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일진들을 처리하고 학교로 돌아가는 길.
이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적이 흐르고 있자,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의 마음에 지독한 한이 느껴지는구나. 아마도 조금 전 말한 신력권가란 곳 때문이겠지?]
‘네….’
항상 밝던 이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어떤 곳이더냐.]
‘황보세가의 무공을 익힌 곳이 신력권가입니다.’
[황보가의 무공을 익힌 현대가문이라. 구미가 당기는구나.]
무극자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너는 황보가의 무공을 익히지 못한 것이냐?]
‘네 혈족계승을 못 받았어요.’
[그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아라.]
‘자식을 낳으면 부모의 심법이 95% 확률로 고스란히 전승되는 걸 말해요.’
부모가 각성자면 그 자식들은 저절로 각성자가 된다.
심법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
그 아이들이 결혼해서 애를 낳아도 똑같이 혈족계승이 되었다.
[나머지 5%는?]
‘그보다 상위 심법을 계승한 선택받은 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철혈검가의 검룡을 예로 들 수 있어요.’
철혈검가는 남궁세가의 무공을 근간으로 이룬 현대 가문이었다.
검룡의 아버지는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창궁대연신공을 익힌 각성자.
하지만 검룡은 창궁대연신공보다 상위 심공인 천뢰제왕신공을 계승했다.
이런 이들을 타고난 혈통 천재라 불리기도 했다.
이준 같은 케이스는 여태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전무후무한 케이스였다.
[허허. 이 무슨 엿 같은 시스템이냐. 내 때는 그래도 사부를 잘 만나면 좋은 무공을 배웠거늘.]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네 아버지란 작자가 널 버린 것이냐?]
‘예….’
이준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무극자가 오히려 분노했다.
[고작 무공 때문에 핏줄을 버리다니. 그런 작자가 네 아버지더냐! 앞으로 걱정할 필요 없느니라. 이 사부가 너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
이준이 화들짝 놀랐다.
현대에는 무공을 배울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심법을 토대로 한 혈족계승.
다른 하나는 게이트에서 적은 확률로 무공서를 얻는 것이다.
두 방법 모두 제약이 있었다.
바로 심법.
대단한 무공서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고 타고난 심법이 받쳐 주지 않으면 무공을 익히지 못한다.
그래서 가문은 이준을 실패작이라고 버린 것이다.
‘그럴 수도 있습니까?’
[당연하지 노부가 누구라고.]
그런데 무공 전수라니.
이준은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왕 말 나온 김에 배울 무공을 골라 보겠느냐?]
‘네.’
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기초 훈련만 했다. 드디어 새로운 무공을 배우게 돼서 설렜다.
뭘까. 이왕이면 강하고 패도적인 무공이면 좋으련만.
부푼 마음으로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음… 뭘 가르쳐 줘야 할지 고민이야.]
‘사부님의 무공이라면 어떤 것이든 익히겠습니다.’
[제자로서 아주 참된 자세이니라. 대충 몇 개 간추려 보았으니 한 번 골라 보거라.]
무극자 사부의 목소리는 장난기가 넘쳐났다.
띠링-
알림음과 함께 홀로그램에 여러 항목이 떴다.
[제운종]
[나한보]
[천왕보]
[환환미종보]
창을 보는 이준의 눈이 커졌다.
‘사부님 구파일방하고 오대세가 무공도 아셨어요?’
[생전에 사부의 별명이 걸어 다니는 보고였느니라.]
현시대에 무공이 생기고 제일 불티나게 팔린 게 뭘까.
바로 무협 소설이었다.
무공을 모르는 이들은 무협지를 보고 무공의 종류를 공부했고, 어느 파의 무공이 강한지 정보를 얻기도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1세대 각성자의 기준.
지금은 일반 고등학교도 무림사란 과목이 추가되어 모르는 이가 없었다.
‘와.’
네 종의 무공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기본 무공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절기들.
외부에 유출되기라도 하면 피바람이 불 보물들이었다.
문득 사부의 정체가 더 궁금해졌다.
‘그런데 제가 이걸 익히면 탈 날 것 같아요.’
[왜?]
‘이곳도 무림처럼 각 가문이 세를 구축하고 있어요. 제가 그들의 무공을 알고 있다면 가만두질 않을 겁니다.’
[제자야.]
무극자 사부가 근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예?’
[무공 배우기 싫으냐?]
‘배우고 싶은데요?”
[그럼 잔말 말고 저 네 개 중 하나를 골라라.]
‘그래도….’
[가아아알!]
뇌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무극자 사부의 호통에 이준이 손으로 귀를 막았다.
[어디서 감히 사부의 말에 토를 다느냐. 내 때는 말이다…(중략)]
라떼사부가 나타났다.
이준은 무극자 사부의 말에 기계적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사부는 너의 태사부 되시는 천극자께서 까라면 깠느니라. 알겠느냐.]
‘물론입니다. 저도 사부님을 부모님보다 더 존경하고 있습니다.’
[크흠. 깨어 있는 제자로다. 이번만 봐주겠느니라.]
이준은 무극자 사부의 잔소리가 나오기 전에 무공으로 눈을 돌렸다.
하나가 눈에 띄었다.
천왕보.
황보세가의 무공을 이은 신력권가의 보법이다.
이준이 속한 신력권가의 보법이기도 했다. 그가 신중히 무공을 고르려는 찰나.
[에잉. 그냥 천왕보로 해라.]
‘알겠습니다.’
이준은 무극자의 말을 따랐다.
저 네 개의 무공 중 그나마 나은 게 천왕보였으니까.
어차피 자신의 가문 무공.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네가 강해지면 덤으로 가문에 복수할 기회는 따라오느니라.]
이준은 무극자의 말을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혈족계승을 못한 실패작이라고 버린 아버지.
그가 자식보다 사랑한 건 잘난 가문이었다.
혈족 계승도 못한, 버린 자식이 천왕보를 익혔다.
거기다가 잘하기까지 하면?
궁금해 미칠 것이다.
실패작이 가문의 무공을 어떻게 익혔는지 말이다.
가문에 엿을 먹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혈족 계승한 놈들보다 더 정확하게 익히고 말겠어.’
이준의 생각을 읽었는지, 무극자 사부가 친절히 천왕보에 대해 설명해줬다.
[천왕보만큼 기초로 배울 만한 무공은 흔치 않다. 간단하고 단순하며 육중하다. 이 보법으로 기본을 쌓아 놓으면 나중에 배울 군림보를 쉽게 극성으로 익힐 수 있다.]
그런데 걱정이 하나 있었다.
‘심법이 다른데 천왕보를 익힐 수 있습니까?’
[그런 걱정은 필요 없다. 혼원신공은 모든 무공을 품을 수 있도록 이 고금제일의 사부가 만들어놨느니라. 그리고 네게 천왕보의 진정한 힘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 지금은 그 형태부터 가르칠 것이다.]
시도 때도 없는 자랑에도 이준은 그의 말이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웠다.
[돌아가서 바로 수련하자꾸나.]
‘예!’
강해지겠단 염원을 담아 이준이 목소리를 우렁차게 냈다.
* * *
그렇게 다시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이준은 뒷산 공터에서 천왕보의 형태를 외웠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무공을 배우면 곧바로 스킬창에 뜬다.
그렇게 되면 바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왜 이런 고된 연습을 할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부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개학까지 얼마 안 남은 시간.
그전까지 몸 상태를 최대한 끌어올리려고 수련할 때였다.
‘다리에 내공을 집중해서 최대한 단순하게.’
이준의 신형이 공터를 가로질렀다.
상당히 직선적인 보법.
몸이 비틀리거나 허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괜찮게 하는구나.]
그렇게 배우기 싫었는데, 천왕보를 익히니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B급의 보법은 자신이 알고 있던 삼재보와는 격이 달랐다.
무공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천왕보를 계속 쓰면서 듣거라.]
“네.”
[사부가 너에게 무공을 주면 스킬로 바로 등록될 텐데, 그러지 않은 이유를 아느냐?]
“모릅니다.”
[내가 봤을 때는 이곳의 각성자는 사부가 무림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많이 약하더구나.]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무공이 스킬에 바로 등록된 덕분에 숙련도만 올릴 뿐 무공의 진체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사부님이 중국인이라 너무 편파적으로 말씀하시는 건 아닌지요.”
이준이 조심스럽게 무극자의 말에 토를 달았다.
[가아아알! 사부더러 지금 그 대륙의 오랑캐라고 했느냐!]
“아니셨습니까?”
[당연하지 않느냐! 난 찬란하고 위대했던 고려 출신이었다.]
“헉.”
이준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무림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아 대륙 출신인 줄 알았더니, 고려인이란다.
누가 고려인이 무림에서 천하제일인으로 이름을 떨쳤다고 여기겠는가.
“생각도 못했어요.”
[이제부터라도 알았으면 됐다.]
“갑자기 더 사부님이 존경스러워 보입니다.”
[한껏 존경하는 마음으로 사부를 대하는 걸 허락하겠노라.]
“그런데 사부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이준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 시절에 강자는 누가 있었습니까?”
[아주 먼 옛날 일이라 가물가물하다만… 생각나는 놈이 10대 천마란 미친 사이비와 14대 달마땡중, 이 두 녀석 말고는 내 기억 속엔 없다.]
마치 옆집 친구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준이 듣기에는 엄청났다.
무협지에서 항상 최고의 고수로 뽑는 두 사람.
천마와 달마였다.
그들의 대를 이은 강자들과 붙다니.
“두 사람과 겨뤄 보셨습니까?”
[말이라고 묻는 것이냐?]
“어땠습니까?”
이준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사부가 괜히 고금제일인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느니라.]
“이기셨군요.”
이준이 마보 자세 그대로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무극자 사부가 이에 화답해 주었다.
[2대1로 무려 3일 밤낮으로 겨뤄서야 제압할 수 있었느니라. 사부의 수련이 부족한 탓이었지.]
이준은 더 이상 크게 감탄할 수 없었다.
10대 천마와 14대 달마를 이긴 사람이 자신의 사부라니.
아주 자랑스러웠다.
물론 이게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도 사부를 치켜 올렸다.
“저 같은 제자를 거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부는 둔재도 천재로 만들 수 있느니라. 아주 훌륭한 사람이지. 홀홀.]
무극자 사부가 기분 좋게 웃었다.
그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이곳은 경험도 일천하다. 무림에선 네 나이 때 벌써 무림행을 나가서 도적이나 악인들을 목숨 걸고 상대하고 그랬다. 하루에도 수백의 목숨이 왔다갔다 거렸지 또한… (중략)]
무극자 사부의 말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이준은 기계적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네 또래 애들은 강해 봤자 이류. 너한테 맞은 세 명은 삼류에 속해 있다. 여기 수준으론 E급이려나? 무림에선 딱 칼 맞아 죽기 좋은 실력이지.]
사부가 기준을 정해 주며 말하니 바로 알아들었다.
자신도 무협 소설을 많이 읽었다.
소설에선 이류는 명함도 못 꺼낸 수준이었다.
일류는 되어야 실력이 있다고 한 지역에 소문이 날 정도.
무림 사관 고등학교가 딱 삼류 수준이라는 말에 이준은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들을 따라잡을 자신감이.
그러나 곧 들리는 무극자의 말에 자존심이 산산조각 났다.
[넌 지금 그들과 같은 수준이야. 쉽게 말해 무공을 갓 배운 햇병아리라고나 할까?]
“제가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공의 진체를 깨달아라. 전에도 말했지만, 이 사부의 제자가 되었다면 고금제이인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한데 왜 고금제이인입니까?”
[당연히 노부가 고금제일인 아니겠느냐.]
진중한 말을 하다가 갑자기 말이 옆으로 샌 사부였다.
괴짜 같은 그의 성격에 적응해야 했다.
“제가 어떤 수련을 하면 될까요?”
[사선을 넘나드는 극한의 상황. 그때가 깨달음을 얻기 가장 좋은 때이니라.]
이준은 알 듯 말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재 시대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몇 가지가 있었다.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와 싸우든가. 가문끼리 이권 다툼으로 싸우든가.
그것도 아니면 사마련이란 범죄자집단과 싸우는 것뿐이다.
이 세 개 말고는 없었는데… 불현듯 하나가 떠올랐다.
“설마!”
[네 생각이 맞다. 근처에 좀 강한 몬스터가 나오는 곳이 있느냐.]
있긴 있었다.
무림 사관 고등학교에서 관리하는 그린 존 게이트.
최소 C등급 각성자가 아니면 위험한 곳이었다.
이준이 아무 말이 없자.
[있구나?]
“있긴 한데…. 제가 들어가긴 무리입니다.”
[강해지고 싶지 않으면 들어갈 필요 없다.]
무극자가 이준을 자극했다.
오기가 생긴 이준이 마음을 먹었다.
“들어갈게요.”
[잘 생각했다. 너에겐 고금제일의 사부가 있다는 걸 잊지 말거라. 설마 사부가 제자를 죽이기야 하겠느냐.]
“사부님만 믿겠습니다.”
[아니, 너무 믿지는 말고. 사람을 너무 믿는 것도 안 좋다.]
믿으라고 할 땐 언제고.
진짜 사부의 성격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