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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6화 해피엔딩, 그 이후 (3) (138/145)


외전 6화 해피엔딩, 그 이후 (3)
2023.05.27.



 
테레사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막시밀리안과 함께 이런 축제에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사람 많은 것도 싫어하고 귀족적이지 못한 것은 더 싫어했다.


‘아.’

그러나 그의 살짝 찡그린 얼굴을 보자 그제야 그가 무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원하는 걸 들어 주기 위해 싫어하는 걸 참고 있는 것이다.

테레사는 그런 막시밀리안의 손을 잡고 광장을 빠져나왔다.


“저녁 먹고 숙소로 가자. 내일 출발해야 하잖아.”

“어? 더 놀아도 되는데.”

“아니야. 이 정도면 충분해.”

두 사람은 야외에 테이블을 내놓은 작은 펍으로 들어갔다.

해는 이미 졌지만, 축제를 밝히는 등불 덕에 길거리는 환했다.

둘은 야외 테이블에 앉아 주문한 메뉴를 기다렸다.


“후우, 덥네.”

막시밀리안은 식사를 위해 가면을 벗었다.

테레사는 단숨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의 테이블에, 정확히는 막시밀리안의 얼굴에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땀에 살짝 젖은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에 달라붙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 모두를 홀리고 있었다.

막시밀리안은 엷은 미소를 띤 채로 테레사를 보며 손부채질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더워?”

“어? 어어…….”

테레사는 이상하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두 번 본 얼굴도 아닌데 오늘따라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시, 식사 나왔습니다.”

주문한 음식과 술을 가져온 점원이 정신을 차리고 뒤늦게 접시를 내려놓았다.


“고맙군.”

점원이 막시밀리안의 짧은 감사 인사에 얼굴을 붉히는 모습을 보자 테레사의 기분은 곤두박질쳤다.

이건 막시밀리안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는 너무 잘났고, 테레사는 너무 평범했다.

주변에 화려한 사람이 가득한 세계에서 테레사는 자꾸만 위축되었다.

다들 신경 쓰지 말라며, 막시밀리안이 바라보는 사람은 너뿐이라 말했지만…….


‘결국은 내 문제야.’

그녀는 알았다. 자신이 열등감을 떨쳐 내지 못한다면 결국 이 관계는 아무것도 되지 못할 거란 걸.

테레사는 달지만 쌉싸름한 술을 마시며 속을 달래야만 했다.

* * *



“괜찮아?”

“으응…….”

테레사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지난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덕분에 기억이 중간에 똑 잘려 있었다.

물론 막시밀리안이 방까지 잘 데려다주긴 했지만, 묘하게 제 눈치를 살폈다.

테레사는 불안해졌다.

전날 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 불안은 오래가지 못했다.

처음 느껴지는 숙취에 시달리는 것도 힘들었는데 덜컹거리는 마차를 타고 움직여야 하니 더욱 끔찍했다.

테레사는 자신 때문에 일정이 밀리는 건 싫어서 이를 악물고 버텨야만 했다.


“좀 누울래?”

“으응?”

막시밀리안은 테레사를 끌어서 제 허벅지에 머리를 올리고 가로로 길게 눕게 했다.

그러고는 당황한 그녀의 눈을 손으로 가렸다.


“눈 감고 있다 보면 금방 잠이 올 거야. 그럼 좀 편할 거야.”

좀 민망하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지금 테레사는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앉아 있는 것도 고통스러웠는데 누군가 기댈 한편을 내어 준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딱딱해서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허벅지에 머리를 올린 채 금방 잠이 들었다.

막시밀리안은 그런 테레사의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난밤 그녀가 술에 취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항상 내가 부족한 게 아닌가 싶어.

 
막시밀리안은 테레사가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들의 약혼은 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윈터스 소공작에게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백작 영애.

한때 그는 그런 소문이 들리는 것에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어차피 자신이 하는 결혼이었다.

남이 하는 소리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테레사는 달랐다.

그 수많은 회귀 동안 우리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번만큼은 좀 다르지 않을까 했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


“난 정말 상관없는데.”

어떻게 해야 그녀에게 믿음을 줄 수 있을까.

막시밀리안은 한숨을 참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목적지에 도착한 듯 마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제일 앞에서 달리던 기사가 마차 문을 두들겼다.


“공국 쪽에서 마중 나온 사람이 도착했습니다.”

그 말에 막시밀리안은 테레사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어 깨웠다.


“으음, 벌써 도착했어?”

“마중 나온 사람이 왔나 봐. 머리는 좀 괜찮아?”

테레사는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막시밀리안은 그런 그녀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천천히 나와. 먼저 나가서 이야기 좀 하고 있을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스킨십에 테레사는 멍한 얼굴로 마차에서 내리는 막시밀리안을 그저 바라보았다.

물론 키스나 포옹 같은 걸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꽤나 갑작스러웠다.


“막스!”

혼란스러운 와중 마차 밖에서 들려오는 발랄한 여자 목소리에 테레사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서 문을 열고 내리자 어떤 여자가 막시밀리안을 끌어안고 있었다.


“자, 잠깐! 이것 좀 놓고…….”

적어도 막시밀리안이 당황했다는 건 충분히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심장이 떨어질 것처럼 기분이 나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테레사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막시밀리안에게 다가갔다.


“아는 사이?”

테레사의 목소리에 막시밀리안은 힘을 주어 제게 달라붙은 여자를 밀어냈다.

그에게 밀려 형편없이 나동그라진 여자가 얼굴을 구겼다.


“막스, 너무 하잖아.”

여자는 울분에 차서 막시밀리안을 올려다보았다.

당연히 자신을 일으켜 세워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보다 못한 기사가 그녀를 일으켜 세워 줬다.


“저쪽은 아는 사이인가 본데?”

“난 이름도 기억 안 나.”

테레사는 괜히 말이 뾰족하게 나오는 걸 느꼈다.

안 그러려고 했지만, 질투와 열등감이 그녀를 휘감았다.

화려한 붉은빛이 도는 금발에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청금색 눈,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까지.

지나가다가 얼핏 보아도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외모였다.


“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마탑에서 여러분들을 모시기 위해 보내진 카렌 스티노프라고 합니다.”

카렌이라는 이름을 직접 듣고 나서야 막시밀리안은 그녀를 기억해 냈다.

카렌은 막시밀리안을 빤히 보면서 입을 열었다.


“막시밀리안과 오랜 친구 사이이기도 하죠.”

그녀의 말에 테레사의 얼굴이 굳었다.


“막스의 친구라면 제가 모를 리가 없는데.”

“아, 아마 그쪽은 잘 모를 거예요. 전 막스가 윈터스 공작성에 머무를 때 친해진 사이이거든요.”

막시밀리안이 아직 어릴 때, 그는 윈터스 공작령에 있는 성에서 몇 달 정도 지내곤 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고, 너무 어릴 때라서 카렌의 얼굴을 기억조차 못 했다.


“그렇군요.”

테레사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걸 보며 막시밀리안은 급하게 테레사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어릴 때 잠깐 같이 논 게 끝이라서 기억도 잘 안 나. 엄청 친했던 것도 아니고. 알잖아, 내가 사람들 별로 안 좋아하는 거.”

막시밀리안의 태도에 이번엔 카렌의 기분이 상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막시밀리안은 모든 여자에게 기본 이상으로 상냥했다.

게다가 둘은 꽤나 절친해서 리먼 부인이 따로 불러 소공작께 예의를 지키라며 카렌을 혼낼 정도였다.


‘저 여자가 그 약혼녀인가.’

어린 시절부터 막시밀리안이 테사라 부르던 그 약혼자 말이다.


‘혼자 올 줄 알았는데 함께 오다니, 이건 좀 곤란한데.’

약혼녀가 있는 자리에서 이런 짓을 하는 건 좀 별로였지만, 카렌은 지금 앞뒤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흐흠, 하여튼 앞으로 잘 부탁해요, 두 분 다.”

카렌은 개의치 않고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앞장섰다.

막시밀리안은 침을 꿀꺽 삼키며 테레사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는 드물게 무표정한 얼굴로 멀어지는 카렌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저, 저기.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알아. 이름을 밝히기 전까지 기억도 못 한 거.”

그렇다고 갑자기 나타난 여자가 막시밀리안에게 달라붙는 걸 좋게 볼 리가 없었다.

테레사는 말없이 몸을 돌려 마차에 올라탔다.


“하아…….”

막시밀리안은 그 모습을 보곤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래도 앞날이 험난할 것 같았다.

* * *

순간 이동 장치까지 가는 길은 카렌이 마법으로 주변을 막아서 구경할 거리가 없었다.

덕분에 마차 안은 숨이 막힐 정도의 침묵이 흘렀다.

막시밀리안은 테레사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고민했지만,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저렇게 상심한 테레사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순간 이동 장치에 도착했어요.”

카렌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막시밀리안은 테레사와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예전에 보았던 순간 이동 장치보다 훨씬 큰 장치가 보였다.


“자자, 어서 올라가세요.”

“이걸로 이동하면 바로 황녀님과 만나는 건가요?”

테레사의 물음에 카렌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수도인 베른 근교로 이동할 거예요. 거기서 마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면 도착할 겁니다.”

“그렇군요.”

“자아, 그럼 출발합니다!”

사람들이 장치 위로 다 올라온 걸 확인한 카렌이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세상이 울렁거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풍광이 바뀌었다.


“테레사!”

그리고 그곳에는 카시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 * *

황제가 직접 보낸 사절단인 만큼 공국의 평의회에서 직접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다행히 카시안과 같은 호텔이었고, 그 덕에 막시밀리안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오늘처럼 카시안이 빛나 보인 날이 없었다.

그녀는 늘 막시밀리안을 탐탁지 않은 눈으로 보았기에 꽤나 불편한 사이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갑자기 절친이라 주장하며 나타난 카렌의 존재에 심란해하는 테레사가 드디어 웃기 시작했다.

막시밀리안은 그녀에게 테레사를 맡기고, 재빨리 카렌의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리먼 부인이 책임지지 못할 친절을 함부로 베풀어선 안 된다고 했었지.’

어린 시절에는 평민인 카렌이 고지식한 다른 귀족들과 달라 보여 좋았다.

자유롭고 마탑에 들어간다는 목표가 확실해 보여서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친하게 지냈는데…….


‘설마 선도 지키지 못할 정도로 망나니였을 줄이야.’

그때는 어릴 때니 상관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성인인데 이런 태도를 보이며 관계를 이어 나가는 것은 불편하고 싫었다.

괜히 테레사가 더 신경 쓰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카렌 경이 어디서 머무는지 알고 있나?”

밖으로 나온 막시밀리안은 그들을 지키기 위해 파견된 공국 측의 기사에게 카렌의 행적을 물었다.


“아마 1층에서 기사들 배치를 확인하고 있을 겁니다.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저희에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아닐세.”

자신에게 집적거리지 말라는 말은 직접 해 주고 싶었다.

막시밀리안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 로비로 향했다.


“카렌, 너 설마 이런 곳에 혼자 온 거야?”

“일 때문에 온 거라니까.”

“거짓말하지 마. 마탑에서 일하는 네가 호텔까지 와서 일하는 게 말이 돼?”

“극비 업무 수행 중이라…….”

카렌은 로비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커플로 보이는 두 남녀는 카렌과 꽤 친해 보였다.

아니 친하지 않은 건가.

특히 그들 중 여자 쪽은 묘하게 카렌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나중에 말하는 게 좋겠다.’

막시밀리안은 그들의 대화를 듣곤 어쩐지 지금 끼어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시밀리안이 몸을 돌려 로비를 빠져나가려는 찰나, 누군가 우렁찬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막스! 여기야, 여기!”

카렌의 목소리에 막시밀리안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외침에 호기심이 가득 찬 사람들의 시선이 막시밀리안에게 닿았다.

카렌은 재빨리 달려와서 그의 팔짱을 끼며 웃었다.


“말했지? 내 애인. 이번에 놀러 오기로 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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