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 고요한 적막 속에서 흐르는 감정들 (12/88)


#12. 고요한 적막 속에서 흐르는 감정들
202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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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황자 칼리드가 처음으로 로니카 왕국을 방문한 것을 기념으로 파티가 열렸다.

파티가 시작된 후, 벨리아는 칼리드의 손을 잡고 그의 파트너로 함께 등장했다.

얼마 전 2황자의 환영식에서 있었던 일의 여파로 다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수군거렸지만, 둘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이렇게 되기를 원했던 상황이었으니까.

벨리아와 칼리드가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첫 춤을 추었을 때도 사람들은 그들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서로 맞춘 듯 금색의 실로 수놓아진 붉은 드레스와 검은색 제복을 입고 마주 보며 웃는 그들의 모습은 파티에 참여한 귀족들 사이에선 종일 화제였다.

너무나도 다른 이미지라 서로 어울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들이 함께 있는 그림이 생각보다 이질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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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작게 벨리아를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클로제가 예쁘게 차려입고는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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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야?”

칼리드가 로니카의 왕과 대화하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클로제가 슬쩍 다가와 볼을 부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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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칼리드 황자와 무슨 이야기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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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이야기 안 했어.”

벨리아가 대답을 회피했다.

클로제는 제 언니가 자신에게 비밀을 만드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그래서 꼭꼭 감춰둔 장난기를 슬쩍 꺼내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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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둘만 방에 들어가서 뭐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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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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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찐한 대화?”

클로제가 음흉한 눈빛을 건네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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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무슨 소리야?!”

대체 요즘 애들은 어떻게 지내길래 이런 소리를 하는 거람?!

벨리아는 깜짝 놀라서 버럭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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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음?”

하지만 클로제는 그런 언니의 반응이 더욱더 의심스러운 듯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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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잤어?”

벨리아는 황급히 클로제의 입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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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으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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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아무 말도 안 하겠다고 약속해. 그럼 놔줄게.”

클로제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손을 떼어내면서 벨리아가 조용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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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중에 언니랑 얘기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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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황자에 대해서 얘기해 주려고?”

클로제는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없었다.

그에 벨리아가 클로제에게 뭐라고 한마디를 던지려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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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아 공주.”

라울이 등장했다.

벨리아는 표정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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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한 곡 추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라울이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치워버리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다.

벨리아는 한숨을 작게 내쉬며 라울의 손을 잡았다.

대체 언제 왔는지. 알았다면 미리 다른 곳에 가 있었을 텐데.

그것도 하필 칼리드가 없는 이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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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함께 춤을 추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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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함께 춤을 춘 적이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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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제가 로니카 왕국에 처음 왔었던 날이었지요.”

그때 아프다고 하고 빠졌어야 했는데!

벨리아는 지난 과거의 자신을 후회하며 라울의 손을 잡은 채 홀 중앙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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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공주를 처음 보고 한눈에 반했습니다.”

벨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는 라울의 이런 태도가 조금 지겨웠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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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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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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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러했습니다. 그대가 저를 바라볼 때 언제나 온기가 담겨 있었으니까.”

라울이 벨리아와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딱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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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마음이 변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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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이라는 건 늘 바뀌기 마련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전하께 조금 흔들렸던 적도 있었습니다.”

벨리아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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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작은 호기심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더는 제게 마음을 쏟지 마세요,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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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드 때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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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그 때문은 아니에요. 그저 제 마음이 원치 않을 뿐.”

라울이 음악에 맞춰 발을 움직이며 조용히 벨리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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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아 공주. 저는 청혼을 철회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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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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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니카 왕국은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1황자의 청혼을 거절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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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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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공주께 협박이라니요. 그럴 리가. 그저 알려드리는 겁니다.”

라울이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더는 벨리아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런 대화 없이 음악에 맞춰 몇 번의 동작만 반복하던 그들은 노래가 끝나고 인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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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아 공주.”

춤을 췄으니 이만 자리로 돌아가려던 벨리아를 라울이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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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할 말이 남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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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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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요?”

벨리아가 기막히다는 듯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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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을. 그 대신 선택한 것이 칼리드라는 점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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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전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벨리아는 라울이 잡은 손을 뿌리치며 또각또각 자리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잠시 왕과 대화로 자리를 비웠던 칼리드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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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대화를 했지?”

칼리드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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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가치도 없는 말이요.”

벨리아가 가차 없이 조금 전의 대화를 평가했다.

기분이 가라앉은 벨리아를 바라보던 칼리드가 피식 웃더니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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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도 한 곡 추겠나?”

그가 어울리지도 않는 다정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벨리아는 잠시 그가 내민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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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라…….’

벨리아가 생각할 수 있는 방법 중, 칼리드와 결혼으로 묶여 라울을 치는 게 가장 의심을 사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제 욕심으로 그를 묶어두는 게 옳은 일일까.

그는 황제가 되고 싶은 게 맞나?

자신이 복수에 눈이 멀어서 그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게 아닐까.

수많은 의문이 머리 위로 둥둥 떠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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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힘들어요.”

벨리아가 칼리드의 손을 슬쩍 밀어내며 말했다.

이미 그와는 첫 춤을 춘 상태였다. 굳이 춤을 두 번이나 출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칼리드는 자신이 거절당할 줄은 몰랐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벨리아는 그런 칼리드의 상태를 모르는 척하며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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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테라스로 갈래요? 조금 쉬고 싶은데.”

그녀의 말에 칼리드가 다시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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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로 가지. 마침 나도 한적한 곳으로 가고 싶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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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좋네요.”

벨리아가 칼리드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개어 올렸다.

라울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를 마주할 때마다 자꾸만 피 냄새가 나는 기분이었으니까.

* * *

테라스로 들어와 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쳤다.

아마 자신들이 이곳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다들 봤을 테니 또 여러 소문이 생겨날 것이다.

대부분은 벨리아의 순결을 의심하는 말일 것이고, 왕족이 보여야 할 기품이 없다고 깎아내리겠지.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자신에 대한 건 모두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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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단은 남부로 떠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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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얼마 전 그에게 알려준 금광의 위치로 그의 조사단이 비밀스럽게 움직였으니 곧 결과를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빨라도 한 달은 걸릴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그보다 빨리 확인이 가능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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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도 훨씬 이들의 마도구의 수준이 높았어.’

그건 회귀한 벨리아조차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제국과 왕국이 사용하는 수색용 마도구보다 훨씬 복잡한 수식이 걸려 있는 마도구라니.

어째서 이런 물건이 칼리드에게 있는 것인지.

하지만 그건 차차 알아보기로 했다. 어쨌든 시간이 단축된다는 건 우리에겐 좋은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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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듣기 위해선 적어도 2주는 더 이곳에서 머무르셔야겠군요.”

벨리아가 난간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바람이 시원했다.

걸어 잠근 문 안쪽으로 경쾌하게 연주되고 있는 음악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반대편 정원 쪽으로는 무척 고요한 공기만 흘렀다.

그게 어딘지 비현실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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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파티에서 테라스로 나오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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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지?”

파티의 테라스는 비현실적이게도 어울리지도 않는 단어들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었다.

소란스럽고, 어지럽고, 고독했고, 외로웠고, 쓸쓸했다.

그리고 그 모든 단어는 벨리아를 향해 있었다.

마치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네가 선택한 결과를 봐.

결국, 넌 혼자가 되었어.

모든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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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거야.’

벨리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무수한 별들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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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상반되는 장소의 경계에 서 있으면, 저만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아서 왠지 기분이 묘하거든요.”

벨리아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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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소는 제국의 황후로 있으면서도 그 어느 곳에도 포함되지 않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했다.

라울을 믿었기에 나중을 대비한 자신의 세력을 만들 생각도 못 했다.

결국 남은 것은 홀로 고고한 황후라는 이름뿐.

그것도 황제가 내쳐 아무런 힘도 없는, 보잘것없이 황후라는 이름뿐인 타국의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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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처음부터 로니카의 힘이라도 빌려볼 것을.’

고집부리지 말아야 했었다.

로니카 왕국의 이름을 등에 업고 자신을 내세우기라도 했어야 했다.

괜히 가족들에게 부담이 될까 싶어 벨리아는 모든 걸 혼자서 해결해 나아가려 했다.

그러는 사이에 가족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도 모른 채.

이후 라울에게 속았음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로니카가 제국에 의해 침공당한 후였다.

황제가 황후에게로 가는 정보를 모조리 차단하고, 무척이나 은밀한 작전을 통해 로니카 왕국을 무너뜨렸다. 결국, 그녀의 곁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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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종종 꼴 보기 싫은 이들을 피해 테라스에 있기도 해.”

갑작스럽게 어두워진 벨리아의 안색을 확인한 칼리드가 그녀의 곁에 나란히 섰다.

그러고는 무심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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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나 귀찮게 구는 이들이 많은지. 뒤에선 내 욕만 하고 다니던 놈들이 막상 앞에서는 눈에 날까 벌벌 떨며 아첨을 하지.”

그는 마치 위로라도 하듯, 덤덤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어쩐지 평소의 농담조로 던지는 말투와는 확연히 달랐다.

조금은, 따스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벨리아가 조금은 밝아진 목소리로 그에게 장난기 어린 말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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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의 소문은 저도 들었어요.”

그 말에 칼리드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벨리아도 감았던 눈을 뜨곤 고개를 돌려 칼리드와 시선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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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그런 소문을 다 들어놓고 내게 결혼하자고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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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겐 그런 소문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벨리아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다 피식 웃어버리곤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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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지금 제 눈에 보이는 2황자 전하께선 소문만큼 그리 나쁜 사람처럼 보이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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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그것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아무런 말없이 테라스에 기대어 서 있었다.

여전히 창문 안쪽에선 환한 빛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왔고.

반대쪽에선 어둠과 함께 고요함이 흘렀다.

바람은 선선했고.

밤하늘의 별은 빛났다.

그들은 마치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홀로 떨어진 듯한 그 묘한 기분을 공유했다.

그 어떤 속마음도 꺼내지 않았으나,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우스운 생각마저 들었다.

가볍게 불어오는 서늘한 공기가 상쾌했다.

벨리아가 흩날리는 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기며 칼리드를 향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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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전하와 함께 이렇게 있으니 이곳도 그리 나쁘진 않네요.”

누군가와 함께 테라스에 머문 것은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유쾌한 듯도 했다.

벨리아는 몸을 돌려 난간에 기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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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나쁘지 않네요.”

누구에게 건네는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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