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무극자도 의문이었다.
둔재라면 둔재고, 천재라면 천재여야 하는데.
둔재라고 생각했던 이준은 천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는 무공을 솜처럼 흡수하는 천마지체도, 그렇다고 하늘의 재능을 타고난 천무지체도 아니었다.
[이런 놈은 또 처음 보는구나.]
긴 세월을 살아온 무극자도 이준은 마냥 신기했다.
무극자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준은 자신이 궁금한 걸 차경진에게 물어봤다.
“선생님. 내공을 무턱대고 주입했더니 공기 중에 권경이 터지던데, 십보신권의 핵심은 내공의 양 조절인가요?”
차경진이 다시 한번 놀랐다.
이준이 십보신권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었기 때문.
십보신권은 백보신권의 경이로운 내공 조절을 몇 단계 낮추어 만든 무공이다.
“마, 맞아요. 내공 컨트롤을 잘해야 권기가 제대로 나갈 수 있어요.”
차경진은 말하면서도 두 눈동자가 좌우로 떨렸다.
“다시… 십보신권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어렵지 않죠.”
이준이 마보를 한 채 정권자세를 취했다.
쿠웅.
디딤 발이 기류에 휩싸였다.
주먹에도 비슷한 바람이 회오리치며 한곳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자.
펑-!
주먹에서 내보내 달라고 아우성치는 기운이 일제히 빠져나와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가 땅에 폭사했다.
“이럴… 수가!”
차경진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준은 그녀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한 건지.
“성공했다.”
기분 좋은 듯 해맑게 웃고 있었다.
[십보신권을 익히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십보신권이 일반 스킬에 등록됩니다.]
죽기 전에는 가문의 무공은 물론, 거저 주는 학교의 무공조차 익히지 못했다.
지금 와서는 이렇게 구결을 본 것만으로 따라할 수 있게 됐다.
모든 게 무극자 사부님 덕이었다.
[그래도 아주 머저리는 아니구나.]
마음과는 달리 다른 말을 하는 무극자였다.
* * *
이준은 권법 수련에서만 두각을 나타내는 게 아니었다.
신법, 검법, 창법.
심지어 독공에도 조예가 깊었다.
담당 선생들 모두가 차경진과 같은 반응이었다. 처음엔 놀랐고, 다음은 이준을 괴물 보듯 봤다.
희대의 천재라 불린 검룡.
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칭찬했다.
그때부터 선생들은 이준을 귀찮게 했다.
학교의 공용 무공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무공을 전수해 주겠다고 서로 난리였다.
그들을 피해 도망 온 이준은 운동장 스탠드에 널브러졌다.
“하, 왜 이렇게 귀찮게 하는 거야.”
여기서 조금만 숨을 돌렸다가 구석진 곳으로 숨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기척을 느꼈다.
“여기가 이준 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가요?”
나타난 인물은 차경진이었다.
이준이 누워 있었던 상체를 일으켰다.
“그냥 선생님들 피해서 잠깐 쉬고 있었어요.”
차경진이 음료수를 내밀며 옆에 앉았다.
“수업은 재밌어요?”
“권법 수업 말씀하시는 거예요?”
“전부 다요.”
“재밌어요. 배울 때마다 새로워요.”
“지겹지 않아요? 보니까 십보신권은 혼자서 수련해도 되겠던데.”
이준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지겨울 리가.
무공은 배우면 배울수록 즐거웠다.
이전 생과는 달리, 모든 무공을 배울 수 있었으니까.
“안 지겨워요. 저처럼 혈족계승을 못 받은 사람은 학교에서 주는 무공조차 귀하거든요. 배우지 못한 것보다 백배 나아요.”
그저 선생들의 무공은 배울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어차피 선생들이 가르치는 무공은 공용 무공 정도의 수준. 이미 혼자서 상위 버전을 터득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저 공용무공으로 기초를 더 단단히 다지고 싶을 뿐이다.
공용 무공만큼 기초 단련에 적합만 무공은 없었으니까.
차경진은 이준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혈족 계승을 못해 선입견이 박혀 있었던 상태였는데 한 번에 깨져 버렸다.
‘이 분이라면 괜찮을지도.’
가문에서 중립을 고수하고 있던 그녀였다.
하지만 근래 들어 신력권가에선 중립인 그녀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노선을 확실히 하라고.
장남인 이신과 막내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 다른 선택지가 하나 생겼다.
검룡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은 천재의 줄이 말이다.
그녀는 애초에 이신을 제외했다.
안하무인의 대명사.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놈이라 따르고 싶지 않았다.
‘한 번 떠볼까?’
그녀가 이준을 떠보려고 입을 열려는 찰나. 이준을 따라 다녔던 선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차 선생도 있었구려.”
그중 창을 든 중년의 남자가 차경진을 보며 말했다.
그는 창법 수업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창술 명가인 신창조가의 사람으로 인품과 실력이 뛰어나 군자룡이라 불렸다.
“늦게 찾으셨네요.”
“차 선생은 이준 학생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가.”
선생들의 눈에 경계심이 어렸다.
“권법 수업이 재밌나 묻고 있었어요.”
“그뿐인가?”
“다른 게 또 있겠어요?”
“그렇담 다행이네. 난 또 자네가 이준 학생을 다시 신력권가의 일원으로 데려가려 하는 줄 알았어.”
군자룡이라 불린 조학두의 말에 차경진이 뜨끔했다.
그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준의 생각을 넌지시 물어보려 했건만 저들이 눈치를 채고 먼저 선수를 쳤다.
“이야기 다 나눴으면 내가 이준 학생과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조 선생님 저도 할 말 있어요.”
“제가 먼저 이준 학생한테 온 거 아시죠?”
서로 이준과 말을 나누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선생들이었다.
그런 선생들을 보며 이준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기분은 나쁜 건 아니다.
이전 생에 이런 적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선생들에게 매달렸다.
저들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눈에 들고 싶었으나 헛수고였다.
삼류심법으론 학교의 공용 무공도 배우지 못했으니까.
지금은 자신이 저들에게 무공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은 것 같았다.
“공용 무공 말고는 안 배울 거니까 가세요.”
“공용 무공보다 더 좋은 무공을 가르쳐 준데도 왜 배우기 싫단 말이냐. 내가 신창조가의 창술을….”
“조 선생님! 상도를 지키세요.”
“박 선생 내가 먼저라니까.”
선생들의 언성이 높아졌다.
교내에서 인재를 스카웃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일이긴 했다.
하지만 천재가 등장하면 달라진다. 천재를 스카웃하는 일은 그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일.
가문 내의 입지도 커질 뿐더러, 지원도 빵빵하게 받을 수 있다.
어쩌면 입김이 센 15가문연맹협회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단번에 신분 상승.
이준은 짐짓 모른 척 그들에게 물었다.
“대체 왜 저를 가르치고 싶어 귀찮게 하시는 거예요? 조학두 선생님부터 말씀해 주세요.”
“크흠. 먼저 말할 기회를 줘서 고맙군.”
군자룡 조학두가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고 다른 선생들은 분하다는 듯 주먹을 쥐었다.
조학두가 말하기 전 목을 다듬었다.
그리고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내가 봤을 땐 이준 학생은 창을 잡기 위해 태어났어. 네가 무공에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건 몸에 맞지 않은 권법을 익히려고 해서 재능이 빛을 발하지 않은 것뿐, 자네는 창술 천재일세.”
조 선생이 이준을 극찬했다.
성품이 인자하나, 학생들에겐 그 어떤 칭찬도 해주지 않을 정도로 기준이 높았다.
그의 칭찬에 오히려 옆에 있던 박 선생과 신 선생, 차경진까지 조학두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 작자는 입에 발린 말은 안 하는데.’
‘창술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거야?’
‘다 필요 없고, 이준은 독공이야. 이런 인재를 놓치면 우리 만독암가에 크나큰 손해야.’
이에 질세라 선생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우리 철혈검가에 오는 게 어떤가요? 이준 학생의 친구인 검룡이 있는 곳이에요.”
철혈검가는 남궁세가의 무공을 이은 가문이다. 이준의 하나뿐인 친구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곧이어 신선생의 입이 열렸다.
“빈말하지 않겠다. 네가 우리 만독암가로 오면 철왕께 말씀드려 네가 걸칠 아티팩트는 전부 손수 제작해 달라고 말할 거야.”
만독암가는 사천당문이 무공을 이은 곳. 독공은 물론, 암기술도 뛰어났다.
백화점에서 파는 각종 무기와 방어구는 죄다 만독암가에서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이트에서 나온 최고급 아티팩트를 제외하곤, 만독암가의 철왕이 만든 장비가 최고였다.
그의 대장장이 기술은 해외에서도 주목했으니까.
이준에게 엄청난 조건을 제시한 것과 다름없었다.
“다들 말씀은 감사하지만, 전 어디에도 들어갈 생각 없습니다.”
“이런 기회는 흔하지 않아.”
“맞아요. 우리들도 체면을 버리고 제안한 거예요.”
그들의 말에도 이준은 그저 웃기만 했다. 굳이 저들의 도움 없이도 무럭무럭 클 수 있었다. 자신의 옆에 무극자 사부란 고금제일인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준의 미소를 오해한 선생들이었다.
“신력권가 때문이라면 철혈검가에서 이준 학생을 꼭 지켜 주겠어요.”
“만독암가도 마찬가지야. 아니지. 내가 직접 네 아버님도 만나볼 수 있어.”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이준의 단호한 대답에도.
“이런, 급한 마음에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어.”
“미안하네. 자네의 자질이 너무 탐나 너무 앞서갔군.”
선생들은 계속 착각했지만 정정할 생각이 없던 이준은 그러려니 했다.
“괜찮습니다.”
“신중하게 생각해 주게.”
“일생일대의 기회는 흔하게 오지 않아요.”
선생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 사라졌다. 차경진도 뭐라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선생들을 따라갔다.
혼자 남은 이준은 바닥에 다시 드러 눕고 하늘을 보았다.
“날씨 한번 좋다.”
자신이 강해지니 몇 번을 거절해도 스카웃 제의가 왔다.
앞으로도 점점 강해질 터. 과연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힘의 시대에 힘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게 이렇게 좋을지 몰랐다.
왠지 현재의 느낌에 중독될 것 같았다.
* * *
이준은 학교가 끝나면 가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학교 본관 건물 지하 창고였다.
보스 몬스터인 청호를 죽였으나, 몬스터는 계속 리젠 되었다.
죽여도 죽여도 몬스터가 나오는 장소. 여기서 불꽃 호리를 자양분 삼아 무럭무럭 컸다.
[흡혈마공으로 소량의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체력이 +1 올랐습니다.]
[흡혈마공으로 소량의 마기를 흡수했습니다.]
…….
…….
그린 존 급 몬스터는 이준에게 최고의 영약이었다.
간혹 능력치도 덩달아 올랐다.
이준이 말라비틀어진 불꽃 호리에게서 손을 뗐다.
“후우우.”
구부렸던 허리를 펴고 주위를 둘러봤다.
주변 곳곳에는 말라비틀어진 불꽃 호리의 시체밖에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하나 둘씩 잿빛이 되어 사라지는 시체들.
사막에 서 있는 사람은 오직 이준뿐이었다.
몬스터의 씨가 마르자 오아시스 옆에 있는 나무로 갔다.
“움직인 거에 비해 보상이 너무 짜.”
그린 존 게이트를 혼자 독식했지만, 처음을 제외하곤 마정석 하나 얻지 못했다.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마정석 하나 안 나오니 폐쇄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A급 무공서인 흡혈마공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정말 계륵 같은 게이트였다.
“나중에 마정석 광산이나 털어야겠어.”
현재는 청호에게 얻은 마정석이 있었다. 팔면 못해도 1억은 나올 터.
생활비와 기타 물품에 드는 비용은 확보된 상태다.
지금은 성장하는데 집중했다.
“이제 불꽃 호리도 문제없으니 마정석을 흡수할까요?”
이 게이트도 이젠 끝물.
여기서 더 얻을 건 없었다.
[생각이 바뀌었다. 네 녀석의 성장이 생각보다 빨라 마정석은 나중으로 미루고 더 큰 도박을 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