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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우리 언니 그런 사람 아니에요 (3/145)

3화. 우리 언니 그런 사람 아니에요2022.02.09.

16550839856113.jpg“죄송하지만, 오늘 황태자 전하께서는 급한 일이 있어서 못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공녀님.”

카시안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16550839856118.png“아, 그래요?”

분명 원작에서는 테레사가 나타니엘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왜 나타나지 않은 거지?

16550839856113.jpg“그래서 오늘은 아나이스 황녀님이 대신 참석하시기로 했답니다.”

16550839856118.png“아쉽네요. 황태자 전하의 미모가 유명해서 꼭 뵙고 싶었거든요.”

16550839856113.jpg“공녀님, 사람을 볼 때 외모에 너무 집중하지 마세요. 윈터스 소공작님도 아주 뛰어난 외모를 가지셨지요. 하지만, 자기 여자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시잖아요?”

대놓고 막시밀리안을 저격하는 말이었지만 모두 사실이었다. 나는 덤덤히 그녀의 말을 들었고, 오히려 테레사가 안절부절못했다. 우리 둘 다 한 성격 하는 걸 아니 혹시 분란이 일어날까 걱정이었나 보다. 걱정 말아요, 테레사. 나도 우리 오빠가 쓰레기인 거 아니까. 신랄하게 비난을 퍼붓던 카시안이 불현듯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어딘가를 노려보았다. 게다가 방 안 분위기도 좀 이상했다. 마치…… 사랑과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기분이랄까? 나는 불안감에 몸을 돌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우리의 쓰레기, 막시밀리안이 서 있었다. 아나이스 황녀를 에스코트하면서.

16550839856118.png‘저 미친놈은 대체 왜 난리야.’

어째서인지 막시밀리안이 아나이스의 연한 녹색 드레스와 같은 리본을 매고 있어서 둘이 꼭 커플처럼 보였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지금 사건이 어떻게 굴러갈지 궁금해하는 듯 우리만 보고 있었다. 나는 테레사의 손을 잡고 막시밀리안에게 다가갔다. 황녀는 약간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16550839856118.png“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나이스 황녀 전하.”

1655083985618.jpg“마…… 만나서 반갑네, 공녀.”

더듬더듬 인사를 받는 그녀에게 테레사 역시 반쯤 넋이 나간 채로 인사했다. 다행히 치졸한 짓을 했다는 건 알았는지 황녀는 카시안에게 인사를 하겠다며 자리에서 내뺐다.

16550839856118.png“오라버니, 오늘 이 모임에 안 오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1655083985619.png“아아. 그럴까 했는데…….”

말을 흐리며 막시밀리안은 테레사를 힐끗 보았다. 테레사는 고개를 떨군 채로 말이 없었다.

1655083985619.png“아나이스 황녀 전하와는 바로 이 밖에서 만나서 함께 들어온 것뿐이야.”

테레사는 고개를 들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조금 전까지의 밝고 행복한 웃음이 아닌 억지로 만들어진 듯한 웃음이었다. 막시밀리안에게도 눈은 달렸는지 그녀의 기분을 풀어 주려 애를 썼다.

1655083985619.png“식사 시간이 지났는데, 점심은 먹었나?”

16550839885983.png“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대답이었다. 평소와 다른 반응에 막시밀리안은 곧 짜증이 난 듯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16550839856118.png“언니, 잠깐 벨리시아 영애와 있겠어요? 오라버니랑 긴히 할 말이 있어서요.”

내 말에 테레사는 멀리 서 있는 카시안에게 돌아갔다. 테레사와 카시안이 안쪽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나는 막시밀리안을 끌고 후원으로 향했다. 적당히 사람이 없는 곳에 도착하자, 나는 참았던 짜증을 터뜨렸다.

16550839856118.png“그 머리는 장식이에요?”

1655083985619.png“뭐?”

16550839856118.png“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약혼녀가 있는 연회장에 딴 여자의 손을 잡고 들어와요?”

1655083985619.png“황녀 전하와는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아까 말했잖아.”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신이시여, 정녕 이 눈치 없는 새끼가 남주란 말입니까.

16550839856118.png“그건 오라버니 생각이고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오라버니가 황녀 전하랑 바람났다고 생각할 거라고요!”

1655083985619.png“그런 오해는 바로잡으면 돼.”

16550839856118.png“바로잡는다고 소문이 안 퍼져요? 이미 테레사 언니랑 오라버니랑 사이가 삐걱댄다고 난리인데!”

내 말에 막시밀리안은 입을 다물었다. 그 역시 그 소문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쓴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 소문으로 비난받는 건 언제나 가진 것 없는 주제에 공작가의 약혼녀가 된 테레사였으니까.

16550839856118.png“혹시 알아요? 테레사 언니가 오라버니보다 더 상냥하고 좋은 남자 만나면 그냥 파혼하자고 할지.”

1655083985619.png“하, 이 제국에서 감히 어떤 간 큰 남자가 윈터스 공작가의 약혼녀를 건드려.”

16550839856118.png“황태자 전하가 계시잖아요. 저번에 이야기하니까, 테레사 언니가 황태자 전하에 대해 잘 알고 계시더라고요. 호감은 있어 보이던데.”

사실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없지만 저 근거 없는 자신감을 깨 주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였다. 효과가 있었는지 그의 푸른 눈이 가늘게 흔들렸다.

16550839856118.png“적당히 해요, 오라버니. 이런 식으로 나오면 테레사 언니도 곧 질려 버릴 테니까.”

1655083985619.png“테레사가 그럴 리가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막시밀리안은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래, 원작에서도 넌 그랬지. 절대 테레사가 자신을 버릴 리 없다며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그런 막시밀리안 때문에 테레사가 겪은 일은 알지 못했다. 결국 권력과 악의적인 소문에 굴복한 테레사가 파혼을 말할 때까지도.

16550839856118.png“만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내가 직접 아버지께 말할 거예요. 이러다가 메니실 가문과 척을 질 거 같으니 파혼시키라고요.”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이 없었다. 막시밀리안은 내 말이 진심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했다. 나는 그의 발을 굽으로 가볍게 밟고 빠져나왔다. 이대로 연회장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작은 연못 옆 벤치에 앉았다.

16550839914835.png“아주 재밌는 구경을 시켜 주는군, 공녀.”

갑자기 들려오는 감미로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입을 가린 채로 흥미롭다는 듯이 날 보고 있는 미남자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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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의 특징이라면, 그래. 검은 머리에 이 세상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저 붉은 눈동자였다. 오로지 황가의 핏줄 중, 용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은 자만이 가진 눈동자였다. 전설에 따르자면 제국을 건국한 초대 황제는 신의 계시를 받은 용이라 했다. 사실 그걸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말하자면 알에서 태어난 왕 이야기 같은 거였다. 물론 나타니엘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초대 황제의 모습을 쏙 빼다 닮은 그의 모습에 제국민은 모두 열광했다. 게다가 초월적인 힘까지 알려지면서, 나타니엘의 인기는 어마어마해졌다.

16550839856118.png‘그나저나 정말 잘생겼네.’

매일같이 제국 최고의 얼굴을 마주하며 살다 보니 내 미의 기준은 아주 높았다. 그런 내게도 나타니엘은 정말 잘생겨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불온해 보이는 붉은 눈이 창백한 피부와 어우러져서 퇴폐적인 느낌이 물씬 났다. 화사한 미남인 막시밀리안과는 다른 타입의 미남이었다.

16550839914835.png“뭘 그렇게 빤히 보는 거지?”

16550839856118.png“예? 아, 너무 잘생기셔서…….”

그의 위압감 때문일까. 반사적으로 아부하듯 그의 외모를 칭찬했다. 사실 원작에서 황태자는 그 외모 때문에 불이익이 많았다. 어린 시절부터 납치나 은근한 추행에 시달렸고, 커서는 용이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초대 황제의 모습과 너무 닮아서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6550839856118.png‘괜히 외모를 칭찬했어.’

이놈의 입이 말썽이다. 하도 막시밀리안을 까 댔더니 필터링이 고장 난 것처럼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16550839914835.png“공녀도 정말 웃기는군.”

16550839856118.png“하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16550839914835.png“그걸 칭찬으로 듣다니, 공녀의 머릿속이 더 궁금하군.”

금방이라도 내 머리를 열어 볼 것 같은 으스스한 미소였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황태자가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니.

16550839856118.png“듣기로는 오늘 참석 안 하신다 들었는데, 어쩐 일이신지요?”

16550839914835.png“공작가의 약혼녀 같은 귀찮은 사람들이 들러붙을까 봐.”

16550839856118.png“오…… 오해세요! 테레사 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16550839914835.png“그럼 소공작에게 메니실 영애가 나한테 관심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건가?”

나타니엘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당당했던 조금 전의 기세는 집어치우고 나는 공손히 양손을 모아 변명을 시작했다.

16550839856118.png“쓰레기 같은 오라버니를 깨우쳐 주기 위해, 고명한 황태자 전하의 위엄을 빌렸을 뿐입니다. 메니실 영애는 한 치의 사심도 없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만나지도 못했는데 첫인상이 나빠지면 안 되지. 사실 나타니엘이 어쩌다가 테레사에게 반했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테레사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귀족 사회에서도 테레사는 정말 순수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지켜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과 철부지라 욕하며 깎아내리려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아마 나타니엘은 전자일 것이다.

16550839856118.png‘그러니 둘이 만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될 거야.’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테레사는 매력적인 여주인공이었다. 그래, 이건 기회다. 어쩌면 원작에서처럼 둘이 만나게 해 줄 수 있었다.

16550839856118.png“혹시 의심되신다면 제가 소개해 드릴 수도 있어요!”

16550839914835.png“의심될 정도는 아니야.”

16550839856118.png“그래도 한번 만나 보시는 게…….”

관심이 없는 건 곤란한데. 당황한 내 얼굴을 본 나타니엘이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꼭 재밌는 걸 발견한 듯한 표정이었다.

16550839914835.png“그렇게 메니실 영애가 공작 부인이 되는 게 싫은 건가?”

16550839856118.png“고생길이 뻔하니까요. 아까 보시면 아시겠지만, 오라버니의 정신머리가 저 모양이어서요.”

16550839914835.png“메니실 영애를 위해서라.”

16550839856118.png“의심스러우신가요?”

16550839914835.png“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당연히 의심스럽지. 아닌가?”

사교계에 윈터스 공작가의 지독한 시집살이(당연히 나도 그 원인 중 하나였다)에 대한 소문이 파다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옛날 일이라고!

16550839856118.png“지금은 달라요. 테레사 언니는 좋은 사람이고, 전 언니가 황태자님과 같은 분을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16550839914835.png“그 행복한 결혼 생활을 책임져 줄 대상이 나라고? 공녀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지?”

16550839856118.png“기분 나쁘셨다면 용서해 주세요. 적어도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오라버니보다는 황태자 전하가 훨씬 훌륭하시다는 건 알고 있답니다.”

웃고 있는 나타니엘은 내 말이 전부 재밌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가볍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16550839914835.png“그럼 공녀가 말한 대로 그 좋은 사람을 만나라도 볼까?”

그래도 흥미를 느낀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나는 살짝 들떠서 주절주절 테레사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그녀가 얼마나 예쁜지, 그리고 사랑스러운지. 비록 남자 보는 눈은 발바닥에 붙었지만, 테레사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전쟁 같은 귀족 사회에서 테레사는 타인을 진심으로 대했다. 그녀의 진심이 모두에게 통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때문에 은근히 그녀를 흠모하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약 파는 사람의 심정으로 열과 성을 다해 둘이 얼마나 잘 맞을지도 어필했다.

16550839856118.png“그러니까, 한 번만 이야기해 보세요. 제가 아는 국가에 얼굴만 보고 서로 잘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하는 학문이 있는데, 그 학문에 의하면 두 분이 아주 찰떡궁합이에요.”

16550839914835.png“찰떡?”

16550839856118.png“그러니까…….”

테라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연회장 분위기가 싸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막시밀리안과 테레사가 있었다.

16550839856118.png“오우…….”

한쪽 뺨을 가리고 있는 막시밀리안의 모습을 보고 추측건대, 테레사에게 뺨이라도 맞은 것처럼 보였다. 아니, 벌써요?

16550839885983.png“어떻게 제 정절을 의심하실 수 있어요?”

1655083985619.png“테레사, 나는…….”

16550839885983.png“듣고 싶지 않아요.”

돌아서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뛰어나가는 테레사의 모습이 꼭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였다. 이게 무슨 난리야. 나는 당장에 막시밀리안에게 달려갔다.

16550839856118.png“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테레사 언니가 저래?”

1655083985619.png“…….”

16550839856118.png“말 좀 해 봐, 이 머저리 같은 놈아!”

내 멱살잡이에 덩치 큰 막시밀리안이 마구 흔들렸다. 그리고 우리 남매 옆으로 카시안이 나타났다.

16550839856113.jpg“앞으로 윈터스 공작가는 저희 연회에 초대하지 않겠습니다. 돌아가 주세요.”

16550839856118.png“잠, 잠깐만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16550839856113.jpg“돌아가세요. 끌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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