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감당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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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감당할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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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감당할 수 있겠어?
2023.05.06.
서로의 입술이 맞닿아 얽혔다.
칼리드의 손이 다급하게 벨리아의 단추를 풀었다.
여러 번 밤을 보냈어도 늘 이 순간에는 조급해지고 만다.
손은 무척 바삐 움직였지만, 입을 맞추는 것은 한없이 부드럽고 느긋했다.
“아직도 답장을 보낼 마음이 남았나?”
칼리드가 타액이 묻은 입술을 핥아내며 물었다.
벨리아는 달뜬 숨을 내뱉으며 칼리드를 흐릿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서 답장을 보낼 생각이냐고?
이미 옷은 단추가 풀려 죄다 흐트러져 있었다.
“……지금 농담하는 건가요?”
벨리아는 길고 가녀린 팔을 뻗어 칼리드의 목을 휘감았다.
그러고는 그의 입술에 다시 입을 맞추기 전 낮게 속삭였다.
“잔말 말고 계속해요.”
이번엔 벨리아가 먼저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칼리드는 벨리아의 움직임에 맞추며 그녀의 어깨에 걸쳐진 옷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살결이 드러난 부분마다 칼리드가 조심스레 입을 맞췄다.
그는 늘 이렇게 벨리아의 모든 곳이 사랑스럽다는 것처럼 굴었다.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칼리드의 머리카락 사이로 벨리아가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손가락 사이로 사락사락 결 좋은 흑발이 흔들렸다.
‘……미치겠군.’
벨리아의 이 단순한 손짓이 그에겐 언제나 자극적이었다.
그래서 자꾸만 이를 세워서 온몸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 무서워하겠지.’
벨리아는 겁이 많으니까.
칼리드가 극한의 인내심으로 욕망을 억눌렀다.
자신의 기쁨보다는, 벨리아가 얼마나 더 만족하는지가 중요하니까.
“칼리드으…….”
그러니까.
저 끝을 늘려 자신을 보채는 가녀린 목소리가 자꾸만.
칼리드가 이를 악물었다.
“제발 그렇게 부르지 좀 마.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게 아니라면.”
“……그럴 필요 없는데.”
벨리아가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지만, 그 말을 못 들을 칼리드가 아니었다.
“……하.”
칼리드가 벨리아를 더 깊숙이 끌어당겼다.
“전부 그대가 자초한 거니까 후회하지 마.”
벨리아는 칼리드와 눈을 마주쳤다.
후회라고? 그럴 거라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다.
“당신은…….”
손을 뻗어 칼리드의 셔츠를 움켜쥐었다.
“날 무슨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다루는데…….”
벨리아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침대 위에서도 그러는 건 자신이 없다는 것밖에 더 되나?”
칼리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벨리아는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 그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제가 지금 이 도발을 후회할 수 있도록 한번 해봐요, 어디.”
기꺼이 받아 줄 테니까.
“하……!”
칼리드가 머리를 쓸어넘겼다.
자신이 얼마나 참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절대 이런 도발 따위 꺼내지도 못했을 텐데.
하지만 도발을 걸어왔으니 받아주어야지.
“감당할 수 있겠어?”
벨리아는 씨익, 웃고는 칼리드가 입고 있는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톡, 톡, 풀었다.
그 행동에 칼리드는 툭. 하고 인내심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 기분이었다.
벨리아가 셔츠의 마지막 단추를 풀어내는 순간 칼리드가 벨리아의 양옆으로 팔을 지탱하곤 그녀의 위로 올라탔다.
“기대해도 좋아.”
칼리드가 셔츠를 거칠게 벗어내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밤이 더욱 길 거야, 벨리아.”
그대가 아무리 울며 그만해달라 해도 봐주지 않을 테니까.
구겨진 시트 위에 흐트러진 채 누워 있는 벨리아를 내려보는 칼리드의 눈동자가 일순간 위험하게 빛났다.
“……바라는 바예요.”
한마디도 지지 않은 벨리아가 요사스럽게 미소 지었다.
이윽고 벨리아는 칼리드가 주는 쾌락의 파도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열락의 밤이 이어졌다.
* * *
몇 시간 잔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온 세상이 밝았다.
창밖에서 쏟아져 내리는 밝은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일어난 벨리아가 이불로 얼굴을 폭 가렸다.
‘일어나기 싫어…….’
오늘 일정도 없는데 조금 느긋하게 누워 있어도 되지 않을까?
어젯밤엔 대체 몇 시간을 그와 함께했는지.
벨리아는 다시 달아오르려는 양 뺨을 손으로 꾹꾹 누르다 몸을 빙글 돌려 곁에 누워 있는 칼리드를 바라보았다. 평온하게 눈을 감고 한쪽 팔을 머리 위로 올린 자세가 어쩐지 어린아이 같았다.
“귀여워.”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버린 벨리아가 화들짝 놀라 입을 가렸다.
그러나 칼리드는 깊게 잠이 들었는지 전혀 미동도 없이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었다.
그에 마음 놓고 칼리드를 감상하던 벨리아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뻗어 칼리드의 이마에서 콧잔등까지 스륵 쓸어내려 보았다.
처음부터 잘생겼다고는 생각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멋있게 느껴졌다.
순한 표정으로 잠든 그를 보고 있자니, 새벽 내내 자신을 몰아붙이던 사람처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칼리드는 정말로 그만해달라는 벨리아의 요구를 모두 외면한 채 그녀를 안았다.
‘다음부턴 함부로 도발하지 말아야지.’
벨리아는 잠시 자신의 언행을 반성해보았다.
물론 다음에 그러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 수는 없었다.
칼리드와 있으면 자꾸만 자신도 모르는 모습이 튀어나왔으니까.
“그래도 좋았…….”
“뭐가?”
“으악!”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벨리아가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언제 잠에서 깼는지 칼리드가 졸린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뭐가 좋았는데?”
설마, 다 들은 건가?
벨리아의 얼굴이 빨개졌다.
“응?”
칼리드는 계속 대답을 졸라대었다.
하지만 벨리아는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큭큭.”
자신을 놀리는 게 분명한 웃음소리에 벨리아가 분해서 이를 악물었다.
칼리드가 슬쩍 눈을 떴다.
그러곤 그 자세 그대로 손만 뻗어 벨리아의 허리를 껴안았다.
“아무래도 그대는 과격한 걸 좋아하는 게 분명해.”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더 자요.”
“아니 그게 그렇잖…….”
벨리아는 서둘러 칼리드의 입을 양손으로 막고는 꾹 눌러버렸다.
“더 얘기하면 가만 안 둘 거예요.”
칼리드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벨리아가 손을 천천히 떼어냈다.
하지만 칼리드는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어?”
벨리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베개를 들어 칼리드에게 집어던졌다.
* * *
2황자궁이 이렇게 소란스러운 적은 처음이었다.
하다못해 벨리아가 갓 황궁에 도착해 칼리드와 엄청난 행각을 벌였을 때도 이렇게 시끄럽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오가는 사람도 많았고 궁 전체가 떠들썩한 느낌이었다.
“그건 저쪽에 놔둬요.”
벨리아가 테이블과 의자를 들고 오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지시했다.
정원 주변에 꽃이 아주 예쁘게 핀 모습이 절경이었다.
이곳에서 티파티를 하면 좋을 것 같아 드디어 미뤄왔던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전에 레이디들에게 황궁으로 초대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킬 때가 되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었지만 그동안 정신없이 바빴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아! 그건 이쪽이 아니고 저기로 가야 해요.”
테이블 위에 장식할 꽃들도 하나하나 도착했다.
하녀들도 식기를 가져와 자리에 하나씩 정리해 놓아두었다.
“디저트 준비는 얼마나 되었니?”
벨리아가 다시 주방으로 향하려던 하녀를 붙잡아 물었다.
“아까 주방장에게 물어봤을 때 진행에 차질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공주님께서 추가로 요청한 것까지 전부 잘 마무리되고 있었어요.”
그 말에 벨리아가 안심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곧 초대장을 받은 자들이 하나둘 도착할 것이다.
제국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주최하는 파티였기에 조금이라도 더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준비는 잘 되어가나?”
칼리드가 외출 준비를 마친 후 나오다 정원에 있는 벨리아를 발견하곤 말을 걸었다.
“네. 잘 되어가요.”
벨리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대답을 꺼냈다.
그게 퍽 신기해 칼리드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매사에 조심성이 많은 편인데 어쩐지 오늘은 그다지 큰 걱정도 없어 보였다.
“걱정되진 않고? 뭣하면 좀 도와줄까?”
“아뇨. 괜찮아요.”
벨리아가 단호하게 그의 권유를 거절했다.
칼리드는 그게 왠지 서운했다.
“정말로 내가 도와줄 건 없나?”
“네, 없어요. 그보다 오늘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긴 한데…….”
칼리드는 자꾸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자신이 영 쓸모가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래서 나가야 하는 것도 미룬 채 벨리아에게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그대가 원한다면 내가 같이 있어 줄 수도 있어.”
“진짜 괜찮으니까 어서 가요.”
“…….”
벨리아는 칼리드가 귀찮게 구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전에 티파티에서 칸테리프 공녀와 있었던 일을 전해 듣고는 나름대로 걱정을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정말로 괜찮았다.
“저 많이 해봤어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칼리드.”
이전 삶에서 아무리 황제에게 버림받았다고 한들 어쨌든 벨리아는 황후였다.
황자비로서, 황후로서 주최한 파티가 얼마나 많았던가.
황제의 애정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직접 행사를 주관할 때마다 그 어떤 작은 잡음조차 나오지 않도록 신경 써서 준비했었다.
‘그 기간을 허투루 보내진 않았어.’
그렇기에 벨리아는 지금의 준비가 완벽하다 자신할 수 있었다.
일상처럼 준비하는 게 아니라 정말 온 힘을 다해 매달렸었으니까.
자신만만한 벨리아의 모습에 칼리드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닫았다.
그러곤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대는 잘 해내겠지.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
근처에서 재촉하는 부관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촉박했다.
“저녁에 어땠는지 이야기를 들려줘.”
“물론이죠.”
칼리드는 벨리아에게 살포시 입을 맞추며 인사했다.
“그럼 다녀올게.”
“잘 다녀와요.”
벨리아는 떠나가는 칼리드를 배웅하고는 마지막으로 전체 점검을 했다.
“좋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벨리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실내로 들어갔다.
자신도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황궁에서 여는 티파티이니만큼 확실하게 보여줘야지.’
지금은 칸테리프 공녀가 황궁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기에 황자궁에서 티파티를 여는 건 벨리아가 처음이었다. 그러니 미리 기선제압을 할 필요가 있었다.
“공주님. 다 되었습니다.”
하녀가 가볍게 화장을 마무리하며 말했다.
벨리아는 거울에 가까이 다가가 자신의 얼굴을 살폈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고마워.”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미리 준비한 드레스를 입었다.
오늘은 위엄을 보여주면서도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야 했기에 옅은 살구색의 풍성한 드레스를 선택했다.
채도를 다르게 뽑아낸 두 가지의 살구색 천을 겹겹이 쌓아 만든 드레스라 사랑스러우면서도 예뻤다.
드레스의 치마에는 자잘한 보석이 잔뜩 박혀 있어 정원에서 햇빛을 받았을 때 은은하게 반짝이리라. 게다가 칼리드가 선물한 목걸이와 귀걸이까지. 완벽했다.
“마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알겠어. 이제 나갈게.”
벨리아의 눈빛이 단단하게 변했다.
지금부터 그녀가 향할 곳은 고작 티파티가 아닌, 전쟁터와 다를 바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