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나, 낙오자가 이겼어….”
“으응… 나도 봤어.”
“마, 말도 안 돼!”
학생들은 지각이라는 사실도 잊었다. 방금 전 봤던 장면을 떠올리기 위해 열심히 되새김질했다.
“대, 대박 사건 아니냐?”
“와!”
“이걸 반 애들한테 어떻게 설명하지?”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이기홍은 성격이 개차반이었으나, 실력이 받쳐줬다.
애들을 괴롭혀도 그를 말리는 못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 양아치를 혈족 계승도 못한 낙오자가 잡았다.
그동안 이기홍에게 무시를 당했던 학생들은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저기.”
이준이 주변의 학생을 불렀다.
1학년 신입생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
“이 쓰레기 좀 양호실로 데려가 줘?”
“제, 제가요?”
“어. 부탁할게.”
이준이 남학생에게 단전이 파괴된 이기홍을 맡기고 본관 건물로 들어가 버렸다.
남학생은 하는 수 없이 이기홍을 양호실로 옮겨야만 했다.
[서브 퀘스트1 - 이기홍을 이겨라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테크트리 포인트 100,000p를 획득하셨습니다.]
이준의 앞에 메시지가 떴다.
양아치 자식을 이기고 얻은 보상.
능력치 15개를 올릴 수 있는 포인트였다.
복수도 했으니 1석 2조.
희열이 가득 올라왔다.
‘내가 이겼어.’
이준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어렸다.
[변태 같으니 웃지 말거라 제자야.]
‘변태 같이 웃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좀 혼자 있을 때 웃거라. 남들이 보지 않느냐.]
이기홍과 싸울 때 생각보다 소리가 컸나보다.
학생들과 선생들이 밖으로 나왔다.
저들의 시선은 모두 자신에게 꽂혀 있었다.
[끌끌. 네놈의 손속에 놀랐나 보구나.]
무극자는 이준의 가차 없는 태도에 아주 만족했다.
일 처리가 깔끔했다.
괜히 어정쩡하게 처리했다간 뒤통수를 맞기 일쑤.
이기홍의 뒤에 신력권가가 있다 하더라도 이준의 행동이 옳았다.
그 또한 신력권가의 일원이기도 했다.
‘부담스럽네.’
이준은 저들의 시선을 피해 배정 받은 2학년 5반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담임은 보이지 않았다.
“이준!”
“준아. 여기 앉아.”
갑자기 호의를 보이는 반 친구들.
창문 너머로 자신과 이기홍의 격돌을 본 것 같았다.
“…….”
반 친구들을 쳐다보다가 이내 창가 맨 뒤쪽자리에 앉았다.
모든 책상은 두 개 씩 한 쌍이었다.
하지만 이곳만 책상이 하나,
마치 홀로 떨어져 있는 섬이랄까.
1학년 때부터 이랬었다.
2학년이 된 지금.
반 아이들은 따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드르륵-
자리에 앉자, 남학생들이 벌 떼같이 모여들었다.
“준아.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본 게 맞아?”
“특별한 무공도 안 쓰던데, 방학 동안 새로운 무공이라도 배웠어?”
아이들이 친한 척 접근했다.
“몰라서 묻는 거냐 아니면 내 입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옛날 이준이라면 이런 관심에 말을 더듬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학교 랭킹 최하위.
삼재심법을 계승한 무능력자.
그게 이준을 부르는 수식어였다.
그런데 이준의 달라진 태도에 같은 반 학생들이 당황했다.
목소리엔 가시가 잔뜩 돋아나 있었으니까.
“아, 아니. 나는 그냥.”
남학생이 다른 친구에게 눈짓했다.
나머지 아이들도 우물쭈물 대는 건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이준은 대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수업 준비 해야 하니까 그만 가라.”
“어? 어. 미안.”
‘언제나 투명인간 취급하더니.’
이기홍을 이기니까 바로 관심을 가지는 아이들이다.
저놈들도 이기홍과 똑같았다.
괴롭힘을 당하는 걸 알면서도 모른척하는 방관자들.
가해자와 다름없었다.
이준이 아이들에게 관심을 끊으려는 그때.
벌컥!
교실로 얼굴이 잔뜩 굳은 30대 초반의 남자가 들어왔다.
* * *
이준은 혼자 가운데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학교 청문회장.
이기홍의 일 때문에 임시 청문회가 급하게 열렸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지 아느냐!”
청문위원 중 한 명이 이준을 꾸짖었다.
“전 교칙대로 행동했습니다.”
이준이 뻔뻔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청문위원은 그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교칙 어디에 학생의 단전을 깨부숴도 된다고 적혀 있어!”
“선생님들이 학생보다 더 모르시네요. 그러면 제가 친절히 가르쳐드리죠. 수비자가 상대방에게 살의를 느꼈을 때 방어를 해도 된다. 라고 1조 4항에 있습니다. 모르면 보시고 외우세요.”
쾅-
머리가 벗겨진 중년의 남자가 책상을 치고 일어났다.
“여기가 어디라고 장난질이냐! 똑바로 안 해?”
“화내지 말고 보세요. 제 말이 틀렸는지.”
그들도 1조 4항의 항목을 알고 있었다.
무림 사관 고등학교는 특수 목적을 가진 곳. 일반 고등학교가 아니었다.
여기선 오직 약육강식의 법칙을 제일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이 위원님.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으세요.”
학교의 이사장인 한민성이 손을 아래위로 올리며 이 위원이란 남자를 자리에 앉혔다.
이 위원이 씩씩거리며 흥분을 가라앉히는 사이, 이사장이 이준에게 질문했다.
“네 말대로 여기에 쓰여 있는 게 방어라는 말인데. 넌 명백히 이기홍을 공격하는 행위를 했어. 그것도 각성자에게 제일 중요한 단전을. 이건 어떻게 생각하지?”
한민성이 조곤조곤 말했다.
그의 선한 인상과도 같은 분위기.
하지만 이준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엄청났다.
이준도 날카로운 기세를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A급이라 이건가.’
혼원신공이 아니었다면 기절했을 수도 있었다.
“전 이기홍한테 목숨에 위협을 받을만한 살의를 여러 번 느꼈습니다. 제가 녀석의 단전을 파괴 하지 않고 그대로 뒀다면 언젠가 보복을 당하겠죠. 도리어 제가 당할 수 있겠다 여겨 그리한 겁니다. 최선의 공격이 방어 아니겠습니까?”
이준이 중압감을 이겨내고 태연하게 말했다. 그런 이준을 한민성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았다.
‘내 기운을 버티는 학생이라, 검룡 말고 또 있었어.’
검룡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 이준에게서도 났다.
한민성은 그를 보자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신력권가에서 버린 실패작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준은 너무도 유명했다.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학생이다.
혈족 계승을 삼재심법으로 한 아이.
신력권가에서 내놓은 자식이기도 했다.
그런 학생이 D급인 이기홍을 이겼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한민성이 이준의 전신을 훑었다.
그때 옆에서 책상을 치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 한 명을, 그것도 신력권가의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어 놓고 궤변을 늘어놓다니! 네가 한 짓이 우리 학교에 어떤 영향을 불러올지 정녕 모른단 말이냐.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이 위원. 진정하세요.”
한민성이 옆으로 고개를 돌려 중년의 남자를 노려봤다.
여긴 청문회 자리.
흥분한다고 일이 처리되는 곳이 아니다.
“이준 학생의 말은 이해했어. 그렇다고 신력권가가 이해한 건 아니야. 그쪽에서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그 말을 들은 이준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혼원신공을 힘껏 운용해서 목소리에 담아라.]
지금껏 말이 없었던 무극자 사부가 입을 열었다.
‘이사장이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저놈들의 실력 가지곤 네 내력을 절대 알아맞히지 못해. 사부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이준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사부가 시키는 그대로 목소리에 혼원신공을 담았다.
“다들 잊고 계시는 모양인데, 저도 신력권가의 사람입니다. 심지어 가주의 아들이고요. 저를 공격한 건 권왕을 모독하는 행위. 이 건에 대해선 학교에서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 가문에서 따로 위중하게 다루도록 하죠.”
이준이 학교와 가문 사이에 선을 그었다.
더 이상 상관하지 말라.
이기홍과의 일은 가문과 자신 사이에서 처리하겠다란 뉘앙스였다.
마치 가문의 후계자들이나 행동할 법한 태도였다.
가문의 실패작이라 불리던 이전의 그에게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거였나?’
한민성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몸에 있는 털이 쭈뼛 서 있었다.
그저 이준의 목소리에 몸이 떨리고 있었다.
A급 각성자인 자신이 말이다.
한민성은 이준에게 짙은 호기심을 느꼈다.
인재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
학교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학생이라 여겼다.
한민성이 양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른 선생들도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듯했다.
‘18살 아이에게 느끼는 두려움이라… 저들 입장에선 어이가 없겠어.’
눈동자가 격렬히 떨리는 청문위원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청문회는 이미 끝난 듯싶었다.
* * *
‘이게 아닌데.’
청문회장 뒤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남자.
이준의 담임으로 김태형이란 자였다.
신력권가에서 가문의 아이들을 잘 봐주라고 그에게 후원을 했다.
그런데 일이 제대로 터지고 말았다.
폭군이라는 전도유망한 학생의 단전이 박살났다.
이대로면 신력권가에서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터.
“여기서 끝낼 순 없어.
어떻게든 이준에게 불이익을 줘야 했다.
하나 무리해서 급하게 연 청문회도 흐지부지되어 끝나 버렸다.
김태형이 청문회장을 나가려는 한민성을 붙잡았다.
“이사장님.”
“오, 김 선생. 무슨 일인가요?”
“이준을 아무 처벌 없이 끝내실 겁니까?”
“음… 그래야 하지 않겠어요?”
“이준을 저대로 둔다면 신력권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한민성이 턱을 쓰다듬었다.
고민할 때면 나오는 습관이다.
“이준 학생도 어쨌든 신력권가의 자제예요. 그가 자신의 가문과 학교를 선으로 나눈 이상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군요.
“하지만 같은 신력가문의 사람이라 해도… 아시지 않습니까. 액션이라도 취해야 그들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을 겁니다.”
“잠깐. 김 선생님.”
“예. 말씀하십시오.”
“언제부터 학교가 15가문 연맹에 휘둘렸죠?”
옆집 아저씨 같이 웃고 있던 한민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 전 학교를….”
“당신이 신력권가에 후원을 받고 있는 걸 압니다. 당신만이 아니고 다른 선생들도 다 각 가문에서 후원을 받고 있고, 저도 신기지가 사람이라 어느 정도 눈감아 주고 수용하는 것뿐. 허나!”
쿠웅-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세가 삽시간에 청문회장을 뒤엎었다.
한민성은 A급 각성자.
뛰어난 진법과 기관진식에 가려져 무력이 낮다는 소릴 듣지만.
“큭.”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일 뿐, 이곳에서 그보다 강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선이라는 게 있어요. 그걸 넘지 않길 바랍니다.”
한민성이 말을 마쳤다.
청문회장을 뒤덮었던 기세는 말끔히 사라졌다.
그가 다른 선생들을 향해 말했다.
“오늘 예정이었던 연례행사는 내일로 연기하시고 준비 철저히 부탁드릴게요. 그럼.”
“들어가십시오. 이사장님.”
한민성 이사장이 청문회장을 나갔다.
‘칫. 내가 이대로 물러날 것 같아? 신력권가에 달아 놓았던 끈을 놓칠 수 없어.’
신력권가에서 후원받는 건 꽤 많았다. 값비싼 아이템, 돈, 심지어 무공서까지.
후원이 끊긴다면 지금까지 받았던 걸 도로 토해 내야 한다.
이게 다라면 다른 가문으로 갈아타면 그만.
그러나 신력권가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가문을 갈아탄다는 소식이 그들의 귀에 들리기라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거다.
다른 건 몰라도 무공서만큼 이 시대에 중요한 게 없으니까.
일반 각성자들이 가문에 끈을 대면 못 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 * *
한편 이준은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사부님 혼원신공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당연한 결과이니라. 네 수련이 조금만 더 깊었다면 저놈들 모두가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렸을 터. 내 그 광경을 못 봐 심히 안타깝도다.]
‘사부님 말씀대로 그랬다면 정말 재밌는 장면을 볼 법도 했겠습니다.’
청문회장의 분위기를 압도시켰던 건 모두 혼원신공 때문이었다.
중압감과 압박감, 더해서 두려움까지.
이 모든 게 혼원신공만 운용하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패시브가 장착된 엄청난 신공.
이 무공을 만든 사부가 거대한 산처럼 보였다.
물론 괴짜일 때도 많았다.
지금같이 말이다.
[내가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해 주겠느니라. 내 때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놈들이 내 앞에서…(중략).]
사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준은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딴 생각을 했다.
‘청문회도 김태형이 주도해서 열었을 거야.’
김태형과 신력권가의 끈은 깊었다.
그 때문에 담임이면서도 애들 못지않게 자신을 괴롭혔다.
김태형은 자신이 죽기 전까지도 가문과 친분을 이어갔다.
‘지금은 이기홍의 단전이 박살나 관계에 균열이 갔을 거야.’
이기홍과의 싸움은 이미 신력권가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김태형은 가문에서 보복이 올까봐 두려울 터. 그걸 회피하기 위해 다른 일을 꾸밀 거라 예상했다.
마침 학교 뒤편에서 김태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접니다. 기홍이의 일이 패력진권 님의 귀에 들어갔는지… 아, 아직 입니까?”
전화하는 김태형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