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무슨 도박이요?”
이준은 이제 무극자의 성격을 대충 파악했다.
사부가 갑자기 생각을 바꾸던지, 뜸을 들이면 꼭 커다란 일이 벌어졌다.
불꽃 호리를 상대로 천왕보를 수련한 것도 그렇고, 청호에게 자신을 던져 준 것도 그렇고.
무리한 요구긴 했으나 성과 하나는 기막혔다.
이준이 호기심을 드러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공기 중에 떠도는 혼탁한 기운. 흡혈마공으로 먹고 싶지 않느냐? 만약 이 게이트의 기운을 먹을 수만 있다면 흡혈마공이 단숨에 4성의 경지를 밟을 수 있느니라.]
“공기 중에 떠도는 마기도 흡혈마공으로 흡수할 수 있습니까?”
이준이 입을 떡 벌렸다.
게이트에 퍼진 마기의 양은 상당했다.
흡수할 수만 있다면 영약 그 자체.
지금껏 흡수한 불꽃 호리보다 더한 영양제였다. 어쩌면 B급 마정석보다도 괜찮을지 모른다.
[흡혈마공만 있으면 불가능했을 테지만, 혼원신공까지 있으니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부님.”
[말해 보아라.]
“이게 왜 도박이라 말씀하신 겁니까?”
[현재 네가 먹어 치운 기운도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거기에 더해 그와 비슷한 양의 기운을 더 흡수한다면 십중팔구 탈이 날 게 뻔하다. 이것도 다 사부가 만든 혼원신공 덕분에 네가 미치지 않고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니라.]
무극자 사부는 자기가 만든 혼원신공의 자랑을 빼놓지 않았다.
틀린 말도 아니지.
지금도 내부에선 혼원신공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흡수한 불꽃 호리의 기운을 정화하고 있었다.
경이로울 지경.
이런 다재다능한 심법 같은 게 과연 또 존재할까.
사부의 말을 순순히 인정하며 모래에 앉았다.
“시작하겠습니다.”
[정신 단단히 붙잡아라.]
* * *
[흡혈마공으로 소량의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흡혈마공이 4성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혼원신공이 4성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
……
이준이 게이트에 퍼진 마기를 흡수한 지 사흘.
공기 중에 흩어져 있던 마기도 어느새 거의 사라졌다.
마기가 사라지니, 리젠 되었던 불꽃 호리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허허. 신체도 별로고 무공에 대한 재능도 없는 놈이 성장 속도는 기가 막히는구나.]
혼원신공이 절세의 신공인 건 인정한다.
왜?
고금제일인인 자신이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좋은 심법이라도 몸에 맞지 않으면 소용없었다.
놈은 어떤가.
딱 맞은 사이즈의 옷을 입은 것처럼.
너무도 잘 어울렸다.
[혼원신공을 처음 운용하고 무아지경에 빠졌을 때 긴가민가했거늘.]
지금도 흡혈마공으로 공기 중의 마기를 빨아들이고 혼원신공으로 정화했다.
이미 내공이 포화하고도 남았을 법한 시간과 양.
그런데 탈도 안 나고 계속 빨아들였다.
[체력 스탯이 최고치에 도달했습니다.]
[신체 스탯이 최고치에 도달했습니다.]
[힘 스탯이…….]
[민첩 스탯이…….]
[정신력 스탯이…….]
이준의 전신 모공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허. 이젠 일류의 벽까지 깨려고 하는구나.]
무극자가 혀를 내둘렀다.
자신이 봤던 많은 인재들.
걔 중에는 10대 천마와 14대 달마도 있었으나, 단연 으뜸은 자신의 첫 번째 제자였다.
천년에 한 명꼴로 나올까 말까 할 악마의 재능.
그놈의 재능과 이준의 재능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확실히 난 놈이야.]
무극자가 이준을 극찬했으나, 이준은 그 칭찬을 듣지 못했다.
처음 혼원신공을 운용했을 때처럼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였다.
전신 모공에서 검은 노폐물이 계속 흘러 나왔다.
그러다.
우득-
근육이 꺾이는 소리가 났다.
“억…!”
이준이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참아야 되느니라. 절대 신음을 흘려선 안 돼.]
“크으읍….”
이준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전까지만 해도 하늘을 날아갈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온몸이 뒤틀리는 통증이 전신을 강타했다.
여기서 신음을 내뱉으면 정말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아 본능적으로 참았다.
“크윽….”
그럼에도 조금씩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의 피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수분이 없는 토양같이 딱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우두둑-
우두두둑-
뼈가 꺾이고 부러졌다.
가루가 되어 재생되길 반복했다.
이준의 정신은 아득해졌다.
평생 느껴 보지 못한 고통.
몸을 검이 관통했을 때보다, 죽음을 앞뒀을 때보다 더 아팠다.
적어도 그때는 주마등이라도 있었으니까.
시간은 계속 흘렀다.
이준의 얼굴은 여전히 일그러져 있었으나 전보단 혈색이 나아보였다.
그의 아래는 피부 껍질이 후두둑 떨어져 있었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은 것처럼.
“후우우우.”
이준이 숨을 크게 들이쉬다가 눈을 떴다.
번쩍!
눈이 회색빛으로 빛나다가 이내 사라졌다.
[어떠하냐.]
죽을 것만 같았던 고통은 사라지고, 몸은 한결 가벼웠다.
“죽다 살아난 기분이에요.”
[입이 살아 있는 걸 보니, 견딜 만했구나.]
이준이 해맑게 웃었다.
내공이 전보다 더 원활하게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몸도 무척 가벼워졌고, 감각도 더 발달되어 있었다.
현재의 기분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미친 듯이 울려대는 알림음에 허공에 손을 내리 그었다.
홀로그램이 떴다.
이준은 잠시 멍을 때리다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악!”
[귀청 떨어지겠다 이놈아.]
“제, 제 모습이 왜 이래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홀로그램에 비춰진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자리에서도 일어났다.
안 그래도 컸던 키. 3cm는 더 큰 것 같았다.
그뿐인가. 피부는 여자보다 더 깨끗했다. 갓 새살이 돋은, 아기 피부라고 해야 할까.
“미쳤다.”
[이 정도 자아도취는 심히 큰 병이니라.]
무극자가 홀로 중얼거렸다.
변한 모습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드디어 메시지로 시선을 옮겼다.
[환골탈태를 마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의 상한선이 조정되었습니다.]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해 테크트리 포인트 500,000p가 지급되었습니다.]
……
……
[메인 퀘스트2 - 은거자의 수련이 생성되었습니다.]
……
……
메시지를 내려도 끝날 생각이 없었다.
아래로 쭉 내리다가 이내 손을 멈췄다.
[홀홀. 이게 다 사부가 수련을 가자고 해서 얻은 성과이니라.]
보상에 무극자가 숟가락을 얹었다.
기분이 좋아진 이준이 연신 무극자를 치켜세워 줬다.
그러면서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확대시켰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글자들.
학교 수업이나 뉴스에서도 보지 못한 메시지였다.
[게이트에 퍼진 마기를 전부 흡수했습니다.]
[게이트를 최초로 정화한 자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테크트리 포인트 25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청호 보금자리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특성 청호 보금자리의 주인을 획득하셨습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이준이 특성을 클릭했다.
[청호 보금자리의 주인(S)]
청호의 성격은 음흉하지만, 주인을 따르는 충성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주인이 어떻게 키우냐에 따라서 성격이 정해집니다.
특권: 청호 새끼, 게이트 소환.
이준이 홀로그램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보상도 눈에 안 들어올 지경이었다.
“게이트의… 주인….”
이준은 뭐에 홀린 듯 혼자 중얼거렸다.
말이 되는가?
인간이 게이트의 주인이 됐다.
그것도 자신이 말이다.
죽기 전에도 이런 허무맹랑한 소리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믿기 힘든 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때, 눈앞에 하얀 빛이 반짝였다.
눈부신 빛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시야를 가렸던 빛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동물이 있었다.
“뀨.”
이준을 어미로 착각한 건지.
잘 걷지도 못하면서 엉금엉금 기어와 이준의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헉! 엄청 귀엽다.”
이준이 허리를 숙여 새끼 청호를 들어올렸다.
“뀨.”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녀석이 울어댔다.
[허. 그놈 참으로 귀엽구나.]
무극자 사부 또한 자신과 같이 감탄을 했다.
귀여운 새끼 청호에 정신이 팔렸다.
게이트 주인이 됐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문득 새끼 청호가 몬스터라는 생각이 들자 흠칫했다.
“이렇게 귀여운 애가 다 크면 사납게 변한다고?”
자신이 죽였던 청호와는 달리, 새끼는 꼬물이처럼 앙증맞았다.
이래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끼우는 걸까.
꼬물이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준이 새끼 청호를 내려놓을 생각을 안 했다.
신기한 건 또 있었다.
꼬리가 7개가 아니라는 것.
가느다란 꼬리가 9개도 아닌 10개.
물론 이준은 새끼 청호의 귀여움에 정신을 팔려 이 부분을 놓쳤다.
[이름이라도 지어 줘야 하지 않느냐.]
“음….”
어떤 이름으로 지어 줘야 잘 지었다고 칭찬 받을까.
이준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잠시 후. 이름을 떠올린 그가 자신 있게 말했다.
“파랑이 어떠십니까?”
참고로 새끼 청호는 파랬다.
죽였던 청호 역시 파랬고.
[…….]
자신의 말에 무극자 사부가 조용해졌다. 작명 센스에 감명이라도 받으셨나.
“사부님?”
[…제자야 그게 최선이냐?]
“마음에 안 드세요?”
진심 어린 표정으로 사부에게 물었다.
[아니다. 네 뜻대로 부르거라.]
무극자는 제자의 뜻을 말릴 수 없다는 듯 그냥 포기해 버렸다.
“뀨우.”
새끼 청호가 격렬하게 울어댔다.
그 이름만은 하기 싫다는 듯 말이다.
새끼 청호의 울음에 이준은 단단히 착각을 해 버렸다.
“너도 이름이 마음에 들었구나.”
새끼 청호의 얼굴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녀석의 기분 따위는 무시한 이준이 싱긋 웃었다.
자신의 네이밍 센스에 혼자 감탄하며 파랑이가 된 새끼 청호를 쓰다듬었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파랑아.”
인간이 레드 존 급 몬스터를 길들이게 된 전대미문의 사건.
훗날, 이 때문에 몬스터를 길들이는 야수공이 최고의 주가를 달렸다.
자신들도 한 번 레드 급 몬스터를 키워 보려고 말이다.
* * *
무림 사관 고등학교 이사장실.
한민성이 수건으로 난을 애지중지하게 닦고 있었다.
벌컥!
이사장실의 문이 열리며 비서가 불쑥 들어왔다.
그녀를 본 한민성의 눈썹이 휘어졌다.
“무슨 일인가요?”
“지, 지하에 있던 게, 게이트가 클리어 됐습니다.”
“다시 말해 주겠어요?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청호의 보금자리가 클리어 됐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뭐라고요? 그게 사실이에요?”
“확인하고 올라오는 길입니다.”
난을 가꾸고 있던 그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우지끈 소리가 나며 난이 찌그러졌다.
“제가 직접 확인해야겠어요.”
한민성이 들고 있는 수건을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고 이사장실을 나갔다.
그의 걸음은 급했다.
‘오행진이 뚫렸다니!’
가문에서 내로라하는 정예가 오지 않는 이상 오행진을 뚫을 수 없다 자부했다.
오행진은 신기지가에서 자랑하는 결계, 힘으로 억지로 뚫을 수 없는 진법이다.
파훼법은 단 하나.
생문을 찾는 것.
생문을 찾으려면 오행진을 펼친 자의 특성을 잘 알아야 했기에 깨는 게 쉽지 않았다.
B급 각성자에게 오행진을 파훼 하라고 시킨 적이 있었다.
허나 깨기는커녕 오행진 안에서 내공을 다 쓰고 탈진한 일이 있었다.
‘오행진의 특징을 잘 알지 않은 이상 파훼하는 건 어려워.’
오행진이 쳐진 게이트를 직접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기에 지하 창고로 갔다.
계단으로 내려온 한민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결계가 뚫렸어?”
믿기지 않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지하창고 문에는 찢어진 부적 한 장이 붙여져 있었다.
창고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민성의 눈에 보이는 하나의 포탈.
“게이트가… 있어?”
“들어가 보시면 알 겁니다.”
그녀의 말에 한민성이 게이트 안으로 직접 들어갔다.
그의 눈에 보이는 광경.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이 동공에 들어왔다.
“마기로 가득 찼던 게이트의 공기가 깨끗해!”
게이트가 클리어 됐다 하더라도 청호 보금자리는 리젠 게이트였다.
공기 중에 마기가 떠돌아다녀야 정상이다. 한데 게이트 밖 공기와 다를 바 없이 아주 깨끗하지 않나.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주위를 둘러봤다.
마기는 물론 몬스터 또한 없었다.
게이트를 조사하려고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청호 보금자리의 주인이 아닙니다.]
[허락되지 않은 외부인을 감지했습니다.]
[해당 인원을 강제 추방합니다.]
이런 메시지가 뜸과 동시에 게이트 입구에서 한민성의 신형을 잡아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