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어어?”
공중에 붕 뜬 그가 게이트 밖으로 튕겨 나갔다.
“억!”
창고 문에 부딪히기 전 비서가 재빨리 그를 잡았다.
비서도 이미 한차례 겪어 본 듯한 모양새였다.
“괜찮으십니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보시는 바와 같이 게이트가 클리어 된 게 아니라 정화가 되었습니다.”
한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직접 봐서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네. 게이트에 주인이 있다는 게 요점입니다.”
“남 비서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저도 믿기지 않았습니다.
남 비서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한민성의 오른팔이자, B급 각성자였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그녀조차도 이번과 같은 일은 생전 처음이었다.
몬스터가 없는 게이트.
공중의 마기가 정화된 상태.
이 두 개만 조합해도 알 수 있다.
누가 청호 보금자리를 클리어 했다는 것을.
게이트의 주인은 누구일까.
청호 말고 다른 몬스터일까 아니면 각성자일까.
수십 번을 고민한 남 비서였다.
하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각성자가 게이트의 주인이 된 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진다면 난리가 날 거예요.”
“저밖에 모르니 안심하십시오.”
“그건 다행이군요. 누가 이랬는지 찾아봤어요?”
오행진을 뚫은 건 백번 양보할 수 있었다.
하나, 그린 존 게이트를 클리어한 건 또 다른 이야기다.
무림 사관 고등학교 학생 중에는 이곳을 클리어 할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건 철혈검가의 검룡뿐. 하지만 그라도 혼자서는 무리였다.
여긴 일반 그린 존 게이트가 아니었으니까.
그린 존 게이트를 학교 지하 창고에 그대로 두고 오행진을 설치한 건 보스 몬스터 때문.
이 안에 있던 청호란 몬스터는 레드급 레벨과 비슷했다.
가문의 정예 요원이 아니면 깰 수 없는 게이트였다.
그린 존 게이트를 깬다고 정예 요원을 투입한다?
인력 낭비였다.
보상도 형편없었다.
그린 존 게이트는 무공서가 거의 안 나오는 셈.
블루 존 게이트부터 무공서가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
그 시간에 블루 존 이상의 게이트를 클리어 하는 게 각성자들에게 도움이 됐다.
결론은 수지 타산이 안 맞는 셈.
그 때문에 청호 보금자리는 오행진으로 막아 뒀다.
이 안의 보스 몬스터는 건들지 않으면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니까.
그런 게이트를 누군가가 깨 버렸다.
“그게….”
남 비서가 뜸 들였다.
“말해 보세요. 어느 가문에서 파견 나왔어요?”
“낙오자란 학생입니다….”
“누구?”
한민성이 재차 반문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닐까.
비서가 착각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신력권가의 서자인 이준이라는 학생입니다.”
“으음….”
한민성이 침음을 흘렸다.
처음 이준을 보았을 때의 든 생각은 평범했다.
자신의 기세를 받아냈을 때는 놀라웠고, 마지막엔 두려웠다.
이준의 천재적인 재능을 봤으니까.
“이준 학생이 확실해요?”
“CCTV에 이준 학생 말고 찍힌 사람이 없습니다.”
“잠깐 들렸다 간 걸 수도 있지 않아요? 그린 존 게이트지만, 안에 레드 급 보스 몬스터가 사는 걸 학생들도 알 텐데요.”
청문회장에서 본 이준이라도 무리라 여겼다.
이준이 보여 준 기세는 어디까지나 잠재적인 능력. 아직은 D급 각성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여긴 학생들이 깰 만한 레벨이 아니에요.”
“이준 학생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게이트가 클리어된 후였습니다.”
CCTV는 자꾸 이준을 가리켰다.
무엇보다 현장에 설치된 CCTV는 일반 감시카메라가 아니다.
대 각성자용 첨단 카메라.
은신술에 뛰어난 살수와 범죄자를 알아내기 위해 신기지가에서 손수 만든 장비였다.
그런 CCTV에 이준이 잡힌 것이다.
남 비서도 이 사실을 확인하고 얼마나 기가 찼는지.
헛웃음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한민성이 혼자 중얼거렸다.
중요 게이트가 클리어 됐으면 가문연맹에 보고해야 한다.
과연 그들은 자신이 한 보고를 믿을까?
한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확인부터 해야겠어요. 이준 학생을 내 방으로 데려오세요.”
“예.”
한민성이 남 비서에게 명령을 내리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 * *
이준이 방으로 돌아와서 한 일은 파랑이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거였다.
“사부님 어때요?”
파랑이 집으로 선택한 건 다름 아닌 책상 아래였다.
[제자야. 동물은 한 번도 안 키워 봤느냐?]
“예 처음입니다.”
[짐승들은 외진 곳을 좋아한다. 거긴 너무 탁 트인 곳이니라. 네 침상 머리맡이 어떻겠느냐.]
두 주먹을 넣을 수 있는 공간.
확실히 햇빛도 잘 안 들어왔으며 외졌다.
“그러면 사부님 말씀대로 여기가 좋겠습니다.”
파랑이의 보금자리가 정해졌다.
“뀨우.”
녀석도 좋은지 목소리를 내며 몸을 쿠션에 비볐다.
그러다 스르륵 잠이 드는 게 아닌가.
이준이 파랑이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때였다.
깨톡! 깨톡! 깨톡!
스마트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파랑이가 깰까 봐 다급하게 무음으로 변경했다.
“휴우우우.”
파랑이가 기지개를 피고 다시 잠들었다.
“어떤 놈이 깨톡질이야.”
그동안 깨톡이 울린 적이 있던가.
단연코 없었다.
항상 외톨이었던 자신이다.
딱 한 명뿐인 절친한 친구 말곤 딱히 연락 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파랑이의 잠을 깨우려고 한 괘씸한 놈이 누군지 보려고 폰을 들었는데.
“악!”
화들짝 놀라며 폰을 침대에 떨어트렸다.
“뀨우웅.”
잠을 자던 파랑이가 슬며시 눈을 떠버렸다. 깨톡 소리 때문도 아니고 자신의 비명 때문에 말이다.
[빌어먹을 제자야. 파랑이가 잠에서 깼지 않느냐.]
“미, 미안. 어서 다시 자.”
이준이 파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의 손길이라 생각한 건지.
“뀨웅.”
작게 숨을 쉬다가 이내 다시 잠에 빠져든 파랑이었다.
그리곤 이준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냈다.
“진정하자 준아.”
웅웅.
계속 진동이 울리는 스마트폰을 떨리는 손으로 집었다.
그리고 화면을 클릭하자 깨톡창이 보였다.
은비 ▶ 준아. 오늘도 수고했어.
은비 ▶ 힘들었을 텐데 주말에는 쉬어.
같은 반인 박은비의 깨톡이었다.
절친인 박혁진 말고 여자에게 깨톡을 받아본 건 처음이다.
대체 이게 뭐라고!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릴까.
정말 설렜다.
찰싹!
이준이 손으로 자신의 뺨을 때렸다.
“이준. 정신 차려. 네가 한눈팔 때야?”
가문에 버림받고 쓰레기처럼 살다가 죽었다.
이제야 혼원신공이란 희대의 무공과 무극자 사부의 도움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됐다.
정신 차리라고 혼자 채찍질을 하고 있는데.
[제자야.]
“예. 사부님.”
[하나만 하거라.]
“뭘 말입니까?”
[채찍질을 하든지 아니면 스마트폰을 놓든지.]
이준의 손엔 어느새 폰이 들려 있었다.
심지어 깨톡 채팅을 치고 있는 게 아닌가.
마음과 행동이 따로 놀았다.
“이, 이런 적은 처음이라….”
[괜찮다. 인기가 없다 있으면 원래 정신이 나갈 수밖에 없느니라. 물론 사부는 처음부터 여인들에게 인기가 있어 네 심정을 잘 모르나, 제자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중이니라.]
무극자 사부가 아예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기왕 받은 관심 마음껏 즐겨 보라는 말투였다.
그렇다고 사부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이해해 줘 고마웠다.
이준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 채 깨톡에 답변해 주고 있었다.
[녀석. 마음이 어두워질 법도 하건만. 밝아서 좋구나.]
주변의 상황은 이준을 복수귀로 만들기 충분했다.
혈족 계승의 실패.
가족의 버림.
주변의 따돌림.
이 모든 게 이준이 겪었던 상황이었다.
다시 태어나 힘을 갖춘다면 복수귀가 되어 주변은 물론, 자신까지 파멸로 이끌 수 있을 정도로 이준의 상황은 안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은 마음을 컨트롤했다.
참고 또 참고.
최대한 밝은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다.
지금과 같이 어벙할 때도 있지만 그 모습이 좋았다.
적어도 복수를 위해 자신마저 파멸하진 않을 테니까.
[첫째같이 복수귀가 되는 것보단 이편이 낫지.]
악마의 재능을 타고난 천재가 복수에 미쳐 눈이 돌아간다면 어떨까.
세상에 재앙을 몰고 올 것이다.
이준도 첫째 제자와 똑같은 천재였다.
이준만큼은 첫째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랐다.
* * *
깨톡을 다 보낸 이준이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끝났다. 이제 마지막 일만 남았네.”
몸이 날아갈 듯 가뿐했다.
환골탈태 전 내공의 그릇이 작은 호수 같았다면, 현재는 태평양이 되었다.
내공의 흐름 또한 막힘이 없었고.
자신이 강해졌다는 걸 상태창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는데, 변한 수치가 내심 궁금했다.
손을 내리 그어 홀로그램을 보았다.
“…….”
[제자야? 왜 말이 없느냐?]
“이, 이게 뭡니까!?”
이준의 눈이 앞으로 튀어나올 듯 커졌다.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이 수치가 정말로 맞는지 말이다.
[기본 정보]
칭호: 은거자의 막내제자 (외1)
이름: 이준
나이: 18
잠재력: 등급 외
고유 스킬: 혼원신공(SSS)
일반 스킬: 흡혈마공(A), 천왕보(B), 패권(B), 십보신권(C), 비룡신법(C), 만독수(C), 칠절참흔(C), 연환창법(C)
특성: +세상에 회의를 느낀 무극의 길 루트(??), 청호 보금자리의 주인(S)
∴테크트리 포인트 2,400,000p
[능력치]
체력: 101/300
신체: 103/300
힘: 145/300
민첩: 105/300
-특수항목-
내공: 450/1000
정신력: 300/300
-상태-
전투력 +10%
알려진 바로는 AA급 각성자의 스탯 최대치가 300이었다.
그것도 오왕이라는 각 가문의 가주들이 말이다.
“내가… 그들과 스탯 최대치가 같다니.”
혹시 오류가 있나 껐다 켜 보았지만 똑같았다.
“미쳤어….”
[뭘 그리 넋 놓고 보고 있느냐.]
“사부님 이건 기적입니다. 제가 AA급 각성자의 스탯 최대치와 같다고요!”
잠재력 등급이 AA급은 된다는 말.
노력만 하면 오왕과 같은 서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소리였다.
이준의 호들갑에도 무극자는 심드렁했다. 뭘 그런 것 가지고 놀라고 있냐는 목소리였다.
[내 제자니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어서 테크트리나 올리거라.]
“포인트도 있었지!”
2,400,000p.
이걸 다 투자한다면 C급에서 단번에 B급 각성자로 올라설지 모른다.
한 발짝.
오직 자신의 힘으로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 게 멀지 않았다.
자신을 버린 가문에 복수는 덤이었다.
‘할 수 있어.’
그때가 된다면 원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리라.
재차 다짐하고 무공 루트를 열었다.
-세상에 회의를 느낀 무극의 길 루트(??)
은거자(1) - 자연의 벗(0/250,000)
무공(0) - 군림보(0/650,000)
능력치(2) - 힘+15(0/100,000)
∴테크트리 포인트 2,400,000p
“포인트가 많아도 고민입니다. 흠… 무공부터 찍어 봐도 되겠습니까?”
[현재 네 몸 상태로는 군림보를 배운다 하더라도 몸만 망가진다. 우선 은거자랑 능력치 항목부터 올리는 게 어떻겠느냐.]
아니 얼마나 대단한 무공이길래 자꾸 안 된다고 하는지.
그러니까 더 호기심이 생겼다.
이준이 슬쩍 무공 항목으로 손을 가져다 대자.
[가아아알! 이 사부의 말이 말 같지 않은 것이냐.]
여지없이 무극자 사부의 호통이 들려왔다. 이준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게 아니고요. 사부님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큼큼. 암. 대단하고말고. 내 말년에 은거해서 만든 무공이 다 여기에 수록되어 있느니라. 참고로….]
무극자 사부가 자신의 얼굴에 또 금칠하고 있었다.
사부가 방심을 하는 이때!
재빨리 군림보를 광클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