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이준 방으로.
김태형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렸다.
이제 자신의 차례.
캡슐방으로 들어갔다.
10평 남짓.
한 사람이 수련하기엔 상당히 큰 크기였다.
이 캡슐방은 신기지가의 지식을 집대성한 최첨단 환술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계와 신기지가의 진법으로 만든 결합체.
실전보다야 안전했지만, 너무 정교한 나머지 격의 차이가 크게 나는 상대를 마주한다면 쇼크로 죽을 수도 있는 공간이었다.
학생이지만 각성자.
훈련도 실전처럼 해야 했다.
일반 학교처럼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면 각성자만 다니는 무림 사관학교가 있을 필요 없었다.
-상대하고 싶은 몬스터 있나?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마인 한번 상대해 볼 테냐?
마인은 각성자 중에 범법자들을 말했다.
힘을 가지고 시민들을 지키는 게 아닌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
사마련이 이에 속했다.
‘바로 본색을 드러낸다 이 말이지?’
이준이 고민하는 척 볼을 긁적였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몬스터를 상대로 연습한다.
인간을 구현한 적은 몬스터보다 움직임이 더 정교했으니까.
까다롭기도 했다.
환술 시스템을 얕봤던 어느 학생은 적에게 불구가 되기도 했다.
결국 각성자로서 생명이 끊겨 퇴출되기까지.
방심했다간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담당 선생들은 학생들에게 몬스터를 추천해 준다.
“그러죠.”
-위험하면 즉시 선생님한테 말해
“예.”
짐짓 걱정하는 척하는 김태형의 말을 가볍게 넘겼다.
잠시 후.
캡슐방의 조명이 꺼졌다.
다시 밝아졌을 때는 드넓은 하얀색 공간이 나타났다.
-구현한 장소는 설원이다. 행운을 빈다.
하늘에서 눈이 펑펑 내린다.
손을 뻗어 떨어지는 눈을 잡았다.
새하얀 빛의 알갱이.
실제라고 착각이 들 정도로 구현도가 엄청났다.
바닥은 발이 움푹 파일 만큼 눈이 쌓여 있었다.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났군.’
설원은 춥기도 했고, 눈 때문에 시야가 좁아 움직이는 것도 불편했다.
상당히 어려운 난이도에 속한 필드.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가상현실로 구현한 상대였다.
하얀 털옷에 백염을 늘어트린 노인이었다.
‘백미의 빙악을 대련 상대로 붙여 줬군.’
인상은 선해 보이는 옆집 할아버지였다.
실상은 잔악무도한 살인마.
칠악이라 불리는 사마련의 수뇌부 중 한 명이다.
강간, 살인, 방화를 서슴지 않으며 어린아이를 잡아 죽이는 게 취미인 미친 늙은이이기도 했다.
자신을 대놓고 죽이려는 김태형이다.
표정을 굳힌 채 가만히 있자, 김태형의 음성이 들렸다.
-최하 난이도인 D급으로 낮춰났으니 안심해. 위험하면 선생님이 중지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김태형이 거짓말을 쳤다.
말로만 D급이라 했지, 실제 난이도는 훨씬 높을 터.
김태형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혼원신공을 끌어올렸다.
‘아직도 날 호구로 보고 있어.’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띠링-
알림음과 함께 퀘스트가 도착했다.
[긴급 퀘스트1 - 막내의 의지]
난이도: C
설명: 은거자는 막내 제자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보고 싶어 합니다. 혼원신공을 사용하여 상대를 제압하십시오.
완료 조건: 혼원신공 2성 이하 사용
실패 조건: 혼원신공 3성 이상 사용
보상: 테크트리 포인트 250,000p 더블 보상.
‘해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어.’
* * *
캡슐방에서 등급을 측정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시험자가 얼마의 내공을 쓰냐에 따라 등급이 판정됐다.
짧은 순간 등급을 뛰어넘는 힘을 보여주고, 적을 이기면 윗 등급으로 판정이 난다.
방에 내재되어 있는 정밀 시스템 덕분.
마정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단 한 치의 오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작됐다.’
팡-
노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장력이 이준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단지 스친 것만으로 꽁꽁 얼어붙은 어깨.
통증이 점점 올라왔다.
노인이 쓴 무공은 극음의 장법.
북해빙궁의 무공인 한빙장이었다.
팡-
노인이 또다시 장력을 쏘았다.
이번엔 다리 부분이었다.
움직임을 봉쇄하려는 의도였다.
‘정말 사람이랑 싸우는 느낌이라니까.’
천왕보를 이용해 옆으로 피했다.
쩌어억-
한빙장이 지나간 자리에는 얼음이 생겼다.
‘가상이지만, 구현도가 기가 막혀.’
[온다.]
장력만 쏘아대던 노인이 이번엔 보법을 사용해 접근해왔다.
자신의 눈앞에 딱 나타난 노인.
활짝 펴진 손바닥엔 어마무시 한 내공이 담겨 있었다.
“빙백신장.”
한빙장에 이어 북해빙궁이 자랑하는 무공인 빙백신장이었다.
‘피할 시간이 부족해.’
하는 수 없이 두 팔을 교차해 빙백신장을 막았다.
콰앙-
“큭.”
이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게 백미의 빙악.’
가상이라 하지만 사마련의 칠악 중 한 명.
가상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강했다.
‘재밌어.’
일그러졌던 얼굴에 서서히 작은 미소가 어렸다.
언제 이런 자와 겨뤄 볼까.
숨어 있던 호승심이 올라왔다.
전생에는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한 사람과의 대련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혼원신공을 2성까지 끌어올렸다.
파삭-
팔에 얼어붙었던 얼음이 깨졌다.
몸에선 회색의 아지랑이가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이 주위로 퍼져나간다.
확장하는 기세에 하늘에서 내리던 눈이 닿을 때마다 소멸됐다.
“내 차례야.”
불꽃 호리에게만 주구장창 사용했던 무공.
실력을 발휘할 때가 왔다.
쿠웅-
발에 내공을 집중했다.
종아리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그럼과 동시에 신형이 앞으로 쏘아졌다.
달려가는 그대로 땅을 박차 도약했다.
목표는 백미의 빙악이 있는 곳.
회색빛의 기운이 주먹에 회오리치며 몰려들었다.
내공을 가득 담은 주먹을 그대로 뻗었다.
쾅!
그 충격으로 인해 눈발이 흩날렸다.
백미의 빙악은 이미 퇴보를 밟으며 뒤로 빠졌다.
‘놓칠 수 없지.’
흥에 겨웠다.
뒤로 물러나는 빙악에게 따라붙었다.
다시 한번 주먹에 회색 기운이 몰려든다.
일정 수준의 내공이 주먹에 몰려들자 빙악의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빙악도 자신의 얼굴을 향해 한빙장을 이용해 내리치려는 순간!
지잉-
상대하고 있던 빙악이 흐릿해지면서 사라졌다.
설산이던 배경도 원상태인 밀폐된 공간으로 돌아왔다.
“아, 한참 좋았는데.”
흥이 오르며 승부에 대한 욕구가 넘쳐났다.
이때만큼은 모든 고민을 잊어버렸다.
가문에 대한 복수도.
강해지겠다는 마음도.
오직 상대를 이기겠단 욕구뿐이었다.
그런데 가상현실이 끝났다.
시스템이 중단되어 김이 확 빠졌다.
“에잇!”
이준이 캡슐방 바닥을 차고 있을 때, 조작실에 있던 김태형의 눈은 앞으로 튀어나올 듯 커졌다.
‘미, 미친! 저놈의 기운에 의해 시스템이 고장 났어.’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버튼을 눌러도 말을 듣지 않았다.
대신 등급 측정 결과가 나왔다.
화면엔 D등급이라고 떴다.
‘배, 백미의 빙악은 나도 힘들다고!’
빙악의 무공은 무려 AA급 각성자와 같다.
가상현실이라 실제 난이도보단 훨씬 낮겠지만 그래도 C급은 되었다.
경험이 일천한 학생, 특히 하위권인 이준이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기서 이준이 죽어야하는데 왜 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거야!’
이준이 죽으면 장치의 폭주로 난이도가 올라갔다고 둘러댈 생각이었다.
그런데 최첨단 장비가 녀석의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중지가 되고 말았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쾅!
김태형이 주먹으로 기계를 쳤다.
사고로 위장하기 딱 좋은 기회를 놓쳤다.
“제에엔장!”
화가 나서 조작실의 기계를 손으로 쳤다.
김태형이 조작실의 기계에 화풀이를 하는 사이, 이준이 캡슐 밖으로 나왔다.
[긴급 퀘스트1 - 막내의 의지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25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추가로 테크트리 포인트 25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똥을 싸고 화장지로 안 닦은 느낌이 났지만.
보상은 확실히 받았다.
무려, 50만 포인트.
대체 능력치를 얼마나 올릴 수 있는 포인튼지, 누가 퀘스트를 주는지. 아주 감사했다.
‘혼원반지 덕에 원하는 등급으로도 나왔어.’
이게 신력권가에 알려진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F급 떨거지가 D급으로 상승한 것도 모자라 이기홍까지 이겼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
그러니까 가주의 안목에 똥을 뿌린 격.
타 가문에 비해 자존심이 유독 강한 신력권가.
이 사실을 어떻게든 덮어 버리고 싶어 할 것이다.
‘이 정도면 가문에 충분히 자극을 줄 수 있겠어.’
이준이 작게 웃었다.
체육관이 다시 술렁였다.
“마지막 봤어?”
“어… 영화에 엔딩을 못 보고 끝난 느낌이야.”
“난 순간 이준이 이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니까.”
“나도 나도.”
캡슐 밖으로 나온 이준에게 여학생이 음료수를 내밀었다.
“선배님. 수고하셨어요.”
“어? 그… 래.”
얼떨결에 1학년 여자 후배에게 음료수를 받았다.
수련 후 음료수를 받는 건 학교 인싸들만의 전유물.
웃음이 절로 났다.
전생에 외톨이었던 자신이.
이제는 음료수까지 건네받는 인싸가 되었다.
[음료수 하나 받았다고 뭘 그렇게 실실 쪼개는 것이냐.]
‘사부님은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릅니다.’
[사부는 왕년에 천하절색 미녀들이 술을 한수레나 끌고 왔다. 제자는 더욱더 분발해야하느니라.]
이런 사소한 것 가지고 경쟁하는 무극자 사부였다.
이준이 고개를 저었다.
사부의 머리엔 뭐가 들었을까.
정말 궁금했다.
이준에게 음료수를 건넨 여후배가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평소에는 쳐다도 안 보더니, 대놓고 들이대네.”
“네가 먼저 준 선배에게 음료수를 주던가.”
“준 선배? 언제 봤다고 말을 짧게 해.”
“이 기집애 완전 여우 아니야?”
“아휴 아까워라. 다음엔 내가 먼저 줘야지.”
이기홍의 일, 일진을 혼내 준 일.
더해서 등급 측정이 있었던 지금.
이준에 대한 시선은 계속 달라지고 있었다.
학생들은 이준의 등급이 의아했다.
“그런데 등급 측정기 고장 난 거 아니야?”
“인정. 난 B급 이상 나올 줄 알았어.”
“적어도 C급은 줬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그들이 보기에도 이준이 잠깐 보여준 임팩트는 굉장히 컸다.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조용해!”
김태형이 괜히 학생들에게 짜증을 냈다.
이준을 쳐다보자 녀석의 입에 미소가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저, 저놈이!’
웃고 있는 게 꼭 자신을 비웃는 것같이 느껴졌다.
뜻대로 되는 게 없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놈을 해치울 방법을 찾아야 해.’
이준을 어떻게 처리할까.
그냥 몰래 기숙사에 잠입해 목을 따 버릴까?
아니면 산으로 유인해서 묻어 버릴까?
별의별 생각이 떠올랐다.
김태형은 등급 측정을 하는 내내 집중하지 못 했다.
오후까지 계속되는 일과.
4시가 되서야 모든 일정이 끝났다.
체육관에서 나온 이준이 기숙사로 가기 위해 운동장을 지나갔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이준은 운동장을 뛰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이제 저 학생들처럼 육체 수련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기초 훈련은 끝내 놓은 상태였다.
지금도 훈련 중이긴 했다.
몸에 자그마치 200kg이나 달하는 묵철이 차여 있었으니까.
지옥 같은 수련을 견딘 결과 묵철은 이제 몸의 일부처럼 여겨졌다.
운동장을 지나가려는 찰나.
“선배니이임. 안녕하세욧!”
갑자기 아는 척 하는 여후배 때문에 잠시 당황했다.
“어? 그…래.”
“선배님 F동이시죠? 저 바로 옆 동인 E동인데 같이 가요.”
이전 생에는 느껴 보지 못한 느낌.
파릇파릇한 신입생들이 인사를 하니 기분이 좋았다.
‘정신 차려 이준. 네 정신은 스물다섯이야. 잘못하면 철컹철컹이라고!’
여학생들에게 현혹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어디 되겠는가.
자꾸 눈이 돌아갔다.
상큼한 아이들은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나 지금 18살인데, 쟤들하고 한 살 차이 밖에 안 난다고.’
이준이 혼잣말을 지껄이자.
[드디어 제자가 미쳤구나.]
무극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준이 여 후배들과 함께 기숙사로 가면서 한창 웃고 떠들 때, 남학생 무리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