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흡혈마공]
상대의 정기를 빨아 먹는 마공이다. 등급으로 따지면 A급.
[단기간에 강해지기에는 이만한 무공이 없지.]
“사부님.”
[어서 취하거라.]
“어디에 계시다가 이제 오셨습니까?”
무극자는 이준의 말을 계속 무시했다.
“사부님을 애타게 불렀는데 말입니다.”
이준이 무극자가 들리게 중얼거렸다.
그도 무안한지.
[큼큼. 극한의 상황이 되어야지만 무공의 진위를 깨달을 수 있느니라. 보아라. 네가 청호도 이겼지 않느냐.]
사부의 뻔뻔한 말에 대꾸도 하지 못했다.
대신 자신이 쓴 패권의 형상을 떠올렸다.
사부의 말대로 패권은 힘이 아닌 변화에 있었다.
그렇다고 아예 강권이 아닌 것도 아니다.
변화 속에 강함이 있었다.
사부가 왜 벽력신권보다 패권을 윗줄로 두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다.
이준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상처로 인해 걸레짝이 된 손.
이 손으로 청호를 쓰러트렸다.
그것도 단 한 방에.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방식의 차이가 달라졌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무공이 되었다.
만약 내공이 많았다면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을 거다.
이준이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저 물건들 안 챙길 거냐.]
“챙깁니다.”
주먹만 한 마정석을 집었다.
[B급 마정석을 획득하셨습니다.]
“이제 생활비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B급 마정석의 가격은 최소가 5000만 원이다.
상태와 크기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
자신의 손에 있는 마정석은 주먹만 해서 족히 1억은 나갈 것 같았다.
[그 원석에 질 나쁜 내공이 흐르는구나.]
“마나가 아니고 내공이요?”
[내가 모르는 기운도 흐르고 내공도 꽤 흐르고 있다. 하급 영약이라고 할까. 너에겐 좋은 보약이 되겠어.]
무극자 사부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걸로 영약이라도 사 먹으라는 소린가.
고개를 갸웃하자 사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선 흡혈마공을 취해라. 그 이후에 내가 하라는 지시대로 따르면 네 내공이 크게 늘어날 거다.]
“정말입니까?”
[내가 거짓말하는 거 보았느냐?]
“못 봤죠.”
무극자 사부를 만난 게 며칠 되지 않았지만, 그가 거짓말하는 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흡혈마공은 이름과 같이 마공서.
마공서를 익혔다는 걸 들키는 날엔 가문 연맹에서 가만두지 않을 거다.
[강한 힘으로 정상에 우뚝 서고 싶다는 네 다짐이 고작 그것뿐이냐.]
“아닙니다.”
이준이 고개를 저으며 마공서를 주웠다.
[흡혈마공(A)을 획득하셨습니다.]
곧이어 마공서를 펼쳐, 양손으로 잡아 부욱 찢었다.
[흡혈마공(A)을 배우셨습니다.]
[앞으로 흡혈마공(A)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 네가 할 일은 하나다. 이곳에 있는 몬스터를 흡혈마공으로 전부 흡수하는 것이다.]
무턱대고 흡수했다간 자칫 탈 날 수도 있을 터.
무극자 사부는 이런 걱정을 대번에 날려 주었다.
[혼원신공은 모든 기운을 품는 신공으로 네가 먹어 치운 나쁜 기운을 정화해 줄 거다. 그러니 안심하고 다 먹어 치워라.]
“예.”
이준은 마정석을 흡수하는 게 아깝긴 했다. 1억짜리 마정석을 흡수해 버리면 알맹이만 남을 터.
황금 가루가 잔뜩 뿌려진 음식을 먹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건 몬스터를 다 흡수하고 먹어야겠어.’
마정석을 주머니에 넣곤 불꽃 호리들을 찾아 나섰다.
* * *
리젠 게이트에 들락날락 한 지도 벌써 한 달. 드디어 개학날이 밝아왔다.
이준은 교복 위에 도포를 둘렀다.
무림 사관학교의 정식 복장이다.
준비를 마치고 시간이 남자 상태창을 열었다.
[기본 정보]
칭호: 은거자의 막내제자 (외1)
이름: 이준
나이: 18
잠재력: 등급 외
고유 스킬: 혼원신공(SSS)
일반 스킬: 흡혈마공(A), 천왕보(B), 패권(B)
특성: +세상에 회의를 느낀 무극의 길 루트(??)
∴테크트리 포인트 1,050,000p
[능력치]
체력: 67/100
신체: 63/100
힘: 65/100
민첩: 83/100
-특수항목-
내공: 303/620
정신력: 140/150
-상태-
전투력 +10%
이 얼마나 웅장한 상태창인가.
C급 각성자 중에서도 상위에 속한 능력치였다.
스킬도 무려 네 개나 있다.
이걸 보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삼재심법이란 삼류무공을 익힌 옛날 자신에 비하면 엄청났다.
지금 상태라면 무극자 사부의 설교를 온종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상태창에 정신을 뺏긴 통에.
등교 시간에 늦어 버렸다.
재빨리 기숙사 방에서 나왔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건 일반 고등학교의 등교 모습과 똑같았다.
학생들이 늦었는지 기숙사 복도를 뛰었다.
“벌써 7시 55분이야. 늦었어!”
“학기 초부터 담임한테 찍히게 생겼다.”
쉭쉭쉭-
이준의 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학생들이 경공을 써서 기숙사 복도를 달리는 소리였다.
학교에 지각하지 않겠다고 경공을 쓰는 학생들이다.
기숙사와 학교의 거리는 꽤 됐다.
차를 탄다 해도 15분 정도?
걸어서 가면 40분은 더 걸릴 거리였다.
이게 다 학생들 단련시키기 위해서라나 뭐라나.
무튼 이곳에서 느긋하게 걸어가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제자야. 너는 빨리 안가냐?]
‘어차피 늦었습니다.’
[가아아알! 스승에게 배움을 청하는데 그런 썩어 빠진 정신 상태로 어찌 한단 말이냐.]
‘제 스승님은 사부 한 명뿐입니다.’
잘못 말한 걸까.
잠시나마 정적이 흘렀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단 말이냐?]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처음 루트를 고를 때 파천이 아닌 무극의 길을 선택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 담임은 예전부터 절 엄청 괴롭힌 사람이에요. 선생 대접하고 싶지 않아요.’
[큼큼. 그렇다면 사부는 네 뜻에 따르겠다. 암. 곁에 참 된 스승이 있는데 다른 스승이 뭐가 필요하겠느냐. 쉬엄쉬엄 가도록 하거라.]
이준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은 무극자였다.
이준은 사부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언제나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껴졌다.
고독함이랄까.
자신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사부는 절대자의 고독함이었고, 자신은 외톨이의 쓸쓸함이었지만.
무튼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기숙사를 나와 학교 본관으로 걸어가는 길.
“여. 이준 이제 가냐.”
꼴 보기 싫은 놈이 나타났다.
우락부락한 근육 덩어리를 한 청년이 반가운 듯 손을 흔들었다.
“시비 걸지 말고 가던 길 가라.”
자신의 단전을 부쉈던 이기홍이었다.
동갑내기 사촌이기도 했다.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걸었다.
“어쭈? 저 새끼가 몇 달 못 봤다고 정신을 못 차리네?”
“성격이 X같은 건 여전하구나?”
“뭐?”
“내일이면 공식전인데 그냥 여기서 한판 뜰까?”
그랬다.
개학하기 전까지 이를 악물고 수련했던 이유.
저 빌어먹을 새끼와의 비무 때문이었다.
학교에선 공식전이라 칭하며, 랭킹을 정하는 대련이었다.
“아침에 뭐라도 잘못 먹었냐?”
“너나 잘못 처먹었겠지. 우리가 친한 사이도 아닌데, 왜 아는 척하고 지랄이야.”
이준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치는 걸 보고 이기홍은 어처구니없었다.
서자 주제에.
가문의 실패작 따위가.
감히 자신의 말에 토를 달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애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야 이 새끼야. 사람이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 엉?”
“네가 참아? 뭘? 항상 말보다 주먹이 앞선 놈이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네.”
“이 X발 새끼가 뒤지려고!”
버러지만도 못한 이준이 자꾸 기어오르자.
이기홍의 심기가 뒤틀렸다.
그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이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런데 이준은 그저 웃고만 있었다.
‘뭐… 지?’
이기홍은 이준에게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이 꺼림칙함.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아니, X같았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공식전이 아닌 지금 이준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겠다고.
* * *
이준은 이기홍을 보고 있지 않았다.
자신의 눈에 들어온 하나의 퀘스트를 보고 웃고 있었다.
[서브 퀘스트1 - 이기홍을 이겨라.]
난이도: D
설명: 은거자는 자신의 제자가 황보가의 무공을 익힌 이기홍을 압도적으로 이기길 바랍니다.
완료 조건 : 압도적 승리
보상: 테크트리 포인트 100,000p
보상이 능력치 하나 값이었다.
이런 꿀 퀘스트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생각이 바뀌었어.”
이기홍만 생각이 바뀐 게 아니다.
이준 또한 기존의 계획을 변경했다.
원래라면 공식전에서 이기홍을 이겨 가문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려 했지만, 그럴 마음이 달아났다.
서브 퀘스트긴 하나 무려 테크트리 포인트를 100,000p를 준다.
15개의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보상이다.
거저 준다는데 안 할 멍청이가 있나.
자신의 멱살을 잡은 이기홍의 손목을 잡았다.
“이거 안 놔?”
이기홍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자신의 행동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은 듯한 얼굴이다.
“그러지.”
이기홍의 손목을 잡고 뒤로 밀자 넘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찍었다.
그가 넘어지는 걸 등교하는 학생들이 똑똑히 봤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이기홍이었다.
이준은 가문의 낙오자이자 혈족계승을 받지 못한 실패작.
학교에서 650등의 랭킹을 지녔다.
전교생 중 꼴등.
50위권에 있는 이기홍이 최약체에게 넘어졌으니 얼마나 쪽팔릴까.
“X발!”
이기홍이 벌떡 일어나 주먹을 휘둘렀다.
딱 봐도 묵직한 힘이 담겨 있었다.
한 대라도 맞으면 골로 갈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이준은 그 주먹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저딴 주먹에 맞아 폐인이 됐어?’
자신의 눈에 보이는 이기홍의 주먹은 느렸다.
그것도 아주.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너무 느려서 지루할 지경.
그린 존 급 몬스터를 상대로 경험을 쌓아서 그런지.
이기홍은 이제 자신에게 위협의 대상이 아니다.
몸을 살짝 틀어 주먹을 피했다.
이기홍의 주먹이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허점이 노출된 이기홍의 종아리를 발로 걷어찼다.
“악!”
이기홍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느려. 이 자식아.”
내공이 실리지 않은 주먹으로 이기홍의 얼굴을 그대로 가격했다.
빠아악-
“컥!”
바닥에 패대기쳐진 이기홍을 발로 까 버렸다.
퍽-
발에 맞아 저 멀리 굴러 떨어진 이기홍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벌떡 일어났다.
“네깟 버러지 자식이 감히 내 얼굴을 때려? 오늘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리고 말겠어.”
이기홍은 화가 단단히 났다.
그의 주먹에 붉은 기운이 모여들었다.
주특기인 패권을 사용할 때 발하는 현상이다.
이기홍이 이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뒈졌!”
이 한방으로 이준의 몸을 걸레짝으로 만들 거라고 확신했다.
콰앙-
커다란 폭음이 일어났다.
두 사람이 있던 자리는 먼지가 피어올라 시야가 가려졌다.
잠시 후.
먼지가 바람에 날렸다.
“……!”
그 안에서 이기홍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자신의 주먹이 이준의 손에 가로막혔기 때문.
“마, 말도 안… 큭!”
“왜 말이 안 돼? 버러지 같은 내가 네 주먹을 막아서?”
이준이 이기홍의 주먹을 잡은 손에 내공을 실었다.
콰드득-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크아악.”
이기홍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그가 발버둥 쳤다.
이준에게 잡힌 오른손이 으스러졌다.
고통이 전신을 타고 뇌를 강타했다.
“네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알고 있어. 가문에서 그러라고 시킨 거냐?”
“무, 무슨 소리야. 커억!”
퍽 소리와 함께 이기홍의 허리가 새우등처럼 꺾였다.
이기홍의 입에서 토사물과 침이 질질 흘러내렸다.
“이번에는 가만히 당할 생각이 없거든.”
“…X발!”
쓰러진 이기홍이 분해서 소리쳤다.
그가 언제 이런 수모를 겪어 봤겠는가.
버러지라고 생각하던 이준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으니 가슴에서 천불이 일어났다.
주먹으로 바닥을 치며 벌떡 일어났다.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 이준을 죽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어, 언제?”
이준의 얼굴이 지척에 있자, 당황한 이기홍이었다.
뒤로 몸을 빼려고 한 찰나.
이준의 손이 더 빨랐다.
이기홍의 오른팔을 잡고 그대로 꺾어 버렸다.
우드득-
또다시 전신을 엄습하는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크아아악!”
“아프냐?”
이준이 싸늘한 표정으로 이기홍을 내려다봤다.
“나도 그때 존나 아팠거든. 넌 이걸로 아프다고 소리 내면 안 돼.”
단전이 파괴된 날 다짐했다.
과거로 돌아가면 자신이 느낀 고통을 100배로 돌려주겠다고.
그리고 지금, 그 다짐을 이행할 생각이다.
이기홍의 복부로 발을 옮겼다.
“크윽… 뭐 하려… 윽!”
“내가 당했던 그대로 돌려줄게.”
복부 바로 밑.
단전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을 지그시 눌렀다.
내공을 지닌 각성자에겐 생명 같은 곳. 내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인 단전이 있는 자리였다.
“거, 거긴… 큭. 아… 안 돼!”
단전이 깨진다면 각성자는 물론 일반인 보다 못한 몸으로 살아가야 한다.
죽어라 피나는 노력을 한다면.
적은 확률로 단전이 회복될 수 있을 터.
물론 이기홍의 단전이 다시 되살아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 사실을 개의치 않아 했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
이기홍도 똑같이 겪어 봐야 했으니까.
자신의 발이 천천히 이기홍의 단전을 부셔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