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전 이번에 입학한 허수라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얼굴이 무섭게 생긴 남자 후배들이었다.
저 얼굴이 열일곱 살이란 게 의문스러울 지경이다.
자신보다 나이 많아 보이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했다.
“앞으로 인사하지 마.”
“예? 저희가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말씀해 주시면 시정하겠습니다.”
이준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내가 일진이냐. 너희들한테 인사를 받게?”
“죄송합니다.”
이준은 여자 후배를 대할 때와는 다르게 남자 후배를 대했다.
“됐어 가 봐.”
“예. 편안한 밤 되십시오.”
“하.”
한숨을 푹 쉬고 있을 때, 여자 후배가 팔짱을 끼었다.
“선배 쟤들은 신경 쓰지 마시고 가요.”
“그래. 무슨 말하다가 끊겼지?”
가슴께가 간질간질해지는 여 후배들의 분위기를 보니 곧바로 마음이 풀렸다.
‘중독되겠어.’
웃고 떠는 사이 벌써 기숙사 앞에 도착했다.
“선배님 저희 가 볼게요. 내일 봐요.”
“어. 들어가.”
예쁜 후배님들이 기숙사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봤다.
조금만 더 같이 있으면 좋으련만.
아쉬웠다.
걸음걸이를 느리게 할 걸.
후배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기숙사로 들어갔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아, 좋다.”
[…아주 헤벌레 하더구나.]
“크흠. 그저 친절한 선배의 모습이라고 해 두십시오.”
[자고로 남자는 여자에게 무심해야하느니라. 이 사부가 수많은 여심을 훔친 비결은 바로 이 무관심에 있었다.]
“정말입니까?”
이준이 눈을 빛냈다.
여자와는 거리가 먼 자신이었다.
삼류 무공이나 익혔는데 어떤 여자가 관심을 주겠는가.
죽기 전까지 모태솔로였다.
그래서인지 여자 앞에서만 서면 긴장이 되곤 했다.
[고럼. 사부의 말만 들으면 너도 순식간에 풍류남이 될 수 있느니라. 혹시 아느냐. 학교에서 제일 예쁜 여자가 네게 관심을 둘지?]
“역시 존경할 수밖에 없는 사부님이십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홀홀. 그건 말이다….]
두 사제지간은 밤이 깊었음에도 잠을 자지 않고 열띤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것도 천년 넘게 차이 나는 구닥다리 방식을 이준이 노하우라고 습득하고 있었다.
* * *
15가문 연맹 본부 패력진권 사무실 안.
그곳에는 싸늘한 공기만이 흘렸다.
“우리 기홍이… 단전이 박살났다고?”
이민욱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지 한참을 의심했다.
“누… 가?”
목이 멘 듯, 그의 목소리가 쩌억 갈라졌다.
수하가 부르르 떨었다.
상관의 음성과 함께 살기도 같이 전해졌다.
“이, 이준이….”
“누구라고?”
이민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이름이 맞나 싶었다.
“나, 낙오자 이준이 기홍 도련님의 단전을 부쉈….”
수하는 말을 다 끝마치지 못했다.
쾅!
이민욱이 책상을 부수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말을 믿으라는 소리냐!”
“사실… 입니다.”
이민욱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가문의 실패작이자, 패배자.
천한 핏줄을 이어받은 놈이 어찌 고귀한 피를 이어 받은 자신의 아들을 이긴단 말인가.
“그놈이 개수작을 부린 건?”
수하는 땀을 뻘뻘 흘렸다.
이기홍이 먼저 시비를 걸어 시작된 싸움이라 들었다.
수작질 할 시간도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이기홍이 맞았다는 말을 이민욱 앞에서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 아무래도 그럴 겁니다.”
“천한 것이 감히!”
190cm의 거구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패력진권이란 말과 잘 어울리게 엄청난 위압감을 자랑했다.
“너희는 뭐 하고 있었느냐.”
이민욱이 수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교대를 하는 사이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머리가 깨졌다. 그걸 본 다른 한 명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민욱의 성격은 잔혹했다.
하지만 아들 하나 만큼은 끔찍이 아꼈다.
천사가 따로 없을 정도.
그 어떠한 잘못을 해도 용서했다.
아니, 큰 사건이 일어나면 나서서 덮어 줬다.
“너희들의 일은 기홍이를 옆에서 지키는 게 아니었나?”
이민욱이 부하의 목을 움켜쥐며 위로 들어 올렸다.
“크흡… 죄, 죄송….”
“내 아들이 단전을 잃었다. 용서하길 바라느냐.”
“커헙!”
부하의 목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득.
부하의 목을 꺾어 버린 이민욱이 밖을 향해 말했다.
“치워라.”
철컥.
문이 연리고 안으로 사람이 들어왔다. 사무실에 흐른 피를 닦으며 청소했다.
죽은 사람을 들쳐 업고 나간 이들.
얼마 후 사무실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깨끗해졌다.
방 안에 혼자 남은 이민욱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나다. 기홍이가 단전이 파괴되었다하는구나.”
-어쩌다가….
상대는 굉장히 놀란 눈치였다.
“학교에 있는 것 같으니 당장 가문의 회복실로 데리고 오도록.”
뚝.
이민욱은 자신의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뿌득-
이를 갈며 이준을 떠올렸다.
“서자 따위가 내 금쪽같은 새끼를 폐인으로 만들어?”
이준을 찢어 죽이는 것도 모자랐다.
언제나 죽일 수 있는 벌레라 가만뒀는데, 이번 계기로 깨달았다.
해충은 살려두면 안 된다는 걸.
“형수의 말대로 폐기 처분해야겠어.”
녀석 한 명 죽는다고 신력권가가 타격받는 것도 아니었다.
아들을 건드린 대가는 죽음뿐.
이준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어찌 보면 삼촌과 조카 관계.
평상시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 현 시대에는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 * *
드르륵-
이준이 문을 열고 반으로 들어갔다.
자신의 자리는 맨 뒤 창가 자리.
자리에 앉은 내내 반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간혹 남학생들과 눈빛을 마주쳤으나, 모두가 자신의 눈을 피했다.
마치 일진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행동 같았다.
하지만 여학생들은 달랐다.
수줍은 미소로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무관심해야하느니라. 제자야.]
‘명심하겠습니다.’
며칠 동안 무극자 사부의 강의를 들었다.
일명 풍류남 되기 프로젝트.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으려면 시크하고 무관심해야 한다고 들었다.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그렇게 창밖 너머.
파란 하늘을 보고 있는데.
쾅-
“이준이 나랑 한판 붙자!”
교실 문을 열고 남학생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이제 학교에서 새로운 실력자로 떠올랐다.
그에 따른 부작용.
실력을 인정하지 못한 일부가 이렇게 자신을 찾아왔다.
“귀찮으니까 그냥 가라.”
남학생은 쳐다보지 않고 손만 휘저었다. 그렇다고 그냥 갈 학생이 아니었다.
허리에 찬 검에 손을 얹으려는 동작을 하자.
“그 무기 꺼내면 죽는다.”
고개를 돌려 남학생의 얼굴을 보았다.
그저 쳐다만 볼 뿐이었다.
남학생은 이준의 눈빛을 마주하자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오한이 든 듯 부들부들 떨었다.
“익!”
남학생은 자신이 고작 눈빛 하나로 쫄았단 생각에 수치심을 느꼈다.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단 생각에 검을 뽑았다.
아니, 뽑으려 했다.
철컥-
검이 검집에서 빠져 나오려다가 도로 들어갔다.
이준의 손에 의해 저지당했다.
남학생의 눈꺼풀이 떨렸다.
어느새 일어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준이었다.
“내가 죽는다고 했지?”
이 음성이 남학생이 들을 수 있는 마지막 말이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이준의 실력을 의심한 남학생들이 찾아왔다.
전날의 남학생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결과는 모두 기절.
그나마 4반 이상, D급인 학생들부터는 이준의 움직임이라도 볼 수 있었다.
나머진 그의 주먹질도 보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다.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다.
낙오자의 등급은 D급 이상이라고.
뒤늦게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이들은 아직도 있었다.
학교 랭킹 50위 안에 드는 2학년들.
C급 이상인 그들은 움직이지 않고 관망만 했다.
“이러다 이준이 전교생을 다 이기는 거 아닌지 몰라.”
“지금 기세라면 인정.”
“에이. 랭킹 10위 안은 무리야. 걔들은 B급인데? D나 C급이랑은 수준이 달라.”
맞는 말이었다.
D와 C의 실력은 상당히 많이 차이가 났다.
C와 B급은 그보다 더 차이가 났고.
등급이 위로 올라갈수록 격차가 커지는 건 당연했다.
학교 랭킹 10위 안에 든 학생들은 그냥 B급도 아니다.
완숙에 다다른 경지.
일류를 넘어, 초일류에 도달해 있었다. 이제 막 올라선 이준을 그들이 아래로 두는 건 당연했다.
“조용히 안 해? 조회 시간에 누가 떠들어!”
앉아서 떠들고 있는 남학생들에게 버럭 소리치는 김태형.
그가 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등급 측정에서 사고로 위장하려고 했는데 실패.
다른 계획을 찾고 있는데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준의 승전 소식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여긴 일반 학교가 아니라 무림 사관 고등학교.
강자존의 법칙이다.
학교에선 학생들의 싸움을 암묵적으로 승인하고 있었다.
이준은 가만히 있는데, 다른 반 학생들이 와서 시비를 거는 통에 김태형도 가만히 지켜만 봐야 했다.
‘D급 각성자가 C급 각성자를 어떻게 이긴다고, 가만이나 있지.’
캡슐방에서 구현한 백미의 빙악과 대등했으니, C급 각성자라 하는 게 옳았다.
이준에게 도전한 학생들은 괜히 그의 명성만 높여줬다.
“1시간 내 커리큘럼을 짜서 제출하도록. 다음 수업부터는 너희들이 짠 계획표대로 수업에 들어가면 된다.”
김태형은 이준을 째려보곤 이내 고개를 돌려 교실을 나갔다.
‘독이 바짝 올랐어.’
속이 바짝 타들어가겠지.
신력권가, 아니 이기홍의 아버지인 작은 아버지의 분노가 두려울 터.
그렇게 된다면 김태형의 각성자 인생은 끝이다.
이 세상에서 사라질 테니까.
쓸모없는 놈을 폐기 처분하는 건 신력권가의 원칙이었으니까.
‘아버지는 어떻게 나오시려나?’
과거와는 달리 자신은 쓸모 있는 인간이 되었다.
아버지도 지금쯤이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을 터.
궁금했다.
과연 그가 어떻게 나올지.
* * *
신력권가의 수련동.
그곳에선 한 명의 중년 남자가 웃통을 까고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웅웅-
남자가 기를 운용할 때마다 주변이 요동쳤다.
동굴이 진동하며 천장에서 흙이 떨어지기도 했다.
“후우우.”
내기를 진정시키고 들이마셨던 숨을 내뱉었다.
남자가 운기를 마쳤다.
“이것도 아니란 말인가.”
주먹을 움켜쥐며 화를 삼켰다.
남자는 황보세가의 비전을 이은 신력권가의 가주였다.
사람들은 그를 권왕으로 불렀으며 대한민국의 대표 초인 중 한명이기도 했다.
그가 하는 일은 천왕신공을 상위 단계인 수미천왕신공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몇 년째 답보 상태이지만 말이다.
머리가 복잡한 상태인데 그의 기감에 누군가가 잡혔다.
“형준이냐.”
“예. 가주님.”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가 몸을 깊숙이 숙였다.
“가문에 무슨 일 있느냐.”
“기홍 도련님이 당했습니다.”
“누구에게 말이냐.”
권왕 이건무의 음성은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신력권가의 자식들을 건드리는 건 자신의 자식을 건드리는 일.
폐관수련을 하고는 있지만,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사형준의 입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준 도련님이십니다.”
“그놈이?”
이건무의 눈이 번쩍 떠졌다.
“예.”
“혈족 계승도 못 받은 놈이 어떻게 가문의 무공을 이어받은 이기홍을 이긴단 말이냐.”
혈족 계승은 각성자 시대에 제일 중요한 사안이었다.
부모에게 무공을 전수받지 못한다?
열성 유전자만 섞여 태어난 것과 진배없었다.
그런 아이가 가문의 무공을 고스란히 계승한 이기홍을 이겼단다.
믿기지 않은 소식이었다.
이건무의 이마에 내천 자가 그려졌다.
“지금 무림 사관학교에 이준 도련님의 이야기로 파다하답니다.”
“허허. 이런 일이 있나.”
“어찌할까요? 이민욱 님께서 이준 도련님을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상심이 클 민욱이에게 가문의 영약을 내줘. 그리고 이준이 어떻게 하고 있나 지켜봐.”
사형준이 잠시 머뭇거렸다.
“다른 할 말이라도 있나?”
“기홍 도련님의 단전이… 망가졌습니다.”
“…그것도 이준이 한 짓이냐?”
“예.”
수련동에 정적이 흘렀다.
단전이 망가졌다는 건 각성자 생명이 끝났다는 소리.
피나는 노력을 통해 복구가 가능하긴 하지만, 실패할 확률도 높았다.
일반적인 영약으론 복구조차도 안 됐다.
게이트에서 떨어지는 대환단 같은 종류의 영약으로나 치료가 가능했다.
이건무가 저리 반응한 건 당연했지만 곧이어.
“크하하하.”
수련동을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크게 웃는 이건무였다.
“이준이 그랬단 말이지? 크하하하. 신력의 이름과 잘 어울리는 행동을 했구나. 좋아. 아주 좋아.”
그는 이준의 과감한 손속에 크게 기뻐했다.
기홍이의 단전이 망가진 건 안타까운 일이나.
자신의 아들이라면 사촌에게조차도 일말의 자비가 없어야 했다.
그게 권왕 이건무의 아들이었다.
무력으로 군림하는 것.
신력권가는 막강한 힘으로 가솔을 다스리는 걸 원칙으로 했다.
그 누구도 반발하지 못하게.
가문을 휘어잡을 힘이 있어야 한다.
이준이 한 행동은 신력권가와 아주 딱 들어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