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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내가 그대를 지켜 주도록 하지 (31/145)


31화. 내가 그대를 지켜 주도록 하지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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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혹시 내가 장르를 잘못 알고 있었나?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미친 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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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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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타니엘.”

언제 들어왔는지 나타니엘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게 잠시 머무르던 그의 시선이 주변에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는 다른 것들에까지 닿았다.

그러고는 불쑥 손을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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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맞았어? 표정이……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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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 맞기는요. 절 누가 때려요.”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나면서 고개를 저었다.

나타니엘에게 드미트리 백작을 기억하냐고 물어볼까 고민했다.

하지만 나타니엘까지 백작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미쳤거나, 귀신에 씌었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까.

어느 쪽이든 밤에 곱게 잠을 자기에는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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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 상태로도 못 잘 것 같기는 한데…….’

결국,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나타니엘에게 묻기로 마음먹었다.

어쩐지 그라면 알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거나 그는 인간의 범주를 살짝 벗어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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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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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타니엘. 내 말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예, 아니오로 대답해야 해요.”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물어보는 데에도 큰 결심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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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백작, 기억나요?”

내 말에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조급해진 내가 설명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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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테레사랑 몇 번 같이 춤도 추었던 사람 말이에요.”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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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허여멀건 남자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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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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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친구 옆에서 실없이 웃고 있던 사람이 맞는다면, 기억하고 있다.”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그에게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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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기억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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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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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행이다. 내가 미친 게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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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나는 와락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안도감이 몰려왔다.

내내 날 괴롭혔던 불안함이 모조리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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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것 좀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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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죄송해요.”

짜증 섞인 나타니엘의 반응에 순순히 그를 놓아주었다.

그는 내게서 몇 발짝 뒤로 물러났다.

생각해 보니 나타니엘은 원래 스킨십에 약한 편이었다.

사람을 워낙 싫어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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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잊고 있었어.’

이제 보니 얼굴도 좀 빨갛고, 숨도 거친 게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괜히 밉보일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재빨리 그의 기분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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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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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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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얼굴이 좀 빨개진 것 같아서요.”

나타니엘은 잠깐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더니 곧 한숨을 쉬고 의자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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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그래서 왜 물어보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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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게 말이죠.”

나는 낮에 있었던 일을 나타니엘에게 설명했다.

테레사와 카시안이 드미트리 백작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그와 관련된 기록마저 사라졌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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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지 않아요? 나타니엘도 기억 못 했으면 저 진짜 울었을지도 모른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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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늘 심드렁하던 나타니엘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무언가 아는 것이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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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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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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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조작 말이야. 나는 기억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기억을 못 하는 경우가 전에도 있었다고.”

나는 놀란 눈으로 나타니엘을 보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한 번 일어난 게 아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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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어머니를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귀족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더군. 게다가 귀족 명부에도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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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처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 물음에 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말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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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내가 어려서 제대로 조사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아주 수확이 없던 건 아니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의 구석으로 향했다.

거기서 낡은 노트 한 권을 꺼내서 내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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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건 이름과 그들의 목적뿐이야.”

어린 나타니엘이 기록해서인지 글씨가 제멋대로였다.

나는 천천히 글씨를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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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스 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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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힘을 부정하고 오로지 인간의 의지만으로 세계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사상으로 움직이는 비밀 결사대야.”

일종의 프리메이슨이나 장미 십자회 같은 조직인 것 같았다.

물론 저 두 집단과 달리 디에스 기사단은 무언가 신비로운 힘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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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거창한 목적에 비해서 하는 일이 너무 없는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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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머니가 그들에게 독살당했다고 믿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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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때 분명 불치병으로…….”

탁탁, 머릿속에서 아귀가 들어맞는 것이 느껴졌다.

원작에서 테레사는 불치병으로 죽었다.

원인 모를 병의 이유를 나는 막시밀리안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일 그게 아니라면?

죽은 나타니엘의 어머니처럼, 그들이 테레사를 죽이고 병사로 위장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자 피가 식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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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나?”

나타니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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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좀 놀라서요. 무섭기도 하고.”

내 말에 나타니엘은 말없이 웃었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내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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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말아라. 그때는 어려서 아무것도 못 했지만, 이번에는 다르니까.”

나타니엘은 눈꼬리를 둥글게 휘면서 그림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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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대를 지켜 주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나가 버렸다.

혼자 남은 나는 한참을 멍하니 그가 나간 문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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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놀랐잖아.”

얼굴에 열이 오르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흔들었다.

아까 본 미소가 아직도 망막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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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밀리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제 앞에 앉아 있는 하녀를 보았다.

평범한 외모의 하녀는 황태자궁에서 일하는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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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살려 주세요, 황후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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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지게 어디서 고개를 들어!”

황후의 뒤에 있던 시녀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밀리아의 눈치를 살폈다.

여전히 화가 난 그녀의 얼굴에 걱정이 앞섰다.

이러다가 애먼 하녀 하나가 죽어 나갈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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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황궁에서 가장 높은 웃어른은 여기 계신 황후 폐하다! 감히 황후 폐하의 질문에 대답을 못 하겠다니. 목숨이 몇 개쯤 되는 줄 아는 모양이구나.”

시녀장은 일부러 목소리를 키워 하녀를 위협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녀는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그녀를 보며 황후는 버럭 짜증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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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감히 내 말을 무시하겠다는 게냐? 반역죄로 삼대가 목이 잘려도 이렇게 고고하게 굴지 내 두고 보마.”

황후의 일갈에 하녀는 기절할 것 같은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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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 그리 대단한 것을 물은 것도 아니지 않으냐. 네가 말했다는 사실은 비밀에 부쳐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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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약속 지켜 주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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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다. 어서 이야기해 보아라. 우리가 황태자 전하의 약점을 알려 달라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

시녀장은 곧바로 하녀에게 당근을 던져 주었다.

결국 하녀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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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기에는 황태자가 제 부인을 아끼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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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 사이 좋은 부부처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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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른 여자들에게는 어떻더냐?”

하녀는 황후가 말하는 ‘다른 여자’가 무슨 뜻인지 몰라 눈알만 데굴 굴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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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여자라 하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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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비 말고 다른 하녀들에게도 친절하냔 말이다!”

시녀장이 소리치자 하녀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황태자의 주변에는 일단 사람이 적었다.

수년간 일했던 시종조차도 한 해 동안 황태자의 얼굴을 본 횟수가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황태자의 궁이었으나, 그가 그곳의 주인 노릇을 한 적은 손에 꼽았다.

결국 아는 것이 없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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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잘은 모르겠으나 예전보다는 친절해지시긴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도 시녀장은 나타니엘의 이성 관계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하녀는 적당히 거짓도 붙이고, 사실도 말하면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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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다면 돌아가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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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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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와 만난 것은 비밀로 하여라. 그 편이 네가 일을 오래 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지.”

하녀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다.

안도감 탓인지 양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밀리아는 손을 내저어 하녀를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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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했는데 그 소문이 사실인가 봅니다.”

시녀장의 말에 황후는 빙그레 웃었다.

그동안 나타니엘의 약점을 찾기 위해 애를 썼는데, 이렇게 눈앞에 약점이 굴러들어 올 줄이야.

어쩌면 제이나가 만든 약점일지도 몰랐다.

밀리아는 벌써 복수에 성공한 것처럼 들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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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야, 나타니엘 그 녀석은 감정이 없는 동물인지 알았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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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 전하께서 황태자비 전하를 마음에 두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시녀장 역시 황후의 말에 동의했다.

근 십여 년을 보아 왔지만, 나타니엘이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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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다른 여자에게도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겠지.”

황후는 나타니엘의 정절을 믿지 않았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고, 황제 역시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고 뒤로는 다른 여자를 탐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이전보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낮아졌으니 누구 하나 잘만 붙이면 넘어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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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영애가 없느냐? 이 일에 목숨을 걸고 달려들 만한 아이 말이야.”

나타니엘의 약점을 알 수 없다면, 이쪽에서 직접 만들어 주면 될 일이었다.

황후의 말에 시녀장은 잠시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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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황태자와 황태자비에게 원한을 가진 가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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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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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얼마 전에 황궁에서 추태를 부린 그 그로반 남작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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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 하찮은 변태 말인가.”

황후는 미간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비록 이용하고 버릴 패라지만, 그런 저열한 놈과 손을 잡는 것이 찝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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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반 남작에게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다이애나 그로반이라고요. 아직 결혼을 못 했다는데, 가주가 그 꼴이 났으니 혼삿길이 막힌 거나 다름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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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그로반 남작가는 사교계에서 퇴출당한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야.”

그로반 남작의 평판은 사건 이전에도 좋지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여자들에게 치근덕대고 다닌 통에 황후도 그에 대해 알고 있을 지경이었으니까.

이제 그로반 남작가의 대는 끊겼다고 봐도 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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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애나 영애가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황후 폐하께서 그 아이를 거둬 결혼시켜 준다는 핑계로 궁으로 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황후는 시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궁지에 몰릴수록 필사적으로 변한다.

아마도 다이애나 역시 그럴 것이다.

이때 동아줄을 내려 주면 그 줄이 썩었을지라도 필사적으로 매달릴 게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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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대로 하자. 그 애를 데려오너라. 일단 얼굴을 보고 결정해야겠다.”

큰 결정을 마치고 나니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나타니엘에게 여자를 붙일 아주 그럴듯한 이유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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