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일부러 그러는 겁니다. (21/145)


21화. 일부러 그러는 겁니다.
20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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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황후 폐하. 오셨어요?”

황후는 아나이스를 노려보다가 제이나의 천진한 반응에 억지로 표정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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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이번에는 무슨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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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호. 그사이에 어머니께서 잘 지내셨는지 궁금해서요.”

인사한 지 여섯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대체 뭐가 궁금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황후는 울컥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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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요.”

저도 모르게 톡 쏘아붙였다.

그러나 제이나는 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기만 했다.

거기에 짜증이 난 황후는 저도 모르게 아나이스를 노려보았다.

움찔하며 등을 마는 꼴이 속을 터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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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지금은 영 기분이 안 좋으신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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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그저 좀 피곤할 뿐이에요.”

황후는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최대한 우아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라고 우긴 것은 자신이었다. 그래서 그만 오라고 하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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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좀 쉬셔야지요. 전 아나이스 황녀님하고 놀게요. 이따 저녁때 뵈어요!”

그런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듯, 제이나는 명랑하게 말을 하고는 아나이스를 데리고 나가 버렸다.

황후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짜증을 참아야 했다.

가뜩이나 연회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제이나를 상대하느라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었다.

와서 특별히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황태자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평민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게 뭔지, 얼마 전에 먹었던 케이크가 어떤 맛이었는지 같은 온통 자기 위주의 이야기였다.

그런 그녀에게 한마디 하면, 그 뒤로 돌아오는 것은 더 많은 말이었다.

그렇게 며칠간의 고난 끝에 황후는 자신이 중대한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제이나는 자신을 전혀 어려워하지 않는다.

황후는 그제야 과거의 자신을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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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오라비의 혈육이니 저년도 똑같이 미쳤을 거라고 예상했어야 했는데.’

가슴 치며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 * *

그리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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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폐하, 지난밤에 평안하셨는지요.”

황후는 드디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다.

부글부글 끓는 그녀의 눈을 보며 나는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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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찍 이 황후의 안부를 걱정해 주니 아주 고맙군요. 그런데 조금 과한 게 아닌지 걱정이에요.”

드디어 그만 좀 오라고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나는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어깨를 흔들며 우는 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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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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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런 소리를 하실 수가 있으십니까? 제이나에게 먼저 친해지고 싶다고 부르실 땐 언제고, 이제는 귀찮으니까 오지 마라. 이 말씀이십니까?”

내가 하려던 말인데?

나는 놀라서 옆에 앉아 있던 나타니엘을 보았다.

이 사람이 이런 이야기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가.

갑자기 깨달음이라도 얻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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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황태자비가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 걱정이 되어 그런 거지.”

황후 역시 당황했는지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이 모자 관계는 언제 봐도 흥미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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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 오늘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이따 다시 오겠습니다, 푹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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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 아니다. 그래, 이따 보자꾸나.”

나는 이제 적당히 빠질 때라는 걸 알아차리고, 나타니엘을 데리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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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이 짓을 계속할 생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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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암, 곧 터지실 것 같은데 조금만 노력해 주세요.”

나는 하품을 하며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이슬 맺힌 황후궁의 정원을 구경하는 것도 벌써 몇 주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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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아나이스는 이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던데.”

어제 우리와 함께 나온 아나이스는 고맙다는 말도, 잘 가라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우리를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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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때문일 거예요. 제가 학대에 대해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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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자존심을 세울 일인가?”

나타니엘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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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자존심 상하죠. 어쨌거나 좋은 상황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계속 그 상황에 처해 있고, 또 저랑은 그렇게 친하지도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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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잘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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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아나이스 황녀님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나는 단단히 나타니엘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는 고개만 끄덕이고 내 뒤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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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요. 마지막까지 밀어붙여 보죠.”

나는 계획을 설명하며 숲길을 걸었다.

그에게 보상으로 건네줄 군것질거리를 고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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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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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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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호. 그래요, 잘 가요.”

점심 문안 인사를 온 제이나는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갔다.

황후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나이스에게 사냥 대회가 끝난 뒤 열릴 연회에서 사용할 꽃과 장식을 고르라 이르고 잠깐 낮잠을 잘 생각이었다.

그런데 혹시 황후궁에 몰래 감시용 마정석이라도 달아 둔 건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로 정확한 타이밍에 제이나가 나타니엘과 불쑥 나타난 것이다.

결국 밀리아는 낮잠 시간을 고스란히 날리고 다시 일을 하러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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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상대하는 게 이렇게 피곤한 일일 줄이야.’

밀리아는 지쳐 있었다.

부디 자신이 두 번 일하지 않게 아나이스가 괜찮은 물건들을 골라 놨길 바랐다.

준비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시녀들과 시시덕거리고 있는 아나이스가 보였다.

그녀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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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해졌어, 요즘.’

얼마 전, 황녀를 훈계하던 모습을 황태자 부부에게 들킬 뻔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앞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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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좋군요. 잘되어 가나요?”

아나이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꽃을 보여 주었다.

한 아름 안고 있는 작은 진주 같은 신지매 꽃다발은 아나이스에게 잘 어울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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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 정말 예쁘지 않나요……?”

그 꽃이 죽은 전 황후의 부케였다는 사실을 아나이스가 모른다는 것은 불행이었다.

밀리아의 얼굴에서 억지로 짓고 있던 미소가 깡그리 사라졌다.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 아나이스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

짝, 소리와 함께 주변이 정적으로 가득 찼다.

누군가가 있을 때는 한 번도 때린 적이 없었기에 방심했던 아나이스는 그대로 눈물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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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날 놀리려고 이러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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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머니.”

그리고 아주 익숙하게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흔들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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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꽃을 가져온 상인이 누……!”

그때, 문소리가 나면서 눈치 없는 목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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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피곤하시다길래 제가 일을 도와드리러 왔어요!”

황후는 너무 놀라서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을 놓지도 못하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놀라서 입을 가리고 있는 제이나와 시큰둥한 얼굴의 나타니엘.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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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대체 아나이스에게 뭐 하는 짓이야!”

분노로 얼굴이 붉어진 황제가 서 있었다.

* * *

황태자궁으로 돌아가던 길에 우리는 황제를 만났다.

느릿느릿 황후궁으로 가던 황제는 우리를 보며 반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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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여기는 어쩐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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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폐하를 뵙고 돌아가는 길이랍니다, 폐하.”

내 대답에 황제는 꽤나 흡족한 얼굴을 했다.

특히 그 까칠한 나타니엘이 황후를 만났다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드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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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주 잘하고 있구나. 내 오랜만에 고생하는 황후와 저녁이나 하러 가는 중인데, 함께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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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 윽.”

귀찮다고 대답하려는 나타니엘의 옆구리를 콱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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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입니다, 폐하.”

황제는 활짝 웃으며 앞장섰다.

오던 길을 거슬러 황후궁에 도착하자 우리는 준비실로 안내되었다.

요즘 연회 준비로 정신없이 바쁘다더니 정말인 것 같았다.

나타니엘은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고는 자리에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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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세요?”

내가 묻자 나타니엘이 몸을 숙여 내 귓가에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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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의 기운이 불안정한데 또 화가 났나 보군. 주변에 아나이스의 기운도 느껴진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를 보았다.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지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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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제가 먼저 가서 폐하께서 오셨다는 걸 알려 드릴게요! 황후 폐하께서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그리고 대답도 듣지 않고 후다닥 준비실 쪽으로 뛰었다.

준비실 앞에서 막 문을 열려는 순간, 안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난 급하게 벌컥 문을 열며 큰 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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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피곤하시다길래 제가 일을 도와드리러 왔어요!”

이럴 때면 눈치 없을 정도로 명랑한 제이나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준비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분노 때문에 얼굴이 잔뜩 붉어진 황후가 아나이스의 긴 머리카락을 쥐고 있었다.

아나이스는 손으로 뺨을 가린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세상에, 지금 상인들도 있는 데서 아나이스를 때린 건가?

저러면 분명 소문이 날 거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내 뒤에 나타니엘과 황제가 도착한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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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대체 아나이스에게 뭐 하는 짓이야!”

황제의 노성이 방 안 가득 울렸다.

당황한 황후가 쥐고 있던 아나이스의 머리채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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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이게…….”

쿵쿵거리며 다가간 황제는 아나이스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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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설마 매번 이렇게 맞은 게냐?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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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저는…….”

곤란해하던 아나이스가 황후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재빨리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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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황녀 전하의 치료가 먼저일 것 같아요.”

나는 아나이스의 손을 잡아 내 뒤로 끌어당겼다.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뺨이 퉁퉁 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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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의사를 데려와라.”

황제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시종을 불러 말했다.

서둘러 나가는 그들을 확인한 황제는 밀리아를 보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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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는 당분간 방에서 근신하도록 해!”

그리고 몸을 휙 돌려서 나가 버렸다.

나는 그런 황제를 놓칠세라 아나이스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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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함께 못 먹게 되어 미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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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폐하. 저희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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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제이나, 혹시 치료의 참관을 네가 해줄 수 있겠느냐?”

미혼 여성의 치료는 반드시 동성인 사람의 입회하에 진행되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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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폐하.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황제는 우리에게 본성에 있는 방을 내주었다.

의사가 도착하기까지 나와 아나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조금 뒤, 여성 의사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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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뺨에 있는 상처는 다 치료가 되었습니다.”

연금술에 기반한 치료는 상상 이상으로 신기했다. 마치 마법처럼 상처가 금방 사라졌다.

나는 가만히 그걸 구경하다가 의사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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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조금 더 예전에 생긴 상처들도 치료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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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것들만 아니면 가능하답니다.”

나는 아나이스를 보았다.

팔에 있는 흔적들을 없앤다면 그녀가 좀 더 당당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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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녀님, 한번 상처를 의사에게 보여 보세요.”

그러나 아나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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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그렇게 대수로운 것도 아닌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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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녀님!”

몇 번이고 보여 주라 설득했지만 황녀는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나중을 약속하고 의사가 방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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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쉬도록 하세요, 황녀님. 혹시 불안하시면 제가 궁까지 데려다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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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왜 당신과 같이 가야 하는데요?”

예상보다 뾰족한 아나이스의 반응에 당황했다.

한편으로 이해는 갔다. 늘 숨기려던 치부를 황제에게까지 들켰으니, 예민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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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황녀님이 걱정되니까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아나이스가 웅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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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위해서 이런 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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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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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폐하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려고 이런 일을 벌이신 거잖아요!”

높아진 아나이스의 목소리에 나는 두 눈만 깜빡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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