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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네가 왜 여기 누워 있어? (13/145)

13화. 네가 왜 여기 누워 있어?2022.03.16.

1655084221872.jpg“아아아악!”

단잠을 자고 있던 나는 우렁찬 비명에 눈을 떴다.

16550842218728.jpg“무, 무슨 일이야!”

번쩍 눈을 뜬 나는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봤다. 아버지가 얼굴이 시뻘게져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부들부들했다.

16550842218728.jpg“아버지, 그러다가 쓰러지…….”

무언가 이상하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등골이 서늘하고, 뭐 된 것 같다는 강렬한 감각. 무언가를 깜빡했는데 하필 그게 치명적인 문제가 될 것 같은 느낌.

16550842218728.jpg‘나타니엘이 어디에 있지?’

어째서일까. 뒤쪽에 묵직한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나는 몸을 돌렸다. 햇빛을 받아도 여전히 어두운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 꽉 감겨 있지만 길게 뻗은 속눈썹. 살짝 벌어진 붉은 입술까지. 잠시 상황을 잊고 감탄할 정도로 잘생겼다. 시선은 눈에서 입술, 그리고 탄탄한 가슴으로 내려갔다. 언제 이불 안에 들어왔는지 반쯤 가려진 상체를 넋 놓고 구경하던 나는 아버지의 고함에 정신을 차렸다.

1655084221872.jpg“가…… 감히!!”

아니, 네가 왜 거기에 있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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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자다가 난데없는 소란에 깨어난 나타니엘은 정신이 없어 보였다. 다행히 약간의 인성은 남아 있었는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막시밀리안의 옷을 빌려 입은 탓에 짧은 소매 밑으로 팔과 다리가 비죽 튀어나온 것이 좀 웃겼다. 물론 상황은 그렇지 않았지만.

1655084221872.jpg“오늘 일은 폐하께 말씀드릴 겁니다.”

16550842218752.jpg“아무 일 없었네.”

무덤덤한 나타니엘의 대답에 아버지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16550842218768.jpg“그게 지금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잔 남자가 할 소리입니까!”

옆에 있던 막시밀리안이 소리쳤다. 꼴에 오라비라고 나서는 모습이 같잖아서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16550842218728.jpg“지,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1655084221872.jpg“그럼 왜 전하께서 네 방에 있었느냐?”

적당한 핑곗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뭐라 말해야 좋을까. 아나이스 황녀님의 안위가 걱정돼서? 윈터스 공작가의 미래를 상담하기 위해? 모두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함께 밤을 지새워 토론할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1655084221872.jpg“어서 말해 보래도!”

아버지의 일갈에 나타니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16550842218752.jpg“공녀가 전에 맛있는 디저트를 대접해 준다고 해서 찾아온 것뿐이다.”

지금 그게 먹힐 거라고 생각하세요? 게다가 그거 아무리 봐도 내가 추파를 던졌다는 것 같잖아요. 이 머저리 같은 용용이 놈아. 나는 입만 벙긋거리다가 결국 그의 말에 맞장구쳐 줬다.

16550842218728.jpg“네, 네. 전에 황녀 전하의 생일 연회 때 만나서 요리사 자랑 좀 했거든요.”

1655084221872.jpg“내가 바보로 보이는 게야?”

싸늘한 아버지의 반응에 난 입을 다물었다. 나타니엘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

16550842218752.jpg“정말 아무 일도 없었고, 어제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너무 피곤해서 깜빡 잠이 든 것뿐이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16550842218768.jpg“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막시밀리안이 이마를 구기며 그를 노려보았다. 나는 처음으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원작의 범위 밖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이게 전부 원작을 비틀어 생긴 업보인 걸까?

1655084221872.jpg“제 딸의 명예를 더럽히셨으니 책임을 지셔야 할 겁니다, 전하.”

16550842218728.jpg“아버지! 진짜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요.”

1655084221872.jpg“넌 좀 가만히 있어!”

거의 대역죄인 취급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타니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1655084221872.jpg“전하께서는 저와 함께 황궁으로 가셔야 할 겁니다!”

16550842218752.jpg“그러도록 하지.”

마치 제삼자인 것처럼 구는 나타니엘이 영 미심쩍었다. 이대로 혼자 보내도 되는 걸까? 사고를 더 쳤으면 쳤지, 수습할 것 같지는 않았다.

16550842218728.jpg“저도 갈게요!”

1655084221872.jpg“넌 외출 금지다, 제이나.”

16550842218728.jpg“아버지!”

1655084221872.jpg“방에서 한 발짝도 못 나오게 해!”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버지가 하녀들을 시켜 날 일으켜 세웠다. 죄인처럼 내 방으로 호송된 나는 방 안에 덩그러니 남았다.

16550842218728.jpg“아 씨,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창문으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았다. 씩씩거리며 마차에 오르는 아버지의 모습과 유유자적 마차에 오르는 나타니엘의 모습이 보였다.

16550842218728.jpg“저 남자, 이상한 얘기나 안 했으면 좋겠는데.”

나타니엘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살아와서 그런지 이상한 부분에서 상식이 부족했다. 불안감이 밀려왔다. 왠지 이상한 일에 얽힌 기분이다.

16550842218768.jpg“제이나, 안에 있어?”

16550842218728.jpg“어, 어어.”

막시밀리안이 문을 열고 식사를 들고 들어왔다. 아침부터 난리가 난 통에 식사도 거른 탓에 고소한 냄새가 나자 배에서 소리가 났다. 왜 갑자기 착한 척이지? 솔직히 우리 남매가 지난 몇 주간 사이가 좋지는 않았기에 묘하게 찝찝했다.

16550842218768.jpg“일단 아침부터 먹어.”

16550842218728.jpg“응.”

테이블 위에 수프와 빵, 치즈와 햄이 담긴 그릇이 올라왔다. 조금씩 먹자 긴장이 조금 풀렸다.

16550842218768.jpg“너 대체 황태자 전하와 무슨 사이냐?”

16550842218728.jpg“그…… 그냥 친구?”

내 대답에 막시밀리안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훑었다. 그래, 솔직히 나라도 못 믿을 상황이었다. 그런데 진실인 것을 어쩌겠는가. 분하고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16550842218728.jpg“진짜 아무 사이 아니야. 그냥 서로 가끔 이야기나 하고, 농담이나 하는 그런 사이라고.”

내 대답에 막시밀리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16550842218768.jpg“제니, 나타니엘 전하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그 사람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농담이나 한다는 건 엄청난 일이야.”

16550842218728.jpg“…….”

막시밀리안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원작에서 나타니엘은 좀 많이 미쳐 있었다. 그가 제정신으로 보일 때는 오직 테레사와 함께할 때뿐이었다.

16550842218768.jpg“전하께서 네가 꽤 마음에 드셨나 보구나.”

16550842218728.jpg“아니, 그게 그러니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었겠지. 내가 그의 비밀을 알아 버렸으니까! 분명 원작에서 나타니엘은 거대한 드래곤이 되어 테레사가 죽은 제국을 버리고, 날아가 버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런데 지금은 저 작고 귀여운 생명체의 모습이라니.

16550842218768.jpg“어쩌면 차라리 잘되었을지도 모르겠구나. 너희 둘의 사이가 좋다니.”

16550842218728.jpg“그게 무슨 말이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막시밀리안의 영문 모를 말에 내가 물었다. 그는 실수했다는 듯이 입술을 물었다.

16550842218728.jpg“뭔데? 빨리 말해. 나 화내기 전에.”

16550842218768.jpg“그게…… 사실 폐하께서 너와 나타니엘 전하가 결혼했으면 하시더라고.”

아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16550842218768.jpg“어제 아버지가 입궐하셔서 들은 말이야. 소르체 광산과 네 결혼 둘 중 하나를 원하셨다고.”

16550842218728.jpg“미친 거 아니야? 그게 우리 영지의 밥줄인데 그걸 달라고 하셨다고?”

16550842218768.jpg“그러니까 네가 결혼하는 쪽으로…….”

머리가 핑 돌았다. 황제는 처음부터 소르체 광산은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막시밀리안이 대역죄를 저질렀다지만, 그 광산은 단순한 사유물이 아니었다. 광산에 생계가 달린 수많은 영지민이 있으니까. 그저 그만큼 나와 나타니엘의 결혼을 원한다는 황제의 뜻을 강력하게 피력한 것이다.

16550842218728.jpg“말도 안 돼.”

16550842218768.jpg“그래도 네가 전하랑 그런 사이라니. 내 죄책감이 좀 덜해지는 느낌이야.”

16550842218728.jpg“아, 아니야! 진짜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

막시밀리안은 아련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16550842218768.jpg“그래.”

16550842218728.jpg“아, 진짜 아니라고!”

막시밀리안은 내 어깨를 툭툭 치고 방을 나섰다. 아니라는 내 공허한 외침만이 방 안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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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고작 하룻밤 사이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황제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공작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1655084221872.jpg“전 폐하를 믿었습니다.”

1655084221872.jpg“아니, 나도 그런 사이인 줄은…….”

자신을 노려보는 공작의 눈빛에 황제는 입을 다물었다.

1655084221872.jpg“대체 혼기가 꽉 찬 처녀의 침대 위에서……!”

말을 하려던 공작은 오늘 아침의 그 황당한 장면을 떠올렸다. 순간 제 눈이 잘못된 줄 알았다. 자잘한 사고 한 번 쳐 본 적 없는 딸의 엄청난 사고. 그게 하필 능구렁이 같은 황실과 연관되어 있다니.

1655084221872.jpg“아시고 제게 하신 말이 아니란 말입니까?”

1655084221872.jpg“아니, 내가 뭣 하러 그런 말을 하겠어. 그리고 둘이 만나는 줄 알았다면 굳이 아나이스와 막스의 결혼을 추진하지 않았을 게야.”

황제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공작은 영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꼭 잘 만들어진 무대 위에서 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1655084221872.jpg“하여튼, 둘이 그런 사이니 어제 한 이야기를 진행하는 거에 동의하겠지?”

1655084221872.jpg“하지만…… 황후 폐하께서 불편해하시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황태자의 진짜 어머니도 아니었다. 게다가 아나이스 황녀는 막시밀리안 탓에 엄청난 창피를 당했다. 제국 전역에 소문이 났을 거다. 그런데 그 둘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황궁에 애꿎은 제이나가 들어가는 거다. 누가 봐도 이건 지옥으로 가는 결혼이었다. 공작으로서는 그녀가 결혼하는 것이 이득이었으나, 도저히 아버지로서 이 결혼을 찬성할 수 없었다.

1655084221872.jpg“걱정하지 말아. 내가 보호해 주면 되지 않겠나.”

1655084221872.jpg“폐하라서 더 걱정입니다.”

저 남자를 믿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나타니엘을 믿기에는……. 공작은 옆에서 입을 다물고 있는 황태자를 보았다. 자기 일이 아니라는 것처럼 초탈한 표정이 영 미심쩍었다.

1655084221872.jpg“좀 더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어차피 둘이 만나는 것 같은데 결혼을 서두를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1655084221872.jpg“아나이스 생각도 좀 해 주게. 온갖 곳에서 물어뜯고 있을 텐데, 어차피 할 거라면 좀 크게 소문을 내서 덮어 주면 되지 않겠나.”

아나이스 황녀를 생각하자 공작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비록 제 아들이 한 짓이지만, 그에게도 아예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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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눈물을 닦는 연기까지 하며 중얼거렸다.

1655084221872.jpg“이 갑자기 무슨 황당한 일이란 말이야.”

같은 아비 된 자의 마음으로서 공작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16550842218752.jpg“적당히들 좀 하십시오. 이 결혼은 제가 하는 것 아닙니까? 대체 왜 이렇게 옆에서 난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나타니엘은 그 꼴이 어이가 없었다. 정작 당사자 둘은 쏙 빼놓고 자기들끼리만 쇼를 하는 모습이라니.

1655084221872.jpg“그럼 우리 딸 침대에 올라와 놓고 지금 책임을 안 지겠다는 겁니까?”

그러나 나타니엘의 그런 뚱한 태도가 공작의 화에 불을 지폈다.

1655084221872.jpg“이, 이이!”

1655084221872.jpg“아이고, 공작. 이러다 쓰러지겠소.”

1655084221872.jpg“지금 그 말은 내 딸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소리 아닙니까!”

황제는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나타니엘의 발을 콱 밟아 주고 공작의 어깨를 토닥였다.

1655084221872.jpg“어차피 결혼은 가문의 결합. 내 공작만 원한다면 밀어주리다.”

황제는 공작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달콤한 말을 내뱉었다.

1655084221872.jpg“반드시 제 딸을 책임지셔야 할 겁니다, 전하.”

1655084221872.jpg“그래, 그래. 내가 반드시 책임지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게.”

황제는 울분에 차 소리를 지르는 공작을 도닥여서 돌려보냈다. 요 며칠 사이에 결혼 문제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가 터져 버린 공작은 욕설을 내뱉으며 밖으로 나갔다.

16550842218752.jpg‘제이나가 욕을 잘하는 건 모두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거로군.’

나타니엘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공작을 배웅하고 집무실로 돌아온 황제는 조금 전과 달리 활짝 웃고 있었다.

1655084221872.jpg“네가 여자 보는 눈이 있구나. 잘했다, 아주 잘했어.”

뭘 잘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타니엘은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각자의 생각은 다 다르게 하루가 지나갔다. 며칠 뒤, 제이나의 앞으로 황태자의 선물과 꽃, 그리고 정식 청혼서가 도착했다.

16550842218728.jpg“일이 왜 이렇게 되어 가냐고!”

제이나는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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