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8화 해피엔딩, 그 이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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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8화 해피엔딩, 그 이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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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8화 해피엔딩, 그 이후 (5)
2023.06.03.
아침 식사를 마친 그들은 아나이스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머무는 킬리언의 저택으로 이동할 준비를 시작했다.
“저, 테레사 님.”
아침 식사를 하는 중에 하녀가 우물쭈물하며 신문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테레사가 그것을 보니 가십을 다루는 신문인지 온갖 자극적인 문구가 가득한 와중에 어떤 제목이 눈에 띄었다.
[익명의 제보자가 밝힌 제국에서 온 카사노바의 정체.]
내용은 제국에서 온 사절 중 한 사람이 약혼녀가 있는 데도 여러 여자와 만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마탑에서 보낸 마법사라며 카렌을 콕 집은 것뿐만 아니라, 만난 적도 없는 오페라 가수와의 스캔들도 적혀 있었다.
누가 보아도 막시밀리안을 저격한 기사였다.
“뭐야, 이게.”
신문의 기사를 확인한 막시밀리안은 얼굴을 구겼다.
“당장 항의하고 오겠어.”
분노에 찬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테레사는 막시밀리안을 붙잡고 말했다.
“항의하기 전에 카렌부터 부르는 게 좋겠어.”
“응?”
“그 사람이 소문을 흘린 건지 어찌 알아. 올 때 널 소개해 줬다는 친구들도 같이 오라고 하자.”
“그치만…….”
“네가 이런 소문에 시달린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공국 사람들이 제국에서 온 사절에 뭐 그리 큰 관심이 있다고 항의하고 그래.”
막시밀리안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겠어?”
일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원래 막시밀리안은 이런 일은 무시하는 편이었다.
일일이 설명하고 다니는 것도 지쳤었고, 아니라 말한들 사람들이 잘 믿어 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나서는 이유는 오로지 테레사 때문이었다.
“나 이제 이런 거 신경 안 써. 넌 어제 하루 종일 나랑 같이 있었는데 뭘. 그래도 이 소문을 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확실히 알고 가고 싶어.”
소문은 누가 나선들 막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가십을 좋아하지 해명을 듣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잠깐 지냈다가 갈 사람들이니 더욱 그랬다.
“그래도 항의는 하고 올게. 이건 내 명예가 달린 일이니까.”
테레사는 막시밀리안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차마 말릴 수가 없었다.
막시밀리안이 나가고, 테레사는 카렌과 그 친구를 기다렸다.
“테레사!”
그들을 기다리던 중 어제 카렌 때문에 돌려보낸 카시안이 눈을 부라리며 방으로 들어왔다.
한 손에는 문제의 신문이 들려 있었다.
그걸 본 테레사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 자식, 또 다른 여자랑 만난 건 아니지?”
“아니야.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거 같아.”
“확실해?”
“카시안.”
테레사의 냉정한 얼굴에 카시안은 입을 닫았다.
보기 드물게 테레사가 화날 때가 있었는데 그게 하필 오늘이었던 것 같았다.
“네가 걱정하는 건 알지만 우리 일이니까 우리가 알아서 할게.”
“으응…… 미안, 나도 너무 과했던 거 같아.”
카시안은 침을 꿀꺽 삼키며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지금의 테레사는 예전의 늘 지켜 줘야 할 것 같던 모습에서 많이 달라졌다.
카시안은 찻잔을 홀짝이며 물었다.
“그런데 소공작은 어디에 갔어?”
“신문사에 항의한다고 나갔어. 난 만날 사람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고.”
그때 기사가 문을 두들기며 카렌과 그 친구의 방문을 알렸다.
“아가씨, 마탑에서 두 사람을 보냈습니다.”
“안으로 들어오라 해요.”
문이 열리고 창백한 얼굴의 두 사람이 들어왔다.
설마 사람을 보내 잡아 올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카시안은 짧게 혀를 차고 테레사가 어떻게 할지 지켜보기로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당당하던 카렌은 사람 좋은 킬리언이 화를 내는 걸 보고 잔뜩 기가 죽어 있었다.
“왜 불렀는지는 두 분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테레사의 냉랭한 말투에 레티샤는 나직이 웃음을 흘렸다.
“약혼자의 기사 때문인가요? 제가 과했다는 사실은 사과드릴게요. 제 친구가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아서 이야기를 흘린 것뿐인데 기사까지 날 줄은 몰랐어요.”
당당히 자신의 잘못이라 밝히는 레티샤를 보며 카렌은 입술을 물었다.
처음부터 자신과 막시밀리안 사이를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려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말은 두 사람이 연인 사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소문을 냈다는 건가요?”
테레사의 말에 레티샤는 어깨를 으쓱였다.
“소문이라고 할 건 없고요. 그냥 다른 친구랑 잠깐 이야기한 것뿐이에요.”
“그렇군요. 알고 있었는데 악의적으로 소문을 내셨다라…… 외교적인 문제가 생길까 봐 조용히 넘어가려 했는데 제 앞에서도 당당하게 그런 말을 하는 모습을 보니 그냥 못 넘어가겠네요.”
테레사의 말에 레티샤는 얼굴을 찡그렸다.
“사과드리겠다고 했잖아요. 귀족이면서 그런 것도 못 참으시나요?”
공국에서 귀족은 사실상 명예직이었다.
그래서 레티샤는 테레사를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았다.
고위 귀족이라지만 그녀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저희는 공국에 손님으로 온 겁니다. 그것도 제국 황제의 대리자로요.”
테레사의 말에 레티샤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막시밀리안이 누군지 정확히 몰랐다.
카렌이 데려온 남자이니 얼굴만 멀쩡한 별 볼 일 없는 남자인 줄 알았다.
그래서 아침에 기사가 났을 때도 조금 당황했다.
설마하니 그 남자가 제국의 사절단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뭘 원하시는 거죠.”
그제야 레티샤의 기세가 조금 꺾였다.
테레사는 그런 그녀를 비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뭘 할 수 있는데요? 아니라고 기사를 내줄 건가요? 그것도 아니면 우리 쪽이 만족할만한 위로금을 줄 건가요.”
“그, 그건.”
숨 막히는 상황 속에서도 카렌은 사색이 된 레티샤의 모습에 묘한 통쾌함을 느꼈다.
카렌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이겨 본 적이 없어서 레티샤의 저런 표정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카렌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기며 두 사람의 싸움을 구경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제 약혼자는 자신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며 상심해서 식음을 전폐했답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겠다며 소문을 낼 사람을 찾아 고소하겠다는 말도 했고요.”
“고소라니요. 그렇게까지 할 일은…….”
“레티샤 양은 다른 남자랑 놀아났다고 신문에 올라가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실 건가 보죠?”
테레사는 싸늘한 얼굴로 레티샤를 보며 말했다.
카렌도 별로 좋게 보지 않았지만 레티샤는 더 최악이었다.
“친구라고 생각하지도 않은 주제에, 가증스럽기 짝이 없네요. 여하튼 이곳에 당신이 한 말을 증언해 줄 사람도 많으니 고소는 어렵지 않겠네요.”
“이봐요!”
레티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저, 정말 신고하실 거예요?”
“자기가 한 말에는 책임을 지셔야죠, 그걸 카렌 양에게 알려 주고 싶어서 이런 짓을 벌인 거 아닌가요?”
테레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기사들을 불렀다.
“손님들이 돌아가신다는군요. 배웅해 주세요.”
건장한 기사들이 안으로 들어와 카렌과 레티샤 앞에 섰다.
“일어나시지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들의 압박에 두 사람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티샤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밖을 나갔다.
그 뒤를 따라 나가던 카렌이 뒤를 돌아 테레사에게 인사했다.
“가, 감사합니다.”
“뭐가요?”
“그냥요. 그냥 감사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방을 빠져나갔다.
테레사는 그런 카렌의 뒷모습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막시밀리안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많았었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아졌다.
어차피 다시는 안 볼 사람들이었고, 막시밀리안은 절대 자신을 배신할 리 없는 사람이니까.
테레사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 * *
돌아온 막시밀리안은 카시안과 테레사와 함께 킬리언의 저택으로 향했다.
며칠 뒤에 결혼식이라 준비할 것도 꽤 있었다.
특히 테레사와 카시안은 아나이스의 들러리를 서기 위해 드레스 가봉도 해야만 했다.
“테레사 님!”
현관까지 나와 그들을 반기는 아나이스의 표정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황성에 있었을 때는 볼 수 없던 얼굴이었다.
테레사는 그녀가 잘 지내는 걸 보면서 안심하며 그녀에게 웃어 보였다.
“잘 지내셨나 봐요, 표정이 좋아 보여요.”
“네, 덕분에요. 킬리언 경도 잘해 주고 공국 사람들도 친절하고요.”
테레사는 그녀의 손을 잡고 웃으며 응접실로 향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요. 마침 좋은 찻잎이 들어왔어요.”
저택 내부는 깔끔했다.
화려함을 강조하는 제국의 양식과 달리 단순한 색을 사용해서 깔끔하고 선명해 보였다.
아나이스는 그런 테레사에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다.
제국에서는 소심하고 눈치만 보던 그녀는 이제 허리를 펴고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가 예뻐 보였다.
테레사는 웃으며 응접실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다들 어떻게 지내요, 조카가 생겼다면서요.”
“맞아요. 황제 폐하께서 아주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세요. 황후 폐하께서 어디 움직이려고만 하면 난리도 아니라니까요.”
“어머. 폐하께서?”
카시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 모습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듯했다.
테레사가 웃으며 두 사람에게 그간 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머릿속이 가벼웠다.
* * *
막시밀리안은 킬리언에게 황제의 칙서를 건넸다.
킬리언은 내용을 확인하고 조용히 웃었다.
“폐하께서 아나이스를 많이 생각하시는군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킬리언은 편지를 조심히 서랍 안쪽에 넣었다.
“그나저나 안 좋은 소문에 휘말리셨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 뭐.”
막시밀리안은 껄끄러운 표정으로 그의 시선을 피했다.
이미 그 일로 충분히 골치가 아팠다.
신문사에 찾아가 항의하자 내일 신문에 정정 기사를 넣어 주겠다는 이야기만 했다.
테레사의 말대로 사람들 사이에 퍼진 소문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도 않았다.
속이 시원하지도 않고 짜증만 났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테레사가 처음 그 소문을 낸 사람을 잡았습니다. 일단은 상대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걸 생각입니다.”
“일이 마무리되기까지 좀 길어지겠군요.”
킬리언은 막시밀리안에게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말로 위로했다.
그럼에도 막시밀리안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테레사 양은 어떻습니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마음이 상한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킬리언은 아나이스에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었다.
제이나와 나타니엘 부부와 마찬가지로 이 두 사람도 꽤 힘든 사랑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고난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공국에서 그런 일을 당할 줄이야.
“고소한다 해도 크게 말이 떠돌 것 같지도 않아서 말입니다.”
“원래 소문을 내는 것보다 해명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지요.”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고민하던 킬리언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공국의 결혼식에서는 좀 특별한 의례가 있습니다.”
“의례?”
“일종의 미신 같은 것이지요.”
킬리언은 막시밀리안에게 그 의례에 대해 말했다.
“그대들의 결혼식인데 이렇게 신세를 져도 되는지 모르겠군.”
“마침 부탁할 사람이 카시안 양밖에 없는데 거절해서 누굴 세워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였습니다.”
“아나이스 황녀가 허락한다면 그리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는 막시밀리안의 표정이 조금 가벼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