을 드러냈다.

웅웅-

그의 검에서 웅장한 떨림이 울렸다.

“검명?”

검과 마음이 통해야지만 난다는 검의 울음소리.

박재민도 A급을 달고 나서야 간신히 낼 수 있는 소리였다.

번쩍임과 동시에 이준이 한지유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의 반대편에 선 이준.

쉬이이익!

뒤늦게 일곱 번의 바람소리가 들렸다.

그 결과.

그녀의 소매와 치마, 옷깃이 잘렸다.

거기서 끝나면 다행.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싹둑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한지유가 이준에 의해 길었던 생머리가 단발이 되어버린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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