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내게 반할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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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내게 반할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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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내게 반할 것 같은가?
2023.04.22.
이후 벨리아와 칼리드는 종종 시간이 날 때마다 카지노에 들러 여러 가지 게임을 즐겼다.
어떤 날은 그저 테이블에 앉아 함께 와인을 마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게임으로 엄청난 돈을 따기도 했다.
물론 죄다 잃고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카지노에서 소소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모두에게 익숙해질 무렵.
라울이 슬슬 카지노에 드나들기 시작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내일 밤인가요?”
“그래.”
며칠 만에 불법 도박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드디어 라울의 치부를 드러낼 때가 온 것이다.
“우린 그저 그가 그곳에서 붙잡힌 모습을 목격한 목격자가 되면 돼. 그럼 나머진 알아서 소문이 퍼질 거야.”
칼리드가 시원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날 나타날 경비대는 이쪽과는 전혀 접점이 없는 거 맞죠?”
“라울과 함께 불법 시설 단속에 참여했던 자들이야. 그러니 신고가 들어오면 반드시 현장에 나타날 거고.”
혹시라도 자신들이 단속에 소홀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 그들의 상관인 라울에게 피해가 미친다.
그들의 그런 충성심이 라울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아, 맞다! 라울이 보낸 사람들은 전부 잡아들였죠?”
벨리아가 번쩍 고개를 들어 물었다.
“물론이지. 이미 전부 붙잡아 지하에 가둬두었어.”
“좋아요.”
처음 예상했던 대로 라울은 자신이 그곳에 있을 때 벨리아와 칼리드가 나타난 것을 단순한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은밀하게 자신들의 이동 동선부터 일상까지 모조리 감시하도록 사람을 붙였다.
하지만 벨리아와 칼리드는 그 사실을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내버려 두었다.
“더 이상 그에게 정보를 전해줄 필요는 없죠.”
라울이 숨겨둔 자들을 완전히 내버려 두는 건 오히려 더 의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눈에 걸리는 사람들은 색출해 내었지만, 은밀하게 숨어 있는 자들은 일부러 건들지 않았다. 그가 정말로 첩자를 숨겨두었다고 착각할 수 있도록.
그러나 라울을 함정에 빠뜨릴 날이 내일로 다가왔으니 더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건 시작에 지나지 않아요.”
“알고 있어.”
“하지만 조금씩, 그가 딛고 있는 땅을 무너뜨릴 거예요.”
벨리아의 표정이 무척 상기되어 있었다.
분명 황제가 이 사건을 흐지부지 만들 것이 뻔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여론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테니 허투루 지나갈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더 정리해 봐요.”
벨리아가 펜 끝을 입에 물고 잠시 고민하다 종이에 슥슥,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내일은 벨리아와 칼리드가 진료소 건설 현장에 함께 방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내일은 낮부터 바쁘겠네요.”
공들이던 진료소 건설도 거의 끝나갔다.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보육 시설에 주기적으로 방문해 도움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최근 제국민들 사이에서 벨리아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이 늘어났다.
특히나 벨리아가 보육 시설에 후원자의 자격으로 방문할 때는 모두가 근처에서 그녀를 환영하는 인사를 건넬 정도였다.
“진료소 건설이 끝나면 곧바로 의약 제조부터 시작할 거예요.”
“그래.”
“꼭 만들어야 하는 약이 있어요.”
그것도 빠른 시일 내로.
‘황후는 내년 여름을 넘기지 못했어.’
약의 해독제를 제작하고자 데릭에게 이미 의뢰를 넣은 상태였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여름이 오기 전 해독제를 무조건 만들어 내야 해.’
황후는 지금 죽어선 안 된다.
그녀가 죽어버리면 칼리드에게 너무 불리한 싸움이 될 것이다.
“어떤 약을 만들 생각이지?”
“해독제요.”
칼리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벨리아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에게 당신의 어머니가 중독되어 있다고, 범인은 황제일 것이라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그가 상처받을 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여태 말을 꺼내지 못했지만, 이젠 알려야만 했다. 더 늦어버리면 정말 돌이킬 수 없어질 수도 있다.
“황후 폐하께서 약물에 중독되어 있어요.”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칼리드는 단번에 알아들었다.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질문도 꺼내지 않았다.
이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누가 그런 짓을 하고 있는지, 왜 그동안 말하지 않았는지.
그 어떤 것도.
“……아무것도 묻지 않네요?”
칼리드가 황후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주 오래전이었다.
황후는 칼리드를 보면 악을 써대었고, 칼리드는 그런 황후를 보는 것이 불편했으니까.
“……그 늙은이가 기어이 내 어미를 죽일 작정인가?”
긴 침묵을 깨고 칼리드가 물었다.
벨리아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군.”
그것으로 그의 대답은 끝이었다.
칼리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가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기분이 들었다.
“해독제를 만들 거예요. 이미 정보 길드 루네스에 의뢰를 넣었어요. 재료를 모아 곧바로 제조에 들어갈 거고, 해독제가 완성된다면 황후 폐하께 몰래 전할 거예요.”
벨리아는 차분히 설명했다.
“황후 폐하를 감시하는 자들이 계속 붙어 있어요. 그러니 황후궁에 저희 편으로 끌어들일 누군가가 필요해요. 그건 당신에게 부탁할게요.”
“……그래.”
뜨겁던 여름의 태양도 어느덧 잠잠해졌고,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땅의 열기가 식어가는 그 기간 동안 벨리아와 칼리드는 많은 일을 해왔다.
지반이 단단할수록 튼튼한 성을 지을 수 있는 법.
지금은 그 지반을 열심히 닦아내는 중이었다.
“우선, 내일 라울부터 건드려보죠.”
* * *
진료소는 대부분 완성되어 마무리 작업만 남겨둔 상태였다. 벨리아는 진료소의 주변을 돌며 벽이나 바닥, 내부까지 꼼꼼히 살폈다.
지하에도 공간을 만들어 비상시에는 그곳에서 머물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다.
건설하는 작업자들은 지하에 대체 이런 공간이 왜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에 벨리아는 환자가 많아졌을 경우 그들을 수용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며 설계도 그대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완성된 결과물은 아주 흡족했다.
‘만족스러워. 이 정도의 공간이면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머물 수 있을 거야.’
게다가 땅을 파고 만든 공간이라 겨울에는 일반 집보다 훨씬 따뜻할 것이다.
혹시라도 사람들이 여기서 머물기를 꺼린다면, 일반 창고로 사용해도 된다.
공간이 넉넉했기 때문에 겨울을 날 식량이나 장작, 옷가지들을 보관할 장소로도 충분했다.
“생각하던 것과 비슷한가?”
“네. 충분히요.”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진료소들도 전부 같은 모양으로 지었어. 나중에 하나씩 돌아가면서 들러보도록 하지.”
칼리드가 벨리아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상단을 통해 겨울에 보존 가능한 식품을 거래할 곳들을 미리 알아보고 있어.”
“벌써 가을이니 장작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요. 어디서 받을지도 알아두고. 그래야 내년 가을 대비에 차질이 없을 테니까요.”
“그래. 그것도 이미 얘기해두었으니 걱정 마.”
일 년은 금방 지나갈 것이다.
그러니 예행연습을 한다 치고, 기존 계획했던 것보다 수량을 조금 줄여 미리 시도해볼 예정이었다.
식량이나 장작의 장기 보관에 문제가 없는지, 지하실의 보온 효과가 확실하게 유지되는지 등 확인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래도 겨울 전에 마무리되어서 한숨 돌렸어요. 미리 확인해 볼 수도 있고요.”
벨리아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변수를 줄일 수 있다면 더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오늘 일정은 이걸로 끝인가?”
“음, 네. 중요한 건 전부 확인했어요.”
벨리아는 칼리드와 함께 진료소를 나서면서 도란도란 대화를 이어갔다.
“지난 번에 치료사를 모집하기로 했었잖아요. 생각보다 지원자들이 많아서 진료소 운영은 꽤 순탄할 것 같아요.”
“다행이군.”
칼리드의 표정도 밝았다.
겉으로는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날처럼 보였다.
하지만 오늘 밤.
그동안 준비했던 일의 마무리를 하는 날이었다.
“칼리드. 오늘은 궁으로 바로 돌아가지 말고, 저택으로 가요.”
아무래도 저택으로 가는 게 이후의 일을 생각하면 좀 더 나을 것 같았다.
벨리아가 칼리드의 팔을 살며시 붙잡으며 말하자, 그의 얼굴이 아까보다 훨씬 환해졌다.
자신의 의도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 그의 노골적인 반응에 얼굴이 붉어진 벨리아가 칼리드의 등을 찰싹, 내려쳤다.
그런데도 뭐가 그리 좋은지 칼리드는 웃음을 참지 못하다가 벨리아의 손을 붙잡고 조금 뛰듯이 앞으로 걸어갔다.
“잠깐……!”
졸지에 그에게 손을 붙잡혀 벨리아도 총총 뛰게 되었지만, 어쩐지 표정에 불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칼리드으……!”
벨리아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칼리드가 걸음을 멈추고 벨리아를 돌아보았다.
“아……. 미안. 지금 마음이 좀 급해서.”
그러더니 칼리드가 벨리아의 무릎 아래로 손을 넣어 그녀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칼리드!”
“이러면 더 빨리 갈 수 있겠지?”
“마차까지 가는 게 얼마나 걸린다고……! 꺄악!”
벨리아가 말을 마치기도 전, 칼리드가 앞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벨리아는 사람들이 죄다 쳐다보는 기분에 부끄러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내려줄 것 같지는 않았기에, 서둘러 칼리드의 목을 잡지 않은 한쪽 손으로 눈을 가리곤 최대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붙였다.
‘정말 못 살아……!’
갈수록 주책스러워진다.
그러나 벨리아도 완전히 싫은 것은 아니라 빼꼼 손가락을 펼쳐 마차까지의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어차피 밤까지는 시간이 여유로웠다.
벨리아는 피식 웃어버리곤 그가 자신을 안기 편하게 양팔을 그의 목에 두르며 자세를 고쳤다.
* * *
저녁 즈음, 저택에 누군가가 조용하게 방문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칼리드와 벨리아는 곧바로 그를 집무실로 불렀다.
“그래. 경비대가 움직이고 있다고?”
“예. 신고가 들어오자마자 당시 불법 시설 수사에 참여했던 자들을 모아 그곳으로 향한다고 했습니다.”
“시간은?”
“아슬아슬합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셔야 합니다.”
칼리드가 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곁에 있던 벨리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출발하죠.”
“전에 얘기했던 것, 잊지 않았지?”
“물론이에요. 우린 그저 유흥거리로 방문한 것뿐이니까요.”
“좋아.”
칼리드가 기특하다는 듯 벨리아의 뺨을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출발한다.”
“예. 마차는 이미 대기 중입니다.”
칼리드가 벨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오늘도 즐겁게 놀다 오실까요, 공주?”
“네. 칼리드 전하.”
그들은 동시에 악당 같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맞잡았다.
조금 뛰듯, 빠른 걸음으로 마차에 올라타고 카지노까지 가는 동안 벨리아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그동안 여러 작업을 해오긴 했지만, 라울을 직접 궁지에 몰아넣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후우…….”
“왜 그렇게 긴장하지?”
“긴장한 게 아니에요. 전 언제나 그를 엿 먹일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고요.”
벨리아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차분하고 유순했던 평소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저희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정말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