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패권이라고 아주 기초적인 권법이다. 배워 볼 테냐?]
황보세가의 무공을 이은 신력권가의 무공.
보법에 이어 권법까지 익힐 수 있게 되었다.
“배워 보겠습니다.”
[패권(B)를 배우셨습니다.]
[앞으로 패권(B)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패권은 이름과 달리 강권이 아니니라.]
“강권이 아니면?”
[강함 속에 어지러움이 있다. 강권이라 착각하게 하지만 실상은 환권에 중심을 둔다.]
“힘이 아니고 변화입니까?”
이준은 사막을 걷고 있었다.
도망가 버린 불꽃 호리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무극자 사부가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맞다. 패권의 본래 위력을 내려면 변화에 중점을 둬야 한다. 이 차이를 아는 자는 황보가에도 몇 없었지. 그 때문에 황보가는 벽력신권을 패권보다 윗줄에 뒀지만, 그건 멍청한 생각이다. 내가 볼 땐 패권이 더 위에 있는 계열이었느니라.]
이준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패권이 벽력신권보다 위라니.
더군다나 무극자 사부의 말대로라면 지금 배울 게 진짜 황보가의 무공 아닌가.
[기대되는 얼굴이구나.]
“당장 수련하고 싶습니다!”
과거에 삼재검법을 배웠던 이준이었다.
그로 인해 얼마나 서러웠던가.
가문에서 온갖 멸시를 다 받았다.
결국엔 가문에서 버림을 받았다.
종래엔 몬스터에게 비참하게 죽었다.
만약 자신이 온전한 패권을 배운다면 가문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가문의 정통성도 뒤흔들 수 있어.’
거기까지 생각하자 얼굴에 미소가 맺혔다.
[거의 다 온 듯싶구나.]
이준이 앞을 내다봤다.
거대한 야자수 밑에 그에 걸맞은 오아시스가 자리했다.
주위에는 자신이 찾아다니던 불꽃 호리들이 쉬고 있었다.
“사부님….”
[왜 그러느냐?]
“저희가 찾는 건 꼬리 네 개 달린 중간급 몬스터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저길 보십시오.”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오아시스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불꽃 호리들.
그중 온몸이 파란색 털로 뒤덮인 몬스터가 있었다.
[호오. 꽤 강한 놈이 섞여 있구나.]
무극자 사부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저건… 청호입니다.”
다른 불꽃 호리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몬스터.
파란색 불꽃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뿐인가. 꼬리가 무려 일곱 개나 있었다.
이 게이트, 청호 보금자리의 지배자이자, 보스 몬스터였다.
청호는 C급 각성자들이 모여 있어도 상대하기 버거웠다.
녀석의 무서운 점은 속도에 있었다.
속도에서만큼은 레드 존 급 몬스터인 썬더라이와 맞먹을 정도.
까딱하단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여태 만났던 불꽃 호리와는 격이 다른 존재였으니까.
[무공 실력을 단기간에 높이려면 사선을 넘나드는 것만큼 값진 경험이 없느니라.]
“그래도….”
[갈! 내 때는 사부님의 말에 토씨하나 대꾸하지…(중략)]
다시 무극자 사부의 말이 길어졌다.
이준은 사부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청호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란 의문밖에 안 들었다.
아무리 사부가 곁에 있다지만, 영혼뿐.
온전히 혼자 헤쳐 나가야 했다.
한 번 삐끗했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한번 죽은 목숨. 더 죽기야 하겠어?’
여기까지 온 김에 까짓것 도박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상대해 볼게요.”
[저 몬스터가 너의 성장을 도울 게다.]
이준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인간이 등장하자, 몬스터들이 경계하기 시작했다.
곧바로 혼원신공을 운용했다.
[혼원신공의 패시브 스킬인 공포가 발동했습니다.]
[주변의 몬스터가 시전자를 두려워합니다.]
혼원신공으로 인해 불꽃 호리들이 꼬랑지를 내리며 몸을 낮췄다.
녀석들과 반대로 청호는 잔뜩 성이 나 보였다.
몸에 두르고 있는 파란색 불꽃을 활활 태웠다.
캬아아아.
4m의 몸집을 자랑한 청호가 고개를 위로 올리며 울었다.
[청호의 패시브 스킬인 우두머리의 울부짖음이 발동했습니다.]
[불꽃 호리들의 속도가 2배로 상승합니다.]
글귀를 본 이준의 몸이 잔뜩 굳었다.
꼬리를 아래로 내리고 있던 불꽃 호리들이 예전 당당한 모습을 되찾았다.
청호의 패시브 스킬 덕분.
그보다 위험한 건 따로 있었다.
청호의 일곱 개 꼬리에 파란색 불꽃의 구체가 생성되는 게 아닌가.
‘할 수 있어.’
처음 불꽃 호리들을 상대할 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죽을 것만 같았던 기분. 하지만 어느 순간 적응하지 않았던가.
청호도 똑같을 것이다.
“사부님 이제 시작해 보겠습니다.”
긴장을 풀려고 사부에게 말을 걸었지만.
[…….]
사부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사부님?”
다시 무극자 사부를 불렀다.
[…….]
물론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정신 차려. 언제까지 사부님의 도움을 받을 거냐.’
이준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리고 청호와 눈을 마주쳤다.
녀석은 잔뜩 굶주렸는지 아가리에서 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치이-
사막의 모래에 침이 닿자, 수증기가 증발하듯 연기가 피어올랐다.
침이 떨어진 곳의 모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렸다.
청호에게 위협을 느꼈다.
한 발자국 물러나자, 청호가 한 걸음 다가왔다.
‘여기서 등을 보이면 죽어.’
기세에 밀리면 끝이었다.
손과 발에 내공을 주입했다.
마침.
꺄아아아-
청호의 울음에 맞춰 불꽃 호리들이 자신에게 달려들었다.
* * *
황보세가의 무공을 바탕으로 설립한 가문.
신력권가는 한남동에 위치했다.
한옥으로 지어진 집 안의 분위기는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준이랑 비무를 한다고?”
“네. 큰아버지.”
“지금은 가주님이라 불러라.”
“예 가주님.”
“뭐 하러 그놈과 비무를 하려느냐.”
가주라 불리는 중년의 남자.
당당한 풍채를 지닌 그는 이곳 신력권가의 가주인 권왕 이건무였다.
대한민국이 자랑한 국보급 전력 중 한 명으로 일제오왕칠악 중 당당히 왕의 칭호를 받은 AA급 각성자였다.
경지로 따지면 초절정에 달했다.
그런 그의 발아래에 조카인 이기홍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가문의 수치를 저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은 판단을 내렸습니다.”
“누구의 지시더냐.”
이건무의 음성은 높낮이가 없었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
이때 말을 조심해야 했다.
이기홍은 침을 꼴깍 삼켰다.
“제 생각입니다.”
“괜찮다. 널 나무라려고 말한 게 아니다. 사실대로 말해라.”
전혀 분노가 느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건무의 몸에서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사람들이 왜 그를 오왕의 한 사람으로 인정하는지 이해가 가는 힘이었다.
이기홍이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큰… 어머님의 지시입니다.”
“신이의 엄마가?”
“예.”
이건무의 이마에 내천 자가 그려졌다.
부인은 하북팽가의 무공을 계승한 패왕도가의 사람으로, 가주의 여동생 되었다.
조금 전에 말한 이건무의 아들인 이신의 엄마이기도 했다.
“놈을 아예 치워 버릴 생각이구나.”
“큰 어머님께서는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십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들을 처리한다는데 어떤 아버지가 동의하겠는가.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반대할 터.
그러나 이건무는 달랐다.
아니, 게이트가 열린 현재의 세상은 달랐다.
강자존. 약자는 지금 시대에 필요가 없었다.
이준과 같은 약자는 물어뜯기기 딱 좋은 존재. 가문의 약점이 될 뿐이었다.
정적을 깨고 이건무의 음성이 들렸다.
“쓸모없는 놈은 폐기해야지. 허락한다.”
이준은 서자임과 동시에 그에게 수치스러운 자식이었다.
삼재심법이란 최악의 심법을 익힌 놈. 도리어 가문에 폐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무엇보다 자신에겐 아들이 두 명이나 더 있었다.
한 명은 학교에서 권룡이라 불리고 있고, 막내도 재능이 특출 났다.
쓸모없는 자식이 한 명 없어진다고 문제 될 건 없었다.
“알겠습니다. 가주님.”
이기홍은 고개를 숙이며 작게 웃었다.
가문을 위한 일. 이 일의 대가는 상당할 거라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일을 끝내면 네게 벽력신권을 가르쳐 주마.”
같은 계열의 내공심법을 익혔으면 무공을 전수해 줄 수 있다.
이준을 폐기 처분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신력권가의 하위 내공심법이라도 익혔으면 무공을 전수해 쓸모 있게 만들면 된다.
하지만 이준은 재활용도 불가능한 심법을 익혀 강해지는 건 불가능했다.
“가, 감사합니다. 가주님.”
이기홍은 아픔도 잊고 이마를 바닥에 세게 박았다.
상위 무공을 익히려면 레드 존 이상의 게이트에서 무공서를 얻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것도 극악의 확률로 상위 무공서를 얻을 수 있었다.
즉, 웬만한 가문의 가호나 A급 각성자가 아니면 게이트에서 무공서를 얻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금은 삼촌이라 불러라.”
“고맙습니다. 건무 삼촌.”
“네게 구질구질한 일을 맡겼구나.”
방의 분위기가 단번에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북풍한설이 느껴졌다면 지금은 따사로운 봄의 느낌이었다.
기분에 따라 온도가 바뀌는 것이 AA급 각성자의 위엄이다.
“아닙니다. 이런 일을 이신 형님께 시킬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이 삼촌이 한시름 놓인다. 이제 다른 걸 물어보자꾸나.”
“말씀하십시오.”
“무림 사관 고등학교는 어떠하냐?”
“현재 신력권가의 위치말입니까?”
이기홍은 눈치가 빨랐다.
이건무가 돌려 말했음에도 바로 알아차렸다.
“송구하오나 이신 형님의 위치는 철혈검가의 검룡은 물론, 패왕도가의 도룡보다 밑에 있습니다.”
“패왕도가보다 밑이라… 그건 마음에 들지 않군.”
이건무가 인상을 찌푸렸다.
현재 대한민국의 최고 전력이라 하는 일제가 철혈검가의 태상가주였다.
그는 늙어 죽지 못한 노괴.
일제를 예외로 쳤다.
하나 패왕도가는 같은 왕의 칭호를 가진 가문이었다.
아내가 패왕도가 출신이긴 하나 서로 보이지 않은 기 싸움 중이다.
겉으로는 친한 척, 뒤에선 호박씨를 까는 그런 관계.
피로 맺어진 관계지만 오히려 다른 가문보다 못했다. 틈만 나면 서로 으르렁거리는 곳이었다.
패왕도가보다 자신의 가문이 아래라 하니, 이건무는 상당히 못마땅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신 형님께서 폐관수련을 깨고 나오면 패왕도가뿐만이 아니라 철혈검가도 문제없을 겁니다.”
“암. 너 또한 기대가 크다.”
이기홍은 이건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입에 발린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에 만족했는지.
이건무도 고개를 끄덕였다.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드릴 말씀도 다 했으니 전 이만 가 볼까 합니다.”
“그래. 조심히 가거라.”
이기홍이 이건무에게 인사를 한 후 학교로 복귀했다.
그의 얼굴엔 환희가 가득했다.
벽력신권이라는 상위의 무공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모습이었다.
* * *
화르륵-
사막의 태양 때문에 더워 죽겠는데 청호가 만들어 낸 불의 감옥으로 인해 타죽을 것만 같았다.
이준은 그 안에서 낭패란 얼굴을 했다.
‘여기서 죽을 수 없어.’
어떻게 다시 과거로 돌아왔는데.
그것도 삼재심법이 아닌 혼원신공이란 대단한 무공을 지니게 됐다.
이젠 가문에 얽매이지 않고, 홀로 정상에 우뚝 서겠다 다짐했다.
그런 다짐이 마음에 채 가시기도 전에 죽게 생겼다.
여기서 죽을 생각이 없는 이준은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녀석들의 스피드를 줄이려면 다리를 봉쇄해야 해.’
몬스터에 대한 지식은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다.
삼재심법이란 삼류무공을 익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몬스터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이다.
적어도 약점을 알고 있으면 하찮은 무공으로 이기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몬스터에 대한 지식을 섭렵했다.
그 중 불꽃 호리와 청호에 대한 약점도 있었다.
물론 실전은 달랐지만.
생각을 끝내고 천왕보를 시전했다.
쿠웅-
혼원신공의 내기가 담긴 발이 움직였다.
모래 사막에 족적이 남길 만큼의 무게가 실리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쉭-
바람을 가를 정도로 빠른 신형.
목표는 청호였다.
우두머리가 사라지면 나머지 몬스터는 알아서 꼬랑지를 내릴 터.
청호를 단숨에 죽이기 위해 거리를 좁혔다.
공중에 뜬 상태 그대로.
혼원신공의 내력이 가득 담긴 주먹을 강하게 내질렀다.
쾅-
“빗나갔어?”
이준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천왕보로 청호의 지척에 다다랐을 때는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도 자신의 움직임에 반응을 못했으니까.
패권으로 녀석의 몸통을 꿰뚫으면 게임은 끝날 줄 알았다.
자산의 주먹이 애꿎은 땅을 강타하기 전까진 말이다.
어떻게 된지 파악하고 있을 때, 뒤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싹.
뒷목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비, 빌어먹을.”
청호가 아가리를 쫙 벌리며 달려드는 게 아닌가.
두 손으로 얼굴을 막으려는 순간.
정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뒤로 천왕보를 쓰거라. 그리고 방금처럼 강하게 휘두르려하지 말고 놈의 눈을 똑똑히 보며 변화를 실어라.]
사부의 말에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천왕보를 써 뒤로 몸을 뺐다.
이후 사막의 모래를 지지대 삼아 패권의 자세를 취했다.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 찰나.
청호의 아가리가 눈앞까지 다가왔다.
죽을지 모르겠단 생각에 무작정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크윽!”
“커허엉-”
이준이 신음을 토했다.
팔이 통째로 뜯겨나가는 고통이 느껴졌다.
동시에 청호의 비명도 같이 들렸다.
아픔에 인상을 찌푸리며 앞을 보는데.
“헉!”
자신의 팔이 청호의 아가리에 들어가 있었다.
단 한 방.
청호의 얼굴은 짓뭉개졌다.
단 한 방이었는데도 여러 대를 동시에 맞은 듯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보스 몬스터인 청호를 해치우셨습니다.]
[엄청난 대기록을 세워 500,000p를 지급합니다.]
[경이로운 싸움꾼에 경의를 표해 250,000p를 지급합니다.]
“내가… 해냈어.”
짜릿했다.
등골이 서늘해 죽겠단 심정과는 달리 청호를 쓰러트렸다.
그것도 허무할 정도로 말이다.
우두머리가 쓰러지자, 나머지 불꽃 호리는 겁에 잔뜩 질려하는 모습이었다.
슬금슬금 뒤로 몸을 빼며 도망가는 녀석들.
이준은 불꽃 호리를 잡지 않았다.
자신의 몸을 수습하기도 바빴으니까.
잠시 후. 청호가 잿빛이 되어 사라졌다.
녀석이 사라진 자리에는 두 개의 아이템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파란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원석. 사람들은 이걸 마정석이라 불렀다.
이세계의 광물. 에너지가 되기도 했고, 각종 장비를 만드는데 사용됐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다른 물건이다.
[호. 꽤 쓸모 있는 게 떨어졌구나.]
무극자가 감탄의 목소리를 내었다.
이준도 떨어진 한권의 서책에 눈이 갔다.
책 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