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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부부는 닮는다 (65/145)


65화. 부부는 닮는다
2022.09.14.


목욕까지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멍청한 얼굴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황태자비 전하, 쉬십시오.”

씻고 몸에 좋은 향기가 나는 크림까지 바르자 몸이 나른해졌다.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늦네.”

결국, 마석의 불빛을 조절하고 침대에 먼저 누웠다.

덜컹, 하며 침대가 크게 흔들렸다.

나는 눈을 비비며 옆자리를 확인했다.


“나타니엘?”

나는 나타니엘의 옷을 잡고 흔들었다. 곧 눈꺼풀이 올라가고, 붉은 눈동자가 나타났다.

잠시 주변을 살피던 그는 귀찮은 듯 몇 번 눈을 깜빡거리더니 다시 감아 버렸다.


“어휴, 옷이라도 좀 벗고 자요.”

보기만 해도 답답해 보여서 내가 다 불편했다. 하지만 아무리 흔들어도 나타니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술을 궤짝으로 마셔도 조금도 취하지 않던 사람이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이쪽으로 돌아누워 봐요.”

결국 방법을 수정하기로 했다.

그를 돌려 눕힌 나는 일단 크라바트부터 풀었다.


“아오, 이건 대체 어떻게 매는 거야.”

크라바트는 처음 만져 봐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겨우 풀어내고, 재킷을 벗겨서 탁자 위에 올렸다.


“셔츠 단추라도 몇 개 풀고, 허리띠만 풀어 주면 잘 자겠지.”

술 취한 사람은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가 어느새 몸을 뒤집은 탓에 등이 보였다. 나는 옆에서 나타니엘의 몸을 굴려 그의 다리 위에 올라탔다.


“달밤에 체조도 아니고 이게 무슨 고생이야.”

끊임없이 투덜거리면서 목깃의 단추를 풀었다.

옷 사이로 근육질의 상체가 드러났다.


‘오…….’

물론 처음 보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무방비한 상태인 나타니엘의 몸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나타니엘의 얼굴을 살폈다.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다.


‘조금만 만져 봐도 되겠지?’

어차피 부부인데.

나는 슬며시 손을 뻗어 탄탄한 흉부에 손을 올렸다. 마치 범죄자가 된 것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살짝 누르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단단했다.


“으음…….”

와중에 나타니엘이 몸을 비트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다행히 깬 건 아닌 것 같았다.


‘변태도 아니고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아무리 부부고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라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

나는 다시 나타니엘의 옷을 벗기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나타니엘의 소매를 묶은 리본을 느슨하게 풀어 주었다.


‘이제 허리띠만 풀어 주면 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의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뭐 해?”

“으아아아악!”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나는 비명을 질렀다.


“어어어어언제 깼어요?”

“방금.”

아직 잠에서 덜 깬 건지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시선이 허리춤으로 향하고 있는 내 손에 닿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오…… 오해예요. 이건 그냥 나타니엘이 불편해 보여서…….”

“그럼 가슴은 왜 만지는 건데.”

망했다.

그때부터 깨어 있었다니.

그것에 대해서는 도저히 변명할 수 없어서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미, 미안해요. 궁금해서 그만…….”

“왜 미안해?”

“네?”

나타니엘은 덥석 내 손을 잡고 휙, 제 몸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탓에 나는 털썩, 그의 몸 위에 넘어졌다.


“헉.”

날 지그시 바라보는 나타니엘의 눈빛이 지나치게 뜨거웠다.

나타니엘은 붙잡힌 손을 스윽 들더니 제 가슴팍 위에 올렸다.

머리가 지금 일어나는 일을 파악하는 것을 거부하듯 덜거덕거렸다.


“어차피 우린 부부인데.”

“네?”

“이 정도는 해도 되는 거 아니야?”

나타니엘의 눈이 야살스럽게 휘었다. 마치 날 유혹하는 것처럼.

무슨 이유인지 입 안에 침이 고였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제이나.”

내 이름이 왜 이렇게 이상하게 들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후퇴가 필요하다.

몸을 뒤로 물리려 하자 나타니엘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가지 마.”

그러고는 곧바로 입술을 부딪쳐 왔다. 부드럽고 뜨거운 숨결이 밀려들어 온다.


‘에잇, 모르겠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그에게 매달렸다. 단 술을 어찌나 마셨는지 혀가 아릴 정도로 단맛이 났다.

머릿속이 점점 열기로 마비되어 가고, 다급한 손으로 나타니엘의 셔츠 단추를 풀고 있는데…….

툭.

갑자기 내 허리를 붙들고 있던 그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나……타니엘?”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자, 자요?”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렸다.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뭐, 뭐야.”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게다가 붙들린 손은 얼마나 뜨거운지.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 * *

나타니엘은 난생처음 느껴 보는 두통에 이마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서 어두운 기운이 느껴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가 무언가를 보고는 흠칫 몸을 떨었다.


“제이나?”

눈 밑에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은 제이나가 퀭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좋겠네요……. 누구는 잘 자서.”

굉장히 까칠한 태도에 나타니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고민했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 킬리언과 술 대결을 한 것 같은데.’

주종을 섞어 가면서 다량의 알코올을 섭취했다. 금방 나가떨어질 줄 알았던 킬리언이 꽤 끈질기게 버텼다.


‘그러다 사절 중 한 사람이 이상한 칵테일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걸 마시고 난 이후의 일은 기억 속에 드문드문 남았다.

바닥에 처참하게 쓰러진 킬리언의 등짝이라든가.

그걸 보고 낄낄거리며 즐거워하는 다른 사절들.

술자리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 위에 드러누웠던 것까지.


‘그러고 나서 잘 잔 거 같은데. 혹시 자다가 제이나를 괴롭혔나?’

나타니엘은 유령처럼 비척거리며 욕실로 사라지는 제이나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그날 이후로 나와 나타니엘 사이는 크게 변했다.

익숙해졌던 동침은 불편해지고, 어색해져 버렸다.

어쩐지 그날 이후로 나타니엘은 무던해진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잘 자는 그의 등짝을 몇 번이나 때리고 싶던지.

누구는 몇 날 며칠을 밤잠을 설치고 있는데.


‘얄밉게.’

아직도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요즘은 가끔 나타니엘이 손을 잡아 주면 온몸이 간질거려서 어쩔 줄 몰랐다.

무엇보다 날 당황하게 만든 건 나타니엘의 손이 떨어져 나갈 때 느낀 애달픔이었다.


‘나타니엘과 더 붙어 있고 싶었어.’

어젯밤 내내 그의 얼굴을 보며 혼자서 설레다가, 기분이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내린 결론이었다.

우리 관계가 꽤 담백하긴 했다.

서로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치고는. 지금도 행복하고 좋았지만, 그에게 더 다가가고 싶었다.

생각 정리가 끝나자 망설임은 싹 사라졌다.

나는 누워 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황금으로 나뭇잎과 꽃을 만들어 장식한 서랍장의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가장 구석진 자리에 처박힌 박스를 꺼내 들었다.

결혼한 뒤 카시안이 비밀스럽게 건넨 선물이었다.

내용물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이걸 꺼내 입을 자신이 없었을 뿐.


“후…….”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박스를 열었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야살스러운 슈미즈가 들어 있었다.

지금껏 입었던 수많은 슈미즈와는 결이 다른 것이다.


- 필승 슈미즈라고요.

그때는 왜 이런 걸 주냐고 타박했지만, 지금은 카시안에게 조금 고마웠다.

나는 그걸 몸에 걸치고 거울 앞에 섰다.


“와.”

그리고 바로 돌아섰다. 도저히 더는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일단 침대 속으로 들어가 이불을 덮고 몸을 꼭꼭 숨겼다.

초조한 마음으로 나는 침만 꿀꺽 삼켰다.

* * *

지긋지긋한 실사 덕분에 나타니엘은 피곤함에 찌든 얼굴이었다.

술자리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킬리언과 다른 사절들이 지나치게 친근하게 굴어서 귀찮기까지 했다.


- 혹시 나중에 황태자비 전하를 다시 뵐 수 있을까요? 제가 궁금한 것이 있어서요.

킬리언의 발언을 떠올린 나타니엘은 고개를 저었다. 학문적인 호기심 때문이라면서 무슨 친구라도 된 것처럼 구는데 기회만 있다면 한 대 쳐 주고 싶었다.


“전하, 그럼 마탑주와 티타임을 잡을까요?”

눈치 없는 마틴의 말에 나타니엘은 속이 뒤집혔다.

대체 제이나는 저 멍청한 놈을 왜 뽑은 걸까.


“그런 약속은 잡을 필요 없다.”

“예! 그럼 다른 시키실 일이 없으십니까?”

마틴의 말에 나타니엘은 잠시 고민했다.

아무래도 어젯밤에 자신이 술에 취한 사이에 제이나에게 무슨 일을 저지른 것 같았다.


‘아침에 평소와 달리 쌀쌀맞았는데…….’

분명 뭔가 마음이 상한 게 틀림없었다. 나타니엘은 어린 시절 유모가 해 줬던 말을 떠올렸다.


- 나중에 부인에게 뭔가를 잘못하거든 선물과 함께 사과하셔야 해요.

평생 누군가에게 사과를 해 본 적 없는 나타니엘에게는 그 말이 기준이 되었다.

문제는 선물을 무엇으로 주느냐였다. 나타니엘은 건너편에서 눈을 반짝거리는 마틴을 보았다.


“선물이 필요한데…….”

“예, 누구에게 드릴 선물인지요!”

“비에게 줄 거야.”

순간 마틴의 눈이 번쩍였다. 그는 비록 눈치는 없지만, 무려 3년 사귄 약혼자가 있는 남자였다.


“제게 말씀해 주시면 완벽한 것으로 준비해 오겠습니다.”

망설이던 나타니엘이 결국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마틴은 진지한 얼굴로 그의 말을 수첩에 받아 적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후다닥 나간 그는 몇 시간 뒤에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왔다.


“사과할 때는 물질적인 것보다 감성을 만져 줄 수 있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호오…….”

이제야 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타니엘은 진지한 얼굴로 마틴을 재촉했다.


“계속 말해 보도록.”

전하께 드디어 도움이 되는구나. 그리 생각한 마틴은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연애사를 읊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마틴은 허겁지겁 일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퇴근하겠습니다.”

나타니엘은 살짝 질린 얼굴로 그를 돌려보냈다.


‘다음부터는 함부로 말을 시키지 말아야겠어.’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나타니엘의 마음속에서 마틴의 가치가 뚝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틴이 사 온 꽃다발을 들고 침실로 향했다.

그는 손에 들린 꽃을 힐끔 내려다보았다.

강렬한 색상은 없이 꽃송이가 작고 앙증맞은 꽃들을 모아 만든 꽃다발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이었다.

꽃다발을 보는 순간 꼭 제이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보다 잘 골라 왔어.’

그는 마틴의 평가를 재고하기로 하고 방으로 향했다.

부디 제이나가 이 꽃을 마음에 들어 하길 바라며.

* * *



“뭐, 뭐야.”

환하게 켜져 있어야 할 조명은 온데간데없었다. 양초만이 내부를 밝히고 있었고, 심지어 붉은색도 돌았다.

묘하게 끈적한 분위기에 나타니엘은 당황해서 눈동자만 굴렸다.


“오…… 오셨어요.”

가늘게 떨고 있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타니엘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고개를 돌리자 침대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제이나가 보였다.

인상 깊은 디자인의 슈미즈를 입은 채로.

나타니엘은 들고 있던 꽃다발을 툭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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