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1화 가족의 탄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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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1화 가족의 탄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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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1화 가족의 탄생 (1)
2023.06.14.
나타니엘은 초조한 얼굴로 문 앞을 왔다 갔다 거렸다.
잠시도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모습에 공작이 겨우 입을 열었다.
“폐하, 좀 앉으시는 게 어떨지요.”
나타니엘은 그런 공작의 얼굴을 힐끗 보고는 휙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의 눈가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발갛게 달아올라 있는 걸 보고 공작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도 걱정되어 죽겠는데, 나타니엘은 오죽할까 싶었다.
“폐하, 아버지!”
뒤늦게 소식을 듣고 공작 저에서 달려온 테레사와 막시밀리안이 도착했다.
나타니엘은 그들의 얼굴을 보고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타니엘은 더 초조해했다. 진통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몸에 안 좋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었다.
‘혹시 잘못되는 건 아니겠지.’
불길한 예감에 나타니엘의 눈이 굳게 닫혀 있는 문으로 향했다.
“폐, 폐하?”
“아무래도 불안해서 안 되겠군, 내가 들어가 봐야겠어.”
문을 열고 산실로 들어가려는 나타니엘을 테레사가 다급히 잡았다.
“지금 들어가시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어요. 산모는 취약해진 상태고, 폐하께서 어떤 균을 갖고 있을지 모르잖아요.”
누구도 하지 못할 말이었지만, 테레사는 그걸 해냈다.
테레사의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던 막시밀리안은 앞으로 나서며 나타니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지요.”
막시밀리안의 말에 나타니엘은 입을 꾹 닫았다.
꽉 쥔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이제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막시밀리안과 테레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 눈빛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일단 앉아서 기다리세요. 그렇게 안달복달한다고 좋아질 것도 없습니다.”
결국 윈터스 공작이 다시 나섰다.
나타니엘은 조용히 공작의 옆에 앉았다. 여전히 불안해 보이는 그를 보며 공작이 입을 열었다.
“별일 없을 겁니다. 제니가 다른 건 몰라도 운 하나는 기가 막히거든요. 걔가 태어날 때, 점쟁이 하나가 나타나서 스무 살만 무사히 넘기면 천수를 누릴 거라고 했습니다.”
별로 믿음직스럽지 못한 위로였지만 그나마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타니엘은 한숨을 쉬며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가 힘을 많이 받아 갔다지만, 여전히 배 속의 아이가 가진 힘은 컸다.
혹시라도 제이나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걱정 안 할 수가 없었다.
쓸데없이 방음까지 완벽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도 없었기에 더욱 걱정되었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창밖엔 해가 지기 시작했다.
“폐하!”
드디어 산실의 문이 열리고, 산파와 의사가 나왔다.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벌떡 일어나 우르르 그들 앞으로 향했다.
“축하드립니다. 건강한 황자 전하입니다.”
“제이나는?”
“황후 폐하도 건강하십니다.”
당장이라도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동동거리던 나타니엘의 눈에 얼핏 붉은 피가 보였다.
그의 시선을 느낀 산파가 재빨리 문을 닫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폐하!”
나타니엘은 자리에서 그대로 기절했다.
* * *
눈을 뜨자 낯선…… 아니 낯익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멍하니 눈을 깜빡거리던 나타니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이나!”
제이나가 흘린 것으로 보이는 피를 보고 기억이 끊겼다.
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미 한참 늦은 밤이어서 그런지 복도는 고요했다.
나타니엘은 어두운 복도를 빠르게 걸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폐하.”
제이나를 가까이서 모시는 하녀가 나타니엘을 맞이했다.
“제이나는?”
“지금 쉬고 계십니다.”
당장이라도 보고 싶어 문을 열려던 나타니엘은 망설여졌다.
‘들어가도 될까.’
하지만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었다.
고민하던 나타니엘은 조용히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문을 열자 보이는 침실에 아까 봤던 끔찍한 자국은 사라져 있었다.
침대 위에는 달빛을 받아 파르스름한 안색의 제이나가 눈을 감고 자고 있었다.
나타니엘은 천천히 그녀의 옆에 앉았다.
망설이던 그는 손을 뻗어 제이나가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했다.
손끝에 살짝 닿는 숨결에 저도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다행이다.”
긴장이 풀린 그는 가만히 제이나의 손 위에 제 것을 겹쳤다.
언제나 저보다 체온이 높았던 그녀였지만, 오늘은 제 손보다 차가웠다.
“이렇게 힘든 건 줄 몰랐는데.”
나타니엘은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로 제이나가 죽는 줄 알았다.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피비린내와 죽은 사람처럼 차가운 제이나의 몸은 나타니엘을 움츠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나타니엘?”
제이나의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느새 생기 있는 녹색 눈동자가 그를 향해 빙긋 웃고 있었다.
“세상에, 몸은 괜찮아요?”
나타니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나는 그런 나타니엘을 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
그가 문 앞에서 기절했다는 이야기는 아까 전 아버지에게 들었다.
“아이는 제가 낳았는데 왜 나타니엘이 기절하고 그래요.”
제이나의 말에 나타니엘은 뺨을 붉혔다.
“미, 미안. 그대가 제일 힘들었을 텐데.”
제이나는 그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머뭇거리던 나타니엘은 그녀가 부르는 대로 순순히 몸을 숙였다.
제이나의 손이 헝클어진 그의 머리카락을 슥슥 쓸어 넘겼다.
“전 정말 괜찮아요. 성녀가 마침 주변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공작부인이 도와주었나?”
제이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테레사 덕분에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정말 그녀가 없었다면 어쩔 뻔했는지 모른다.
“나중에 공작 부인에게 상을 내려야겠군.”
나타니엘은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얼굴이었다. 감정이 풍부해지기 시작한 이후로 이런 새로운 감정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제이나는 힐끗 주변을 살폈다.
아이는 유모가 데려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타니엘이 아이를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유모를 부를까?”
눈치가 부쩍 늘어난 나타니엘이 물었다.
제이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타니엘은 다급하게 일어나 밖으로 나가, 유모가 있는 건너편 방문을 벌컥 열었다.
“폐하!”
아이를 안고 있던 유모가 큰소리를 내며 갑자기 들어온 나타니엘을 가볍게 노려보았다.
소리에 놀란 아이가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나타니엘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제이나가 아이를 보고 싶어 해서…….”
나타니엘의 말에 유모는 아이를 데리고 방을 건너갔다.
하녀들의 도움을 받아 몸을 일으킨 제이나가 손을 뻗었다.
유모는 조심스럽게 제이나에게 아이를 건넸다.
제이나는 품에 안긴 아이를 나타니엘에게 보여 주었다.
오뚝한 코와 창백한 피부, 그리고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카락과 잠깐씩 보이는 붉은 눈동자까지.
정말 나타니엘을 쏙 빼닮았다.
“봐요, 나타니엘. 우리 아이예요.”
제이나의 말에 나타니엘은 멍한 표정으로 그녀와 아이를 번갈아 보았다.
“우리 아이.”
“봐요. 나타니엘이랑 완전 똑같이 생겼어요. 안아 볼래요?”
나타니엘은 떨리는 손으로 제이나가 건네는 아이를 안아 보았다.
외형은 저를 닮았지만, 체온만은 제이나를 닮았는지 조금 높았다.
나타니엘이 안아 들자 눈을 감고 있던 아이가 꼬물거리며 제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
생명체라는 게 어찌 이리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나타니엘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이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나타니엘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랑스러워.”
제이나 말고 다른 존재에게 이런 감정을 느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존재가 태어날 수 있는 걸까.
제이나는 그런 나타니엘을 보며 조용히 웃고만 있었다.
지금 그가 얼마나 행복한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다.
* * *
아이를 유모에게 들려 보낸 나타니엘은 조용히 제이나의 옆에 앉았다.
그는 손으로 제이나의 이마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고마워.”
“뭐가요?”
“그대가 아니었다면 가족을 갖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거야.”
생각해 보면 첫 만남부터 이상했다.
결벽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 정도로 타인의 손길이라면 질색하던 나타니엘이었다.
아무리 새끼 용의 모습이 되어 힘이 약해졌다지만, 그렇게 쉽게 그녀에게 휘둘릴 줄이야.
“나타니엘은 절 만나서 다행이에요.”
“그래, 그건 맞는 것 같아.”
나타니엘은 작게 웃으며 제이나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때 그대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도 안 가.”
선선히 인정하는 모습에 제이나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나타니엘은 그 모습을 보며 당장이라도 꽉 끌어안고 싶었다. 하지만, 아프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그만두었다.
그런 그를 보던 제이나가 먼저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이리 와요.”
“으응.”
살짝 뺨을 붉힌 나타니엘은 얌전히 그녀의 품에 안겼다.
커다란 남자의 등을 토닥이며 제이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가득 들어오는 체향은 늘 그녀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그의 말 대로 처음 만났을 때 이런 사이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어쩌다 결혼을 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된 걸까.
“그래도 그때 나타니엘을 만나서 다행이에요.”
아마 그때 내가 일부러 나타니엘을 만나러 쫓아다녔다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아직 아이 이름을 안 정했어요.”
“아.”
태어나기 전까지는 성별을 모르니 이름은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결정하기로 했다.
물론 표면상의 이유는 그랬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타니엘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대체 우리 아이의 이름을 짓는 건데 다른 사람들이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군.”
“뭐, 그냥 평범한 집안의 아이는 아니니까요.”
사실상 제국을 이어 갈 다음 황제의 이름이니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당장 내일부터 난리겠군.”
“고생해요, 나타니엘.”
제이나는 작게 키득거리면서 눈을 감았다.
* * *
아이는 하루 종일 보아도 신기했다.
나타니엘은 꼬물거리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체이든.”
옆에서 앉아서 수많은 이름 목록을 살펴보던 제이나가 마음에 드는 이름을 발견했는지 작게 중얼거렸다.
“체이든?”
“선대 황제 중에 가장 건강하고 오래 산 사람이래요.”
“황족은 원래 오래 사는데?”
용의 피를 이은 만큼 황실 사람들은 별에 걸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 그래도 어감이 좋잖아요.”
아까보다 목소리가 작아진 제이나가 작게 웅얼거렸다.
나타니엘은 그런 모습을 보곤 웃음을 참으며 제이나의 뺨을 문질렀다.
“그대가 마음에 든다면 그걸로 하면 돼.”
“나타니엘은 마음에 안 들어요?”
“아니, 나도 마음에 들어. 아이가 튼튼하게 자라는 건 중요하니까.”
나타니엘은 품에 안겨서 잠이 든 아이를 보며 작게 속삭였다.
“우리의 하나뿐인 아이니까, 건강해야지.”
“예?”
제이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나뿐이라니요. 전 셋은 낳을 거예요.”
어린 시절부터 아이는 무조건 셋이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된 가족도 없었던 전생 때문이었다.
다섯까지 낳는 건 힘들어도 적어도 둘 이상을 계획했는데.
“안 돼. 그건 내가 허락할 수 없어.”
나타니엘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