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화 해피엔딩, 그 이후 (1)
(136/145)
외전 4화 해피엔딩, 그 이후 (1)
(136/145)
외전 4화 해피엔딩, 그 이후 (1)
2023.05.20.
테레사는 요즘 막시밀리안이 어색하다.
전생의 기억을 되찾은 그는 테레사가 알던 사람 같지 않을 때가 많았다.
“테레사, 괜찮아?”
“어? 어어. 큰일도 아니었는데 뭐.”
“역시 밖은 너무 위험해. 오늘은 그만 돌아가자.”
바로 지금처럼 별것도 아닌 일에 과민 반응할 때 특히 그랬다.
그냥 드레스 자락에 걸려서 넘어질 뻔한 것뿐인데, 당장 돌아가야 한다며 난리다.
“발을 헛디뎌서 옷자락을 밟은 것뿐이라니까.”
그의 약혼녀에 대한 사랑은 유명하다 못해 구경꾼까지 있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막시밀리안이 하는 기행이 사교계에서 유행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불안하단 말이야. 느낌이 좋지 않아.”
“막스.”
사람들이 힐끗거리기까지 하자 막시밀리안은 입을 다물었다.
테레사는 한숨을 참으며 그를 토닥였다.
“진짜 별일 없을 거야. 나 요즘 운 꽤 좋아.”
“그야 그렇지만…….”
실제로 그랬다.
얼마 전부터 이벤트에 당첨되어 상품을 받는 일이 많았다.
아까 넘어질 뻔하면서는 작은 보석 반지를 주웠다.
알이 크지는 않았지만, 보석의 세공 수준이 높았기에 테레사는 주인을 찾아 주기로 했다.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바닥을 살피는 할머니에게 반지를 건넸고…….
‘그 반지의 주인이 십수 년 동안 은둔했다는 보석 세공 장인이라니.’
마침 제이나의 임신 소식을 전해 듣고 축하 선물을 사러 나온 것인데 말이다.
누군가에게 말하면 거짓말쟁이로 의심할 정도로 운이 좋았다.
“물론 운이 다는 아니지만, 이렇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잖아?”
“으응…….”
그녀는 표정을 흐리는 막시밀리안의 어깨를 톡톡 치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자, 여기 보십시오.”
그사이에 보석 세공 장인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나무 상자를 들고 나왔다.
“자 여기에 있습니다. 한번 구경해 보시지요.”
그녀가 뚜껑을 열어 안에 있는 보석을 보여 주었다.
상자 안에는 보석에 대해 잘 모르는 테레사가 보아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것들이 늘어서 있었다.
크기, 투명도, 그리고 섬세한 세공과 장식까지.
“하나 고르시면 됩니다.”
“이걸 그냥 주시겠다는 건가요?”
그 뒤에 나온 말은 더 놀라운 것이었다.
놀라서 테레사가 반문하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제대로 값을 치를 수 있네.”
그러자 막시밀리안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댁들이 범상치 않은 분들이라는 건 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찾아 준 건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막시밀리안은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노인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물건을 가져가든 안 가져가든 그건 당신들의 선택입니다.”
테레사는 잠시 물건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노인의 얼굴을 보았다.
“아주 귀한 분께 진상할 물건을 구하러 온 걸세. 기왕이면 이렇게 이미 만들어진 것 말고, 제작을 해 주었으면 하는데 안 되겠는가?”
뜻밖의 대답이었는지 노인은 놀란 듯 작게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입니다.”
“보석은 우리 쪽에서 보내도록 하지.”
“테레사.”
막시밀리안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테레사는 그런 막시밀리안의 옆구리를 찔러 강제로 일으켰다.
“그럼 일주일 뒤에 사람을 보내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고는 막시밀리안을 끌고 세공사의 집에서 나왔다.
“대체 왜 그래? 거기서 그렇게 대꾸하면 괜히 호감만 떨어뜨리잖아.”
“그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호감을 살 필요는 없잖아.”
“진짜일 수도 있는 거잖아! 나중에 사람을 보내겠다는데도 순순히 그러겠다고 했고.”
“그야…… 그렇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그렇게 대놓고 사람을 의심하는 게 조심하는 거야?”
저도 모르게 날 선 말이 나갔다.
그 말을 들은 막시밀리안은 시무룩해진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고개를 떨궜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자 미안해졌다.
자신을 위해 모든 삶을 쏟아부어서 이렇게 되어 버린 거지만…….
‘이대로는 안 돼.’
그녀가 알던 막시밀리안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 * *
며칠 뒤, 테레사는 아이를 가진 제이나의 일을 돕기 위해 황성에 입궁했다.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이 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세상에, 그사이에 이 일을 폐하께서 다 하셨다고요?”
“요즘 어찌나 걱정이 늘었는지 내가 움직이기만 하면 기절하려고 한다니까요.”
“황후 폐하께서 큰일을 겪으셨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테레사는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그녀가 제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하아……. 하지만 어떤 마음인지 이해는 가요.”
“테레사, 무슨 일 있어요?”
놀란듯한 제이나의 모습에 테레사는 잠시 고민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만한 친구는 먼 타국으로 떠나 있었다.
게다가 제이나는 제 혈육이라도 꽤 냉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구석이 있었기에 조심스러웠다.
“그게……. 요즘 막시밀리안도 비슷하거든요.”
“오라버니가요?”
그러자 테레사는 뭔가에 홀린 듯 그간 막시밀리안이 한 일들을 늘어놓았다.
“새로 만난 사람은 무조건 의심부터 하고 봐요.”
“흐음.”
원래 막시밀리안은 지나칠 정도로 상대의 말을 잘 믿었다.
테레사와의 사이가 악화된 것도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막시밀리안이 사람을 안 믿는 것뿐만 아니라 의심부터 하고 보다니.
“기억이 남은 게 문제인가 봐요.”
제이나는 걱정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괜한 이야기를 했다.’
테레사는 답답한 마음에 아이를 가진 사람에게 괜한 걱정을 떠넘긴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죠.”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말해요. 제가 오라버니에게 따끔하게 한마디 할게요.”
테레사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둘의 관심사는 아이에게로 돌아갔다.
건강한지,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이름은 무엇으로 할지 같은 소소한 이야기였다.
그간 밀렸던 이야기를 하던 두 사람의 관심은 아나이스의 결혼으로 넘어갔다.
“아마 다음 달 즈음 돌아올 거예요. 듣기로는 다음 달 내에 결혼식을 할 거라고 그랬거든요.”
“카시안도 곧 돌아오겠네요.”
“그렇겠죠. 그리고, 그 일 때문인데 말인데요.”
제이나는 잠깐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원래대로라면 저와 나타니엘이 결혼식에 직접 참석하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제가 임신해서 운신이 쉽지 않아서 말이에요.”
테레사는 곧바로 그 말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제가 대신 참석하길 바라시나요?”
“오라버니와 함께 말이에요. 저희 쪽에서 신경 쓰고 있다는 건 보여 주고 싶거든요. 그리고, 여행을 통해서 오라버니가 기분 전환하기도 좋을 것 같구요.”
테레사는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나이스는 그녀에게도 애정이 많이 간 상대였다.
“괜찮겠어요?”
“물론이에요. 비 전하의 대리인으로 참석하는 것이니 제가 다 영광인걸요.”
게다가 제이나의 말대로 막시밀리안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자신이 더는 위험하지 않다는 걸 보여 줄 수 있는.
* * *
“안 돼. 반대야.”
말을 꺼내자마자 막시밀리안은 단호하게 반대했다.
“막시밀리안!”
“내가 제이나에게 직접 가서 거절할게.”
테레사는 그가 이 정도로 반대할 줄 몰랐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가겠다는 게 아니잖아. 너랑도 같이 갈 거고, 황궁에서 기사와 마법사를 붙여 줄 거라고 그랬어.”
“그 기사와 마법사를 못 믿으니까 하는 말이야! 그들은 단 한 번도 도움도 되지 않았다고. 만일 디에스 기사단이 다시 나타나면…….”
“막시밀리안 윈터스!”
테레사의 일갈에 막시밀리안의 몸이 움찔 떨렸다.
“공작님께서 그들은 이미 드래곤에게 영속된 상황을 확인하고 오셨잖아. 설마 그것도 안 믿는 건 아니지?”
“난…….”
막시밀리안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가능하면 이 수도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나타니엘이라는 강력한 수호자가 있는 도시에서 간 큰 짓을 벌이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나타니엘에 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막시밀리안이 입을 다물자 방 안은 무거운 침묵만이 가득했다.
테레사는 그의 고통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녀에게는 전생의 기억이 없었고, 자신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몰랐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 때문에 막시밀리안이 이렇게 망가진 거라면, 그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건 테레사의 몫이었다.
“너랑 같이 가니까 괜찮을 거야. 우리가 영원히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왜, 가려는 거야. 그냥, 이렇게 조용히 지내도 행복하잖아.”
“난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걸 보고 싶어.”
테레사가 부드럽게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너와 결혼하기 전에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 공작부인으로서 더 많은 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공작부인이라는 말에 막시밀리안의 표정이 살짝 누그러졌다.
“그리고 이건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한 길이기도 해. 이렇게 산다면 난 행복하지 않을 테니까.”
“…….”
“함께 행복해지기로 했잖아. 조금만 용기 내 주면 안 될까?”
그는 손을 뻗어 테레사를 꽉 끌어안았다.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 생기가 느껴지는 따뜻한 몸.
꿈이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알겠어.”
막시밀리안 역시 알고 있다.
영원히 이렇게 살 수 없다는 걸.
그녀의 말대로 행복을 위해서 자신이 나서야 할 때였다.
* * *
안타깝게도 여행 준비를 시작하면서 막시밀리안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다.
예민함이 극에 다다라서 윈터스 공작에게 욕을 먹고 집에서 쫓겨났다.
테레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고 제이나에게 갈 수도 없으니 남은 사람은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 날 만나러 온 이유가…… 뭔가?”
나타니엘은 미간을 구긴 채로 막시밀리안을 보았다.
아나이스의 결혼식에 가는 일 때문에 찾아온 줄 알았더니 표정을 보니 아닌 듯했다.
평소보다 더 날카로워진 얼굴의 막시밀리안이 눈치를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요. 궁금한 게 있어서 말입니다.”
막시밀리안은 마른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불편한 사이이지만, 그나마 피난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폐하께서는 제 여동생이 불안하지 않으십니까?”
그의 물음에 나타니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뜻이지?”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제이나가 사고도 많이 치고 다니지 않습니까? 이상한 데에 행동력이 있고 몸도 안 사리니 불안하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의 처지가 조금 나았다.
테레사는 일을 벌이기 전에 상의라도 하지, 제이나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상의도 없이 혼자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제 여동생이었지만, 가끔 너무 무모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말도 말게. 결혼식에 참석하겠다는 거 말리는 것만으로 힘들었으니까.”
나타니엘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무심한 얼굴로 결혼 선물로 보내는 리스트를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내가 선택한 거고 난 제이나가 그런 여자라서 반한 걸.”
그렇게 말하는 나타니엘의 얼굴은 행복으로 가득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