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우당탕탕 사냥 대회
(25/145)
25화. 우당탕탕 사냥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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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우당탕탕 사냥 대회
2022.04.27.
나는 나타니엘의 등 뒤에 찰싹 붙었다.
믿을 건 그밖에 없었다.
마물은 거대한 몸을 유연하게 다루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것이 입맛을 다시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 잡을 수 있는 거죠?”
“별로 센 상대는 아니다. 사냥감을 새로 찾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무심하게 마물의 등장을 반기는 나타니엘이 이상했다.
여전히 믿을 건 그밖에 없어서 어디로 도망갈 수는 없었지만.
“반가워하지 말란 말이에요!”
“돌아가는 길에 잡는 거니 나쁘지 않지.”
그는 장난스럽게 씨익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조금 전까지 우리를 집어삼킬 기세였던 마물이 주춤거렸다.
마치 조금 전 우리의 모습 같았다.
“무리하지 말아요.”
“저런 걸 잡는 건 일도 아니야.”
어쩐지 자존심이 상한 것처럼 뾰로통한 얼굴로 나타니엘은 손을 뻗었다.
그의 기다란 손을 타고 붉은 화염이 일렁였다.
곧 그의 등 뒤로 화살 형태의 불꽃이 여러 개가 생겼다.
“와아…….”
별다른 시동어 없이 광역 마법을 사용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마법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나도 그 정도는 알았다.
새삼스레 그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깨달았다.
‘괜히 혼자서 난리 친 걸까.’
도망치려던 뱀의 몸을 불꽃 화살이 그대로 꿰뚫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불이 전신으로 번졌다.
비명이 나오기도 전에 뱀의 몸은 잿더미로 변했다.
마물과의 싸움은 놀란 것에 비해 싱겁게 끝났다.
마치 지나가는 지렁이를 밟아 죽인 것처럼 쉽게 죽였다.
단숨에 마물을 구워 버린 나타니엘은 사체에서 마석을 뽑아냈다.
광산에서 캐는 것이 아니라 마물의 심장에서 마석을 뽑아내는 것은 처음 보았다.
“나쁘지 않은 크기로군.”
광산에서 캔 것보다 훨씬 투명도가 높았다.
마물의 심장에서 뽑아낸 마석은 광산에서 캔 것보다 많은 마력을 담고 있었다.
게다가 보석과 유사해서 마도구로 가공하면 매우 아름다워 귀족들의 선호도가 높았다.
그래서 마물에게서 얻은 마석은 최고급 보석보다 값어치가 높았다.
나는 나타니엘의 옆에 붙어서 마석을 구경했다.
“다행이에요. 전리품이 생겨서.”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나타니엘은 품에 마석을 집어넣더니 내게 손을 뻗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아, 루나 경이랑 같이 왔는데…….”
이대로 숲에 두고 가는 게 걱정이 되었다. 상대는 여럿이었고, 하필 마물까지 나타났다.
평소 같았다면 나타니엘에게 부탁하겠지만 오늘은 그가 아프기도 했다.
내 걱정을 알아차린 듯 나타니엘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아픈 그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여기까지 와서 결국 짐밖에 안 되다니.
“일단 주변을 살펴보도록 하지.”
“괜찮으시겠어요? 많이 아파 보이는데.”
“날 쫓아다니는 녀석들을 이제 확실히 혼내 줄 필요가 있는 것 같기도 해.”
귀찮은 하루살이 같은 녀석들을 그냥 두었더니 이런 일이 생긴 거라며, 나타니엘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다 죽여야겠군.”
“예에?”
혼내 준다며! 그게 다 죽이겠다는 뜻이었어?
나는 놀라서 그의 손을 잡았다.
“죽이는 건 좀 심하지 않아요?”
“왜?”
“따…… 딱히 전하에게 해를 입힌 것도 아니잖아요.”
“언젠가는 해를 입히겠지.”
나타니엘의 말도 맞았다.
이곳은 현대 사회가 아닌 곳이니까 황족의 말은 곧 법이었다.
게다가 황후의 끄나풀인 게 확실하니까 이대로 두었다가는 나타니엘의 비밀을 알게 될지도 몰랐다.
“왜 그러지?”
“그냥요.”
그들이 불쌍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목숨을 걸겠다고 생각하고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타니엘이 이런 위협을 받는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전하께서는 황위에 관심도 없으시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위협을 받으신다는 게 이상해서요.”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된 숙명인 거지. 그대가 가문을 위해 나와 결혼한 것처럼.”
“하…… 하하. 듣고 보니 그러네요.”
나타니엘은 잠시 먼 곳을 보더니 느리게 입을 열었다.
“불편하다면 먼저 내려가도 좋아.”
“아니에요. 같이 갈게요. 가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를 위해서 왔으니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끝까지 함께 있어 주고 싶었다.
“가요.”
내 말에 나타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의 몸 주변에서 아지랑이처럼 마력이 피어올랐다.
아마도 마력을 방출해서 사람들의 위치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 발견했는지 나타니엘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으악! 뭐 하는 거예요.”
“이 편이 말보다 빨라.”
나타니엘은 날 가볍게 안아 들었다.
떨어질까 무서워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는 대놓고 웃으면서 빠른 속도로 숲을 가로질렀다.
“악! 아악! 나타니엘, 부…… 부딪혀요!”
마치 고삐 풀린 말에 매달린 기분이었다.
나는 그의 목을 끌어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나타니엘은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빠르게 숲을 건넜다.
순식간에 깊은 숲속까지 들어온 그는 내 입을 막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
“쉿.”
나는 지르던 비명을 참고 그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이렇게 높은 곳은 빙의하고 나서 처음이었다.
전생에도 고층 아파트에서는 살지 않았는데.
나는 혹시라도 떨어질세라 손에 잔뜩 힘을 주었다.
귀 가까이에 닿은 그의 심장 소리가 쿵쿵 크게 들렸다.
생각해 보니 나타니엘과 지나치게 가까이 있다.
그것도 둘 다 깨어 있는 상태로.
“음흉하게 황태자비 전하의 뒤를 밟은 주제에 동료애라니, 가당치도 않은 감정이군요.”
“도와줄 거 아니면 닥쳐.”
루나 경이 황후 가문의 기사와 말싸움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어찌어찌 도망친 것처럼 보였다.
루나 경은 멀쩡해 보였지만, 황후 쪽 기사들의 상태가 영 말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한 명은 아까 마물에게 물렸는지 피를 흘리고 있다.
나는 몸을 숙여 나타니엘의 귀에 속삭였다.
“황후 폐하의 친정 소속 기사단이에요.”
그 역시 기억해 냈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번에 이마를 구겼다.
그날 새끼 용이 되어서 내게 구출됐던 기억이 꽤 치욕스러웠나 보다.
“한 명이 많이 다쳤나 본데요?”
내 말에 나타니엘은 밑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그 녀석에게 물렸나 보군. 저대로 두면 그냥 죽겠어.”
“산에서 내려가면 치료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내 뒤를 밟다가 벌어진 일이다. 떳떳하게 치료를 받기는 힘들 거고, 어떻게 치료사를 구한다고 해도 죽을 확률이 더 높지.”
나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잠시 고민했다.
“나타니엘, 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어요?”
“저 정도는 어렵지 않다.”
그의 말에 나는 생각에 빠졌다.
나타니엘의 비밀을 지키는 데에 가장 큰 위협은 저들이었다.
만일 저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 두면, 분명 나중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있잖아요, 나……!”
날 안고 있던 나타니엘의 몸이 휘청거렸다.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이마에 손을 댔다.
약발이 떨어진 것인지 온몸이 뜨끈뜨끈했다.
“세상에, 열이!”
나타니엘은 괜찮다는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나는 그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꺄아아아아!”
어떻게 손써 볼 수도 없이 우리는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아야야…….”
힘겹게 눈을 뜨자 하늘이 보였다.
혹시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손과 발을 움직였는데 다행히 멀쩡했다.
“헉!”
몸을 벌떡 일으키자 나타니엘이 내 밑에 깔려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의 몸에서 내려와 다친 곳이 없는지 살폈다.
“전하!”
루나가 내게로 달려왔다.
놀란 표정의 그들은 나와 나타니엘을 빤히 보았다.
“무사하셨군요! 어서 피하시죠. 이 근처에 마물이 있습니다.”
“나타니엘이 잡았으니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것보다 황태자 전하가 몸이 좀 안 좋아서요.”
나타니엘이 아프다는 사실에 멀리서 머뭇거리던 기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용의 후예가 아프기도 하는군요.”
“후예는 후예고, 나타니엘도 사람이거든요! 도와줄 거 아니면 꺼져요.”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못 하는 말이 없다.
내 거친 반응에 기사는 고개를 숙였다.
루나는 나타니엘의 한쪽 팔을 들어 올렸으나 크게 휘청였다.
나는 그 반대편에 가서 나타니엘의 몸을 지탱한 후 이도 저도 못 하고 있는 기사들을 보며 소리쳤다.
“그쪽도 많이 다친 것 같은데 안 내려갈 거예요?”
멀쩡한 기사 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마도 내려가도 죽을 게 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멍청히 서 있지 말고 빨리 내려가요. 나타니엘이 당신들을 도와줄 수도 있으니까.”
“예? 하지만 저희는 황후의 사람인데…….”
“황후 폐하의 사람이면 이 제국의 국민이 아닌가요?”
이 기회에 황후 쪽에 사람을 심어 두면 좋을 것이다.
당장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이런 일이 분명 도움이 될 날이 있을 것이다.
“어서요!”
내 재촉에도 그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기사 중 리더로 보이는 자가 뭔가 결심한 듯 얼굴을 굳히더니 성큼 다가와 나타니엘을 업었다.
“내려가자.”
리더로 보이는 기사의 명이 떨어졌고, 우리는 그들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말들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 내내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중간중간 나타니엘의 상태를 살폈다.
얼굴도 발갛고, 숨소리도 거친 게 너무 아파 보였다.
‘역시 그날 밤비를 맞고 돌아와서 감기 걸렸구나.’
여름이라지만 아직 밤에는 쌀쌀한 날씨였다.
나는 그의 뺨에 손을 살짝 올려 열을 확인했다.
“걱정이 많이 되시나 봅니다.”
무뚝뚝한 기사의 목소리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그는 괜히 물었다는 듯 얼굴을 돌렸다.
나는 손을 들어 나타니엘의 이마에 손을 댔다. 아까보다 훨씬 뜨거워서 초조해졌다.
힐끗 날 돌아본 기사가 조용히 속도를 높였다.
정신없이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말들이 기다리는 장소에 도착했다.
우리는 사람을 나누기로 했다.
“저는 나타니엘과 함께 황태자궁으로 돌아갈게요. 당신들은 루나 경과 함께 제 아버지를 찾아가세요.”
루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보았다.
“전하, 혼자 가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물론이에요. 걱정하지 말아요.”
일단 궁에 도착해서 사람만 부르면 될 일이었다. 나는 그들과 헤어진 뒤 말을 타고 빠르게 내려갔다.
혹시 나타니엘이 떨어질까 봐 그의 몸을 묶어 두길 잘했다.
‘나중에 일어나서 자길 짐 취급했다고 화를 내진 않겠지.’
겨우겨우 궁 앞에 도착한 나는 시종들을 불렀다.
놀라서 우르르 몰려온 그들은 아픈 나타니엘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까 그 기사와 똑같은 반응이었다.
“사람이 아픈 게 놀랄 일이야! 빨리 옮기지 못해?”
내 일갈에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축 늘어진 나타니엘의 옷을 갈아입히고, 침대에 눕혔다.
내 명으로 하녀들이 의원을 부르러 가고, 침실에는 나와 나타니엘 단둘이 남았다.
‘왜 나타니엘이 자기가 용으로 변하는 걸 숨기는지 알 것 같아.’
그는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주변에서는 그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처럼 보고 기대한다.
만일 나타니엘의 용으로 변한 모습을 보면 그 기대감이 광기로 변하는 것은 뻔해 보였다.
톡톡, 그의 뺨을 건드리던 나는 긴장이 풀려서 길게 하품을 했다.
그때 하녀가 문을 두들겼다.
“비 전하, 의사가 왔습니다.”
“들어오시라 해.”
내 말에 문을 열고 그들이 들어왔다.
의사는 갑자기 끌려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냥 서 있기만 할 텐가?”
결국 참지 못하고, 멍청하게 눈만 끔뻑거리는 의사에게 소리쳤다.
의사는 허둥지둥하며 침대로 와서 진찰을 시작했다.
“좀 어떤가?”
“단순 감기입니다. 처방해 드린 약을 드시면서 며칠 푹 쉬시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그런데 용의 후예이신 전하께서 아픈 걸 다 보다니……. 허허허.”
의사마저 그런 말을 하다니. 나는 발끈해서 소리치려 했다.
펑 소리와 함께 나타니엘의 모습이 연기에 휩싸이지만 않았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