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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0화 예민한 생물 (142/145)


외전 10화 예민한 생물
2023.06.10.



 


“황후 폐하, 사절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시종장은 허리를 굽히고 내게 편지를 건넸다.


“확인할 테니 나가 봐.”

“예, 폐하.”

시종장이 나가자 책상 아래쪽에 있던 바구니에서 나타니엘이 나왔다.


“뭐라고 왔지?”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올라온 나타니엘이 물었다.

난 가볍게 그의 머리를 토닥여 주고는 편지를 뜯었다.

급전으로 도착한 덕에 내용이 길지 않았다.

아나이스의 결혼식이 무사히 끝났다는 이야기와 곧 카시안과 함께 돌아가겠다는 내용이 다였다.


“결혼식이 잘 끝났대요.”

“그거 다행이군. 언제쯤 돌아온다고는 안 적혔나?”

“편지에 적힌 날짜가 삼 일 전이니 이제 출발했을 거예요. 며칠 내에 도착하겠지요.”

길게 하품을 한 그는 가만히 편지를 보다가 내 팔에 기대어 누웠다.


“피곤해.”

“날이 슬슬 더워져서 그런가 봐요.”

그는 요즘 새끼 용의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다.

너무 강한 힘을 갖고 태어날 아이를 위해 일부의 힘을 넘겨받은 부작용이었다.


- 원래대로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겠는데.

힘의 인도를 도와준 시네스트라는 그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 뒤로 나타니엘이 새끼 용의 모습으로 지낸 지 몇 주가 지났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갑자기 자리를 비운 황제에 대해 묻는 귀족들이라던가, 그 자리를 대체한 아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가장 큰 문제는 나타니엘이 아팠던 거지만.’

처음 힘을 받아 갔던 날.

나타니엘은 힘을 받아들인 쇼크로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생전 아픈 소리도 잘 내지 않던 그였던지라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 뒤로도 며칠을 고열에 시달려서 애간장을 녹였다.

성인인 나타니엘도 버티기 힘든 크기의 힘을 어린아이가 어떻게 버텼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나타니엘은 어느새 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난 그의 머리를 손끝으로 가볍게 긁었다.

그러자 고로롱거리며 듣기 좋은 소리를 내는 걸 보며 웃었다.


‘이 모습이 귀엽긴 하지.’

나타니엘은 새끼 용이 되면 꼭 강아지처럼 굴었다.

멀리 떨어지는 것도 싫어하고, 하루 종일 놀아 주길 바라며 주변에서 맴돌기만 했다.


‘이 모습으로도 일을 도와줄 수 있다고 자신하더니.’

애석하게도 그의 약속은 휴지 조각이 된 지 오래였다.

덕분에 나타니엘의 일을 도와주기로 한 아버지가 매일 과로에 시달려야만 했다.

난 생각난 김에 나타니엘을 재우고 아버지를 도우러 가기로 했다.


“이런 데서 자면 입 돌아가요, 폐하.”

그를 침대에 데려가려고 움직이자 방금까지 잘 자던 나타니엘이 눈을 번쩍 떴다.


“어디 가?”

그는 손을 뻗은 채로 어색하게 멈춰선 날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거 저거, 귀여운 척하고 있지만 분명 짜증 난 표정이다.

요 몇 달간 용이 된 그와 24시간 가까이 함께 지낸 덕분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금방 알 수 있게 되었다.


“가긴 제가 어딜 가요. 그냥 불편해 보이길래 침대에 데려다드리려고 한 거죠.”

“거짓말.”

문제는 나만 나타니엘에게 익숙해진 게 아니라는 거다.

나타니엘 역시 내게 익숙해져서 내가 뭘 하려 했는지 금방 알아차리게 되었다.

서로 너무 붙어 있었다.


“하, 하하하. 그러고 나서 아버지 좀 도와드리러 갈까 한 거죠.”

“같이 가면 되는데 왜 맨날 혼자 가려고 해?”

그렇게 말한 나타니엘은 내 품에 폭 안겨 왔다.

난 그 투정에 한숨을 삼키고 그를 데리고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에 도착하여 문을 열자 음울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버지는 엄청나게 쌓인 서류들 사이에 피곤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오, 왔니?”

고개를 든 아버지는 내 품에 안겨 있는 나타니엘을 보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오셨습니까, 폐하.”

나타니엘은 별 대답 없이 고개를 까닥이고는 소파에 뽀르르 날아가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짤막한 손을 뻗어 앞에 있는 서류를 뒤적거렸다.

나는 그런 그의 옆에 앉아 조용히 아버지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나타니엘의 일이었지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처음에는 열정적으로 일하던 나타니엘은 결국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버지는 내게 작게 속삭이듯 물었다.


“매번 저렇게 조는데, 불편하게 여기에는 왜 오시는 게냐?”

“그, 글쎄요.”

아마도 나와 떨어지기 싫어서겠지만, 그런 부끄러운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들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졸고 있는 나타니엘을 노려보다가 서류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어 갔다.


“다시 돌아올 기미는 안 보이고?”

“그것도 저야 잘 모르지요.”

“어서 원래대로 돌아오셔야 할 텐데 말이다. 하여간 그 용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뭐 하나 똑 부러지게 전부 말해 주지도 없고, 본인들이 원하는 일에 휘두르기나 하고.”

“개념이 없긴 하죠.”

그들은 초월자답게 선, 악이라는 개념도, 인간의 감정에 대한 배려도 없었다.

그저 본인들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한 노력만 있을 뿐.


“그래도 평생 갈 거라고는 안 했으니까요.”

그나마 1년 내에는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준 게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힐끗 나타니엘을 보고는 말했다.


“너도 그만 돌아가거라. 홑몸이 아니니 조심하래도 왜 매번 오는 게야.”

“그야 아버지가 걱정되니까 그렇죠.”

“막스가 돌아오면 그나마 나을 거다.”

막시밀리안과 테레사도 없는 탓에 아버지가 가문의 일까지 처리해야 해서 정말 바쁘게 지냈다.

매번 감사하다고 말하기에도 죄송했다.

아버지는 힐끗 졸고 있는 나타니엘을 보고 우리를 방에서 내쫓았다.



“휴, 드디어 갔군.”

황제 부부가 떠난 뒤, 공작은 홀가분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사위라지만 일하는 자리에 상사격인 황제가 있는 건 너무 불편했다.


‘일이 많은 것보다 더 불편한데 왜 자꾸 찾아오는지 모르겠군.’

제이나가 자신을 걱정하는 건 알겠지만, 나타니엘을 달고 오는 건 정말 싫었다.

윈터스 공작은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지금은 일을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아버지에게 쫓겨난 나는 나타니엘을 안아서 침실로 돌아왔다.

잘 자고 있는 그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 소파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나타니엘은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눈을 뜨지 않았다.


“우웅…….”

그러다 그는 꿈을 꾸었는지 웅얼거리며 느리게 눈을 떴다.

아직도 잠에 취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저녁 먹어야 하니까 어서 일어나요.”

내 말에 나타니엘은 일어나려다가 털썩 다시 침대 위로 쓰러졌다.


“나타니엘?”

“졸려…….”

“허허, 이래서 나중에 아기한테 밥 안 먹는다고 혼낼 수 있겠어요?”

“으, 으으…….”

그는 좌우로 고개를 도리질하며 잠을 쫓았다.

요즘 그는 아버지다움에 부쩍 신경 쓰고 있었다.

아이에게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지 생전 신경도 안 쓰던 이미지 관리를 하고 말이다.


“나타니엘도 애 같은데, 아빠가 어떻게 되죠?”

뺨을 잡아당기며 놀리자 그가 탁 손을 쳐 냈다.


“아니다! 지금은 마력 때문에 그런 거라고.”

분했는지 콧김까지 뿜는 모습에 더 놀리려다가 참았다.

지난번에 저런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더 놀렸다가 그가 결국 감정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울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지금 나타니엘은 예민한 생명체 그 자체였다.


“자자, 밥 먹으러 갑시다.”

난 그를 번쩍 안아 들고 위로하듯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아직 분이 안 풀렸는지 씩씩거리는 모습에 웃음을 참기 위해 애를 썼다.

식사를 마치고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침대 위에서 졸고 있던 나타니엘이 눈을 떴다.


“잠이 정말 많아져서 걱정이에요.”

그는 길게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자고 나면 몸이 좋아지는 게 느껴져서 다행이다.”

“그러게요.”

힘을 받아들이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나타니엘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난 그를 꼭 끌어안고 중얼거렸다.


“앞으로 나타니엘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대가 아픈 것보다는 나은데.”

“그럼 우리 둘 다 안 아프기로 해요.”

“난 원래 튼튼하다. 제이나가 약한 거지.”

“저 정도면 평균이에요.”

“흥, 운동도 하기 싫어서 맨날 숨어다니면서 평균은 무슨.”

나타니엘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난 그가 슬쩍 접시 한쪽에 치워 둔 당근을 다시 가운데에 가져다 두며 방긋 웃었다.


“잠깐, 당근은 다 먹어야지요?”

“…….”

나타니엘은 입을 꾹 닫고 접시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결국 포크로 당근 하나를 찍어 겨우 입에 넣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턱을 보며 난 남은 당근 여러 개를 포크로 찔렀다.


“전부 먹을 수 있죠?”

울 것 같은 표정의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난 나타니엘의 입 안에 당근을 밀어 넣으며 웃음을 참았다.


“마, 맛없어.”

겨우 당근을 다 먹은 나타니엘은 테이블 위에 털썩 쓰러졌다.

그 모습이 장렬하게 싸우다 쓰러진 장수처럼 비장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아는 난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하자 뾰로통한 표정이었던 나타니엘도 웃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유쾌한 식사 시간이었다.

* * *

이제 대부분 익숙해져서 용이 된 나타니엘과 지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끔 쌀쌀한 새벽에 이렇게 서늘한 피부에 깜짝 놀라서 깰 때를 빼고는 말이다.

시간을 확인하니 다시 잠들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난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왔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숄을 두르고 테라스로 나왔다.

서늘한 새벽 공기가 기분 좋았다.


“아아, 기분 좋다.”

나타니엘은 언제쯤 사람 모습으로 돌아오려나.

지금도 귀엽지만 그래도 사람일 때가 훨씬 좋았다.

묘하게 낮은 목소리도, 조금 놀리면 화르륵 붉어지는 얼굴도 보기 좋았다.

가끔 보여 주는 환한 웃음은 조명을 켜듯 시야를 밝혔다.


“이러다가 남편 얼굴도 잊어버리겠……!”

등 뒤에서 누군가 날 확 끌어안았다.

훅 풍겨 오는 익숙한, 달콤한 체향과 용이 아닌 사람의 감촉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타니엘?”

“옆에 없어서 깜짝 놀랐잖아.”

투정 부리는 목소리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눈을 떴더니 옆에 내가 없어서 많이 놀란 것 같았다.

내가 죽을 뻔한 이후로 나타니엘은 약한 분리불안 증상 같은 게 생겼다.

분명 다 나았는 줄 알았는데 그가 새끼 용이 되고 나서 다시 증상이 재발했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진다더니, 그게 사실인가 보다.

아직도 눈물이 그렁거리는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아려 왔다.

난 그의 손등을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두들겼다.


“잠깐 바람 쐬러 나온 것뿐이에요. 놀랐어요?”

“응.”

“어휴, 곧 아빠가 될 사람이 이렇게 눈물이 많아서 어떻게 해요.”

“이런 건 우리 애도 이해해 줄 거다.”

난 그의 가슴에 몸을 기대며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내려다보는 얼굴이 부끄러웠는지 조금 붉어졌다.

내가 손을 뻗어 나타니엘의 말랑한 뺨을 통통 두들기자 그가 씨익 웃어 보였다.

내 이마와 뺨에 나타니엘의 부드러운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제야 그가 정말 돌아왔다는 게 느껴졌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응.”

나타니엘은 무심하게 웃으며 내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췄다.

마치 자신이 돌아온 것을 자랑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난 그의 팔을 토닥거리고 웃어 보였다.

그의 머리 뒤로 펼쳐진 하늘이 서서히 노란 빛으로 물들어 갔다.

오늘은 그와 나 모두에게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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