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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5화 해피엔딩, 그 이후 (2) (137/145)


외전 5화 해피엔딩, 그 이후 (2)
2023.05.24.



 
나타니엘은 본인이 말해 놓고 한숨을 쉬었다.

제이나의 고집과 실행력을 직접 보고 겪은 막시밀리안은 그 한숨이 뭘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크흠, 여하튼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더군. 잘할 거라고 믿어 주는 수밖에.”

그녀가 죽은 줄 알았을 때의 기억은 여전히 나타니엘을 괴롭혔다.

가끔은 제이나를 어디에도 나가지 못하게 붙잡아 두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타니엘은 그녀를 믿어 주며 그것들을 지워 냈다.


“제이나가 어린 애도 아니고, 적어도 본인에게 해가 될만한 일은 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으니까.”

불과 얼마 전 일을 생각하면 그런 것 같지도 않았지만.

나타니엘은 애써 표정을 풀려고 노력하는 막시밀리안을 보며 말했다.


“그냥 빨리 결혼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옆에 두고 지켜보는 것만큼 안심되는 것도 없지.”

“충고 감사합니다.”

막시밀리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서류로 시선을 재빨리 돌렸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위로하기엔 아직 어색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방 안은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 * *

드디어 공국으로 출발하는 날이 다가왔다.

막시밀리안이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쓴 덕에 별일 없이 일이 진행되었다.

모처럼 황제와 황후가 사절단의 배웅을 위해 나왔다.

황후의 임신 소식이 알려진 이후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 나선 것이다.

게다가 오직 황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꾸려진 사절단치고는 규모가 꽤 컸다.

그만큼 황실에서 이 결혼식을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보여 주는 것이었다.

혹여나 전 황후의 실각으로 아나이스가 위축될까 더 신경을 썼다.


“이렇게 배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후 폐하.”

“그런 말 말아요. 아나이스 황녀에게 제가 꼭 가고 싶었는데 못가서 미안하다고 전해 주세요.”

“이해하실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테레사에게 다가온 제이나가 주변을 살피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 가져가요.”

뱅글 형태의 단순하지만 꽤 고급스러운 형태의 팔찌였다.

제이나는 팔찌를 테레사의 팔에 끼워 주었다.


“이게 뭐예요?”

“보호 마법이 걸려 있는 마도구예요. 나타니엘의 힘을 넘는 마법사가 공격해야만 보호 마법이 깨진다고 했어요.”

이 세계에서 나타니엘은 차원이 다른 강자였다.

테레사가 아는 한 그런 나타니엘보다 강한 마법사가 존재할 리가 없었다.

시네스트라가 직접 나타난다면 모를까.


“오라버니가 얼마나 걱정하던지 나타니엘에게까지 와서 한탄을 했나 보더라고요. 그 한탄을 듣고 나타니엘이 생전 남의 일에 신경 안 쓰더니 이번엔 좀 걱정됐는지 이런 걸 다 만들었더라고요.”

제이나의 말에 테레사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죄, 죄송해요. 이런 이야기를 거기까지 가서 왜 했는지 모르겠네요.”

“그런 말 말아요. 우리 때문에 먼 길 가는 건데 걱정할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니 조심해서 다녀와야 해요.”

제이나의 당부에 테레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리자 멀리서 나타니엘과 이야기하는 막시밀리안의 뒷모습이 보였다.

분명 제 앞에서는 다 괜찮은 것처럼 행동했는데.

언제부터 막시밀리안이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시작한 걸까.


“잘 다녀와요, 두 사람 다.”

나타니엘과 제이나의 배웅을 받으며 두 사람은 마차에 올랐다.

공국까지 가는 데에는 일주일 정도 걸릴 예정이었다.


“국경을 넘으면 순간 이동 장치로 수도로 이동할 거야.”

“순간 이동 장치로?”

아무리 우호국이라고 하지만 타국 사람에게 잘못하면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는 곳을 보여 주다니.

테레사가 놀란 표정을 짓자 막시밀리안이 말했다.


“그쪽에서 사람을 보내 주기로 했어. 아마 이동 장치까지 가는 길은 숨기겠지.”

“그렇구나.”

그녀는 혹시 이것도 네가 요청한 거냐고 묻고 싶은 걸 참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가 자신을 최대한 배려해 주려 애쓰고 있다는 건 알겠다.

그렇게 해서 얻은 행복이 정말로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걸까?

준비하는 기간 내내 막시밀리안이 눈에 띄게 수척해지는 걸 보며 점점 미안해졌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저렇게 된 것 같아서.


‘우리는 잘 안 맞는 걸까.’

그와 함께할 수만 있어도 행복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사이에 자신과 막시밀리안이 변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레사는 그런 고민들에 머리가 아파 와 그저 멍하니 창문 밖을 내다봤다.

* * *

먼 길을 가는 여행이었지만 힘들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막시밀리안이 어찌나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는지 부족함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테레사는 그런 막시밀리안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배려와 계획성 있는 모습은 자신이 알던 막시밀리안이 아니었다.

몇 번인지 모를 정도로, 수없이 많이 회귀했던 막시밀리안은 기억을 되찾고 난 뒤 너무 멀게 느껴졌다.


‘전에 없이 친절하고 사려 깊은 막시밀리안의 태도라고 말한다면 다들 기겁하겠지.’

단둘이 아침 식사를 함께하기 위해 일부러 여관 식당을 통째로 빌린 덕에 식당 안에는 막시밀리안과 테레사, 두 사람만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수프와 갓 구운 빵, 과일이 올라와 있었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음식은 아니었지만 담백하고 그녀의 입맛에 잘 맞았다.


“하아…….”

“왜 그래?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응? 아니야, 그런 거.”

막시밀리안은 보던 신문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제대로 물으려 했다.


“손님들, 베네토시에서 열리는 카니발에 가시는 건가요?”

후식이라며 진하게 우린 밀크티를 각자 앞에 내려주며 점원이 말했다.

막시밀리안은 점원을 가볍게 흘기며 말했다.


“베네토시를 들르긴 하지만 카니발은 참석 안 합니다.”

“카니발?”

처음 듣는 이야기에 테레사는 눈을 반짝였다.

매해 베네토시에서 열리는 카니발에 대해서는 그녀 역시 들은 바가 있었다.

가면을 쓴 채로 광장에서 열리는 가면 무도회라든가, 하늘에서 천사의 모습으로 가장한 마법사들이 보여 주는 환상적인 제례에 대해서 말이다.


“가시는 길이라면 꼭 구경하십시오. 올해에는 황후 폐하의 회임 소식에 더 크고 화려하게 열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막시밀리안은 저도 모르게 테레사에게 시선이 갔다.
기대로 설레는 얼굴.

생각해 보니 회귀했던 그 긴 시간 동안 테레사와 단 한 번도 함께 사적인 외출을 한 적이 없었다.


“가고 싶어?”

“아, 아니. 괜찮아. 너 그렇게 시끄러운 자리 싫어하잖아.”

“너랑 같이 가고 싶은데.”

“어?”

테레사는 의외의 제안에 놀란 눈으로 막시밀리안을 보았다.


“안 될까?”

“나, 나는 좋은데.”

그녀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막시밀리안은 다행이라는 듯 웃으며 다시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테레사는 이상한 위화감을 감추며 식사를 계속했다.

분명 기뻐야 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 * *

그렇게 도착한 베네토시는 카니발 준비로 시끌벅적했다.

베네토시는 해안가에 지어진 수상 도시로 수로가 흐르고 그 위 배가 다니는 독특한 풍광을 자랑했다.

좁은 골목골목마다 꽃과 색종이로 장식해서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막시밀리안 일행은 중앙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고급 여관에 짐을 풀었다.

테레사는 챙겨 온 간단한 드레스를 입고, 긴 머리를 하나로 높이 묶었다.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든 부츠까지 신고 나자 누가 보아도 평민으로 생각할 것 같았다.

테레사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문 앞에는 뜻밖에도 막시밀리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나가도 되겠어?”

“응.”

막시밀리안 역시 간단한 셔츠에 바지, 그리고 부츠를 신고 있었다.

테레사가 입은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재질인데도 한눈에 그가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태가 났다.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은발이라든가, 흔치 않은 보라색 눈도 그랬다.


“왜?”

나름 감춘 것이었지만 그의 외모는 너무 눈에 띄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뒤를 돌아보며 막시밀리안의 얼굴을 확인했다.


 
정작 그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테레사는 노점에서 팔고 있는 가면을 발견했다.

가면이 모자와 연결되어서 그의 머리카락과 외모를 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구차한가.’

테레사는 심각한 얼굴로 가면을 보며 갈등했다.


“우리도 저거 살까?”

그런 테레사의 마음을 눈치챈 듯 막시밀리안이 먼저 나섰다.

그리고 정확히 테레사가 보고 있던 가면을 들었다.


“잘 어울릴 것 같아?”

“으응.”

막시밀리안은 계산을 마치고 가면을 썼다.

그리고 나비 모양의 푸른 가면을 골라 계산하고 테레사에게 건넸다.


“이거, 잘 어울릴 거 같아.”

테레사는 생각보다 화려한 가면에 조금 당황했다.

저런 게 자신한테 어울릴 리가 없었다.

하지만 막시밀리안이 웃으며 씌어 주는데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얼굴이 사기라니까.’

테레사는 묘하게 기분이 상한 채로 거리로 향했다.

거리는 테레사의 기분과 달리 활기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덕분에 기분이 상했던 건 순식간에 잊혀졌다.

둘은 좁은 골목을 걸으며 축제를 구경했다.

테레사는 처음 보는 달콤한 길거리 음식,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는 형형색색의 장난감에 감탄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즐겁기만 했다.


“막스, 저기 봐. 사람들이 몰려 있어!”

“아.”

막시밀리안은 제 손을 잡고 앞장서는 테레사의 모습을 보며 기분이 나아졌다.

비록 이런 자리가 힘들고 불편해도 이렇게 기뻐하는 그녀를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퍼레이드인가 봐.”

도착한 곳에는 화려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앞으로 걷고 있었다.

그리고 화려하게 꾸민 마차가 뒤를 따랐다.

높은 마차 위에서는 검은 용 분장을 한 마법사들이 반짝거리는 꽃가루를 뿌리고 있었다.


“원래 천사 분장을 하는 게 아니었나?”

“얼마 전, 용께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소! 그래서 올해는 특별히 용 분장을 하기로 했지.”

막시밀리안의 궁금증은 어느 오지랖 넓은 사람이 해결해 주었다.

그는 친절하게도 퍼레이드를 따라가다 보면 가면 무도회가 열리는 중앙 광장으로 갈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 말에 막시밀리안은 테레사와 함께 퍼레이드의 뒤를 쫓았다.

좁고 굽이굽이 난 길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며 걷는 경험은 유쾌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탁 트인 넓은 광장이 나타났다.


“와아.”

옆에 서 있던 테레사는 작게 탄성을 질렀다.

광장 가운데에 솟은 시계탑은 작은 등과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 너머에 보이는 바다는 반쯤 기울어진 태양 빛에 물들어 붉고 푸르고 검었다.

얼룩덜룩한 바다 위에 오렌지빛 태양이 광장을 붉은빛으로 수놓았다.


“와 보길 잘한 것 같아.”

테레사는 손을 뻗어 막시밀리안의 손을 잡았다.

살면서 이런 광경을 다른 사람도 아닌 막시밀리안과 함께 봤다는 사실에 마음이 뭉글했다.


“나도, 나도 너와 함께여서 다행이야.”

막시밀리안은 저를 보며 웃는 테레사를 보며 생각했다.

이런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불편함 같은 건 참을 수 있었다.

막시밀리안은 테레사의 손을 잡아당겼다.


“가자, 가면 무도회가 시작될 거야.”

어느새 오케스트라의 음악 소리가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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