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2화 가족의 탄생 (2) (144/145)


외전 12화 가족의 탄생 (2)
2023.06.17.



 
제이나는 나타니엘의 반대편에 앉아 그의 손을 잡고 물었다.


“혹시 아이가 싫어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품에 안긴 아이는 너무 소중했다.

세상에 이런 존재가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대가 위험해졌다. 이번에는 무사히 낳았다지만 다음에는 확실하지 않아.”

제이나는 자신은 괜찮다고 말하려고 입을 뻐끔거리다가 이내 다물었다.

그가 자신이 흘린 피를 보고 기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렇게 거부감을 느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이는 체이든 한 명이면 충분해.”

그는 방긋 웃으며 아이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쉬어, 난 이만 가 볼게.”

나타니엘은 체이든을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

제이나는 그런 나타니엘을 붙잡을 수 없었다.

* * *



“세상에, 저 눈! 어쩜 저렇게 폐하를 똑 닮을 수가 있죠.”

카시안은 신기하다는 듯 체이든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뒤 구르기를 하다가 보아도 폐하의 아이인 줄 알아볼걸요.”

“카시안.”

테레사는 잔뜩 흥분한 카시안을 가볍게 노려보았다.

체이든은 그런 카시안이 시끄러운지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틀었다.


“체이든을 데리고 돌아가도록.”

제이나의 명에 유모가 체이든을 안고 방 밖을 나가자 테레사가 카시안을 툭 치며 한마디 했다.


“그렇게 흥분해서 크게 말하면 아기님이 놀란다고.”

“그렇게 말하는 테레사도 선물을 왕창 가져왔으면서.”

카시안의 말에 테레사는 입을 닫았다.

그녀 역시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챙겨 온 선물의 양이 도를 넘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전부 필요할 것 같아서………”

시선을 피하는 테레사의 모습에 카시안은 배를 잡고 웃었다.


“카시안, 그만 놀려요.”

“폐하께서 그렇게 말 하시면 제가 할 말이 없죠.”

카시안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말을 덧붙였다.


“공작가에 사 둔 황녀님 선물은 이제 어떻게 할 건데?”

“황녀?”

제이나는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테레사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뺨을 붉히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황자 전하가 태어날지, 황녀 전하가 태어날지 몰라서 모두 사 뒀거든요.”

“테레사.”

워낙 검소한 그녀였기에 설마 저런 일을 벌일 줄은 몰랐다.


“아, 아버님도 허락하셔서 그만…….”

테레사는 어설픈 변명을 하려다 제이나의 눈빛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미 아버지께서 공작가의 이름으로 선물을 한가득 보냈는데, 왜 또 따로 보내나 했어.”

“아버님과 잘 상의해서 나름 품목이 겹치지 않게 조정했는걸요.”

제이나는 두 사람이 선물을 잔뜩 쌓아 두고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그들이 꼭 도토리를 잔뜩 쌓아 둔 다람쥐처럼 느껴졌다.

다 먹지도 못할 만큼 많아서 결국 썩어 없어질.


“남은 건 대체 어쩌시려고.”

제이나는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분명 전부 주문 제작을 했을 테니 누구에게 넘기기도 힘들 물건들일 것이다.


“황녀 전하가 태어나실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요, 뭘.”

카시안의 말에 제이나의 얼굴이 굳었다.


“폐하?”

“으음, 아직 잘 모르겠어. 아이를 더 가질지……. 나타니엘이 좀 꺼려 해서.”

“폐하께서요?”

카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 입궁했던 동생의 말로는 요즘 황제는 아이에게 푹 빠져 있다고 들었다.

평소 한 번도 늦지 않던 회의에 아이를 본다고 지각하여 뒤늦게 나타나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그날 좀 놀랐나 봐.”

“아아…….”

아이를 낳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은 의학이 많이 발전해서 사망률이 낮지만, 그래도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은 맞았다.


“흠, 폐하께서 그날 좀 많이 놀라시긴 했죠.”

카시안의 말에 테레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타니엘 역시 막시밀리안만큼은 아니지만 약한 불안 증상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뻔했던 기억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 막시밀리안을 보고 이미 알고 있었다.


“잘 이야기해 보세요. 가족계획은 함께 세우는 거니까요.”

“하아.”

제이나는 완고한 얼굴의 나타니엘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 * *

그날 오후.

제이나는 일정이 끝났을 나타니엘을 찾으러 갔다.

요즘 나타니엘은 공식 일정이 끝나면 바로 체이든의 방에서 하염없이 아이를 보다가 저녁을 먹으러 오기 때문이다.

체이든이 있는 방 앞에 나타니엘을 모시는 시종이 서 있었다.


“폐하께서 언제 들어가셨지?”

“30분 정도 지났습니다.”

시종의 말에 제이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가볍게 두들겼다.


“나타니엘, 들어갈게요.”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혹시나 아이가 깰까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타니엘은 아이의 침대맡에서 머리를 벽에 기댄 채로 깜빡 잠이 들어 있었다.

제이나는 조심스럽게 나타니엘 곁으로 향했다.


‘둘이 어쩜 저렇게 똑같이 생겼지.’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아무리 자식이라지만 이렇게 닮을 수가 있나.

그나마 눈매는 자신을 닮은 것 같았다.

곤히 잠든 체이든을 보자 미소가 절로 나왔다.


“제이나?”

옷이 스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나타니엘이 눈을 떴다.

그는 아이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제이나의 모습을 보았다.

따스한 오후 햇살이 일렁이는 방 안에서 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하고 행복해 보였다.

마치 꿈속의 한 장면 같았다.


“일어나셨어요?”

“응.”

저를 보며 웃는 제이나의 뺨에 손을 올리자 그녀가 녹을 듯이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언제 온 거야?”

“방금 왔어요. 저녁 먹기 전에 체이든도 좀 볼까 해서요.”

“깨기 전에 어서 나가지. 저녁 먹고 와도 충분하니까.”

제이나는 체이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기고, 나타니엘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둘은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체이든과 시간을 보낸 뒤 침실로 돌아왔다.

언제 이야기를 할까 호시탐탐 시간을 노리던 제이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를 붙들었다.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해요.”

“왜?”

“지난번에 아이 이야기를 제대로 못 끝낸 거 같아서요.”

그녀의 말에 나타니엘은 얼굴을 굳혔다.


“내 생각은 확고해.”

“나타니엘은 늘 걱정이 많아요.”

“그대가 너무 걱정이 없는 것뿐이야.”

나타니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제이나는 자신의 꿈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전 가족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제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는 제이나에게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나타니엘은 매번 걱정 때문에 주저앉으려 할 것이다.


“나타니엘은 동생들을 소중하게 여겼잖아요.”

“그거랑 이건 달라.”

“나중에 지친 체이든의 옆에 누군가 있다면 그게 가족이지 않겠어요? 나타니엘도 헨리와 아나이스가 있어서 더 좋았잖아요.”

나타니엘은 부정하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애정은 제이나를 만나기 전까지 그를 현실에 붙들어 준 유일한 감정이었다.


“그래도 제이나가 위험해지는 건 싫어.”

“저도 제가 위험해지는 건 싫어요. 하지만 그걸 감수할 만큼 나와 나타니엘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

제이나는 동그란 체이든의 뒤통수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나타니엘은 귀여운 딸이 보고 싶지 않아요?”

내 말에 나타니엘의 눈이 흔들렸다.


“둘째는 날 좀 더 닮았으면 좋겠는데.”

그 말이 직격타였다.

나타니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원한다면. 하지만 의사의 진료 후에.”

마지막까지 안심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제이나는 한숨을 삼켰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반대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언제쯤 그의 불안이 다 사라질 수 있을까.

제이나는 그를 꼭 끌어안았다.

이렇게 깊은 상처로 남을 줄 알았다면 좀 더 조심할 걸 그랬다.


“앞으로는 절 최우선으로 생각할게요.”

“응.”

이미 생긴 상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건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상처가 조금이라도 옅어지기만을 바라며 그를 꼭 끌어안았다.


 

* * *

시간은 물처럼 흘러간다.

제국은 갈수록 번창했고, 제국민들은 황실을 칭송했다.

신기하게도 진짜 용이 나타나고 나서는 제국민의 광기 어린 믿음도 한풀 꺾였다.

덕분에 나타니엘과 아이들이 짊어질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다.


“어머니!”

이른 아침인데도 우렁찬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난 반쯤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고 뽀르르 달려온 체이든을 보았다.


“체이든, 다른 사람 방에 들어올 때는 노크 먼저 하라 했지.”

“죄, 죄송해요.”

체이든은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의자 위에 폴짝 올라 앉았다.

이제 여덟 살이 된 체이든의 외모는 여전히 나타니엘을 쏙 빼다 닮았지만, 성격은 나와 똑같았다.


- 너 닮은 자식 낳아서 고생해 봐야지.

 
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 그냥 눈물만 날 뿐이었다.

나 같은 자식 정도면 양호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말썽쟁이였다.

하녀들 사이에서 체이든의 별명이 인간 폭풍이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는 반박도 못 할 정도였다.


“그래, 아침부터 어쩐 일이니.”

“다음 주에 삼촌이 온다면서요!”

“아아.”

그새 소문이 거기까지 났나 보다.

드디어 8년 만에 도망치듯 제국을 빠져나간 헨리와 아나이스, 그리고 킬리언이 다시 제국을 찾는다.

표면적으로는 공국과의 무역 협상 체결 때문에 오는 거라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래, 곧 오실 거란다. 동생도 같이 오니까 체이든이 잘 봐 줄 수 있지?”

“저만 믿으세요, 어머니.”

체이든은 싱글벙글 웃으며 호언장담했지만, 어째 체이든이 제일 불안했다.


“어머니.”

때마침 문을 두들기며 둘째와 셋째까지 나타났다.

문틈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며 눈을 반짝이는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레일라, 로이드. 이리 오렴.”

두 쌍둥이가 금발을 날리며 쪼르르 달려왔다.


“누가 와요?”

“레일라와 로이드 사촌 동생이 삼촌이랑 고모랑 같이 올 거야.”

“동생?”

레일라의 눈이 반짝거렸다.

로이드와 레일라는 이란성 쌍둥이로, 로이드가 5분 먼저 태어났다.

그 탓에 로이드가 자신이 오빠라고 강경하게 주장하는 통에 둘의 싸움이 잦았다.

그래서인지 둘 모두 동생이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물론 둘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없다.

내가 쌍둥이를 낳고 첫째 때보다 더 힘들어하자 나타니엘이 다음은 없다며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 레일라가 잘 돌봐 줄 수 있지?”

“응! 나, 나 동생 생기면 잘해 줄 거야!”

작은 손을 파닥거리며 좋아하는 레일라를 보며 난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 있던 로이드가 지지 않겠다는 듯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


“내가 레일라보다 더 잘 봐줄 수 있어.”

아이들은 서로 동생을 봐주겠다며 난리였다.


“자자,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아침에 일어나서 뭘 해야 하지요?”

내 말에 셋은 움찔 몸을 떨며 시선을 돌렸다.


“마력 훈련이요.”

셋 모두 나타니엘의 마력을 잔뜩 갖고 태어난 덕분에 아침마다 마력을 운용하는 훈련을 해야 했다.

마력을 가진 것과 별개로 마법에 대한 소양은 높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찾으러 오기 전에 어서 나가야지.”

“네에…….”

셋은 나가기 싫은 건지 서로 눈치만 보았다.

나타니엘은 다른 건 몰라도 마력을 다루는 법에는 엄격하게 굴었기 때문에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았다.

시계를 보자 아침 훈련 시간이 이미 지나 있었다.


“벌써 시간이 다 되었는데 늦으면 어떻게 된다고…….”

“이놈들!”

문을 열고 나타니엘이 들어왔다.


“지, 지금 나갈게요!”

다람쥐가 흩어지듯이 밖으로 뛰쳐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난 웃음을 터뜨렸다.

나타니엘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대체 누굴 닮아 저렇게 뺀질거리는지.”

누구긴 누구겠는가.

내 눈빛에 나타니엘이 살짝 뺨을 붉혔다.


“크흠. 그쪽은 어떻게 되어 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더라고 하더라고요.”

“아나이스와 헨리가 오기 전까지는 버텨 주었으면 좋겠군.”

나타니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두 사람이 오는 진짜 이유가 있었다.

밀리아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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