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그린 존 게이트는 학교 본관 건물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원래라면 게이트 앞을 지키는 이들이 있겠지만, 이곳은 무림 사관 고등학교.
이사장은 제갈세가의 무공을 이은 신기지가의 직계였다.
명석한 두뇌와 진법, 기관진식으로 유명한 가문 출신으로 진법서생이란 이명을 가지고 있다.
이사장이 이 게이트를 폐쇄한 이유는 하나.
안에 있는 보스 몬스터는 정예 각성자가 아니면 상대를 못 했다.
거기다 투입된 인원에 비해 짠 보상. 수지 타산이 안 맞아 진법으로 봉인해 놓은 곳이다.
이준이 지하 계단으로 내려왔다.
창고 문에는 다섯 개의 부적이 붙어 있었다.
[오행진이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겠어.]
진법의 종류를 단번에 파악한 무극자 사부였다.
“오행진을 말입니까?”
더 놀라운 건 뒤에 이어진 말이었다.
[노부는 제갈세가의 최고 진법인 팔문금쇄진도 파할 수 있느니라. 고작 오행진 따위가 뭐라고.]
이젠 놀라기도 힘들었다.
이준은 무극자 사부의 말에 따라 문에 붙여진 부적을 떼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암실.
그런데 기온은 쌀쌀했다.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포근했다가, 갑자기 무더위가 푹푹 찔 때도 있었다.
[오행진을 파하는 방법은 하나이니라. 시전자가 어느 속성에 중점을 둔 건지 알기만 하면 된다. 이 진을 설치한 놈은 수에 중점을 뒀구나. 성격이 물 흐르듯 유해.]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갈세가 진법을 익힌 놈들의 특징이다. 자신의 성격을 진법에 반영하지. 수속성은 목속성으로 흡수하면 그만. 생문은 목속성에 있느니라. 기운이 푸르게 변할 때만 앞으로 움직여라.]
이준은 무극자 사부의 말에 따라 움직였다.
주위가 초록색 선으로 변하면 걸음을 옮겼고, 선이 다른 색으로 변하면 멈췄다.
눈앞에 작은 빛이 나타났다.
이준이 그곳을 향해 걸어가자, 그린 존 게이트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게이트예요!”
이준이 오행진에서 나와 게이트를 발견했다.
들어가기 전 무극자 사부에게 살며시 물었다.
“손목과 발목에 찬 묵철은 빼고 들어가도 될까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몸을 속박한 묵철을 내려놓는 게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지만.
[그것도 수련이다. 어서 들어가거라.]
어림도 없었다.
이준은 망설이다가 하는 수 없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 * *
무더운 햇빛이 내리쬐는 사막 한가운데. 이준은 그곳에 홀로 있었다.
두리번두리번.
몸이 굳어 있었다.
고개를 돌려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쫄 필요 없다. 주위에 몬스터가 없느니라.]
그제야 안심하고 경계를 풀었다.
“후우우우.”
소문으로만 들었던 곳.
과연 자신이 이 게이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제 천왕보를 네게 정식으로 하사하겠다, 제자야.]
무극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메시지가 떴다.
[천왕보(B)를 배우셨습니다.]
[앞으로 천왕보(B)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무공을 참 쉽게 얻었다.
언제는 무공 계승이 이상하게 되어 가문에서 버려졌다시피 됐는데 말이다.
이준이 쓰게 웃으며 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 그었다.
[기본 정보]
칭호: 은거자의 막내제자 (외1)
이름: 이준
나이: 18
잠재력: 등급 외
고유 스킬: 혼원신공(SSS)
일반 스킬: 천왕보(B)
특성: +세상에 회의를 느낀 무극의 길 루트(??)
∴테크트리 포인트: 50,000p
[능력치]
체력: 37/100
신체: 33/100
힘: 55/100
민첩: 33/100
-특수항목-
내공: 103/620
정신력: 42/150
-상태-
전투력 +10%
그동안 200kg에 달하는 묵철을 착용하고 훈련을 했다.
그랬더니 모든 스탯이 골고루 오른 상태였다.
이준이 흐뭇하게 상태창을 바라보다가 홀로그램을 껐다.
[본격적으로 네 몸을 개조시킬 것이다. 내공은 물론이거니와 신체 능력까지. 잘 따라 오거라.]
“네. 강하게만 해 주신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오냐. 지옥을 경험하게 해 주마. 마침 몬스터가 나타났구나. 준비해라.]
두 사제의 수련을 알기라도 한 듯, 몬스터가 저 멀리서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 * *
사막에 나타나기 시작한 몬스터는 불꽃 호리들.
몸 전체에 화염이 이글거리는 여우였다.
불꽃 호리의 강함은 꼬리에 따라 달라졌다. 보통 두 개에서 세 개의 꼬리를 가졌다.
이준이 마주한 불꽃 호리들도 꼬리가 두 개였다.
[잘 듣거라. 황보세가의 보법은 무식한 힘을 바탕으로 한 무공이다. 보법에 변화가 없으며 오로지 강함을 추구하는, 쉽게 말해서 단순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이제 막 무공을 익힌 너에게 잘 맞을 것이다.]
불꽃 호리들이 어느새 지척에 이르렀다.
크르르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이준을 한껏 경계했다.
[온다.]
불꽃 호리 네 마리가 이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녀석들은 굉장히 똑똑했다.
도망칠 퇴로를 미리 차단하며 달려들어 이준이 피할 곳이 없었다.
[천왕보를 이용해 우로 두 걸음 그리고 몸을 최대한 꺾으며 뒤로 쭉 빠져라.]
여태 수련한 것도 있고, 죽기 전 D급을 달성한 각성자였던 이준이었다.
불꽃 호리 네 마리는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던 그였는데.
정신이 없었다. 생각 외로 불꽃 호리들이 너무 강했다.
이준은 사부의 음성을 되뇌며 천왕보를 사용했다.
‘우로 두 걸음.’
이준의 신형이 옆으로 자연스럽게 미끄러졌다.
‘몸을 최대한 꺾는다.’
허리를 잔뜩 꺾자, 점프를 하며 달려든 불꽃 호리의 밑을 점할 수 있었다.
피할 기회를 얻은 이준이 뒤로 쭉 빠졌다.
꺼겅!
불꽃 호리들은 자기네들끼리 부딪쳤다.
“됐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불꽃 호리의 공격을 피해 좋아하던 이준의 얼굴이 금세 다급하게 변했다.
이곳에 고작 네 마리의 불꽃 호리들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주변으로 동족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었다.
촤악-
“윽!”
이준의 방심으로 인해, 다른 불꽃 호리가 발톱을 세워 그의 팔을 훑고 지나갔다.
상처가 깊게 패였다.
붉은 핏방울이 사막의 모래에 뚝뚝 떨어졌다.
통증이 뇌를 뒤흔들었다.
[당황하지 말고 계속 천왕보를 펼쳐라.]
이준은 사부의 말을 의지하며 천왕보를 밟았다.
네 마리가 한 조를 이뤄 공격한 불꽃 호리들.
이준이 피하면 그 뒤에 기다렸던 녀석들이 달려들었다.
무극자 사부가 피하는 경로를 알려 주지만, 실전에 처음 천왕보를 써본 탓에 늦게 피해졌다.
“크윽.”
그 결과는 만만치 않았다.
이준이 입고 있던 옷은 어느새 누더기가 되었다.
불꽃 호리의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때문에 허벅지며 팔이며 옆구리까지.
안 다친 곳이 없었다.
괜히 그린 존 급 몬스터가 아니었다.
C급 각성자가 와도 불꽃 호리들이 이런 식으로 덤벼든다면 무사하지 못하리라.
이준은 지금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 차리지 못할까! 고작 이런 몬스터를 상대로 뭣 하는 것이냐.]
그의 호통에 이준은 정신을 단단히 부여잡았다.
고통을 버티기 위해선 단 하나, 혼원신공을 운용하는 것밖에 없었다.
동시에 천왕보를 이용해 불꽃 호리의 공격도 피해야 했다.
이 이상 상처를 입으면 정말로 죽을지 모른다.
쉭쉭-
이준은 그 어떤 때보다 천왕보에 집중했다.
몸놀림이 전보다 더욱 빨라졌다.
이준의 신형이 반짝이며 사라지다 나타나길 반복했다.
불꽃 호리가 물어뜯고 발로 할퀴었지만, 이준이 아슬아슬하게 피해 버렸다.
이게 여러 번 반복되니 불꽃 호리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르르르. 컹컹!
불꽃 호리들도 화가 났는지 주둥아리에 불꽃이 맺혔다.
[이 또한 못 피할 것도 없다.]
무극자 사부가 자신감을 심어 줬다.
이준은 사부를 믿고 천왕보를 펼쳤다.
* * *
“허어어억… 허어억.”
이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핏기 한 점 없는 얼굴. 상의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다.
몸은 상처 자국이 가득했다.
제일 눈에 띄는 건 목덜미 부근 상처였다.
조금만 깊었어도 저승에 가 있을지 몰랐다.
지금은 피가 굳어 딱지가 앉아 있었다.
“후욱….”
불꽃 호리들도 지쳤는지 혀를 쭉 내밀고 헐떡였다.
이준이 천왕보로 불꽃 호리들을 피한 시간은 한나절.
거의 쉬지 않고 6시간을 움직였다.
내공이 없으면 보법의 경로만 밟았고, 혼원신공이 내공을 회복시키길 기다렸다.
이준은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
여기서 죽을 수 없다는 생각.
강해져서 이기홍을 쓰러트리겠다는 일념. 가문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겠다는 생각.
더 나아가 대한민국에 우뚝 서겠다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견뎌냈다.
무극자 사부 또한 곁에서 힘을 준 덕에 불꽃 호리들을 지치게 만들 수 있었다.
현재는 소강상태였다.
[기회다. 적들이 지쳤을 때, 목을 따라.]
“조금만… 허어억… 쉬면 안 되겠… 허억… 습니까?”
[저 녀석들과 똑같이 쉬면 다신 기회가 없을 것이다. 네가 먼저 체력을 회복할 것 같으냐 아니면 놈들이 회복할 것 같으냐. 너보다 먼저 쉬고 있던 불꽃호리의 회복력이 더 빠를 것이다. 그렇다는 건 네가 먼저 쓰러진다는 소리. 죽고 싶은 게냐.]
이준이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어억… 그럴 수… 없습니다.”
[혼원신공의 회복력을 믿어라. 지금이 내공과 체력을 단번에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라.]
이준이 단전에 쥐똥만큼 남아 있는 혼원신공을 쥐어 짜냈다.
후웅-
몸에 회색빛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공기가 파르르 떨려 요동쳤다.
이준은 어떠한 무공도 쓰지 않고 그냥 무턱대고 손과 발을 이용해 불꽃 호리들을 공격했다.
퍽퍽-
깨갱!
두 마리가 이준의 주먹에 맞고 나가 떨어졌다.
불꽃 호리들도 위험을 느꼈는지 입에서 화염을 토해 냈다.
화르르륵-
곳곳에서 고온의 불꽃이 뿜어졌다.
이준은 전처럼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불꽃 호리의 옆으로 접근해 주먹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퍼벅퍽퍽!
불꽃 호리들이 차례대로 쓰러진 순간.
뜻밖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혼원신공의 경지가 3성에 도달했습니다.]
[텅 비었던 단전을 혼원신공이 단숨에 채웁니다.]
[10%이하였던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경이적인 성장력에 놀라 테크트리 포인트 250,000p가 지급됩니다.]
[혼원신공의 패시브 스킬인 공포가 발동했습니다.]
[주변의 몬스터가 시전자를 두려워합니다.]
헉헉대던 이준의 호흡이 금세 안정적으로 변했다.
그와 동시에 불꽃 호리들은 이준을 보고 한껏 몸을 낮추며 뒤로 빠졌다.
혼원신공의 패시브 스킬의 위엄.
대기를 짓누르는 무언의 압박이 주위로 퍼졌다.
이준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을 때, 무극자도 혼자 중얼거렸다.
[허허, 재능이로다. 단 두 달 만에 혼원신공의 경지를 3성으로 끌어올리다니… 첫째와 비슷한 재능을 타고난 아이라….]
무극자가 처음으로 자신에 대한 걸 말했다.
“첫째라면?”
[사부가 처음으로 가르친 제자다. 네 대사형이 되는 거지.]
“제 위로 몇 명이 더 있었습니까?”
[……네 명 더 있었다. 그건 됐고. 녀석들이 도망가지 않느냐! 어서 가서 죽여라.]
무극자 사부가 바로 화제를 돌렸다.
제자에 대해 말하는 걸 꺼려하는 모습이랄까.
말투에 씁쓸한 느낌이 들어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사부님.”
[어허, 어서 몬스터를 사냥하지 못할까.]
“무공 하나만 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무공 말이냐?]
“예. 무작정 주먹을 휘두르는 것보다 이참에 권법을 하나 배워서 실전에서 익히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준은 먼저 물어 놓곤, 무극자 사부가 날로 먹을 생각이냐고 호통을 치지는 않을까 잠깐 걱정했다.
하지만 이어 들려온 대답은 긍정이었다.
[그거 기특한 소리구나. 좋다. 너에게 맞는 권법을 하나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