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드디어 원하는 창이 떴다.
[군림보를 터득하셨습니다.]
[새로운 항목이 개방됩니다.]
[무극창법이 생성되었습니다.]
이준은 곧이어 닥칠 무극자 사부의 꾸중을 듣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런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머리를 뒤흔드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하하하. 내 이럴 줄 알았다.]
“아, 안 혼내세요?”
[멍청한 제자 놈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도 뛰어난 사부의 덕목이니라.]
“아휴. 다행이다. 전 오늘 내내 잔소리를 들을 준비를 했단 말입니다.”
참 다행이라고 여김과 동시에 아주 찜찜했다.
무극자 사부는 이렇게 관대한 사람이 아니었다.
호통을 쳐도 모자랄 판.
사부의 행동에 스멀스멀 불안감이 올라왔다.
그러면서 오늘 배운 군림보를 눌렀다.
그런데….
“이게 왜!”
[군림보(사용불가)]
등급: B(성장형)
설명: 천마의 군림보가 탐이 난 무극자가 좋은 점만 취합해 만든 보법이자, 신법이다.
무공 성장조건: 모든 능력치 300이상, 내공 600
사용조건: 모든 능력치 180이상, 내공 400
불안감의 정체는 이거였다.
무공 사용 불가.
650,000p를 사용해서 얻은 무공을 사용 못하는 건 최악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능력치에 포인트를 투자하는 게 나았다.
[끌끌. 포인트를 날려 먹었구나. 그러게 이 사부의 말을 듣지 그랬느냐.]
“진작 말씀해 주시지.”
이준이 적반하장으로 나오자.
[가아아아알!]
무극자 사부가 호통을 쳤다.
역시나였다.
언제까지 호통을 안 치시나 했다.
골이 쩌렁쩌렁 울리자 어지럼증을 느꼈다.
두통을 못 참고 두 손을 들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사부님!”
항복을 받고서야 무극자 사부의 호통이 멈췄다.
[큼큼. 오랜만에 큰소리를 질렀더니 목이 아프군.]
“후우우”
이준이 숨을 고르게 쉬었다.
‘무슨 노인네가 목청이 이렇게 크담.’
영혼밖에 없음에도 데미지를 입힐 수 있다니.
다시 한번 무극자 사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루트 창을 안타깝게 봤다.
650,000p나 날리고 남은 건 1,750,000p.
이거라도 잘 써야 한다.
-세상에 회의를 느낀 무극의 길 루트(SS)
은거자(1) - 자연의 벗(0/250,000)
무공(1) - 무극창법(0/3,000,000)
능력치(2) - 힘+15(0/100,000)
∴ 테크트리 포인트 1,750,000p
이준이 창을 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참고로 자신은 선택 장애가 있었다.
결국 무극자 사부에게 도움을 청했다.
“사부님.”
[일없다, 이놈아.]
“이 못난 제자. 사부님의 영민함에 미치지 못한 걸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큼큼.]
조금만 더 아부를 떨면 사부의 기분이 풀릴 것만 같았다.
“다신 사부님의 말씀에 토를 달지 않을 테니 이번 한번만 봐주십시오.”
[정말이냐?]
“맹세합니다.”
[홀홀. 마음씨 좋은 사부를 둔 걸 자랑스러워해야 하느니라.]
“물론입니다.”
사부가 정말 단순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파랑이도 키울 것이니 자연의 벗을 하나 올리는 게 좋겠다. 나머지 포인트는 능력치에 올인하거라.]
이준은 잠시 멍했다.
이렇게 쉬운 거였나?
혹시라도 테크트리를 잘못 탈까 봐 신중하게 생각한 거였는데 사부는 너무도 쉽게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혼자 찍어 볼걸.’
괜히 겁먹어서 고민한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이준은 사부가 말한 대로 테크트리를 찍어갔다.
[특성 자연의 벗을 획득하셨습니다.]
[모든 속성 친화력이 +20%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항목이 개방됩니다.]
[대자연의 축복이 생성되었습니다.]
남은 포인트는 1,500,000p.
올릴 수 있는 스탯은 총 12개.
군림보의 사용 조건을 애매하게 충족시키지 못했다.
“능력치를 180에 최대한 맞춰야겠다.”
[신체 +15를 획득하였습니다.]
[새로운 항목이 개방됩니다.]
[민첩 +15(100,000)가 생성되었습니다.]
[체력 +15…….]
특수항목 능력치를 뺀, 기본 능력치를 세 개씩 올렸다.
남은 포인트는 300,000p.
그 많던 포인트가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곧바로 상태창을 열어 확인했다.
[기본 정보]
칭호: 은거자의 막내제자 (외1)
이름: 이준
나이: 18
잠재력: 등급 외
고유 스킬: 혼원신공(SSS), 군림보(B)(사용불가)
일반 스킬: 흡혈마공(A), 천왕보(B), 패권(B), 십보신권(C), 비룡신법(C), 만독수(C), 칠절참흔(C), 연환창법(C)
특성: +세상에 회의를 느낀 무극의 길 루트(??), 청호 보금자리의 주인(S)(외1)
∴테크트리 포인트 300,000p
[능력치]
체력: 146/300
신체: 148/300
힘: 185/300
민첩: 150/300
-특수항목-
내공: 450/1000
정신력: 300/300
-상태-
전투력 +10%, 모든 속성 친화력 +20%
군림보를 사용하기 위한 능력치 중 힘 스탯만 충족시켰다.
대충 남은 포인트는 300,000p.
퀘스트만 받으면 바로 군림보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 듯했다.
“휴. 힘들었다.”
이준이 침대에 대짜로 뻗었다.
테크트리를 다 찍는 순간 긴장이 풀렸다.
잠이 솔솔 몰려왔다.
“사부님 저 좀 자겠습니다.”
이준의 눈이 감기면서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 * *
주말이라 이준은 11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으아아함. 잘 잤다.”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기지개를 펴다가 깜빡 잊어버린 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지? 내가 뭘 잊어버린 걸까?”
그러다 문득 고개를 옆으로 옮겼다.
“맞다. 파랑이가 있었지!”
이준이 이불을 걷어차며 머리맡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낑낑.”
파랑이가 혼자 낑낑거리고 있었다.
녀석은 아직 새끼였다.
혼자 사냥할 능력이 전무해 먹을 걸 구할 수 없었다.
손수 먹이를 줘야 한다는 말.
자신의 머리를 한대 쥐어박았다.
“이 멍청한 놈아.”
자책하며 파랑이를 달랬다.
“미안, 미안. 형이 빨리 밥 줄게.”
파랑이를 달래며 무극자 사부를 불렀다.
“사부님. 파랑이는 꼬물이니까 우유를 먹겠죠?”
[그러지 않겠느냐.]
사실 무극자도 동물이나, 아이를 키워 본 적이 없었다.
다 큰 성인이면 모를까.
그래서인지 언제나 확신에 찬 대답을 하던 사부도 애매하게 말했다.
“우유 사러 나갔다 와야겠습니다.”
냉장고엔 파랑이가 먹을 게 딱히 없었다.
우유를 사러 밖으로 나가려 옷을 챙기자.
“뀨우뀨우.”
파랑이가 울어댔다.
[너와 떨어지기 싫은가보구나.]
“그럼 같이 갈까?”
파랑이를 품에 집어넣으려는 순간.
똑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파랑이를 숨겼다.
“누구십니까?”
“학교 이사장님의 비서입니다.”
“이사장님의 비서요?”
이준이 방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스무 살 중반으로 보이는 단발머리 여자가 서 있었다.
“이준 학생 되십니까?”
“네. 제가 이준인데 왜 그러시죠?”
“이사장님께서 잠시 이준 학생을 뵈었으면 합니다.”
“저를 말입니까?”
이사장이 자신을 찾을 일이 뭐가 있을까.
전생에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던 사람. 현생에선 청문회장에서 본 이후로 처음이다.
‘게이트 때문에 부른 거겠죠?’
[아마도 그럴 게다.]
‘만날 필요 없겠네요.’
이사장을 만나면 귀찮을 일만 생길 것 같아 피하기로 했다.
“제게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 못 따라갑니다.”
이준이 비서를 피해 나가려는데 그녀가 팔을 붙잡았다.
“이사장님을 만나시는 것보다 급하십니까?”
당연하지.
우리 파랑이가 어제부터 쫄쫄 꿇었다.
이것 때문에 파랑이가 죽으면 책임이라도 질 텐가.
자신에게 지금 제일 중요한 일은 편의점에서 파랑이의 우유를 사는 일이었다.
“네. 다음에 뵈자고 전해 주세요.”
이준이 그녀의 손을 가볍게 뿌리치고,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이사장의 비서.
남아영이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분명 강하게 붙잡았는데, 내 손을 벗어났어?’
그녀도 각성자였다.
명문가의 자식은 아니지만, B급 각성자. 학교 내에서 그녀의 손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이기홍을 이겼다지만 그래봤자 D급.
좋게 봐줘도 C급 각성자는 자신을 이기지 못했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격차는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니까.
‘우연이겠지.’
남아영이 정신을 차리고 이준의 뒤를 따라갔다.
* * *
“오늘우유랑, 도시우유 중 뭘 사지?”
이준이 두개의 브랜드를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이사장의 비서라는 여자가 도시우유를 집어 들었다.
“이게 맛있습니다.”
“할일 없어요? 편의점까지 따라오셨네.”
“이사장님보다 중요한 일이 편의점 오는 것이었습니까?”
“의식주만큼 중요한 게 어딨어요?”
[옳지. 말 한번 잘하는구나.]
무극자 사부가 박수를 치며 자신의 말에 동조했다.
남아영의 얼굴은 상당히 굳어 있었다.
화를 참고 있는 듯했다.
“그러면 이것만 사고 저와 이사장님 실로 같이 가시죠.”
“제가 또 다른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이준이 도시우유를 집고, 참치통조림도 한껏 쓸어 담았다.
파랑이에게 줄 먹이와 자신이 먹을 간식까지 넣었다.
계산대에 놓인 장바구니에서 포스기의 소리가 계속 울렸다.
“총 10만 8천원 입니다.”
많이도 나왔다.
뭐, 최소 1억짜리 B급 마정석을 얻어서 장바구니에 막 담은 느낌도 있지만.
“잠시만요.”
이준이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점원에게 건네줬다.
삑.
-사용 불가 카드입니다.
라고 기계가 친절히 말해 주는 게 아닌가.
“저기 학생, 한도 초과 같은데요?”
“어?”
이준은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졌다.
[돈 없느냐?]
‘10만원은 있을 줄 알았는데.’
[남자는 주머니에 돈이 두둑해야하느니라.]
현재 가지고 있는 건 마정석뿐, 현금이 없었다.
‘어쩌지?’
[어쩌긴 뭘 어쩌냐. 돈이 없으면 마정석이라도 팔아야지. 그거 돈 꽤 나온다면서?]
‘정말 팔아도 됩니까? 내공으로 변환시키지 않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네 현재 실력은 초일류에 도달해 있다. 경험도 청호를 잡으면서 쌓았고, 내공은 충분하니 돈으로 바꿔도 된다. 정 안되면 다른 게이트를 찾아서 마기를 흡수하면 되느니라.]
돈은 마정석을 팔면 마련할 수 있고, 지금이 문제다.
잠깐 나가서 마정석을 돈으로 바꿔 올까 생각하다가 뒤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이사장 비서가 자신의 카드를 내밀었다.
“이럴 필요 없는데….”
“잠깐만 시간을 내 주시면 됩니다.”
이번엔 비서가 강압적으로 안 나왔다.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정중하게 부탁했다.
여자의 부탁을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지.
“좋습니다. 이사장님을 뵈면 되죠?”
“예. 이준 학생을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가시죠. 이사장실에 가기 전에 잠깐 제 방에 들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 * *
이준은 편의점을 나와 자신의 방으로 갔다.
파랑이를 보금자리에 내려놓고, 우유를 따라 주었다.
“맛있게 먹고 있어.”
파랑이가 허겁지겁 우유를 먹는 모습을 보고 방을 나섰다.
방 밖에서는 이사장의 비서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준이 그녀를 향해.
“대신 결제해 줘서 마음 돌린 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결코 돈에 굴복해서가 아니다.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 대한 예의.
융통성이라 해두자.
남아영은 앞서가는 이준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그녀가 아는 정보들과 다 일치했다.
‘D급 각성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그런데 아까의 힘은 뭐였지?’
분명 힘을 주어 잡았다.
이준이 저항 못하게끔 처음부터 강하게 나갔는데 가뿐히 뿌리쳤다.
D급 각성자가 B급 각성자의 손을 뿌리친다?
우연이라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착각인가?’
남아영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이사장실 앞에 도착했다.
그녀가 앞으로 나가 문을 두드렸다.
“이사장님. 남아영입니다. 이준 학생을 데려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안쪽에선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컥-
남아영이 문을 열어 이준을 안쪽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이준은 살짝 인사를 하고 이사장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