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화 악당의 최후는 죽음이 아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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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화 악당의 최후는 죽음이 아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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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화 악당의 최후는 죽음이 아니다 (2)
2023.05.13.
시네스트라는 놀랍게도 순순히 공작을 데려가 주었다.
주변 경관이 순식간에 바뀌고, 공기가 후덥지근해졌다.
윈터스 공작이 처음 보았던 그 해변가였다.
“이쪽이야.”
시네스트라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하얀 대리석으로 지은 멋진 별장이 있었다.
윈터스 공작은 불만을 숨기며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의 모습도 굉장했다.
화려한 내부 장식은 장인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것처럼 섬세해 보였다.
“멋지지?”
놀리듯 웃는 그녀의 모습에 공작은 입을 꾹 닫았다.
시네스트라는 파르르 떨리는 윈터스 공작의 입가를 보고는 크게 웃었다.
“내가 지내는 곳이니 이 정도는 해야지. 그들은 다른 곳에서 지내고 있어.”
“제가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이쪽이야.”
시네스트라는 그와 함께 화려하게 장식된 문 앞으로 갔다.
“열고 들어가면 안에 있을 거야.”
“같이 안 들어가십니까?”
“내가 들어가면 별로 안 좋아해서.”
방긋 웃고는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에 윈터스 공작은 손으로 팔을 쓸어내렸다.
어딘지 모르게 소름 끼쳤다.
‘역시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공작은 문을 두들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밝은 외부와 달리 어두웠다.
마석을 이용하지 않는지 구시대 유물인 촛불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내부는 밖과 다를 바 없이 화려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안에 있나?”
“누, 누구세요?”
겁에 질린 가느다란 미성이 들렸다.
한때 제국을 주무르던 흑막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윈터스 공작이네. 자네를 직접 만나고 싶어서…….”
“사람?”
어둠 속에서 하얀 손이 튀어나와 공작의 팔을 잡았다.
언제 해를 보았는지 모를 정도로 창백한 얼굴의 여자였다.
“당신이 디에스 기사단인가?”
공작이 자신을 알아보는 듯하자 하리의 몸이 크게 떨렸다.
그녀는 재빨리 공작의 팔을 놓고 멀리 떨어졌다.
“어, 어떻게 여기를 찾아온 거야?”
“시네스트라가 널 보여 주겠다고 했으니까.”
그의 말에 하리의 얼굴이 급격하게 밝아졌다.
마치 지금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걔가 드디어 날 죽여 준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니야? 날 죽이지도 않을 거면 대체 널 왜 보낸 건데.”
그녀는 방 안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며 중얼거렸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제정신이 아니야.”
그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하리가 공작 쪽을 바라보며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
“당신,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나? 내가 이곳에서 미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한 발짝 다가온 그녀는 공작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막시밀리안과 시네스트라가 돌리던 시간이 제자리로 돌아서면서, 인간이자 인간이 아니었던 하리의 머릿속에 수많은 과거가 쏟아졌다.
하리와 연은 언제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찾아내 다양한 방법으로 살해했다.
문제는 두 사람은 ‘불사자’라는 데에 있었다.
그 끔찍한 고통을 죽지도 못한 채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다.
“그 고통을 이겨 내면서 겨우 버티고 있는데 미쳤다고? 감히 너 따위가!”
공작은 발광하듯 외치는 그녀를 손으로 밀어냈다.
그러자 하리는 바닥에 쓰러져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완전히 미친 거나 다름없군.”
“아니야, 난 안 미쳤어. 난 제정신이라고……. 내 이름은 하리야. 난 연과 함께 위대한 마법사였고, 그 망할 용의 유혹에 넘어가서 이곳에 온 게…….”
혼자서 중얼거리는 그녀를 두고 윈터스 공작은 뒤로 물러섰다.
미친 사람과 이야기할 시간은 없었다.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하리가 무릎으로 기어와 그에게 매달렸다.
“가지 마.”
“이, 이보시오. 왜 이러는 거요!”
“제발, 날 여기서 내보내 줘. 저 여자랑 있으면 진짜 미쳐 버리고 말 거야.”
울면서 매달리는 하리를 떼어 내려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왜 이렇게 안 나오나 했더니 대체 뭐 하는 거야?”
문을 열고 들어온 시네스트라를 본 하리는 거의 경기를 일으키며 뒤로 물러섰다.
입을 막고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로.
“저런 상황이라서 말이야. 그만 나와 줄래?”
윈터스 공작은 간절한 하리의 눈빛을 외면했다.
그렇다고 저자를 불쌍하게 여길 생각은 없었다.
이 자가 희생시킨 사람들이 한둘이던가.
그들의 욕심에 사라진 사람들의 원한 만큼 더 고통스럽게 지내기 바랄 뿐이다.
문이 다시 닫혔다.
그러자 그녀는 절망에 빠진 채로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흐, 흐윽.”
그녀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영혼이 부서져 가는 두려움, 과거의 끔찍한 기억과 함께 살아나는 고통까지.
이미 하리는 한계에 다다랐다.
차라리 소멸을 바랄 정도로.
하지만 시네스트라는 하리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몇 번이고 하리를 되살려 내고 친절하게 대했다.
‘내가 어리석었어.’
하리는 이제야 알았다.
그들은 건드려서는 안 될 존재와 만난 것이다.
용은 인간의 사고를 하지 않았다.
애정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생각하는 일은 없었다.
오직 시네스트라 본인을 위해 생각할 뿐.
“제발 누가 좀 죽여 줘.”
그녀는 오지 않을 안식을 애타게 찾으며 눈물을 흘렸다.
* * *
잠에서 깨어난 나는 멍하니 창문 밖을 내려다보았다.
아이를 갖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그렇다고 목숨을 걸 생각은 없었는데.”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일단 오늘 만나는 게 문제인걸.”
난 자리에서 일어나 나타니엘을 만나러 갈 준비를 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밖은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나갈 채비를 마친 내 뒤를 쫓아오는 하녀들이 불안한 얼굴이었다.
“황후 폐하, 좀 쉬시는 게 어떨까요?”
“괜찮네. 그 정도로 몸이 안 좋은 건 아니니까.”
왜 그들이 저런 얼굴로 따라붙는지 알 것 같았다.
요즘 나타니엘이 내가 움직이는 것에 얼마나 예민하게 구는지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큰일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모습에 얌전히 지내야만 했다.
하지만 오늘은 몸을 좀 움직이고 싶었다.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천천히 본궁으로 향하던 나는 소식을 듣고 나온 나타니엘과 마주쳤다.
“제이나!”
급하게 나온 듯한 나타니엘은 단숨에 내게로 달려왔다.
“이렇게 걸어도 돼?”
“당연하죠. 제가 어디 아픈 것도 아닌데 잠깐 걷는 건 돼요.”
내 말에도 그는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죽을 뻔한 이후로 나타니엘은 혹여나 내 몸에 이상이 있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래도 걷지 마.”
“뒤에 있는 사람들 노려보지 마세요. 제가 나오겠다고 해서 나온 것뿐인데요.”
날 쫓아온 하녀를 노려보는 그의 모습에 옆구리를 쿡 찌르며 한 소리 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이내 나는 나타니엘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본궁으로 들어갔다.
“이쪽으로 앉아.”
나타니엘의 배려로 소파에 앉았다.
집무실 내부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이런 것에 크게 신경 쓰는 타입도 아니었기에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전 황후가 산 물건들은 처분하기로 해서 몇몇은 내가 사서 채워 넣었다.
‘이렇게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인데.’
모두 나타니엘의 극성 때문이었다.
혹시 오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며 호들갑을 떨었기 때문이다.
“여기, 허브티야.”
“으…….”
임신하고 난 뒤로 맛없는 허브티만 마셔야만 했다.
세상에 어찌나 맛이 없는지…….
어떻게 해서든 안 마시려고 애를 썼는데 여기서 딱 걸린 것이다.
“요즘 일부러 안 마시려고 한다는 이야기 다 들었어.”
“…….”
“몸에 좋은 거라니까 조금씩이라도 마시라고.”
요즘 나타니엘은 예전에 내가 알던 사람 같지 않았다.
아빠가 된다는 책임감 탓일까?
“그런데 여기까지 어쩐 일로 온 거야?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음…… 그냥 보고 싶어서요. 요즘 나타니엘이 엄청 바빠서 그런지 얼굴도 못 봤잖아요.”
내 말에 그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저녁이라도 같이 먹어요.”
“아, 응.”
대답한 나타니엘은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식사가 변변치 않을 것 같아서…….”
“나타니엘이 먹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있겠어요?”
“아, 그…… 그게…….”
난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그를 노려보았다.
뭔가 내게 숨기고 있는 게 있어 보였다.
“시종장.”
내 말에 문밖에 있던 시종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황후 폐하.”
“폐하께서 요즘 드시고 계시는 것과 똑같이 차려 놓거라.”
내 명에 시종장이 나타니엘의 눈치를 살폈다.
난 일부러 그런 나타니엘에게 되물었다.
“괜찮죠?”
그는 한숨을 쉬더니 시종장에게 눈짓을 했다.
“그럼 식당으로 갈까요?”
“하아……. 그래.”
식당에 도착하고 나서도 나타니엘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오래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접시에 올라가 있는 간단한 샌드위치에 난 말을 잃었다.
“이게 폐하의 저녁 식사라고?”
“그게, 내가 요즘 살이 좀 쪄서…….”
“나타니엘은 조용히 있으세요. 시종장이 말해 보게.”
“그, 그게…….”
고민하던 시종장은 결국 사실대로 실토했다.
“폐하께서 요즘 일이 많으셔서 식사 시간을 줄이시려 이런 간단 음식들로 끼니를 해결하셨습니다.”
나타니엘이 배신감에 시종장을 노려보았다.
난 시종장을 내보내고 보란 듯이 웃으며 샌드위치를 들었다.
“그럼 식사를 시작할까요?”
“이거만 먹게?”
“한 끼 정도는 괜찮아요.”
“부족할 것 같은데…….”
“그렇게 부족할 것 같은 식사로 매끼를 때우신 건가요?”
나의 뼈가 있는 말에 그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닫아 버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내일부터 식사는 황후궁에 와서 드세요.”
“매번 이렇게 먹는 건 아니야.”
“제가 이리로 와서 매번 식사를 같이해 볼까요?”
나의 협박 섞인 말에 그제야 나타니엘이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리고 앞으로는 자정이 넘어가기 전에 들어오셔야 해요.”
“하지만 그러면 시간이 부족해서 일이 밀리게 돼. 그대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이라도 봐주면 안 될까?”
“내부의 일은 저와 테레사가 알아서 처리할 거예요.”
“그건 안 돼! 너무 위험…….”
내가 사납게 노려보자 나타니엘은 하던 말을 삼키고 입을 꾹 닫았다.
“제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이렇게 전부 해 주지 않아도 돼요.”
“난 그냥 걱정돼서 그래.”
“그 정도로 큰일 날 사람 아닌 거 잘 알잖아요?”
이래 보여도 꽤 튼튼하다고 자신할 수 있다.
날 설득하려던 나타니엘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시종장을 불러 음식을 더 가져오라 시키고 우리는 오랜만에 같이 식사를 하며 시간을 함께 보냈다.
“이렇게 같이 먹은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예요.”
“미안…….”
“미안하면 앞으로 일찍 들어와서 식사하도록 해요. 그래야 아이에게도 좋죠.”
“응.”
아이라는 말에 그의 시선이 내 배에 닿았다.
나타니엘이 내 배를 보며 활짝 웃었지만 나는 잊고 있던 아까 전의 이야기가 떠올라서 마음껏 웃을 수 없었다.
“왜 그래?”
내 표정 변화에 예민한 나타니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이 이야기를 전해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조용히 그의 손을 잡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